Faith(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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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의 예상대로 지욱 패거리는 재림의 집으로 가는 길목 한 편에 모여 있었다. 5학년 후배에게 망을 보도록 한 그들은 좁은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병석이는 많이 혼났대?”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지욱이 물었다. 핸드폰 액정을 열심히 두들기고 있던 덩치가 대답했다.
“지금도 상담실에 있을 걸?”
별관 뒤에서 잡힌 아이들 중 한 명이 바로 더벅머리, 병석이었다. 6학년 선생님의 손에 끌려 병석은 상담실로 직행했고 병석은 반성문을 쓰느라 지금까지 학교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병석을 필두로 하여 학교 내의 암덩어리들을 골라내려 했던 선생님들의 작전은 병석이 의리를 지킨다는 이유로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새끼는 왜 이렇게 늦어? 야, 재림이 아직 안 보이냐?”
망을 보던 후배는 선배들의 물음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피시방 간 거 아냐?”
“아이 씨, 오늘 또 돌아다니면서 찾아야 돼? 무슨 숨바꼭질 하는 것도 아니고.”
“종혁이 너, 재림이 어디 갔는지 몰라?”
5학년 후배들 무리 속에 얌전히 대기하고 있던 종혁이는 불씨가 튈까 두려운 마음에 서둘러 대답했다.
“모르겠는데요. 아까 학교 끝나고 바로 나가는 것만 봐서···.”
“이 새끼, 눈치 깐 거 아냐?”
슬슬 날도 풀리기 시작한 3월 말인데도 햇볕이 비추지 않는 좁은 골목은 손등이 붉어질 만큼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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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왔어?”
오늘도 여전히 화장기 없는 회색트레이닝 복의 하은이 소파에 드러누운 채 손만 까닥였다. 그러다 문득 낯선 이가 아이들 뒤를 따르는 것을 보고 상체를 세웠다.
“뒤에 누구니?”
명수가 현관까지 달려온 호빵을 들어 올렸다. 헥헥거리며 조그만 혀를 빼물고 있는 호빵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얼굴을 비벼대며 말했다.
“재림이요. 단유네 반인데 같이 왔어요.”
“왜?”
단유가 재림을 돌아보았다. 니가 직접 말씀드려, 라는 표정이었다. 재림이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소파에 앉아 있는 하은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성재림입니다.”
“이름은 들었고, 무슨 일이니? 놀러 온 거야?”
재림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 사이에 호빵과 어울리던 명수가 신발을 벗어 던지면서 말했다.
“경찰서 가기 싫다고 여기로 왔대요.”
명수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지만, 전혀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다.
“갑자기 웬 경찰서?”
이대로는 별 것도 아닌 걸로 시간만 잡아먹고 말리라는 위기감에 단유가 나서서 사정을 설명했다. 어제 저녁 6학년 형들의 부름을 거절한 이야기와 오늘 아침의 난동(?) 사건, 그리고 재림이 무서워서 집에 못 가겠다는 이야기까지 했더니, 하은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니가 그 유명한 일진이야? 나 일진 처음 보는데, 책에서나 보던 일진을 실제로 보다니 뭔가 신기하다!”
‘초등학교 일진’이라는 게 ‘연예인’도 아닐진대, 호들갑을 떠는 하은의 유니크한 반응에 재림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유는 역시나 가방을 벗어놓고,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단유가 청소기를 작동시키고, 명수가 호빵을 데리고 소파 위로 가는 동안, 재림은 단유를 도와야 할지, 명수를 따라가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넌 저 방에 들어가 있어. 금방 끝내고 갈게.”
단유가 지시해주지 않았다면, 계속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어야 할지도 몰랐다. 재림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방에 들어가려는데, 하은이 불렀다.
“어이, 일진. 이리와 봐. 이야기나 들어보자.”
재림이 단유를 바라보니, 단유는 시선을 내리고 청소에 집중했다. 재림은 쭈뼛대면서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을 향해 다가갔다.
“너 정말 일진이야? 너네는 뭐하고 노니? 너도 애들 돈 뺏어봤어? 잘 싸우고? 너도 싸움 많이 하니? 다른 학교 애들이랑도 싸우고 그래? 중학생들이랑은 안 싸워봤지? 중학생들이랑은 아직 싸울 힘이 안 되나?”
