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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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생활지도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다.
“선생님! 119차가 오기 힘들어서 지금 응급구조대원 몇몇이 뛰어오는 중이라는데요?”
“사람만 오면 어떡해? 얘는 지금 병원엘 가야 해!”
“길을 뚫는 중이긴 한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시간이 걸린다고···.”
자기가 잘못한 냥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보고를 마치는 생활지도원에게 굳이 화풀이를 할 순 없었다. 보육교사는 발만 동동 구르며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했지만, 당장 생각이 나질 않았다.
“선생님, 아기가!”
급하게 고개를 숙이고 바라보니, 아이의 호흡이 거의 없었다.
“창문 닫아요!”
보육교사는 급히 아이를 매트 위에 올려놓고, 두 개의 손가락으로 흉골 아래쪽을 조심스럽게 압박했다.
패딩은 우두커니 서서 입을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잠도 못 자게 울어대서 귀찮다고 생각했던 아이였는데, 지금 그 아이가 울음도 터뜨리지 못하고 죽음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을 때도, 패딩은 앞에 서 있던 아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유는 그 길로 곧장 보육원 입구로 갔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고, 과연 이 날씨를 뚫고 올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호흡을 끌었다가 천천히 내뱉으니 입에서 길고 하얀 입김이 길게 늘어지며 뿜어지다가 천천히 허공에서 흩어졌다.
지금 단유는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었다. 저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당장 저 아이를 살릴 방법이 없었다. 지난 번 혜린의 경우와 같이 아카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당시 사용했던 아카넬이 마지막 아카넬이었음을 확인했었다.
결국 방법은 그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이었지만, 저 아이에게 무리해서 다가가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게다가 단유는 병원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저 아이 때문에 자신의 비밀스런 힘이 밝혀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이기적이란 걸까?’
굳이 무리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해야 되나, 라고 자문한다면 그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라는 답이 나왔다. 자신의 솔직한 마음이 어쩐지 비도덕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아기는 만난 지 이제 겨우 3시간 정도? 게다가 얼굴만 겨우 2번 본 정돈데?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는 자신의 마음도 진심이었다. 자신이 여러 번 억울하게 죽음의 위기에 처했었고, 그 때마다 타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을 희생해서든, 혹은 희생하려는 마음을 품어서든.
처음 본 사람, 몇 번 본 적 없었던 사람, 오래 함께 했던 사람 모두가 그러했듯이, 자신도 그 행동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그랬더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후우.”
단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명수는 꿀맛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희미한 웃음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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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우리끼리 이렇게 가도 될까요?”
응급키트와 몇 가지 기구들을 짊어진 응급구조대원 한 명이 헉헉거리면서 앞서 걷던 대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바람도 심해서 자칫하면 앞의 사람과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대화로 서로간의 위치를 확인하며 걷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사람들에게나 통용될 이야기. 여기서 그러는 것은 솔직히 오버였다.
“시끄러워. 힘 빠져. 그냥 걷기나 해.”
쿨한 선배는 쿨하게 걸음을 옮겼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한 뒤의 결과에는 승복한다. 그것이 응급구조대의 역할이고 업무신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힘든 사람들을 모두 구조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선배는 오랜 경험을 통해 몸으로 체득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2시간도 넘게 걸리겠는데요?”
거의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고열을 앓고 있는 아이를 의사도 아닌 구조대가 가서 무엇을 하겠는가. 다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자 조금이라도 빨리 달려갈 뿐이었다.
오후 한 때 약해지던 눈발은 저녁이 가까워오면서 다시 거세지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그냥 지나쳐도 모를 것 같은데요?”
후배가 다시 떠드는데 솔직히 신경이 쓰였다. 귀찮거나 짜증이 난다는 것이 아니라, 후배가 걱정하는 부분을 선배 역시 신경 쓴다는 의미였다.
“그러니까 너무 아래만 보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가야지!”
주위를 둘러본들 보이는 것은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러다 저희가 조난당하는 거 아닙니까?”
아까부터 후배는 여기가 K2 등정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지만, 대낮에 국도 한 가운데서 조난당한다는 이야기는 신문 한 편에도 오르지 못할 저질 개그 감이었다.
“어?”
“뭡니까?”
선배가 갑자기 맥 빠진 소리를 내자, 후배가 얼른 물었다.
“그림자 같은 게 보였던 거 같아서.”
후배는 실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게 없었다. 세찬 눈바람에 제대로 앞을 보기 힘들었다.
“눈에 뭐라도 들어가신 것 아닙니까?”
하지만 선배는 분명히 자기 눈으로 봤음을 확신했다. 걸음을 멈추고 상체 포켓에 꽂혀있던 손전등을 꺼내 앞을 비추었다. 하지만 제대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야, 뭐 보이는 것 없어?”
선배가 물었다. 하지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재차 물었지만 여전히 대답이 들리지 않자, 선배는 손전등을 뒤로 돌렸다. 하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귀가 따갑게 떠들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던 후배가 사라졌다.
“장동원! 장동원! 대답해!”
목청을 높여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었다. 갑자기 후배가 말한 대로 조난을 당하는 건가, 싶어 겁이 덜컥 났다. 선배는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기 바빴다.
그런데 한 순간 어지럼증이 생겼다. 생겼다기 보다는 ‘느꼈다’라고 해야 하나?
