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웨이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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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녁, 재림의 어머니는 남편의 식사를 챙겨주면서, 남편의 식사가 끝날 때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니, 늘 피곤해하는 남편을 배려하는 마음에 그 동안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형 아빠, 밥 다 먹고 이야기 좀 해요.”
아버지는 국을 뜨다 말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무슨 이야기?”
“다 먹고요.”
아버지는 잠시 그러다가, 다시 식사를 계속했다.
“그냥 말해.”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서 컵에 따른 뒤, 아버지 앞에 두었다.
“일단 식사부터 해요. 길어질지 몰라서 그래요.”
아버지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냥 식사를 이어나갔다.
식사를 끝낸 후, 언제나처럼 담배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안방에 이불을 깔고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 곁으로 다가온 아버지는 TV를 켰다. 24시간 뉴스채널에서 배추 값이 올랐다는 뉴스를 하고 있었다.
“끄고 이야기 좀 해요.”
아버지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가 리모컨을 들었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중간에 잘리면서 방 안에 정적이 돌았다.
“말해.”
“실은요, 며칠 전에 재림이 학교를 갔다 왔어요.”
어머니는 어렵게 이야기를 시작했고, 선생님과의 상담 내용을 알렸다. 다 들은 후, 아버지가 물었다.
“재림이가 누굴 때렸대?”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그럼 왕따라도 당해?”
“아뇨.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도 있는 것 같대요.”
“그럼 뭐가 문젠데?”
어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재림의 ‘반항’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귀를 기울여 주었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아버지는 소리를 높였다.
“성재림!”
두어 번 더 부르자, 재림이 방에서 나왔다.
“너 요새 선생님한테 수업 태도 안 좋다고 지적받았다며?”
“······.”
“무슨 문제 있어?”
“···없는데요.”
아버지가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들었다. TV 옆에 놓인 재떨이를 앞에 가져다둔 후, 불을 붙였다.
“엄마랑 아빠가 고생하는 거 알지?”
“네.”
“그럼 니가 자식으로서 행동을 바로 해야 되겠지?”
“네.”
“공부 잘하라고 말한 적 없다. 대신 문제 일으키지 말고, 학교생활 잘해라.”
“······.”
“니가 집에서 보는 게 있으면, 스스로 깨달아야지. 이제 너도 어린애처럼 굴면 안 된다는 거 알 나이 아니냐?”
재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천장으로 담배 연기가 솟구쳤다.
“니가 말썽부리면, 바쁜 엄마가 또 학교 가야 되고 그러면 엄마가 더 힘들다. 그거 모르면 너 사람 아닌 거다. 알았어?”
재림은 아버지의 발끝만 바라보았다. 회색 양말에 발바닥 부분이 많이 닳아 있었다.
“학교에서 싸움질 같은 거 하는 거 아니지?”
“네.”
“사고 치지 마라.”
“네.”
“늦었다. 얼른 가서 자라.”
재림은 느릿느릿 일어서서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다시 담배를 하나 더 꺼내들고 태우기 시작했다.
“여보, 저기 밖에서 담배 태우면 안 돼요? 선생님이 그러는데, 아이 옷에서 담배 냄새가 밴 것 같다고···.”
“에이···.”
아버지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 자리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불이나 꺼.”
어머니는 짧게 한숨을 내쉬곤, 무릎을 짚고 일어나 불을 껐다.
****
재림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어머니가 차려놓고 간 밥상에 앉아 대충 몇 숟가락을 챙겨 먹은 후, 반찬을 냉장고에 넣었다. 밥그릇에 랩을 씌운 뒤 반찬 옆에 두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집에서 가장 일찍 들어오는 사람도 재림이었고, 가장 늦게 나가는 사람도 재림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담배 한 대를 피운 재림은 양치를 하고 집을 나섰다.
걸어서 20분 정도를 가면 학교 교문 앞에 도착을 한다.
“어이, 성재림.”
“안녕하세요.”
학교 가는 길에 6학년 형을 만났다. 그 형은 근처의 아파트에서 사는데, 가까운 곳에 살면서 늘 느지막한 시간에 등교했다. 어쩌면 너무 가까워서 여유를 부리는 것일지도.
“나 담배 하나 줘라.”
재림은 주머니 안에서 손을 꼬물거리다, 담배 한 개비만 쏙 빼들었다. 손바닥으로 가려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건넸다.
