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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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단유를 돌아보자, 단유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상훈이는 좋은 아이예요. 친구들한테도 잘하고 공부도 잘해서 친구들이 모두 좋아하는 친구고, 반장이에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네?”
오여사는 단유의 의도를 몰라 어정쩡하게 단유의 칭찬(?)을 받아주었다.
“그런데 상훈이는 스스로가 얼마나 착한지를 몰라요.”
“응?”
“상훈이는 자기가 부모님한테 잘못하고 있다고 자책하고 있어요.”
상훈 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 무슨 소리니?”
오여사가 덜컥 거리는 마음을 감추며 단유에게 다가가려는데, 아버지가 오여사의 팔을 붙잡았다.
“계속해봐라.”
“상훈이는 자기가 공부를 못해서 어머니한테 혼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한테 어떻게 공부를 잘 할 수 있는지 묻기도 했어요. 저라면 절대 그렇게 못할 거 같거든요. 상훈이는 그만큼 적극적이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버지의 일자로 굳게 다물어진 입술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요. 상훈이 너무 혼내지 마세요.”
아버지의 눈가가 살짝 찌푸려졌다. 단유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어느 새 곁에 떨어져 있던 혜린이 후다닥 달려와 인사를 꾸벅하고는 단유를 쫓아갔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오여사는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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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아버님. 어머님.”
담임선생님이 인사를 하며 자리를 권했다. 아버지는 넥타이를 조여 맨 뒤 오른손을 내밀었다.
“상훈이 애비 되는 지성언이라고 합니다.”
“담임을 맡은 이주안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자리에는 상담을 보조해 줄 상담교사도 함께 했다. 네 사람이 책상 2개를 붙여 자리를 만들고 둘러앉으니 어색한 침묵이 잠시간에 흘렀다.
“우선 제가 어머님과 아버님께 사과를 먼저 드릴게요. 지난번에는 제가 너무 조심성 없이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는 겸연쩍다는 듯 인사를 받았다. 선생님은 고개를 가볍게 숙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저희는 결코 상훈이가 잘못됐다거나, 혹은 큰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드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알려드리고 싶어요. 다만 상훈이가 지금 현재 보이는 감정적 상태가 걱정되니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을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도, 예 뭐, 그런 이야기라면 신중하게 이야기를 들어야겠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조곤조곤 이야기하려는데 아버지가 손을 살짝 들었다.
“일단, 선생님 말씀부터 듣고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계속하세요, 선생님.”
평소보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감지한 어머니는 지레 겁을 먹고 입을 다물었다. 남편은 평소 점잖은 편이었고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윽박을 지르거나 힘을 과시하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가끔은 극단적으로 나올 때가 있었다. 그때는 누구도 쉽게 말리지 못할 정도라 기가 강한 오여사도 움츠러들기 마련이었는데, 지금 그런 조짐이 보였다. 오여사는 조금 자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만일 남편이 화가 나면 어떻게 말려야 하나 걱정스런 마음도 들기 시작했다.
“들으셨겠지만, 상훈이는 지금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감정적으로 여려진 상태입니다. 원래 착한 아이고 다소 여린 아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아이가 지금 보이는 모습은, 조금 위험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불안증을 보이고 있거든요.”
“불안증이요?”
아버지가 되묻자, 감이 나쁜 편은 아닌 선생님도 괜히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예.”
선생님은 다시 차근차근 상훈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했다. 이미 오여사에게 한 번 했던 이야기였지만, 더욱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가며 이야기를 했다.
“···상훈이가 특히 걱정하는 것은 부모님이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이 많아요. 특히 자신의 성적 때문에 어머니나 아버님이 실망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더라고요.”
아버지는 깍지 낀 손을 허벅지 위에 둔 자세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상훈에게 그렇게 심한 압박을 가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여사가 상훈에게 몇 번 지적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그 정도는 어머니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심한 것일까?
“상훈이의 학교생활은 그야말로 모범생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친구들에 대한 배려심과 선생님이나 웃어른에 대한 예의범절은 타 학생들의 모범이 되고도 남죠. 공부도 사실 성적만보면 우수한 학생이고요. 그런데 지난 시험 당시 상훈이가 보였던 감정은 단순히 착하다는 이유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내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책망할 만큼의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가, 라는 것이죠. 두 분께서 생각하시기에도 이상하지 않나요? 단순히 두 분 아들이 아니라, 이제 11살, 4학년 아이가 보이는 감정으로서는 지나친 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지나치게 보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요? 오히려 너무 착하게만 자란 아이의 심성 때문인 거죠. 저희 집에서도 얼마나 엄마나 아빠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아인데요.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아플까봐 피해 다니는 아이가 저희 아이란 말이에요.”
어머니의 항변은 지난번과 동일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어머니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반론을 제시했다.
“어머니 말씀도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일,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죄의식을 느끼고 눈물까지 흘리며 시험을 포기할 정도가 된다면 걱정스러운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사실 성직자들이라도 이렇게 느끼기 쉽지 않거든요.”
그럴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아버지의 머리에 들어왔다. 자신의 과거를 억지로 떠올려 봐도, 그리고 기나긴 시간동안 봐왔던 사람들을 봐도 그 정도의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교회 목사나 사찰의 스님들도 그런 마음으로 죄의식을 느낄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단순히 어리고 순진한 아이들이라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니라는 선생님의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 이유가 뭡니까? 아까 말씀하셨던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겁니까?”
“저희는 일단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상훈이가 어머니나 아버지가 자신을 혼낼까봐 무섭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요. 그나마 저희가 좋게 보는 점은,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숨기거나 혹은 거짓말을 하는 식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상훈이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죠. 상훈이는 솔직하게 자신의 두려움을 고백하는 용기가 있었어요. 다시 말하면 상훈이는 얼마든지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여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대로 놔둬도 괜찮을지도 몰라요. 스스로 극복을 하고 단단해지는 케이스도 있으니까요. 마치 우리 어른들이 그랬듯이요.”