청소기의 소음을 뚫고 폭풍질문세례가 이어지는 동안 재림은 취업 면접이라도 보는 사람처럼 진땀을 흘렸다. 검은 맨투맨 티셔츠의 목덜미가 땀으로 젖을 때 단유가 청소를 마치고 돌아왔다.
“너, 경찰서 가기 싫으면 선생님한테라도 이야기해.”
“안 돼. 그랬다가는 더 혼날 거야.”
“누구한테 혼이 난다는 거지?”
“···부모님.”
단유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부모님이 왜 괴롭힘 당하는 아이를 혼을 내?”
재림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이유를 알고 싶은 사람은 누구보다 재림이 먼저였으니까. 가정 문제까지 들춰가면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실례라는 생각에 하은은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종합해보면 아이들이 너한테 해코지할까봐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건데,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그리고 내일이나 모레는? 그 때도 여기로 도망칠 거고?”
하은의 지적대로 여기에 숨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어쩌면 단유의 말대로, 경찰에라도 연락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단유가 재림을 대신해 물었다. 어쨌든 이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이라고 할 사람은 하은 뿐이었으니까. 하은은 머리를 북북 긁으면서 재림을 쳐다보았다. 단유와 비슷한 덩치의 재림은 일진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엔 그저 어리고 겁 많은 12살 꼬마에 불과해 어울리지 않았다.
“학교폭력은 신고하라고 배웠는데요?”
단유가 경찰서로 가라고 한 이유였다. 학기 초 선생님이 지시해주는 사항에는 학교 안전 시스템의 일환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주제도 나오고, 그럴 때마다 학교폭력신고센터에 대한 알림이 있었다.
“117이요, 117!”
명수가 말을 거들었다. 하은은 곰곰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이 나면 119, 도둑 들면 112, 학교 폭력은 뭐, 117로 전화해보면 알겠지. 전화버튼 세 자리 누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래, 우리끼리 이렇게 고민할 이유가 없네. 신고하지 뭐.”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을 들자, 재림이 황급히 이를 제지했다.
“잠시 만요.”
“왜?”
“그게··· 안 하면 안 돼요?”
하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왜?”
“그게, ···괜히 신고했다가 제가 한 줄 알고 복수하면 어떡해요?”
“그럴 일 없어. 그리고 신고하면 경찰들이 널 보호해 줄 거야.”
···그렇게 해 주겠지?
“아빠가 사고치지 말라고 했는데, 전화했다가 아빠가 화낼지도 몰라요.”
“그럴 리 없어. 오히려 아들이 피해자인데 어떤 아빠가 널 뭐라고 해? 그리고 그런 문제도 경찰에서 봐줄 거야. 가정폭력 문제도 다루고 있으니까. 혹시 너희 아빠가 자주 널 때리거나 그래?”
당황한 재림이 팔을 휘저으면서 격하게 부정했다. 때리기는커녕 오히려 너무 무관심한 분이신데.
“그럼 전화해서 신고하고 상담을 받도록 하자. 그리고 너도 이제 그 쪽 생활 청산해야지. 안 그래?”
청산 후 바른 삶을 살 기회 정도는 줘야겠지. 하은은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간단한 안내 멘트 후 상담사에게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혹시 학교폭력 여기 신고하는 거 맞나요?”
난생 처음 117에 전활 걸어보는 하은은, 살다보니 이런 데도 전활 다 해보는구나 싶었다.
****
“어떻게 오셨는지?”
이 선생님은 수업 중간에 연락을 받고 잠시 복도로 나왔다.
“신고가 들어와서요.”
경찰서의 학교폭력신고센터에서 나왔다는 경찰과 상담사는 복도에 난 창을 통해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수업 중이었던 탓에 아이들은 얌전히 책상에 앉아있었다. 낯선 이의 등장에 주의를 기울이는 아이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신고’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재림을 향해 시선을 주었고, 눈이 마주친 재림이 고개를 숙였다.
“아, 저기, 그···.”
선생님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며칠 사이에 교실 안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에 자신도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 경찰이 먼저 말했다.
“저희가 받은 신고는 이 반의 성재림이라는 학생이 윗학년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서 집 앞을 지키는 바람에 집에도 들어가기 무섭다더군요.”
