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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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상훈에 대해 알지 못한다. 상훈은 명수와 같은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때문에 단유는 섣불리 상훈에게 다가가서 위로를 하는 행동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행동이 오히려 상훈에게 짐이 될 수도 있고, 단유 본인에게도 짐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혜린이 가만히 단유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넌 나를 친구라고 생각해?”
“응.”
단유는 혜린을 친구라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서 잘 알아?”
“알아가고 있지. 다 알아야만 친구가 되는 건 아니잖아? 알아가는 동안에도 친구는 될 수 있지.”
“상훈이는?”
“조금 애매한데?”
혜린은 턱을 괴고는 단유를 빤히 쳐다보았다. 단유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왜?”
“나나 명수 말고 다른 친구 있어?”
“······.”
그걸 왜 묻냐는 눈빛을 대신 보내자, 혜린이 재차 물었다.
“친구가 많으면 좋지 않아?”
“···별로.”
단유는 친구가 많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비밀이 드러나지 않을까, 두려운 상황에서 자기 곁에 사람들을 많이 두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반영된 결과였다.
“친구가 없으면 외롭대. 우리 엄마가.”
“친하게 지내는 형이나 누나들도 많아.”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고 그랬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니, 혜린의 능력에서는 더 이상 논파가 불가능했다. 단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기쁨보다는 가치관의 혼란이 생길 것 같은 기분에 혜린은 몸을 바로 하고는 책을 폈다. 집에 가서 어머니랑 이야기를 나눠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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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상훈은 힘없이 가방을 둘러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훈아, 상훈인 잠깐 남도록 하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집에 들어가도록 해요. 날이 추우니까 밖에서 오래 놀면 안 돼요. 알았죠?”
“네!”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 밖으로 뛰쳐나갈 때 상훈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대기했다.
“상훈아, 잠깐 이리로 와.”
선생님의 부름에 상훈은 터덜터덜 걸어 선생님 책상 쪽으로 향했다.
“상훈아, 오늘도 기운이 없니?”
“···네.”
“아직도 신경이 많이 쓰여?”
“······.”
시험을 쳤던 그 날, 어머니는 걱정 반, 질책 반으로 상훈을 콩 볶듯 볶았다. 그을음이 생기듯 상훈의 얼굴에 그늘이 생겼고, 상훈은 선생님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그리고 어제, 어머니가 학교로 오셨고, 어제 저녁에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계신 탓에 상훈은 침도 제대로 삼키기 힘들 정도였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달래려 하셨지만, 어머니는 분에 못 이긴 듯 연신 냉수를 마시면서 ‘선생이, 어린 것이, 어쩌구, 저쩌구’ 하시면서 소리를 높이시는 바람에 상훈은 자기 방에서 한 걸음도 나서질 못했다.
“상훈아. 선생님은 상훈이가 걱정돼서 그래. 상훈이가 나쁜 짓 안한 건 선생님도 알고 우리 반 친구들도 다 잘 알아. 그래서 선생님은 상훈이가 나쁜 짓 했다고 혼내려는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겁먹을 필요 없어.”
겁먹은 건 아닌데.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선생님은 상훈이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래. 사실 그 전에 선생님이 알아봐줬어야 하는 데 너무 늦게 알아본 것 같아서 미안하고 그러네? 혹시 공부하는 게 많이 힘드니?”
상훈이 고개를 저었다.
“공부하는 건 안 힘들어? 그럼 힘든 건 없어?”
상훈은 부동자세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혹시 엄마가 상훈이한테 너무 많은 걸 시킨다거나 그러니?”
조금 직설적인 물음이었지만, 상훈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던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상훈은 힐끔 선생님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상담교사가 말했었다.
“상훈이는 쉽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할 거예요.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든요. 대신 부모나 선생님의 말에 예스만 이야기하는 친구라서 계속 자기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거죠. 주변에도 잘 지내는 모습만 보이려고 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혼자 있을 때만 전전긍긍하죠. 하지만 아이 혼자 전전긍긍해봐야 결론이나 해결책이 나올 리 없어요. 그러니 여러 가지 문제들이 계속 압축되고 쌓이면서 안으로 파고드는 거예요. 풀리지 않은 채로.”
