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52화 (152/956)

동(2)

-------------- 152/952 --------------

입구에서 몸을 털고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려던 단유는, 우연히 시선을 돌리다가 보육원 정문 쪽에 희끗거리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눈발이 살짝 약해질 즈음해서 그 그림자가 사람의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이미 많은 눈이 쌓여서 사람들이 오가지 않을 날씨임에도 정문 쪽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는 게 의심스러워 자세히 관찰하니, 계속 그림자가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 저기요.”

보육교사는 단유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눈을 좁히고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보았는지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단유도 호기심에 뒤를 따라갔다.

그림자는 다가오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지 계속 왔다갔다 정문 근처를 서성이는 모양새였다. 다가갈수록 형체는 사람의 형태를 갖추더니, 검은색 패딩에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구세요?”

보육교사가 소리치자, 그제야 다가오는 것을 알았는지 고개를 퍼뜩 들었다가 뒷걸음질을 치려했다. 그러나 발목 위를 덮는 눈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하고 그만 휘청이다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앵!”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란 보육교사가 서둘러 뛰어갔고, 그 뒤를 단유가 쫓았다.

“어머나, 세상에!”

검은 패딩은 가슴에 포대기로 둘러 싼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넘어지면서 아기가 놀란 탓에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보육교사는 얼른 아기를 안아들고는 다른 손으로 패딩을 일으켜 세우려했다. 그러나 패딩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단유야, 좀 도와줄래?”

보육교사는 단유에게 아기를 맡기고, 패딩을 두 손으로 일으켜 세웠다. 모자를 눌러썼지만, 모자 아래로 보이는 얼굴은 꽤 앳된 얼굴이었다.

앳된 얼굴의 패딩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입양은 안돼요.”

주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왜?”

재훈이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주영에게 물었다. 내가 입양하겠다는데, 니가 왜 반대하냐는 물음이 섞인 질문이었다.

“첫 째는 선배가 아직 미혼이라는 거.”

“양부모가 성년자라면 남녀, 기혼, 미혼, 자식 유무 불문 입양할 수 있다고 했어.”

이미 그 정도는 알아본 재훈이었다.

“선배의 법리적 조건을 따지는 것이 아니에요. 선배의 가족들이 반대할 거란 거죠.”

“내가 언제 가족들 눈치 보면서 살았었나?”

“그렇게 사셨으니 지금 이렇죠.”

“그건 또 무슨 뜻?”

주영이 팔짱을 끼고 재훈을 노려보았다.

“회장님 외에는 단 한 명도 이 병실에 들어온 적이 없다는 것.”

재훈은 빙그레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야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지.”

“그리고 만약 입양을 강행하신다면, 회장님마저도 등을 돌리실 겁니다.”

“뭐, 이제는 나 혼자 자립할 때도 되지 않았어? 애초에 혼자였지만.”

“병원 건립에 차질이 생길 겁니다.”

재훈은 입을 다물었다. 재훈이 재벌 3세라는 것도 허울 좋은 명패일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도움이 없다면, 재훈은 그저 의대 본과생이라는 명패 밖에는 남는 게 없었다. 게다가 자기 앞가림 할 돈도 없는 고학생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재훈의 침묵 속에서 주영은 두 번째 이유를 들었다.

“두 번째는 단유입니다.”

“그게 뭐야?”

“단유가 입양에 동의했나요?”

“하지 않을까?”

“자신감이 꼴불견이네요, 선배.”

재훈은 머리를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목을 슥슥 긁었다.

“그리고 선배는 결혼 안하실 거예요?”

“···좋은 사람 있으면 하겠지?”

“만약 그 사람이 파양을 원하면요?”

재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왜 파양을 원해?”

주영은 물을 한 잔 마셔 입술을 적신 후 이야기를 했다.

“모르죠, 그건. 그냥 만약 그럴 경우에 어떡하실 거냐고 묻는 거예요.”

“파양을 원하지 않을 거야. 단유가 귀염성은 없어도 예의는 바르거든.”

“정말, 제멋대로네요.”

주영은 한숨을 내셨다. 재훈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에 파양을 원한다면, 그냥 다른 사람 찾지 뭐. 이 세상의 반이 여자라는데.”

“···참 선배답네요.”

“정 없으면 너랑 하지 뭐.”

“예?”

주영이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재훈을 바라보았다. 익살맞게 킬킬거리며 재훈이 말을 이었다.

