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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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가 보육원 본관으로 들어올 때, 생활지도원 한 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단유야, 양 선생님 보지 못했니?”
생활지도원은 보육교사를 찾고 있었다. 단유가 식당에 있음을 알려주자, 황급히 식당으로 향하는 생활지도원이었다. 단유는 그녀의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방으로 돌아갔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식당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생활지도원은 보육교사를 발견하자, 식당이 떠나가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완전히 침착성을 잃은 모습에 보육교사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알았다.
“무슨 일인가요?”
“아, 아기가 숨을 쉬지 않아요!”
보육교사가 벌떡 일어났다. 패딩은 무슨 일인지 몰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뒤늦게 의미를 알아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왜요?”
“모르겠어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얼굴로 울먹거리는 생활지도원의 모습에 보육교사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급히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 뒤를 생활지도원이 뒤쫓으면서 식당에는 패딩만 남았다. 우물쭈물 대다가 낙오하고 만 패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넓은 식당 한가운데서 우두커니 서서 식당 문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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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셔. 이것도 먹고.”
단유가 물 컵에 따뜻한 물을 따르고 약과 함께 명수에게 건넸다. 명수는 군말 없이 단유의 지시에 따랐다.
“아직도 눈 많이 내려?”
명수의 물음에 단유는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 앞이 거의 안 보일 정도야.”
“아쉽다.”
명수는 아까 나눴던 대화를 거의 잊은 것처럼 굴었다. 단유 역시 굳이 티를 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 전에 봤던 패딩의 모습이 생각나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어머니는 병실에 누운 딸의 모습을 보며 오열을 하고, 어떤 어머니는 갓 태어난 아기가 꼴도 보기 싫다며 소리를 질렀다. 어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쉴 새 없이 학교를 들락날락 거리는데, 어떤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에 무심하였던지 가르쳐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난 도서관 갈 건데. 같이 갈래?”
“그냥 잘래. 책보면 멀미할 거 같아.”
명수는 침대 위에서 놀란 공벌레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돌돌 말아서 뒹굴 거렸다. 아무래도 혼자 방에 있으면, 심심해서라도 금방 잠이 들겠지. 단유는 피식 웃으면서 방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래층이 소란스러웠다. 반쯤 내려가다 보니 복도를 뛰어가는 보육교사와 생활지도원이 보였다.
보육교사가 영아실에 들어갔을 때, 다른 생활지도원 한 사람이 아기 곁에서 아이의 손과 발을 주무르고 있었다.
“선생님!”
생활지도원이 보육교사의 얼굴을 보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경험이 많지 않은 지도원이어서 이런 경우를 자주 접하지 못했던 탓도 있으리라.
보육교사가 다가가 아이를 살피니, 다행히 숨은 쉬고 있는 듯 했다.
“CPR(응급 소생술)을 계속 했더니, 아이 숨은 돌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열이 너무 심해요.”
생활지도원의 브리핑을 들으며 보육교사는 전자 체온계로 다시 한 번 아이의 열을 쟀다. 체온계의 파란 디스플레이 화면에 39.3이라는 숫자가 떴다.
“119는요?”
“제가 연락을 했어요.”
식당으로 데리러 왔었던 생활 지도원이 먼저 119에 연락을 했었나보다.
“다시 연락해서, 아이가 얼마나 숨을 못 쉬고 있었는지, 지금 열이 심하다는 이야기까지 다시 해주시고 언제까지 올 수 있는지 물어보세요.”
“예, 선생님.”
보육교사는 다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생활 지도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기 캐비닛 안에 해열제 있을 거예요. 라벨 확인해서 가져오세요.”
“예, 선생님.”
두 사람은 서둘러 지시를 이행했다. 그 사이 보육교사는 다른 문제는 없는지 아이를 지켜보며, 바짝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아.”
식당에 있을 패딩이 생각났다. 혹시 여기에 오기 전에 아이에게 다른 증상이 없었는지 묻는다는 걸 깜박했다. 추운 날씨에 오래 노출되어 있었다는 사실에만 집중한 탓에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한 곳에서 몸을 녹이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아이 몸에 문제가 많았던 것일지도 몰랐다.