최근 3일간 상훈의 모습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그에 대해 상담교사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무기력은 우울증의 양상 중 하나죠. 외부의 기준이 너무 높게 세워진 데 반해서 자신이 그 기준을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은 무기력에 빠져요. 그리고 자신에 대해 좌절감이나 실망감을 느끼고, 심하게는 수치심도 느끼죠.”
선생님은 난감한 가운데서도 상훈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껏 많은 아이들을 상대해왔고, 자신도 비록 어디 내놓을 정도로 훌륭한 교사라고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직업적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이렇게 여린 아이 한 명을 제대로 돕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창피하고 화가 났다.
“상훈아. 넌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고 모범적인 친구야.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널 좋아하는 거 너도 잘 알지? 그렇지?”
상훈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람이란 게 항상 잘하고 똑똑할 수는 없는 법이야. 때로는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그러는 거지. 그럴 때는 당당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옳은 거겠지? 숨기고 감추고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보다는 말이야. 그렇지?”
“···네.”
“이번에 상훈이가 너무 마음이 여려서, 선생님이나 어머니한테 혼날까봐 그랬다는 거 잘 알아. 하지만 선생님은 널 혼내지 않아. 만약에 봤다고 해도, 죄송합니다, 라고 했으면 그 때도 선생님이 널 혼냈겠니? 안 그런단 말이야. 선생님뿐만 아니라 상훈이 엄마도 너 혼 안냈을 걸?”
상훈이 잠시 상상해보았다. 과연 혼내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쩐지 화내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또 울먹거리려는 상훈의 태도에 당황한 것은 선생님이었다.
“왜 그러니, 상훈아?”
하지만 상훈이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무서웠고, 두려웠고, 그래서 눈물이 났다.
“상훈아?”
당황한 선생님과 눈물이 맺힌 얼굴로 마주앉은 상훈. 교실 바깥으로 하굣길에 오른 아이들이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와,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가운데, 움직임이 멈춘 교실에는 시계 초침소리만 째깍거리며 두 사람 사이를 오갈 뿐이었다.
****
“엄마, 물어볼 게 있어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로 당황스럽게 만들려나, 하는 기대를 품고 혜린의 어머니는 혜린과 마주앉았다. 혜린은 단유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단유는 친구가 많이 필요 없대요.”
“왜?”
“모르겠어요. 전 친구가 많을수록 좋을 것 같은데 단유는 그렇지 않대요.”
혜린의 어머니는 팔짱을 낀 자세로 식탁 위에 상체를 기댔다.
“단유가 너랑 친구가 하기 싫다든?”
“아니요. 나는 친구래요. 걔가 그러는데요, 친구는 서로를 잘 알아야 하는 거래요. 그래서 옆 반에 명수는 친한 친구라고 했고요, 저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알아가는 중이니까 친구라고 했어요.”
논리적인 답은 아니지만, 맥락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혜린의 어머니가 생각하기에 그런 생각은 초등학생이 할 법한 생각은 아니었다. 철이 들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어둡고 비관적인 시선이 곁들여진 것 같았고, 너무 어둡다고 이야기하기엔, 병원에서 봤었던 단유라는 아이의 이미지가 너무 맑았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아이 같지 않은 아이?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 다를 수 있어. 친구가 많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고, 친구가 많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지. 단유가 다 옳은 것도 아니지만, 단유의 생각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도 않아. 예를 들어보자면, 혜린이 넌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니?”
“예원이요.”
예원이는 옆집에 사는 친군데 유치원 때부터 함께 지낸 탓에 서로 알고 지낸 기간이 길었다. 그 집 부모들 이랑도 잘 알고 지냈고, 심지어는 이혼 후 가장 위로를 많이 해준 사람들이기도 했다.
“넌 예원이에 대해 잘 알지?”
“예.”
좋아하는 장난감,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색깔, 반찬, 옷 따위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넌 예원이랑 함께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니?”
“예, 알 수 있어요.”
혜린은 자신 있게 얘기했다.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다시 질문했다.
“예원이도 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잘 알고?”
