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65화 (165/956)

뉴웨이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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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정확하게 맞물리지 않았던 탓에 듣기 괴로운 알루미늄 마찰음이 텅 빈 집안을 울렸다. 문을 열고 들어선 재림은 대충 신발을 벗어두고 거실을 가로질렀다. 화장실 바로 옆에 위치한 방은 형과 자신이 함께 쓰는 방이었다. 방에 들어가 불을 켜니, 아침에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바닥에 펼쳐진 이불 위에 가방을 던져둔 재림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가장 윗 칸에 놓인 담배에서 한 개비를 꺼내들고 나온 재림은 화장실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어두운 화장실에 담배의 끝이 빨갛게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외부의 가로등 불빛만이 실내를 어렴풋하게 비추는 가운데 하얀 연기가 눈앞을 가리면 마치 이 어둠마저 가려지는 착각이 들었다.

재림이 담배를 피운 것은 4학년 때였다. 아버지가 집에 두고 간 담배를 보고 호기심에 한 번 따라해 보았다. 그 때도 지금처럼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형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느라고 집에 늦게 들어왔다. 10시가 넘을 때쯤 형이 돌아오고, 그 이후 어머니와 아버지가 11시가 다 될 무렵 들어오셨다. 때문에 그 시간까지는 재림만의 시간이었고, 재림이 무엇을 해도 집안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호기심에 불을 붙여 보았던 담배는 세 모금도 빨지 못하고 변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 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역한 맛만 나는 이런 걸 왜 아버지는 매일 피울까?

그러나 아버지는 늘 집에 돌아오시면 먼저 담배를 집어 드셨고, 화장실에서 담배를 태우셨다. 그리고 늦은 저녁을 먹고 난 뒤에 또 화장실로 가셨고,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태우셨다.

“재림아, 얼른 자라.”

아버지는 자신을 보면 늘 그런 이야기를 했다. 딱히 공부하라느니, 운동 열심히 하라느니 하는 말씀은 없었다. 밥 먹었냐는 질문도 없었다. 늦은 저녁을 먹을 때 함께 숟가락을 들고 나면, 항상 똑같은 말을 하셨다.

“얼른 자라. 늦었다.”

아버지는 늘 피곤해 하셨고, 하지만 피곤하다고 화를 내시거나 짜증을 내시는 경우는 없었다. 형에게는 자신에게 한 말과 다른 말을 하시는 것도 같지만, 내용을 잘 모른다. 하지만 형도 아버지와 오래 대화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형도 집에서는 거의 밥 먹고 잠만 자기 때문이었다.

담배를 모두 태운 재림은 안방에 들어가서 TV를 켜고 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방안에 TV에서 나온 현란한 빛의 군무가 펼쳐지고 재림의 무표정한 얼굴 위에도 색색의 빛들이 가면처럼 덧씌워졌다가 사라졌다.

한참을 보던 재림은 슬그머니 엉덩이를 떼고 다시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기 호주머니 안에 있는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냈다. 두세 번 찰칵거리는 마찰음이 들리고 담배에 불이 붙었다.

“후우.”

처음의 흡연은 역한 맛에 실패를 했지만, 여전히 호기심은 남았다. 담배에 대한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어른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었다고 해야 옳겠다. 두 번, 세 번 호기심이 거듭되면서 어느 순간 담배의 역한 맛은 사라졌고, 이제는 생각나면 화장실에 가서 담배를 즐기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꽁초를 변기에 버린 후, 이를 닦기 시작했다. 곧 형과 어머니가 올 시간이 되었다. TV를 끄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재림은 드러누워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밖에서 웬 개소리가 들렸다.

“멍, 멍.”

개를 키워볼까?

****

“안 돼.”

“왜요?”

“누가 키울 건데?”

“제가요. 제가 할게요.”

“니가 씻기고 먹인다고?”

“안 돼요?”

“응.”

“왜요?”

“너도 잘 안 씻으면서, 누굴 씻긴다는 거니?”

명수가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하은을 바라보았다.

“뭐? 뭐? 너 잘 안 씻는 거 맞잖아? 너 아침에 머리도 안 감고 학교 갈 때 많잖아? 선생님이 모를 줄 알았니? 그리고 개가 똥이나 오줌을 거실에 막 누고 다닐 텐데, 니가 쫓아다니면서 치울 거야?”

