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웨이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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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이를 알게 된 것은 3학년 때였다. 당시 재림은 명수와 함께 반에서 축구를 잘 하는 아이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늘 명수와 재림이 서로 나뉘어서 팀을 먹곤 했다. 하지만 명수는 독보적이었고, 재림은 명수가 공을 다루는 재간을 따라가지 못했었다. 그래서 재림은 수업이 끝나고도 집에 가지 않고 운동장에 남아서 공을 차곤 했었다.
하루는 재림에게 지겹지 않냐고 물었다.
“어차피 집에 가도 할 게 없으니까.”
재림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재림과 함께 공을 주고받으며 놀았다. 그 놀이에 가끔 명수가 낄 때도 있었지만, 명수는 보육원 차가 오면 타러 가야 했기 때문에 늘 두 사람만 남아서 공을 찼다.
그렇게 친해진 재림과 함께 어울리며 3학년을 보냈다. 4학년에 올랐을 때, 재림과 또 한 번 같은 반이 되었다. 그러면서 더 자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고, 함께 축구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온라인 게임을 하기 위해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재림아, 나 죽는다.”
PC 화면에서는 물고기 얼굴의 몬스터에게 둘러싸인 채로 공격을 받고 있는 캐릭터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기다려봐, 금방 갈게.”
재림의 캐릭터가 나타나 칼춤을 치니, 몬스터가 녹기 시작했다.
“야, 니들 집에 안 가니?”
주말도 아닌 평일에 피시방에서 4시간을 죽치고 있는 초딩을 보다 못한 사장님이 말릴 정도였다. 그러나 어차피 두 사람 다 집에 늦게 들어가더라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노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4학년이 되면서 성적은 떨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쓰는 것은 게임 캐릭터의 레벨이었고, 주의해야 할 점은 용돈이 부족할 때 어떤 식으로 조달하느냐 하는 문제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놀다보니, 어느새 비슷한 패턴으로 노는 형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는 아지트를 소개받았다. 물론 곱게 소개받진 못했다.
“똑바로 서, 새끼야.”
뱃가죽에 구멍이 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두들겨 맞으면서 신고식을 치룬 후, 미끄럼틀 아래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두 사람은 형들과 새로운 놀이에 빠져들었다.
“너 우리 조직에 들어와라.”
“알겠습니다. 형님.”
조직놀이는 신선했고, 유치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온라인게임보다 좋았다. 게임 속 동료를 구하듯, 현실에서 함께 할 무리를 구했고, 또래의 좀 논다는 아이들이 모이면서 파티(party)가 만들어졌다. 함께 돌아다니면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더니, 아이들이 눈을 깔았다.
사실 두 사람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그저 적당히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놀이였다.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것. 두 사람은 함께 했고,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패거리들과 싸우고, 돈이 없을 때 쫓아오는 피시방 알바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도 모두 놀이였고 재미였다.
그러나 단 하나, 두 사람의 놀이가 잠정적으로 멈추는 시간이 있었으니, 바로 학교였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놀이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학교에서도 바깥에서와 같이 놀게 되면 더 이상 놀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재림은 무슨 일인지 아침부터 썩 낯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안하던 어깨동무도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했는데 먹히지 않아서 주시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결국 일이 터졌고, 재림은 거의 반쯤 정신을 잃은 것인지 미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재림은 하나 뿐인 ‘진정한 친구’였으니까.
“그만 해라.”
그 목소리에 즉각 반응한 재림이었다. 어깨를 붙잡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역시 종혁이었다.
“그만 해라, 재림아. 위험하다.”
종혁은 ‘위험’이라고 신호를 보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놀면 서도 ‘위험’에 대해서는 철저히 피해 다녔다. 그 둘은 시간을 때우면서 놀 게 필요했던 것이지, 위험한 일들을 저지르면서 위기를 자초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그 선을 잘 지켜왔는데, 재림이 지금 그 선을 밟은 것이었다.
“놔라. 너도 죽는다.”
그런데 재림의 눈에 이상신호가 들어왔다.
“성재림.”
“성재림!”
종혁의 목소리 위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덧입혀졌다. 재림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재림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경자 선생님이 손을 부들부들 떨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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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선생님은 베테랑이었다. 숱하게 많은 불량아들을 만나보았고, 숱하게 많은 경험 속에서 아이들을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고, 격려도 하면서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게 지도했다. 성공했을 때도 있고, 실패했을 때도 있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편지를 받았을 때도 있었고, 졸업과 동시에 잊혀진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이경자 선생님이 지켜온 단 하나의 원칙은 결코 매를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매가 효율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강하게 믿으면서도, 효율을 위해 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매를 들지 않았던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제자의 뺨을 때렸다. 그 행위에 교육은 없었다. 오로지 ‘분노’와 ‘증오’와 ‘미움’만 가득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감히··· 감히, 선생님을 때려!”
선생님은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그리고 재림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어쩌면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학생들이 미워하는 선생님, 혹은 무능한 선생님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의심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교사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은 이경자 선생님이 지금까지 교직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였다.
“성재림이! 감히 니가 선생님을 때리고,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고도 무사할 것 같아! 응?”
그런데 지금 12살짜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교사의 자존심, 자부심, 명예를 짓밟았다. 분노로 머리가 하얗게 변한 이 선생님은 보이는 게 없었다.
“내가, 내가 널 가만 안 둘 거야! 안 둘 거라고!”
머리채를 붙잡힌 재림이 선생님의 힘에 끌려 일으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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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웠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단유로서는 생각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을 쯤, 그러니까 선생님이 붉어진 얼굴을 하고 사나운 얼굴로 재림의 뺨을 때렸을 때, 단유는 개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단유는 몰려있는 아이들을 헤치고 나섰다.
