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71화 (171/956)

Faith(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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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단유와 명수는 거실에서 회색 트레이닝 복을 입고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는 하은을 보았다.

“다녀왔습니다.”

“왔니?”

그리고 거실에서 빨빨거리면서 뛰어다니던 호빵이 둘을 향해 혀를 내밀고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명수가 밝게 웃으며 호빵을 두 손으로 집어 들었다. 호빵을 혀를 내밀어 명수의 얼굴을 핥으려했다. 명수가 좋아 죽으려하는 걸 옆 눈으로 보면서 단유는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벗고 나온 단유는 신발장 옆에 놓인 무선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놔둬. 어차피 더러워질 거.”

하은이 졸린 목소리로 단유의 행동을 제지해보지만, 단유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청소기의 전원을 켰다. 모터가 돌아가면서 70데시벨의 소음이 집안을 울리자, 명수의 손에 들려있던 호빵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소음의 정체를 보려고 애썼다.

“궁금해? 궁금해?”

명수는 호빵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일부러 청소기를 보지 못하게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개 멀미하겠다. 그냥 좀 내려놔.”

“얘도 멀미해요?”

“할 걸?”

하은은 자세를 바꿔 누우면서 대답했다. 그러나 당분간 소파에서 일어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그 사이 단유가 청소기로 바닥에 떨어진 흰 털들을 치우고 있을 때, 설거지 중이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단유야, 이모가 할 테니까 넌 방에 들어가서 쉬어.”

“괜찮아요. 금방인데요, 뭘.”

보육원에서도 자기 방 청소는 자기가 알아서 했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아주머니가 대신 해주는 형편이라 몸은 더 편해졌다. 그러니 이 정도 손을 거드는 것은 무리도 아니었다. 게다가 무선청소기는 늘 신기했다. 늘 허리를 굽히고 빗자루 질을 하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충전시간의 제한 때문에 그럴 수는 없겠지만.

“선생님은 뭐하누? 애가 저리 청소하는데?”

“이모, 쟤가 하고 싶어 하는 건데요. 그냥 놔둬요.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말린다고 들을 애도 아니네요.”

아주머니는 피식 웃으면서 설거지를 이어갔다. 자신도 그걸 알기에 말로는 말리면서도 고무장갑을 벗지 않았다.

“진짜, 주영이 이 기집애가 사람 괴롭히려고 보낸 거야. 분명해.”

하은이 중얼거리면서 몸을 웅크렸다. 좁은 소파 위에서 용케도 몸을 돌려가면서 가장 안락한 느낌을 주는 자세를 찾아보는 하은이었다. 털들이 보이는 대로 청소기를 이리저리 밀어대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단유는 마지막 한 올까지 찾아내려다, 명수가 호빵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고는 청소기를 껐다. 하은이 피식 웃는 소리를 낸 것 같았지만, 애써 확인하려 들지는 않았다. 청소기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후, 베란다에서 마른 빨랫감을 가지고 나왔다.

“아이고, 단유야. 그냥 냅두라니깐.”

설거지를 마친 아주머니가 달려와서 손을 거들었다.

“제 꺼만 가지고 갈게요.”

단유는 야무지게 자신의 옷들을 챙겨서 방으로 들어갔다. 하은이 상체만 조금 일으켜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여전히 가방을 둘러맨 채 호빵과 놀고 있는 명수를 보았다. 호빵이 작은 발로 깡충대며 명수의 코앞에 갔다가 다시 물러났다가를 반복하고 있었고, 명수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서 호빵의 재롱에 맞춰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먹보야, 가방은 좀 벗고 놀지?”

하은의 말에도 명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빵과 눈을 맞추며, 입 꼬리를 당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참 세상 속없이 편안하게 산다. 둘 다.”

하은이 혀를 차며 말하자, 아주머니가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그 말을 받았다.

“이그, 선생님도 너무 그러지 마. 명수 나이 때는 저래도 되는 거야. 나중에는 저러지도 못해, 나이 들면.”

하은은 괜히 자길 두고 하는 이야기 같아서 뜨끔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선생님’이고 ‘보호자’인데 저리 둘 수는 없었다.

“인명수! 옷 갈아입고 놀아! 안 그러면 저녁에 TV 못 본다.”