“할게요. 진짜 잘 할게요.”

“못 믿어.”

명수가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하은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봐도 안 돼. 차라리 축구공을 하나 더 사고 말지, 갑자기 왜 개를 키운다는 거니?”

명수는 TV를 가리켰다. 동물농장 재방송이 나오고 있는 TV 화면에 검은색 퍼그 한 마리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하은이 질색을 하면서 명수를 바라보았다.

“넌 저렇게 침 흘리는 개가 좋니?”

명수가 헤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개를 키우려면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데다, 시간도 많이 필요해. 그런데 넌 학교에 가 있을 때가 많잖아? 그럼 그 개를 돌보는 일을 누가 하겠니? 당연히 선생님이 하겠지? 그런데 선생님도 바쁘잖아? 선생님도 집에서 하루 종일 개만 돌보고 있을 수는 없거든? 그러면 개는 누가 돌보니? 아무도 안 돌봐주겠지? 그럼 생각해봐. 아무도 안 돌봐주는 개는 어떻겠니? 심심하겠지? 외롭겠지? 먹을 것도 안 챙겨줘봐? 배가 고파도 개가 혼자 먹을 걸 챙겨 먹을 수도 없으니까 하루 종일 낑낑거리면서 굶겠지? 그럼 개가 불쌍하겠지?”

명수는 단유를 바라보았다. 도와달라는 의미인데, 단유도 딱히 도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은은 늘 저렇게 극단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명수 기를 죽이는데, 사실 이번에는 틀린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자신들은 좋은 사람들의 호의에 업혀 살고 있는데, 무언가를 따로 요구한다는 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명수야, 이번에는 그냥 참자. 다음에 우리가 이 집에서 나가면 그 때 키우자.”

“스톱. 단유, 너 무슨 소리니, 그게? 나가다니?”

하은이 단유의 말을 끊고 정색을 했다. 단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설명했다.

“명수랑 제가 영원히 이 집에 살 것도 아니고, 또 나중에 나이 들면 더 이상 후원도 받을 수 없잖아요? 그 때를 말하는 거예요. 그 때는 우리도 독립을 해야 되고, 우리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니까요.”

단유의 말은 의젓했고 바른 말이었다. 하지만 하은은 단유의 말에 작게 충격을 받았다. 단유는 지금 이 삶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특히 무언가 물질적으로 도움을 얻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니?”

“지금 당장은 필요한 게 없어요.”

단유는 이사한 이후로, 단 한 번도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명수가 축구공을 살 때도 단유는 책 한 권도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물론 그 전에 재훈이 알아서 구입해 준 책이 많았다지만, 사실 책 말고도 필요한 게 얼마나 많을까? 하다못해 군것질을 하기 위해 용돈을 더 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하은은 둘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둘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 이후, 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5학년이 되었을 때, 교과과정 상에서 변한 것은 바로 ‘실과’라는 과목이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해당 과목의 교과서를 펼쳐 든 단유가 제일 처음 든 생각은

‘또?’

라는 생각이었다. 1학년 때도 겪었던 일이지만, 학년 별로, 그리고 교과과목 별로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가족’이었다.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매 학년, 매 학기 초마다 나오는 주제였다. 국어 수업 때도, 영어 수업 때도, 도덕 수업 때도, 사회 수업 때도 나왔다. 그리고 이제 5학년이 되었더니, 실과 과목이 생기더니 첫 수업이 ‘가족은 왜 소중할까?’였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아기로 태어난 여러분들이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이렇게 자라난 것에 대해, 모두들 감사해야겠죠?”

선생님은 프로젝터에 투사된 ‘오붓한 가정의 모습’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 단원을 통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했다. 또 여러 가지 가족의 모습이 있음을 이해시키면서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심도 키울 수 있게 돕도록 지도서에는 나와 있었다.

“가족에게 고마웠던 순간을 한 번 발표해 볼 사람?”

머리가 좀 굵어졌다고 5학년쯤 되더니, 아이들은 발표를 위해 손을 번쩍 들던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고 머리 굵은 아이들을 즐겁게 괴롭힐(?) 방법을 찾아 시도했다.

“자, 보자. 오늘은 18일이니까, 18번?”

