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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153화 (153/956)

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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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면서 눈발이 다소 약해졌지만, 폭설로 인해 도로가 통제된 곳이 많았다. 그리고 보육원 역시 도로 통제로 인해 다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당직이었던 사람들은 집에도 못가고 강제로 연속 당직을 서야할 판이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보육교사의 물음에 패딩은 고개를 저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걸어서 이곳까지 온 마당이었다. 스스로도 이렇게 눈 때문에 고립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던 것 같으니 보육교사로서는 딱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다행히도 우리 식당은 정상 영업 중이니까, 가서 식사 같이 해요. 애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도 알아두면 나중에라도 걱정이 덜할 거예요.”

알고 싶지 않았지만, 당장은 배가 고픈 패딩이었다. 부스스한 옷차림새라도 대충 정리하고 일어서니, 보육교사가 앞장서서 안내했다.

“아, 그런데 부모님은 여기 온 거 아세요?”

“···아니요.”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가출했어요.”

속으로 가지가지 한다, 고 중얼거리면서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아이들을 보면 답답하면서도 화가 나는 게 사실이었다. 이 어린 여자아이는 그저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만 싶어 했다. 아이에 대한 기억과 사실은 모두 지워버리고 싶을 뿐이니, 당연 모성애 같은 건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었다.

실제로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모성애에 대한 진실이었다. 흔히들 모성애는 당연히 가지고 있는 본능 같은 것이라고 생각들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다.

보육원 앞에 아이를 던져두고 가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를 화장실에 버려두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신고를 받고 찾아간 복지사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오기 전에 병원에 들러서 몇 일간 관리를 받은 뒤 보육원으로 오게 된다.

그렇게 모성애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맞닥뜨리게 되면, 같은 여자로서도 자괴감이 들고 아기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저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꼬물거리는 손가락이 허공을 휘저어도 잡아줄 사람이 없다.

“선생님 오셨어요?”

“예, 날씨가 이래서 어떡한대요?”

보육교사는 식당 아주머니들의 인사에 걱정 섞인 말로 화답했다. 이분들은 보통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새벽에 출근한다. 그래서 오늘도 일찍 출근했는데, 당시에는 이 정도로 눈이 내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모양새로 보건대, 보육원 안에 방을 마련해줘야 할지도 몰랐다.

“사정이 안 좋으면 안에 방을 준비할 테니까, 거기서 주무실 수 있게 해드릴게요.”

“그래야 겠네요. 아까도 보니까, 거의 무릎까지 오더만요?”

보육교사는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하고 패딩을 식탁으로 안내했다.

“여기 계세요. 일단 손님이니까 제가 대접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리니, 패딩은 따라가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서 보육교사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결국 자리에 앉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낯선 식당의 실내를 구경했다.

“선생님, 고생이 많으시네요.”

“뭘요. 다 제 일이니까요.”

알아도 모른 척, 모르면 모른 척 하는 게 속 깊은 어른의 바른 자세였다. 척 봐도 스토리가 만들어지지만 애써 모른 척 하며 식판에 가득 음식을 담아주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보육교사는 고맙다며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식판을 내밀자 패딩이 얼른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맛은 괜찮을 거예요. 여기 아주머니들 솜씨가 꽤 좋기로 소문났으니까.”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이들 입맛을 기가 막히게 잘 아시는 분들이에요.”

패딩은 말없이 식판을 내려놓고는 눈치를 보며 수저를 들었다.

“먼저 들어요.”

상담을 하느라 식사 시간을 놓친 것은 보육교사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자기 몫의 식판을 받아들고 돌아왔다.

“먹으면서 들어요.”

멈칫하던 수저가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혼모라고 해서 잘못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죄인처럼 굴 필요는 없어요. 네가 낳았으니까 무조건 네가 책임져야 돼, 라는 건 없어요. 오히려 많은 어려움이 있을 테니 우리가 도와주겠다, 라는 게 우리들의 입장이에요. ···밥만 먹지 마시고 반찬도 같이 드세요.”

느리게 움직이면서도 멈추지 않는 수저였다.

“지금 아가씨가 많이 힘들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본인의 미래만큼 당신이 낳은 아기의 미래도 소중하다는 걸 기억해주었으면 해요. 그 아기도 하나의 생명으로서 비록 축복을 받지 못하고 태어났지만, 앞으로의 인생마저 축복받지 못하는 인생이라고 한다면 너무 불쌍하잖아요.”