“너도 단유 좋아하잖아? 파양 안 할 거잖아? 그럼 좋지 뭐.”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거예요? 내 의사는 안 물어봐요?”

“파양할 거야?”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주영은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했다.

“선배가 매사 이런 식이니까, 주변에···‘사람’이 없는 거예요.”

재훈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고, 주영은 붉어진 얼굴로 병실을 나갔다. 병실 안에서는 재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도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

“마셔요.”

보육교사가 녹차 티백을 넣은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넣고 몇 번 휘휘 저은 뒤, 패딩에게 건넸다.

“······.”

입술이 살짝 파랗게 물든 하얀 얼굴의 패딩은 얼굴 옆으로 튀어나온 머리카락을 정리한 후 조금씩, 조심스럽게 차를 입에 흘려 넣고는 맛을 음미하듯 부동자세로 앉아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보육교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가 옆에 앉은 생활지도원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생활지도원이 안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기는 지도원이 입에 물려준 젖병을 열심히 오물거리며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보육원에는 어린 아기들도 여럿 있었기 때문에 소독한 젖병쯤은 여유분을 가지고 있었다.

“몸 좀 녹이셨으면 이야기를 해 보세요.”

보육교사가 패딩을 채근했다.

“이렇게 추운 날, 저 어린 영아를 데리고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것도 사실 잘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 말이죠.”

어떻게 왔냐는 질문에, 혼자 왔다는 패딩의 말에 보육교사가 기겁을 했었다. 이 날씨에 고작 얇은 거적때기 같은 포대기로 아이를 둘둘 싸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놀라고, 날씨 때문에 차량통행이 제한된 지금 시점에 혼자 왔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보육교사는 아이의 얼굴을 한 번 훔쳐본 뒤, 말을 이었다.

“다행히도 아이가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만, 어쩌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할지도 몰랐어요.”

아이의 체온을 재 본 결과, 살짝 미열이 있긴 하지만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다.

“진짜 설마해서 묻는 건데요, 혹시 정문에 아이를 두고 가려고 했던 거예요?”

가끔 그런 사람이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듯이 아기를 보육원 앞에 두고 가면, 아기 우는 소리에 사람들이 뛰쳐나와서 아기를 데리고 들어간다는 상황을 기대하는 사람들. 그러나 열에 아홉은 반드시 아기에게 문제가 생길 상황이 만들어진다. 특히 겨울철에 그런 짓을 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기는 건강에 큰 위험을 겪게 되고, 심지어는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에도 이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패딩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렇게 맡긴다고···.”

보육교사는 화도 내지 못하고 혀만 찼다. 생활지도원도 흘끔 훔쳐보다 다시 아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일단 현실을 알려드린다는 차원에서 말씀드립니다만, 보통 불가피한 상황에서 육아가 어려운 경우에는 이렇게 아이를 버리듯이 던져두고 갈 것이 아니라 보육원 원장님과 상담을 하셔도 되는 거예요. 상담을 해서 아이를 맡기더라도 신변 노출 같은 건 없어요. 그리고 나중에라도 아이를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면회 신청을 하고 아기를 볼 수도 있고요.”

패딩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도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드리는 게 아니에요. 혹시 주변에서 아가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라고 알려드리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네.”

패딩은 소매를 들어 눈을 쿡쿡 찌르듯 눈물을 닦아냈다. 보육교사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생활지도원에게 눈치를 줬다.

“잠시 나가 계세요.”

생활지도원은 말없이 아기를 안고 상담실을 나갔다. 이후 보육교사는 몸을 숙이며 패딩에게 물었다.

“몇 살이세요?”

패딩은 슬쩍 시선을 들어 올렸다가 보육교사와 눈이 마주치자 뜨끔 하는 기색을 보이며 곧 아래로 내리깔았다.

“아이 부모에 대한 기록은 결코 외부로 나가지 않아요. 하지만 기록은 해야 되요. 아가씨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아기를 위한 것이기도 해요.”

“···그냥 말 안하면 안돼요?”

그리고 흐느끼기 시작한 패딩 속 여자는 이제 겨우 17살이 된, 세상이 두렵기만 한 아이였다.

****

“단유야, 아무한테도 이야기하면 안 된다. 알았지?”

생활지도원 한 분이 단유에게 주의를 주고 떠났다. 단유는 방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보육원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실체를 본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너 혼자 놀다 왔지?”

명수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면서 물었다.

“머리 제대로 말려. 안 그러면 감기 심해져.”

“괜히 잔소리는.”