과거에는 이런 상담이 없었다. 그저 성적이 떨어졌네, 애가 싸우네 하는 이야기로 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정도의 상담만 있었다. 아이의 정신적인 건강까지 고려한 상담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고, 그래서 당시의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과 싸우며 자라나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다시 부모가 되어야 했다.
아버지는 옛날 생각이 났다. 시험지를 감추고, 성적표를 찢고,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해서 용돈을 타내고, 도서관에 가는 척 하면서 친구들과 놀러 갔던 일들. 아버지는 비록 뉴스에 나올 법한 큰 일탈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스트레스를 소소한 일탈 행위들로 해소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랬다.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문 상담사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눠보셨으면 하는 겁니다. 단순히 저희들끼리의 이야기로 될 문제는 아니라고 보입니다.”
“전문 상담사요?”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자 상담교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일단 상훈이는 병이 아닙니다. 무슨 정신병 같은 거라고 오해하지 마세요. 그런 게 아니라 단지 상훈이의 감성이나 멘탈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도울 수 있도록 확인해 보시라는 의미에서 권해드리는 겁니다. 아니면 그냥 상훈이와 진솔한 대화를 나눠서 가정 내에서 해결하는 방법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객관적으로 자기 아이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도 있음을 알려드리려는 겁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건가요? 우리 상훈이가?”
상훈의 아버지가 입을 열어 물었다. 상담교사가 안경을 매만지면서 대답했다.
“위험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이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훈이 보이는 불안증은 집중력 저하나 자존감 상실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면 좋다는 의미에서 상담사를 권해드린 겁니다. 또 가정에서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보다는 좀 더 체계적으로 연구된 상담소에서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이죠.”
상담교사는 차분한 어조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두 부모님을 책망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착하고 바른 아이를 길러내신 두 분께 칭찬을 드리고 싶을 정도니까요. 다만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부모였던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로 훈련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이전의 부모에게 훈육되어 온 습관이나 관행을 따르는 게 보통이지요. 때문에 부모는 전문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수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상담교사는 짧게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과연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두려움은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익숙한 반복과 습관만 남지요. 부모는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자녀를 훈육합니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와 다르죠. 부모에게 익숙했던 방식이 자녀에게도 익숙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상훈에게도 어쩌면 두 분의 훈육이 다소 과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또 반복되겠죠. 그러니 이런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상훈이가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부모님들께서 불편하신 마음이 들더라도 아이를 위해서 시간을 내주시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드리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숨을 깊게 토해냈다. 어머니가 안절부절 못하다가, 선생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어요. 선생님. 그렇게 할게요. 방학 때 아이 데리고 상담소를 한 번 방문하던지 할게요. 그러니까, 우리 상훈이 사회 시험 말인데요···.”
“여보.”
오여사는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다. 다른 세 사람은 침도 삼키지 못하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잘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오래 봐주신 선생님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아까 교실로 올 때, 단유라고 했던가요? 그 아이가 그러더군요. 상훈이 혼내지 말라고. 사실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상훈이를 혼낸 기억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그럴 만도 하네요. 저도 어쩌면 익숙한 방식으로 저희 아들을 훈육하고 있었나 봅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지금은 돌아가신 상훈의 할아버지는 예전 꽤 근엄하신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는데, 문득 그런 기억도 떠올랐다. 무슨 잘못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잘못을 했다고 엄동설한에 팬티바람으로 집 밖으로 쫓겨났던 기억이 있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셨다. 갑자기 화를 내시면서 집 밖으로 쫓아내셨고, 아버지는 이유도 모른 채로 밖에 나와서 떨어야 했다. 그 당시의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고 억울함 등이 떠오르더니 상훈에게도 비슷하게 행동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생님들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저희 부부도 아마 고칠 점이 많았었나 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였다. 담임선생님과 상담교사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만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며 마지막 인사 겸 고마움을 표시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는데, 잊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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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 한 거야?”
“상훈이 혼내지 말라는 이야기.”
혜린의 물음에 짧게 대답했다.
“어? 상훈이 도와주려고 그런 거야?”
단유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 혜린이 묻자 단유가 씁쓰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애써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우연히 마주친 상훈의 아버지에게 그냥 상훈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란 존재가 단유에게 어떤 동요를 일으킨 점도 있었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해줬던 말들을 단편적으로나마 기억하며 살아가는 단유였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자길 혼내지 말아달라고. 자기도 나름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상훈이처럼 노력은 하고 있으니까, 나중에라도 혼내지 말아달라고. 그냥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았다.
단유의 표정을 보던 혜린은 다시 자책하면서 얼른 자리를 피했다. 단유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단유야, 잘 가.”
혜린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자기 집으로 향했다. 교문 앞에서 헤어지는 두 사람을 보던 명수가 다가와서 물었다.
“너희 둘이 사귀냐?”
“아닌데?”
혜린과 이렇게 인사하는 장면을 한두 번 목격하는 것도 아닐 텐데, 새삼스럽게 그런 질문을 하는 의도가 궁금했다.
“니 표정이 그렇잖아?”
“내 표정이 어때서?”
“너 막 이렇게 막 웃는데?”
명수가 손가락으로 자기 입꼬리를 붙잡고 끌어올리며 말했다.
“내가?”
단유는 자기가 웃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오오, 석고 여자 친구 예쁜데?”
지선이 총총 다가오더니 단유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 언니 좋아?”
단유의 얼굴이 빨개졌다. 겨울바람에도 달아오른 얼굴이 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