패딩은 코를 훌쩍였다.

“이후에라도 부디 한 번쯤은 아기 생각을 한 번 해보시길 바랄게요. 당신의 배 속에서 오래도록 온기를 받으며 자랐던 아이를요.”

수저가 바닥에 떨어지며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그만···하세요.”

보육교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꺼내서 예민한 감정을 건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눈보라치는 겨울 날, 굳이 여기까지 와서 아이를 맡기려(?) 했던 여자의 마음이 그리 나쁘지 않다 여겨 끝내 뱉어내고 만 이야기였는데, 좋지 않았나보다.

“전 못해요.”

울먹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밥알과 뒤섞여 나왔다. 후드득 떨어지는 밥알들 속에 여자의 진심이 섞였다.

“저도 행복해지고 싶다고요.”

“저 아이랑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그러니 저 아이를 버리지 마세요, 라는 말은 패딩의 외침에 싹뚝 잘렸다.

“저 아이는 제가 원했던 아이가 아니에요! 결코 원하지 않았던 아이라고요! 보기 싫다고요! 꼴도 보기 싫다고요!”

보육교사는 슬쩍 식당 안쪽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들이 허둥대며 모습을 감췄다.

****

“석고야, 나 콧물.”

단유가 명수를 돌아보았다. 침대 위에 걸터앉은 명수가 고개만 앞으로 쭉 내밀고 있었는데 코에서 하얀 점액질이 주욱 늘어지며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닦아.”

“흐흐, 신기하지?”

퍽이나. 단유는 피식 웃으며, 책상 위에 있는 휴지를 집어서 건넸다. 명수는 휴지를 건네받는 대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머리의 움직임에 맞춰 흔들리는 콧물의 움직임이 재밌나보다. 명수는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손가락을 허공에 찔러댔다.

“그만하고 닦아. 더러워.”

“더러워? 더러워?”

명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유에게 슬슬 다가왔다. 단유는 휴지를 손에 돌돌 말아 뜯어낸 뒤, 명수의 코를 닦아 주었다.

“누워 있어. 따뜻한 물이라도 갖다 줄게.”

명수는 다시 코를 내밀고 가만히 콧물이 흘러내리길 기다렸다. 말리고자시고 할 것도 없이 금세 흘러내리는 콧물이었다.

단유는 복도로 나가서 정수기를 찾았다. 그런데 정수기에 물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물이 나오는 중간 통로가 막혔는지 나오질 않았다. 깜빡거리는 신호가 보이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는 단유는 짧은 한 숨과 함께 몸을 돌렸다. 방으로 돌아가려던 단유는, 생각을 고쳐 계단을 내려갔다.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서 방에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본관 뒷문으로 나온 단유는 머리 위로 손우산을 만들고는 식당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작은 주전자에 물을 담아서 오면 충분하리라.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즐기면서 식당에 들어간 단유는 식탁 하나를 두고 마주한 패딩과 보육교사를 볼 수 있었다.

“저 아이는 제가 원했던 아이가 아니라고요!”

패딩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꼴도 보기 싫다고요!”

열린 문으로 눈과 바람이 쓸려 들어왔다. 식당 안으로 들이친 냉기에 고개를 돌리는 두 사람과 시선이 마주친 단유.

―쾅

문이 닫히면서 식당 안에 작은 울림이 퍼졌다. 검은 패딩의 여자는 단유를 바라보며 당황한 얼굴을 했다. 자신의 비밀이 탄로 났다는 것에 대한 당황과 진심을 들켰다는 부끄러움이 섞여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단유야, 무슨 일이니?”

보육교사 역시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사정을 물었다.

“명수한테 줄 뜨거운 물을 얻으려고요.”

“정수기는?”

“물이 안 나와요. 고장났나봐요.”

보육교사는 짧게 숨을 토해내며 일어섰다.

“아가씨, 다 드셨으면 자릴 옮기실래요? 상담실로 가시는 게 좋겠는데.”

패딩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단유야, 여기.”

어느새 식당 아주머니가 주전자를 들고 달려왔다.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모른 척 해야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얼른 준비해주는 게 좋겠다는 눈치 빠른 어른의 바람직한 자세였다.