명수는 툴툴대면서도 억센 손길로 머리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훔쳐냈다.

단유는 명수를 바라보다가, 슬쩍 지나가듯이 물었다.

“넌 언제 여기 왔어?”

“여기? 보육원?”

“응.”

“몰라. 어릴 때 들어왔는데 기억은 안나.”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주는 명수의 얼굴에서는 별 다른 기색이 떠오르진 않았다.

“왜 물어?”

“그냥. 나도 여기 온지 이제 5년이 지났잖아. 그래서 물어봤어.”

“그래?”

명수는 수건을 집어던지고는 침대 위에 풀썩 누웠다. 창밖으로 날리는 눈은 소리 없이 대지를 덮고 있었고, 라디에이터에서 온수가 지나가며 꿀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기억나는 것도 있어.”

명수가 심드렁하게 툭 뱉어낸 말에 단유는 고개를 돌렸다.

“그 때도 추웠던 것 같은데, 이렇게 눈이 내리진 않았던 것 같고. 비가 내렸나? 모르겠어. 아무튼 막 울면서 나가겠다고 떼를 쓰는데 어른들이 날 붙잡았던 기억은 있어.”

“언제?”

“몰라. 그런데 내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됐을 때인 거 같아.”

“그렇구나.”

“그 때는 엄마랑 같이 간다고 했었는데···.”

단유가 다시 명수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기억 나?”

“아니. 기억은 안나. 그런데 엄마가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너무 오래돼서 모르겠어. 착각일 수도 있고.”

명수도 저런 기억을 가지고 있구나.

“넌? 너도 처음에 엄마 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내가?”

“응. 너 잘 때 그랬어. 엄마 보고 싶다고.”

아마도 단유가 처음 여기 왔을 때, 자면서 잠꼬대 식으로 이야기를 했었는지도. 그리고 함께 방을 썼던 명수는 그걸 들었던 것일 테고. 한 번 자면 옆에서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지 못하는 잠버릇을 아는 단유로서는 믿기 힘들었지만, 지금의 명수는 꽤 진지해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나도···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네.”

사실이었다. 이상하게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듯이 흐릿하게 번져서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단순히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까닭으로 생각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한 때는 그렇게 열심히 찾아보려고 했던 어머니였는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감정이 예전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명수도 그럴까?

“엄마 보고 싶어?”

“···모르겠어.”

명수는 조금 느리게 대답을 했다.

“솔직히 보고 싶기도 한데, 그렇게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

비슷한가?

“엄마가 날 안 보고 싶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단유는 가슴이 따끔거렸다. 그리고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고 자책했다. 명수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명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일부러 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억누르고 있었다.

****

보육교사는 서류를 챙겼다. 그리고 맞은편에 웅크린 듯 몸을 숙이고 있는 패딩에게 이야기를 했다.

“원래는 원장선생님과도 상담을 해야 하는데, 오늘 원장 선생님이 출근을 하지 못해서 이렇게 한 거예요. 대신 나중에 다시 한 번 와서 이야기를 하긴 해야 되요. 알았죠?”

패딩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보육교사는 짧은 한 숨과 함께 바깥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눈은 거세게 내리고 있었고, 오전보다 더 심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단은 여기서 좀 쉬세요. 당장은 나가기도 어려우니까. 전 다른 일 좀 보고 올게요. 아, 아기 보고 있을래요?”

“아니요.”

즉각 대답이 나왔다. 미간을 살짝 찌푸렸던 보육교사는 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상담실을 나왔다. 그리고 영아실에 있는 생활 지도원을 찾아갔다. 어느새 아기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져, 천사처럼 자고 있었다.

“어때요?”

“우유를 한 통 먹고는 잠들었어요. 체온도 이상 없고요.”

보육교사는 물끄러미 아기를 바라보다가 조용하게 이야기했다.

“일단 다른 선생님들께는 제가 이야기를 할게요. 그리고 상담실에 아기엄마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 새어나가도록 하시고요.”

“예. 단유한테도 이야기는 해 놨습니다.”

“단유는, 괜찮을 거예요.”

워낙 입이 무거운 아이고, 다른 아이들이랑 사담을 나누는 성격도 아니니까.

“아이들은 다들 자기 방에 있겠죠? 아, 선생님은 모르시겠구나. 일단 여기서 애 좀 봐주세요. 제가 다른 애들 돌아보고 오죠.”

“네, 선생님.”

보육교사는 다시 아기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영아실을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