혜린이 생각해보니, 예원이가 자기 생각을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가끔은 자기 생각을 몰라줄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모를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너도 마찬가질 걸? 예원이가 뭘 원하고, 뭘 싫어하는지 모를 때도 있을 거야. 예원이가 그런 것처럼.”
그럴 수도 있겠다.
“엄마도 그래.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야. 그래서 계속 알아가는 게 중요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야. 그런데 단유가 말한 대로, 친구란 게 서로를 아주 잘 아는 사이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잘 알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거야. 그러니 그런 친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을 테고 말이지. 하지만 그런 친구가 있다면,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돌이켜보면, 자기도 그런 친구가 많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느니, 생활에 쫓긴다느니, 여러 핑계가 있겠지만 결국 이런저런 이유들로 함께 하는 시간이 줄다 보니 잘 안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서 모르는 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나의 어려운 점이 상대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들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상대의 기쁨을 사심 없이 함께 해주기 곤란해질 때도 있었다.
학창시절에 만났던 친구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친구들 여러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정말 서로를 잘 아는 친구가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많지 않았다. 어떤 친구는 여태 자기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모를지도···.
“하지만, 엄마 생각에는 말이야. 그런 건 나중에 챙겨도 된다고 생각해. 지금은 주위의 친구들과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고, 먼저 다가가서 마음을 터놓고 어울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거든. 처음부터 친한 사람은 없잖아? 니가 단유에게 먼저 고백한 것처럼 말이야.”
“엄마!”
혜린의 어머니는 흐뭇하게 웃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봤던 단유를 떠올려 보았다. 다소 어른스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긴 했지만, 확실히 유별난 아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 아이가 했던 말도 그렇고.
“단유는 니 생일날 오겠대?”
“응. 온다고 했었어.”
혜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 그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얄밉게도 단유이야기에만 저런 웃음을 짓는다.
“에잇, 미련퉁이.”
괜히 심술 나는 마음에 어머니는 혜린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이 아이의 미래가 심히 걱정스러운 어머니였다. 벌써부터 저렇게 남자애한테 흔들리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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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저랑 같이 학교에 가야겠어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두꺼운 코트를 벗던 상훈의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오여사를 쳐다보았다.
“왜? 당신 혼자 가서 이야기 나눈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그 선생이 말길을 못 알아듣는 지, 아니면 그냥 애 엄마라고 얕보는 건지 말을 막 하는데 당해내질 못하겠더라고요.”
“뭐라고 하는데?”
넥타이를 풀면서 묻는 말에 오여사가 그 때 생각이 나는지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 상훈이가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굴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어디 집에서 상훈이를 학대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나 참. 심지어는 무슨 불량 초등학생 자료를 꺼내들고는 상훈이랑 비교를 하려고 들더라니깐요?”
“뭐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상훈이가 불량학생 취급을 받아?”
“그러니까요?”
“당신은 그런 취급받는데 가만히 그냥 나온 거야! 당신 뭐하는 사람인데 그런 취급받으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나와서 이러는데, 응?”
아버지가 화를 내자, 오여사는 찔끔하며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말 못한 건 아니고요. 하긴 했는데, 안 먹히더라는 거죠. 그래서 당신보고 같이 가자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쪽에서도 오라고 하고.”
“뭐 오라고? 왜?”
“그게, 아버지랑 같이 상담하자고···. 아니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깐요.”
중요한 건 상훈의 재시험이었다. 교장선생님 앞에까지 찾아갔지만 도리어 교장과 교감과 담임이 라인을 이루고 바리케이드를 쳐서 반격을 하니 결국 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소리만 빽빽 지르다가 결국 얻은 것 없이 후퇴하고 만 어머니였다. 재시험을 위해서는 결국 아버지를 억지로 끌고 가서 스테레오로 담임을 협박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리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면! 뭐가 중요한데! 아이가 말이야, 무슨 불량? 그러면 우리가 집에서 아이를 뭐 때리고 학대했다는 거야, 뭐야!”
아버지가 고성을 터뜨리며 화를 내자, 괜히 어머니는 맞장구를 치기도 그렇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어려웠다. 남편은 가끔 이렇게 극단적일 때가 많았다. 물론 불을 지핀 것은 본인이었지만, 오여사는 자기 손에 들린 게 불쏘시개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학교 출장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