‘뭐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두어 차례 어지럼증이 동반되었지만 그 외의 별다른 사항은 느끼지 못했다.
“선배님! 선배!”
“동원이냐?”
갑자기 낙오한 줄 알았던 후배의 목소리에 선배가 주위를 살피니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후배가 무릎을 높이 올리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선배! 어디 가셨던 겁니까?”
“무슨 소리야?”
“선배가 갑자기 사라지셔서 한 참을 찾았단 말입니다.”
선배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못했다. 사라진 게 누군데···.
“어? 선배. 저기 보육원 아닙니까?”
등 뒤를 가리키는 후배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흐릿하게나마 건물의 외형이 보였고, 그 앞으로 보육원 정문이 보였다.
“언제 여기까지 왔던 거지?”
후배의 중얼거림에 괜히 소름이 돋은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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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구조대는 급히 움직여서 보육원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를 안고 발을 동동대던 보육교사와 생활지도원의 얼굴이 순간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환해졌다.
“일단 여기로!”
응급구조대원 둘은 급히 아이 앞으로 안내되어 아이를 보기 시작했다. 후배는 전화를 들어 병원의 의사에게 상황을 보고하며 긴급히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열은 39.8도, 호흡은 미약합니다.”
그렇게 응급구조대원 둘이 아이를 돌보는 사이, 패딩의 뒤로 단유가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패딩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단유가 바닥을 가리키며 물었다.
“거기 차가워요.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패딩은 얼이 빠져 자기가 주저앉아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힘주어 일어나보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단유가 패딩의 소매를 잡고 힘을 주니, 엉거주춤하나마 일어설 수 있었다. 어린 꼬마 주제에 힘이 세다, 고 잠시 생각하던 패딩이 후들거리는 무릎을 붙잡고 뒷걸음질로 복도 벽에 붙어 섰다.
“안 들어가세요?”
“들어갈 자격이 없어. 난.”
“부모의 자격, 같은 건가요?”
패딩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유는 영아실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 아이는 어떤 아이가 될까요?”
패딩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 저 아이의 미래에 자신의 몫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 패딩은 책임감을 느꼈다. 또한 동시에 그 책임감을 벗어던지고 싶다는 충동도 느꼈다.
그리고 이런 부담스러운 질문을 하는 아이와 함께 있다는 것이 싫어졌다. 도대체 왜 곁에 서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고, 왜 내가 대화를 해야 하는 거지?
괜히 억울한 마음, 분노의 마음이 들어서 소년을 노려보는데 눈이 마주쳤다. 깊고 검은 눈동자가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이름이 뭐예요?”
“···유라.”
“유라 누나는 저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길 바라죠?”
“생각하고 싶지 않아.”
단유는 젖은 앞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유라를 보며 말했다.
“그래요. 생각하지 마세요. 참견도 하지 마시고요. 저 아이가 저 아이만의 인생을 살 수 있게끔 해주세요.”
흠칫 놀란 유라는 저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한 사람의 삶이 흔들리는 것을 더는 두고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부디 저 아이가 자기의 삶을 살 수 있게 내버려두세요. 그게 서로에게 좋겠죠?”
부모라도, 한 사람의 인생에 해가 될 수 있다면, 배제되는 것이 옳다. 특히 아이를 저렇게 방치하고 생명의 위기까지 오게끔 만든다면, 그런 부모는 저 아이에게 필요하지 않다. 단유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세상, 이 사회는 부모가 없어도 잘 클 수 있게 돕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자기도 그렇고, 명수도 그렇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도 그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서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그러니 차라리 저대로 혼자 살아가게끔 놔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물론, 엄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여전하다면 말이죠.”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면. 그래서 어려운 것이리라.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도 필요할 것이고, 부모가 된 뒤에도 그녀와 다르게 많은 책임을 스스로 지고 행동해야 하리라. 준비와 책임을 각오한 사람만이 부모로서 마땅하리라.
“너, 넌 어떻게···.”
유라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뭔가 항변하려 했지만, 자신을 직시하는 저 눈을 보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단유는 몸을 돌렸다. 두터운 잠바를 입고 있던 단유에게서 겨울바람의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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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가 온 것은 세 시간이 지난 뒤였다. 시에서 지원한 제설차와 함께 길을 뚫으며 달린 구급차가 큰 길 쪽에 도착한 후, 응급구조대원 두 명이 아이를 안고 구급차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요란했던, 그러나 다른 사람 모르게 치러졌던 영아실 내의 전쟁같은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패딩은 이후 경찰에게 신병을 구속당한 뒤 경찰서로 향했다. 물론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의 일이었다. 사유는 영아사망의 사유 중 하나로 의심되는 유아 유기 부분을 조사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단유나 보육교사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보육원의 사람들은 그 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오직 단 한 사람, 보육원 원장만이 사후에 보고를 받은 뒤, 경찰서로부터 정보 확인을 요청받으면서 뒷일까지 들을 수 있었지만, 원장은 구태여 그 사실을 보육 교사나 지도원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게다가 굳이 알리지 않더라도, 당시의 상황 이후 그 아기가 당 보육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생님들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챌 수 있었다.
하지만 서로 기분 나빠질 이야기를 괜히 입에 올려 구설수를 만들 일은 서로가 피했기에, 그 일은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