“선생님.”
영아실 앞에서 단유가 서 있었다.
“니가 어쩐 일이야? 아까 안 갔어?”
“방에 갔다가 도서관 가는 길이었어요.”
중앙계단에서 영아실을 지나야 도서관으로 갈 수 있는 구조였기에, 단유의 말이 사실이겠지만 오늘 하루 종일 지나치게 자주 만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그럼 온 김에 부탁 좀 하자. 식당가서 이 아기 엄마 좀 데리고 올래?”
“예.”
단유는 몸을 돌렸다. 보육교사는 다시 아기를 살폈다. 뜨거운 입김을 토해내는 아이의 호흡이 약해지는 느낌이었다.
“선생님, 여기 해열제요.”
보육교사는 아이를 생활지도원 품에 안겨놓고, 작은 유아용 숟가락에 시럽형 해열제를 부어서 아기에게 떠 먹였다. 작은 입으로 들어오는 해열제를 제대로 삼키지 못해, 입술 양쪽으로 흘러내리는 양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인 뒤,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겼다. 그리고 얇은 담요로 아기를 감싼 뒤, 창문 곁으로 갔다.
“선생님, 다른 애들은 모두 옆방으로 옮기시고요, 여기 창문 좀 열어봐요.”
이윽고 열린 창문으로 눈과 바람이 쏟아졌다. 보육교사는 등지고 서서 아이가 직접 눈을 맞지 않도록 하면서 냉기에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이미 감기에 걸렸을 수도 있지만 더 심해지지 않도록―몸에서 나는 땀을 계속 닦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생활지도원은 곁에 서서 얇은 천으로 아이의 몸을 연신 닦아냈지만, 아이는 울 생각도 없는지 숨만 토해내고 있었다. 차라리 울었으면 좋으련만.
“선생님, 119가 오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거래요. 눈 때문에.”
미치겠네. 보육교사는 생전 안하는 육두문자를 입 안에서 굴렸다.
****
단유는 식당의 문을 열었다. 철 경첩이 삐걱거리며 요란한 소음을 냈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는 패딩이었다.
“선생님이 와보시래요.”
“···왜?”
“이유는 말씀해주시지 않았지만, 아마 아기 때문인 것 같아요.”
패딩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죽었어?”
죽기를 바라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패딩은 그저 겁에 질려 있었다.
“···저도 잠시 본 터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패딩은 의자에 주저앉더니 몸을 숙였다.
“안 가세요?”
“···안 가면 안 될까?”
이런 게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었다. 왜 안 가고 싶을까? 자신의 아기가 죽는다는데. 아까 말한 것처럼 보기 싫다는 것일까? 그런데 그 아기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보기 싫다는 걸까?
“왜요?”
하지만 패딩은 아이를 보기가 무서웠다. 만약 아기가 죽는다면 그것은 모두 자기 탓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을 살인자로 몰지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데리고 오지 않는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거기서···.
순간 자기가 품은 생각에 놀란 패딩이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두 팔로 자기 몸을 감싸며 눈물을 보이기 시작하는 여자.
“···난 최악이야. 아기를 볼 자격이 없어.”
단유는 이 여자를 설득할 자신도 없었고, 설득할 마음도 없었다. 단지 선생님이 데리고 오라고 부탁을 했기에, 그 심부름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저래서는 쉽게 따라올 것 같지 않았다.
“일단 가요. 선생님이 급한 일로 찾으시는 것 같으니까.”
“싫어. 안 가.”
패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죽지 않았다면 더더욱 볼 낯이 없다. 죽어가는 아이를 어떻게 본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의 아기인데.
“아기 엄마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응?”
“자기 아기를 보기 싫어하냐구요.”
패딩은 뜬금없는 단유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저 아이도 이 보육원에 사는 아이다. 그러니 분명 부모로 버림받았을 테지.
“난,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됐어.”