선생님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러시군요. 제가 담임으로서 부끄러운 점이 많네요.”
“선생님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사고까지도 선생님이 책임지실 수는 없으시죠. 그 때문에 저희가 이렇게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여자 상담사가 웃음기 없이 설명을 했다.
“우선 성재림 학생과 면담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잠시 데리고 가겠습니다. 여기 상담실이 2층이었던가요?”
“네, 네. 그럼 지금?”
“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선생님은 재림을 불렀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재림이 머뭇거리다 교실을 나왔다. 등 뒤에 꽂히는 아이들의 시선과 호기심이 따갑게 느껴져 걸음을 걷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성재림 학생?”
“네.”
“나는 학교폭력신고센터에서 상담을 하는 노유경 선생님이야. 선생님이랑 잠깐만 이야기 좀 할래?”
재림이 낯선 사람들과 사라진 후, 담임선생님은 반 분위기를 수습하여 수업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정작 본인의 마음이 불편하니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일단, 짝과 함께 문제를 읽어보고 토론을 해보기로 해요. 알았죠?”
내용을 모르는 아이들이라도 눈치는 있어서, 선생님 말에 따랐다. 대신 그들의 토론 주제는 과연 재림이는 어떻게 될까, 였다.
“그럼 재림이 감옥 가는 걸까?”
“감옥이 아니라 소년원이야. 우리 옆집 형이 거기 갔다고 했어.”
“그래? 거기는 감옥이 아니야?”
“감옥은 감옥인데, 애들이 가는 감옥이래.”
“그럼 거기서 급식 먹는 걸까?”
“그렇겠지. 그런데 감옥이라서 여기보다 맛없는 급식 주겠지.”
“여기도 별로 맛은 없는데. 여기보다 맛없으면 더 밥 먹기 싫겠다. 밥 안 먹으면 경찰들이 막 혼내고 그러나?”
단유의 짝인 소연의 관심사도 별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바로 건너편에 앉아있던 아이의 일인지라 관심이 지대했던 바였다.
“어제 6학년한테 맞은 것 때문에 신고한 걸까?”
단유는 교과서를 짚었다.
“‘단군 이야기를 읽고 궁금한 점을 이야기하자’는 게 문제야.”
“넌 안 궁금해? 쟤 5학년 시작할 때부터 문제아였잖아. 게다가 아침마다 쟤 만나면 옷에서 담배냄새가 얼마나 많이 나던지. 쟤 진짜 담배 피는 거 아냐?”
단유의 손가락은 여전히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가리켰다.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는 조선인데, 왜 고조선이라고 할까?”
소연이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너도 어제 6학년이랑 싸웠잖아. 어쩌면 너도 불려갈 지도 몰라. 걱정 안 돼?”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고조선을 따라 한 걸까?”
“너 왜 내 말 계속 씹어?”
공격적인 어투로 소연이 반문하자, 단유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차분하게, 조근조근 설명했다.
“니 말을 씹은 게 아니고 무시한 거야.”
“그게 그 말이잖아. 그럼 왜 무시하는 건데?”
“니가 선생님 말을 무시하는 이유와 같아.”
“뭐?”
“선생님이 문제 풀고 토론하라고 하셨는데, 왜 다른 이야기를 해?”
소연이 칫, 하며 고개를 돌렸다.
“재미없게.”
“문제나 풀자. 다음 문제는, 우리가 왜 단군왕검에 대해서 공부할까, 라는 거야.”
소연이 단유를 째려보다가 한 마디 뱉었다.
“넌 걱정 안 돼?”
“뭐가?”
“너도 싸웠고, 재림이도 싸웠잖아? 둘 다 경찰에 잡혀 갈지도 몰라.”
단유는 두 손을 내려 무릎 위에 두고 등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소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안 싸웠고, 막기만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아. 자기 방어는 법적으로도 분명히 명시된 부분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 또 재림이는 맞기만 했지, 6학년과 같이 싸우지 않았어. 그리고 재림이 역시 폭력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이 경찰에 잡혀 갈 이유는 없어.”
“그걸 어떻게 알아?”
단유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사회에는 약자를 보호하는 법이 있고, 그 법이 우리를 지켜 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