쭈뼛대며 일어난 소년은 입을 달싹이다가 어렵게 가족에게 고마웠던 순간을 찾아냈다.

“핸드폰을, 사줬을 때, 고마웠, 습니다.”

예시가 발생하면, 아이들의 상상력은 제한된다.

“생일 날, 플스를 사주셨을 때, 고마웠습니다.”

“아빠가 출장을 가셨다가, 예쁜 신발을 사다주셨을 때, 고마웠습니다.”

고마웠던 순간을 찾기 어려워하는 아이도 있었다.

“학원에 빠진 걸 들켰을 때, 엄마가 혼내지 않아서 고마웠습니다.”

선생님은 어색하지 않게 미소를 꾸미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열심히 포장했다.

“어머니가 우리 연진이를 너무 아끼고 믿었기 때문일 거예요. 앞으로 학원에 안 빠지고 열심히 다닐 거죠?”

“네!”

“그래서 어머니가 혼내지 않았을 거예요. 어머니는 연진이에 대해 잘 알 테니까요. 잘했어. 앉아요.”

뿌듯해하는 연진이를 뒤로하고 시선을 돌리던 선생님은 교과서를 들추고 있는 단유를 보았다. 잠깐 고민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는 패스. 괜히 잠자는 사자를 깨울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바로 옆 분단에 앉은 재림이 눈에 들어왔다. 턱을 괴고 한껏 불량함을 뽐내고 있던 재림과 눈이 마주쳤는데, 이번에는 재림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그래, 잠자는 고슴도치를 일부러 자극할 필요는 없지.

“다음 페이지로 넘겨보세요. 다음은 12페이지에요.”

노련한 선생님의 안배에 아이들은 골고루 발표했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무사히 수업이 진행되었다.

****

식당 일을 하시던 재림의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한숨을 푹 쉬었다.

“재림엄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옆에서 잡일을 하던 아줌마가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평소에도 근심을 달고 사는 재림엄마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얼굴이 심상치 않아보였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별 일 없어요.”

어머니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젓고는 다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굴과 달리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간 일을 핑계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큰 아이도 그렇고 작은 아이, 재림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일은 힘들고, 늘 시간에 쫓기는 생활이었지만 큰 애는 학교에서 시험만 치면 전교 수위에 들 정도여서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장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큰 형이 있기 때문에 재림도 비록 신경을 잘 못쓰더라도 큰 형처럼 잘 자라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선생님과의 상담 후, 아이의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상담이 있었던 날은, 다시 식당으로 돌아간 뒤 빠진 시간만큼 더 일하느라고 평소보다 집에 늦게 들어갔었다. 때문에 상담내용에 대해 아이 아빠나 재림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시간이 마땅치 않아서 여전히 이전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중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텐데.’

아이 아빠한테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다보니 속절없이 시간만 흘렀다. 그렇지 않아도 늘 피곤하고 힘들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인지 짜증 한 번 안내고 조용히 돈을 벌어오는 아이 아빠였다. 그런 사람에게 고민거리를 하나 안겨준다는 게 너무 미안했다. 이런 건 엄마가 처리해야 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도 아이 아빠에게 말하는 것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재림 엄마. 재림 엄마!”

“응? 네?”

“정신 차리라고!”

화들짝 놀란 어머니가 돌아보니 싱크대 배수구가 막혀 물이 넘쳐흐르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었다.

“아이고.”

어머니는 서둘러 수도꼭지를 잠그고, 배수구를 막고 있는 음식 쓰레기를 손으로 건져냈다.

“재림 엄마, 아무래도 이상해? 어디 아픈 건 아니지?”

함께 일하던 주방 아주머니가 들고 있던 대야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쓴웃음을 지으며 어머니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프긴요. 그냥 잠깐 딴 생각하느라고 그랬어요.”

“젊은 사람이 벌써 그럼 쓰나. 그거 딴 생각이 아니라 정신이 그냥 나가는 거야. 그러다가 나중에 치매 온다? 재림 엄마도 매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요샌 젊은 사람도 정신 놓고 다니다가 치매 걸리고 그런댔어. 재림이 대학갈 때까지는 건강해야지.”

식당에서만 15시간을 일하는 재림 어머니는 동료 아주머니의 걱정 어린 조언에 쓰게 웃으며 건져낸 음식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접시에 얼룩이 남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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