엄마가 되는데도 준비가 필요하다, 는 패딩의 말에 단유는 어쩌면, 이라고 수긍했다. 뭐가 되든지 준비는 필요할 테니까. 다만 저런 태도는 이해가 안 됐다.
“아가씨, 일단 가 봐요.”
어느새 식당 아주머니가 나와서 패딩의 곁에 섰다. 짧고 두툼한 손으로 패딩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드리면서 말을 건넸다.
“아가씨 마음을 다는 모르겠지만, 지금 선생님이 보자고 하는 건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여기 계속 이러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 눈에도 띄니까, 일단 다른 곳으로 가시는 게 좋아요.”
여기서도 내쫓기는 신세구나. 집에서 내쫓기고, 자취방에서 내쫓기고, 남자친구한테 내쫓기고, 친구들한테도 내쫓기더니 보육원에서도 내쫓기는구나. 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 띈다는 말에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느릿하게 일어선 패딩은 어기적거리며 문 앞에서 기다리는 단유에게 걸어갔다. 가까이서 본 패딩의 얼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눈물 콧물에 빗물까지 뒤섞여서 얼굴이 엉망이었다. 갸름한 콧대와 얇은 입술은 핏기가 없고 푸석해보였다.
“따라오세요.”
단유는 패딩을 데리고 본관으로 향했다. 다시 눈우산을 만들어 본관 뒷문으로 뛰어간 단유가 어깨에 붙은 눈을 털어낼 때, 패딩이 물었다.
“너도 엄마가··· 없어?”
“예.”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단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예전엔 엄마를 찾아다녔어요. 날 두고 어딜 가셨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그래요. 어쩌면 나중에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다는 정도예요.”
“엄마, 보고 싶지 않아?”
계단을 오르며 단유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보고 싶긴 해요. 그런데 찾으려고 애쓰지 않겠다는 거예요. 그 시간에 제 힘을 기르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나도 그랬어.”
단유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고개 숙인 패딩이 웅얼거리듯 낮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난 엄마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거든. 엄마 밑에서 잔소리 들으며 시키는 대로 사는 것 보단,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집을 나온 거고.”
“저랑은 다른 것 같은데요?”
“엄마가 보고 싶지만, 굳이 찾아가서 볼 정도는 아니란 이야기였어.”
자기보다 나이든 사람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이상했다. 마치 자기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유가 보기에 저 패딩 속의 여자의 목소리에는 그녀가 말한 것과는 반대로 후회한다는 심정이 가득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상황을 원했던 건 아냐.”
단유는 다시 한 층 더 올라갔다. 그리고 영아실로 여자를 안내했다.
“선생님.”
영아실은 그야말로 폭풍 전야의 상태였다. 선생님들은 전전긍긍하는 얼굴로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는 있는데, 딱히 누구도 입을 열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묘한 침묵 속에서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 소리만이 영아실에 가득했다.
“아가씨! 이 아이, 여기 오기 전에 뭐 먹었어요?”
보육교사가 급하게 물었다. 단유 뒤에 섰던 패딩이 꼼짝도 못하고 서서 바라보다가 질문에 황급히 대답했다.
“저기, 없어요.”
“네?”
“그냥 물만 줬어요.”
보육교사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패딩을 바라보았다.
“언제요?”
“···집에서 출발할 때요.”
“그게 정확히 언젠데요?”
“새벽 5시쯤이요.”
“젖은 언제 마지막으로 줬어요?”
“아직 ···안줬어요.”
보육교사는 다시 입안에서 육두문자를 굴렸다. 저 여자는 분명히 정신이 없거나, 철이 없거나, 심성이 고약하거나, 미쳤거나 아니면 전부 다일 것이다.
영양실조, 저체온, 감기 등 생각나는 질병만 해도 여러 가지였고 그 모든 게 현재 이 아이에게 모두 치명적이리라.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우유를 줬으니, 몸 안의 수분도 많이 뺏겼을 확률이 높다.
“선생님, 119에서 연락 없었어요?”
“예.”
생활지도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하던 그 순간, 들고 있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 쪽으로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