“선생님.”
단유의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자, 교실에 있던 모든 것이 일순간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멈춘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단유의 목소리에 담긴,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을 느끼고는 지르던 비명을 막고 물러났다. 재림의 머리채를 붙잡고 뒤흔들려던 선생님까지도 단유의 목소리에 멈출 정도였으니까.
“그만하세요, 선생님. 이건 옳지 않아요.”
선생님의 동공에 초점이 생기면서 눈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눈을 바라보며 단유가 말을 이었다.
“재림이가 잘못한 거예요. 하지만 선생님, 선생님께서도 같은 방식으로 재림이를 혼내시면 안 돼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 하지만 교사와 제자 사이에는 통용될 수 없는 법이기도 했다.
“선생님이시잖아요.”
단유의 말에 선생님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잃어버렸던, 내팽개쳐졌다고 생각했던 교사의 명예와 자존심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그리고 동시에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단유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재림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분노와 증오, 공포와 혼란이 뒤섞인 눈빛. 낯빛은 하얗게 질렸고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자각도 못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단유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발 물러선 선생님, 얼이 나간 종혁이, 침도 삼키지 못하고 상황을 주시하는 아이들.
도대체 이 교실이란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것이 어떻게 늘 이런 식인건지.
‘원래 교실이란 이런 것일까?’
일이 터지면, 늘 이런 관계가 성립했다. 당사자와 관계자, 그리고 방관자. 사고든 사건이든, 일이 터지면 반드시 방관자가 생기고, 방관자는 절대적으로 일에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묻고 싶었다.
‘선생님에게 학생이 대드는 행위가 과연 옳다고 생각하는가?’
또,
‘선생님이 학생에게 모진 말로 상처를 주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옳지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보다 그것을 그저 방관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아이가 싸울 때도 주위에 원을 치고 둘러서서는 구경만 한다. 안타까움 혹은 비명 섞인 탄식을 내뱉으면서도 손 하나 꼼짝하지 않는다. 왜?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든, 혹은 다른 어른에게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목격했다면, 그것을 지적하든지 혹은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왜 다들 방관자로서 일정 거리에 서서 멈춰 서 있는 것인가?
당사자와 관계자에게는 그럴만한 사정 혹은 이유를 찾아볼 수 있지만, 방관자에게서는 아직 그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한 이유, 합리화시킬 만한 사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과연 그런 게 있기나 할까?
“재림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일어서.”
재림은 얼이 빠진 채로 일으켜 세워졌다.
“선생님, 재림이 잠깐 양호실에 데려다 주고 올게요.”
선생님이 그 말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감정의 잔재가 남았던 모양이었다.
“선생님. 재림이 양호실에 가야 돼요.”
단유가 다시 침착한 어조로 또박또박 이야기를 하자, 선생님은 궁리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단유 니가 같이 갔다 오고, 너···.”
선생님이 재림이를 보며 뭔가를 말하려던 찰나, 단유가 선생님을 똑바로 응시하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눈빛에 선생님은 입을 열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단유는 재림의 손목을 붙잡고 양호실로 데려갔다. 아니 데려가려 했다.
“내가 갈게.”
종혁이가 단유 앞에 섰다. 단유가 종혁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니가 나설 때가 아닌 것 같다. 일, 크게 만들기 싫다면 지금은 교실에 남아서 ‘수업’ 들어.”
그 말은 모두에게 하는 메시지였다. 방관자였던 아이들은 물론이고, 상황을 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선생님에게까지 단유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다행히 선생님은 마지막 단어를 캐치했다.
“모두 제자리로 가세요. 어서. 종혁이 너도 자리로 돌아가.”
단유는 재림의 손을 끌고 교실을 나섰다.
“무슨 일이야, 너희 반.”
2반 앞을 지날 때, 2반 담임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오셨다. 열린 틈으로 2반 아이들의 ‘호기심’에 찬 눈빛들이 보였다.
“이 친구가 조금 다쳐서 그랬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2반 선생님이 슬쩍 고개만 빼고 1반을 훔쳐보았다. 교탁 앞에 선 이경자 선생님이 보였다. 한참 수업 중이었어서 1반의 소란을 늦게 깨달았다. 특히 이 선생님의 비명에 가까운 고함소리에 놀랐던 2반 선생님이었다. 고민하던 찰나에 지나가는 단유가 보였기에 말을 걸었던 것뿐이었지만, 1반의 일에 쉽게 개입할 수는 없었다.
“그래, 알았다.”
2반 선생님은 호기심과 불안을 억누르고, 단유를 보냈다.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재림과 함께 양호실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 재림이 거칠게 손목을 털었다.
“놔라, 이 거.”
단유가 한 칸 아래에서 재림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신 차렸어?”
“···니가 뭔데 정신을 차리라 마라야?”
단유는 물끄러미 재림을 바라보았다.
“뭘 봐, 새끼야.”
조금씩 목소리에 힘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단유가 한 계단을 올랐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이 눈을 마주했다.
“넌 잠깐 머리 좀 식혀야겠어.”
“뭐, 새끼야.”
단유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재림의 어깨에 턱하고 붙잡았다. 재림이 미간을 좁히면서, 거칠게 어깨를 털어내려는데 어깨에 붙은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니가 뭘 하건, 사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한테서 너무 익숙한 모습이 보여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소리야?”
어금니를 꽉 물고 재림이 단유를 노려보는데, 단유가 말했다.
“잠깐 기다려.”
그리고 재림은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