“나중에 놀이터 오기 전에 애들 좀 모아라. 오늘 지욱이 생일이라더라.”
“예.”
재림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교문을 넘어갔다. 학교 안에 들어서면 갑갑해서 오히려 담배에 대한 충동이 심해지지만, 형들의 가르침에 따라 되도록 피우지 않으려고 했다. 들키면 큰일이니까.
예전에는 하루에 4개비 정도로도 충분했는데, 요즘은 더 자주 땡겼다. 참는 게 고역일 정도.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재수 없게도 가장 보기 싫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자연히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 나왔다.
“뭘 봐, 새끼야.”
그러나 저 아이는 자신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보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저런 점이 자신을 열 받게 하는 것이었다. 지가 전교 1등이면 단가? 부모도 없는 고아 주제에 무슨 어른 흉내라도 내는 건지,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씨발, 죽을라고.”
괜히 한 마디 덧붙여보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뭐냐, 왜 그래? 아침부터?”
같은 무리에서 노는 종혁이가 뒤따라 들어오면서 재림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재림은 어깨를 털었다.
“됐어. 무거워.”
재림은 가방을 책상 위에 던져놓고, 의자 위로 풀썩 엉덩이를 붙였다. 담배가 땡겼다. 그 뒤로 반 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등교를 했고, 그 재잘거림에 신경질이 나서 재림은 책상 위에 엎드리고 얼굴을 파묻었다.
옆의 짝―자신과 앉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었고, 다만 키가 크다는 이유로, 자리가 남는다는 이유로 앉혀진 아이였다―이 와서 자리를 정리하는 게 느껴졌지만, 얼굴을 들지 않았다. 굳이 인사 하는 사이도 아닌데 아는 척 할 이유도 없었고, 아침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계속 얼굴을 파묻은 채로 있었다.
그러다 교실의 소란이 조금 잦아드는 기운에 부스스한 얼굴을 들어 올리니,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고 계셨다. 지겨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
아침부터 욕먹고 좋을 사람은 없지만, 단유는 아무렇지 않았다. 쳐다본다는 이유로 맞기도 했었고, 죽을 뻔 한 적도 있었는데 고작 또래 아이의 육두문자 정도에 감정 변화를 보이기엔 그간의 경험이 녹록하지 않았다.
“자, 오늘은 주변의 현상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예상하거나 추리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었죠?”
과학시간, 선생님은 교탁 위에 교과서를 펼쳐두고 칠판에 주제를 적었다.
“먼저, 지난번에 배웠던 탐구 과정에 대해 복습부터 하고 갈게요. 누구 기억 하는 사람?”
아이들이 손을 들지 않아도, 선생님은 꾸준히 참여를 유도했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항상 발표를 주도하는 아이들과 늘 발표를 피하려는 아이들이 구분되기 시작된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도 적당히 배분을 해서 모든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균등한 학습 기회를 제공했다.
“관찰을 해서 문제를 인식해요.”
“맞아요. 그 다음 발표할 사람?”
“가설을 정합니다.”
관찰과 문제 인식, 가설 설정, 실험, 결론 도출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 후, 선생님은 수업을 진행했다.
“예전에는 새가 많았는데, 요즘은 새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유를 먹을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지자 새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그래서 새가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도 누군가의 도움을 얻었거나, 혹은 학습지에 나오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도 시작은 좋았다고 판단한 선생님은 발표한 아이를 칭찬하고 계속 수업을 진행했다.
“달걀이랑 메추리알이랑 크기가 차이나는 이유는 새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찾아보니까 닭이 메추리보다 훨씬 크고, 타조는 닭보다 훨씬 큽니다. 그래서 타조알이 계란보다 더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그 예시가 나오는 내용인데, 예습을 잘한 친구라서 칭찬을 해주었다. 그렇게 몇몇 학생들의 발표에 대해 그 내용이 뭐든 칭찬을 해주면서 참여를 독려하던 중, 재림이 눈에 띄었다.
“성재림.”
재림은 선생님의 말을 미처 듣지 못했다. 옆의 짝이 팔꿈치를 툭툭 건드리자,
“아이 씨. 왜!”
화를 내는 재림이었다.
“성재림. 일어나.”
그제야 선생님이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안 재림은 책을 덮었다.
“책 들고 나오세요.”