명수가 화들짝 놀라며 방으로 뛰어들었다. 명수의 움직임에 놀란 호빵도 뒷걸음질 치면서 물러섰다가, 명수가 뛰어 들어간 방으로 총총 걸어갔다.

아주머니가 걷어온 빨래들을 거실 가운데 러그 위에 올려두고 하나씩 개기 시작하자, 하은도 내려와 손을 거들었다.

“쟤들은 그래도 선생님 같은 분 만나서 다행이야. 처음엔 부모 없이 자란 애라고 들어서 성격도 어둡고 침침한 애들이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는데 말이야. 요즘은 명수보고 웃는 일이 많아서 일이 힘들어도 힘든 줄도 모르겠어.”

웃으면서 수건을 정리하는 아주머니의 손길을 따라 해보는 하은은 아직 집안일이 서툴러서, 옷을 개는 것인지 옷을 구기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도 가르칠 건 가르쳐야죠. 단유 보세요. 단유는 지금 당장 혼자 산다 해도 걱정이 없는데, 명수는 자기 앞가림도 못해서 걱정이라니까요.”

“그건 선생님이 기준을 높게 잡아서 그래. 내가 그래도 나름 오래 살았지만, 단유 같은 아이는 본 적이 없어, 본 적이. 만약에 우리 애가 단유처럼 행동했으면 내 얼굴 주름이 반 이상은 줄었을 거야.”

“주름은 무슨. 이모님 얼굴 아직 좋거든요?”

“좋긴, 내가 요즘 거울 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는데. 팔자주름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가지, 눈 옆에 주름도 어제는 4개였는데 오늘은 5개지. ···나도 선생님 나이 때는 남자들 꽤나 울리고 다녔다고? 정말이야.”

하은은 까르르 웃으면서 자기 허벅지를 두들겼다. 아주머니는 피식 웃으면서 정갈하게 접은 수건들을 한데 모아놓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 연애 안 해? 아니면 몰래 하나?”

하은이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연애는 무슨. 저 연애 안 해요.”

“아니 자기가 무슨 연예인이야? 왜 그렇게 팔짝 뛰고 그래? 그러니까 더 수상하잖아?”

“아이 참, 민망하게 무슨···. 지금은 그냥 연애할 기분이 아니라서 그래요.”

“연애를 하는데 무슨 기분을 따지고 그래? 남자가 있으면 하는 거고, 없으면 못하는 거지.”

“···애들 가르치는 일도 해야 되고.”

아주머니는 하은의 빨랫감 몇 개를 끌어다가 예의 노련한 솜씨로 개기 시작했다.

“애들 가르치는 것도 오후에나 잠깐 하는 거지. 낮에는 아무것도 안하잖아?”

“안하긴요? 저 부업해요.”

“부업?”

“주식하잖아요?”

“이그, 거 주식하다 망한 사람이 한 둘이 아냐. 그거 하지 마. 우리 옆집 살던 아저씨도 주식하다가 10년간 모은 돈, 한 번에 다 날리고 시골로 내려갔어. 죽으려고 하는 걸 부인이 울면서 말렸대. 난 못 봤는데 그 때 아파트에서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 ···내가 여태 살면서 보니까, 주식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손대는 게 아니더라고.”

그럴지도. 개미투자자들이 시장에서 큰 돈 버는 경우는 명수가 수학시험에서 백점 받을 확률보다 낮을 것이다. ···갑자기 명수한테 미안해졌다. 하은은 헛기침을 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이모님 애들은 뭐해요?”

“우리 애들? 큰 애는 중3이고, 작은 애는 중1이야.”

“공부는 잘 하고요?”

“그냥저냥 하는 편이긴 한데, 학교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하은은 굳이 성적까지 물을 생각은 없었는데, 본직(?)이 과외교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물었다가 아차,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입이 근질근질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큰 애가 말이야, 전교 등수가 4등 정도 하거든? 그래서 별로 큰 걱정이 없어. 선생님도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면서 내 손을 두들겨 주더라고. 근데 작은애가 등수가 조금 낮아서 걱정이 있어. 중학교에서 성적 좋아도 고등학교 올라가면 성적이 떨어진다며? 그래서 작은 애가 걱정이 많더라고. 근데 내가 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마땅히 없어서 그냥 보고만 있지. 어휴, 우리 애도 제대로 못 보면서 이래도 되나 싶은데, 또 안하면 돈 벌 사람이 없으니까 안 할 수도 없고 말이지.”