하지만 단유는 아니었다.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식당 아주머니가 뒤를 돌아보았다. 보육교사도 괜한 사실을 들켰다는 생각에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

“단유야, 넌 몰라도 돼. 이건 누나와 선생님의 비밀 이야기야.”

“···그렇군요.”

묘하게 뜸을 들이다 대답하는 단유의 반응에 보육교사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비밀’이라는 단어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진심에서 한 가지 사실을 추론해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명수가 그랬어요. 자긴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다고요.”

패딩이 움찔했다.

“엄마가 자길 보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자기도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다고요.”

“다, 단유야.”

“괜찮아요. 명수도 아무렇지 않다고 했어요. 명수도 이제 다 컸는걸요.”

명수가 다 컸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보육교사가 의문을 품고 생각에 잠긴 사이에 단유가 말을 이었다.

“저나 명수는 이제 부모님한테 기대지 않아도 잘 클 수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슬퍼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아이도 씩씩하게 자랄 거예요.”

단유는 몸을 돌렸다. 다시 문을 열자 찬바람이 식당 안을 파고들었다. 다시 문이 닫히고 작은 울림이 퍼져나갔지만, 식당 안의 어른들 가슴 속에 남긴 냉기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

식당을 빠져나온 단유는 식당 처마 아래에서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중충한 하늘과 그 하늘을 뒤덮을 만큼 하얀 눈보라가 시야에 가득했다. 해나 구름, 산이나 나무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을 하얀 눈이 뒤덮어 버렸다.

“하아.”

단유의 입에서도 하얀 김이 모락모락 뿜어지더니 금방 눈바람에 흩어지며 사라졌다.

단유의 가족도 그렇게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과연 어떤 눈바람이 불었기에 그렇게 사라졌을까? 그런데 지금 단유의 마음속에는 사라진 입김을 그리워하는 마음 따위 없었다. 그냥 사라졌다는 사실만 남았을 뿐.

“나도 씩씩하게 자랄게요. 엄마.”

조용히 중얼거린 단유는 본관으로 다시 성큼 걸음을 옮겼다. 단유의 가슴 속에도 몰아친 눈보라가 그 날의 푸른 수목들과 노을 빛 마을의 풍경을 지워버렸다.

한편, 식당 안에서는 패딩이 머리를 붙잡고 오열을 하고 있었다. 식당아주머니는 어느새 모습을 감췄고, 보육교사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패딩의 곁을 지켰다. 사실은 보육교사도 눈물이 맺혔는데, 억지로 참고 있었다.

천방지축인 명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단유 역시 의젓하고 과묵한데다 영리한 아이라서 대견스럽게만 생각했었는데 그 아이들 역시 가슴에 큰 상처를 감추고 살고 있음을 재차 느끼게 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패딩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 때 쯤, 보육교사가 입을 열었다.

“저기요.”

보육교사가 나직이 불렀다.

“아까 그 아이가 한 말은 아가씨를 위로하는 말이었다는 거 아시죠? 결코 아가씨를 비하하려거나 모욕하려는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혹시라도 아가씨가 오해할까봐.

“흑, 아, 알아요. 그냥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요.”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흐느끼기 시작하는 아가씨였다.

“불쌍한 아이들이에요. 저도 까맣게 잊고 지냈어요. 그런데 어느새 저 아이, 아니 저 아이들도 씩씩하게 자랐네요. 아마, 아가씨 아기도 그렇게 자랄 거예요.”

미혼모들은 새출발을 원한다. 하지만 아기들은 발목을 붙잡는다. 입양특례법에 의해 미혼모들은 직접 아기들의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는 미혼모들은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다.

패딩의 여자도 새 출발을 원했고, 하지만 아기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고, 되도록 아기를 보지 않고 살아가길 원했다. 하지만 그 아기가 커서 자신의 나이가 됐을 때, 아니 방금 보았던 아이의 나이만큼 됐을 때, 그 아이가 ‘엄마가 자기를 보고 싶지 않을까봐’ 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굉장히 슬플 것 같았다. 아니, 지금 당장 그 마음이 너무 아릿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껴졌다.

“흑흑.”

자신은 엄마가 너무,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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