재림은 머뭇거리면서 자리에서 엉거주춤 섰다. 선생님이 재차 요구하니, 그제야 재림이 책을 들고 나왔다. 시커멓게 변한 얼굴로 책을 꽉 쥐고 있는 모습에 선생님은 속이 타들어갔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딴 짓하지 말라고 했었지? 뭐했어?”
재림이 역시나 침묵을 지키니, 선생님의 재림의 손에서 책을 뺐었다. 책을 펼치고 보니, 글자들을 새까맣게 지워나가고 있었던 흔적이 보였다. 앞 장부터 살피니,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너 왜 그랬어?”
여전히 석상처럼 굳은 자세로 입도 뻥긋하지 않는 재림이었다.
“대답 안할래? 왜 이랬어? 선생님이 묻잖니?”
선생님의 다그침이 계속되자, 재림에게 변화가 생겼다.
“아이 씨.”
“뭐?”
재림은 선생님의 손에 든 책을 뺐었다. 그리고 낙서를 했던 페이지를 모두 찢어버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이들은 물론이고 선생님까지 놀라서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었다.
“안 하면 되잖아요.”
신경질적으로 종이를 찢더니 책을 집어던지는 재림이었다. 선생님은 격앙된 목소리로 질책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성재림!”
“아, 씨발. 침 튀잖아요.”
“···너 선생님한테 무슨 말버릇이니? 너!”
재림이 고개를 돌리고 다시 중얼거렸다.
“씨발, 졸라 시끄럽네.”
선생님은 순간 혈압이 올라서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무릎에 힘을 줘서 넘어지는 것을 방지한 선생님은 재림의 어깨를 붙잡았다.
“성재림, 누가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하랬어? 응? 그렇게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알아? 몰라?”
어깨를 쥔 손에 과한 힘이 들어갔었는지, 재림은 얼굴을 찡그리다 어깨를 격하게 털어냈다. 그 몸부림에 어깨를 놓친 손이 허공을 휘저었고, 선생님은 잠시 휘청였다. 그리고 재림은,
“몰라요. 됐어요?”
“······.”
이토록 반항적인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던 선생님이 반응을 못할 때, 재림이 항변(?)했다.
“수업시간에 조용히 있었잖아요. 떠들지도 않았는데 왜 지랄해요?”
정말 지랄(?)맞게도 재림의 입에서 나오는 육두문자는 거침이 없었다. 때문에 교실 전체의 분위기가 급격히 냉랭해졌고, 아이들은 선생님과 재림의 신경전에 전에 없이 진지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선생님은 더 이상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훈계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 따라 나와.”
선생님은 다시 재림의 어깨부분을 붙잡았다.
“아, 씨. 잡지 말라고요.”
선생님은 이성을 잃기 직전까지 몰렸다.
“그냥 저 새끼 같은 애들이나 데리고 수업하면 되잖아요? 얌전히 있는데 왜 건드려요? 예?”
재림이 가리킨 손가락이 단유를 향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손가락을 바라볼 정신도 없이 눈앞에서 감히 교권에 대항하고, 어른을 우습게 보는 12살 아이를 노려볼 뿐이었다.
“너 정말 안 되겠구나? 이리와, 따라와!”
선생님은 멱살을 꽉 붙잡고는 교실 밖으로 끌었다. 아무리 재림이라도 중년의 노련한 아줌마의 힘을 이기진 못했다.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가 만들어지니 재림도 눈이 뒤집혔다.
주먹을 쥐고 힘껏 휘둘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선생님이 뒤로 밀려났다. 재림이 휘두른 주먹에 어깨부분을 빗겨 맞긴 했어도, 설마 폭력까지 휘두를 줄 몰랐던 선생님은 무방비에 맞고 놀라서 멱살을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눈이 뒤집힌 재림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오른손을 휘둘러 어깨를 때린 후, 다시 왼손을 휘둘렀다. 선생님이 밀려난 탓에 왼손은 허공을 헛치고 말았는데, 다시 한 걸음 다가서며 휘두른 오른손은 정확히 선생님의 얼굴을 향했다.
놀란 선생님이 급히 몸을 돌렸기에 주먹은 등을 때렸지만, 오히려 재림은 샌드백처럼 선생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어!”
교실이 소란스러워졌고,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서 엉거주춤할 때, 재림의 뒤에서 그를 말리는 손이 있었다.
“그만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