반쯤 자랑이 섞인 고민이었다.

“작은 아이는 성적이 많이 안 좋아요?”

“반에서 겨우 10등 안에 든다네? 고등학교 들어가면 성적이 2배는 떨어진다며? 그럼 20등도 겨우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잖아? 그래서 애가 걱정이 많긴 한데, 자기는 노력을 해도 성적이 안 오른다는 거야. 큰 애가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큰 애도 자기 앞가림하기 바빠서 도와줄 형편이 안 되는 거지. 그러니 어쩌겠어? 내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학원이라도 보내줘야지.”

반쯤이 아니라 그냥 자랑이었나 보다. 그래도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을 보니, 뭐라도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하은이었다.

“이모, 걱정 안하셔도 돼요. 중학교 성적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저 공부에 흥미가 떨어지지 않게만 신경써주시면 되겠네요. 그럼 고등학교 올라가도 별 문제 없을 거예요.”

애초에 반에서 10등 하는 아이가 공부에 흥미가 없을 리가 없겠지만.

“역시 선생님이라 그런지 잘 아시네? 그럼 우리 애들 별 문제 없는 건가?”

“성적만 보면, 뭐 그렇죠.”

하은의 시큰둥한 반응이야 어떻든, 자기애들이 문제없다니까 얼굴이 한껏 밝아지는 아주머니였다. 이대로면 콧노래라도 부르면서 어깨춤 출 기세였다.

그 때, 단유가 방에서 나왔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드는 단유에게 하은이 물었다.

“씻었어?”

“네.”

“그럼 10분 있다가 시작할까?”

“네.”

단유는 물 한 컵을 마신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근데, 쟤는 어쩜 저렇게 의젓하대? 진짜 우리 애였으면 내가 평생 업고 다녔겠네.”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수건을 들고 일어섰다. 욕실로 가시는 아주머니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자신의 빨랫감으로 시선을 옮긴 하은은 가볍게 한숨을 내셨다.

“그러게요···.”

의젓하고 착실하고 바르기만 한 단유였지만, 하은의 눈에 단유는 까맣게 선팅 처리된 고급 세단처럼 속을 알 수 없었다. 처음 단유를 만났을 때, 하은은 단유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소년이 얼마나 속이 깊고 예민한 아이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때는 단유가 대화와 소통에 있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뭇 달랐다. 마치 주위에 헤파필터를 3중 4중으로 두른 모습으로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내뱉거나, 행동했다. 특히 아주머니가 있을 때, 그러한 모습은 심했다.

아주머니와 함께 생활한지 이제 겨우 한 달일 뿐인지라,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껏 보아온 단유의 모습만 놓고 보면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아주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단유는 길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제가 청소할게요.”

“밥 맛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정도의 단답형 대답이 다였고, 그 외에는 ‘고맙습니다’ 나 ‘괜찮습니다’ 같은 대답이 주를 이루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속이 드러날 빌미를 주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비쳐줘서 하은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아주머니는 멀리서 보기에 반듯하고 단정한 모습의 단유만 볼 뿐이었다. 물론 본래의 단유도 그러하지만, 그래도 단유의 얼마나 속이 깊고 생각이 많은 아인지, 걔가 얼마나 절실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아주머니는 모른다.

문제는 집 안에서만이 아니라 집 밖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단유가 왜 그런 벽을 두르고 사람을 상대하는 지를, 그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처방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단유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기는 매한가지네.’

하은은 머리를 긁적이며 단유의 방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얼른 빨래 갖다놔. 거기 놔두면 또 털 묻어요.”

아주머니가 욕실에서 나오면서 한 마디 했다. 그제야 허둥지둥 대며 옷들을 챙기기 시작하는 하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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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마친 후, 단유가 다시 방으로 들어갈 때 하은이 단유를 붙잡았다.

“예?”

“잠깐 나와 봐.”

단유가 거실로 나오자, 소파에 앉아있던 하은이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 앉아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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