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47화 (147/956)

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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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오여사가 뿔난 표정을 하고는 날카롭게 되물었다. 선생님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궁리했다.

기말시험이 끝난 직후, 오여사를 학교로 부른 담임선생님은 양호선생님의 조언대로 상담교사와 함께 오여사를 만났다. 상담교사는 담임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양호선생님과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상훈이는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이대로는 학업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고, 건강한 멘탈을 위해선 부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여사는 상담교사의 말을 자르고 담임선생님에게 다소 화가 난 듯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상훈이 사회 시험 성적이 어떻게 되는 거죠? 재시험을 치게 해주시는 건가요?”

선생님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테이블 아래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면서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당장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 상훈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시험시간을 모두 끝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기 5분도 채 안 남았던 시간의 일이었기 때문에 고작 그 시간 때문에 재시험을 치게 해준다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상훈의 사회시험 성적이 그렇게 중요한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장 아이가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감정적 기복이 심하게 드러난 상황인데 시험이나 성적이 중요할까?

그런데 어머니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원래 그 나이 애들은 감성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것 아녜요? 게다가 거짓말을 못해서, 양심에 걸려서 눈물을 흘린 건 칭찬을 할 문제잖아요? 왜 우리 애를 무슨 정신병에 걸린 애처럼 취급하는 거예요? 말할수록 기가 막히네.”

급기야 오여사는 테이블을 두드리며 열변을 토하셨다.

“우리 애가 얼마나 착하면, 하지도 않은 죄 때문에, 단지 마음만 먹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가슴 아프게 울었겠어요? 그러면 선생님으로서는 그 심성을 칭찬하고 북돋아야 마땅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애가 병이라고 진단을 내려요? 선생님이 무슨 의사예요? 애를 병자 취급 하면 좋아요?”

상담 선생님을 보면서도 한 말씀 하셨다.

“그리고 스트레스라니? 고작 4학년 애가 무슨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그래요? 우리 애가 스트레스를 받는 거면, 이 세상에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래요? 다들 학원 다니고 밤늦게까지 학원 4개, 5개 다니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요? 그럼 그 아이들은 전부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병이라도 앓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 그렇게 약한 아이 아니에요. 얼마나 건강하고 부지런한지 몰라서 그래요? 이 선생님, 아시잖아요? 우리 애가 반에서 애들한테 고맙다고 칭찬도 받을 정도로, 응? 솔선수범해서 반의 모범이 될 정도로 부지런하고 씩씩한 아인데 말이야.”

“어머니, 물론 상훈이 착하고 부지런하죠. 저희도 상훈이가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럼 이야기 다 끝난 거 아니에요? 왜 없는 병을 만들어서 씌우려고 하냐고요? 지금이 우리 애한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몰라서 그래요? 괜히 이상한 상담한다고 우리 애 붙잡고 이것저것 시키다가 괜히 애가 자존심에 상처라도 받으면, 그 때 어떡하실 건데요? 네? 자기가 있지도 않은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게 만들 거냐고요?”

“아니, 어머니. 진정 좀 하시고요. 병에 걸렸다는 게 아니고요.”

“제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그리고 이 선생님. 이번에 우리 아이 성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내년이면 5학년이에요.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내년에 우리 아이 영재원 들어갈지도 몰라요. 그런데 선생님이 이런 식으로 나와서 우리 아이 앞길 막으면 안 되죠. 담임이란 분이 애들 잘되도록 칭찬하고 격려해야지, 없는 병 만들고 부모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예요?”

선생님은 아무 말도 못하고 쩔쩔 매기만 할 뿐이었다. 다만 상담교사는 이런 경우도 많이 겪었는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오여사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어머니, 저희도 상훈이가 잘못되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저흰 상훈이가 잘 되길 바라죠. 상훈이가 얼마나 똑똑한 지도 잘 알고 말이죠. 그리고 평소에도 착하게 행동하고 친구들로부터 신뢰도 많이 얻은 아이라는 걸 이 선생님 통해서 들었어요. 그런데도 저희가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 상훈이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질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한 겁니다. 이를 테면 예방조치라고 생각해주세요.”

“불미스러운 일이라니요? 지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니, 어머니. 일단 들어보세요. 지금 이 자료를 보셔도 아시겠지만 초등학생들이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일탈을 하는 케이스가 수도 없이 보고되고 있어요.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고요.”

“상훈이가 이런 애들이랑 같아요? 이건 뭐예요? 흡연? 나 참. 이런 애들은 말 그대로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선생님, 우리 집 가정환경 모르세요? 저도 대학 나온 여자구요, 우리 애 아빠도 대기업 부장이에요. 우리 부부는 부부 싸움 한 번 한 적도 없고요, 상훈이도 우리 가정에서 얼마나 소중하게 다뤄지는지 아세요? 학대나 이런 거 전혀 없다고요. 어떻게 이런 애들이랑 우리 상훈일 비교하면서 말이에요! 정말 듣자듣자 하니까 말들이 너무 심하시네!”

상담 선생님도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담임선생님과 눈을 마주쳐 보지만, 담임은 이미 기가 눌려서 입도 못 떼게 생겼다. 아무래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상훈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것보다는 어머니를 우선 진정시키고 마음으로 이해를 해야 할 텐데, 어떤 말도 듣지 않으시려 하시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선생님, 우선 확실하게 약속을 해주시죠. 재시험 치게 해주실 거죠?”

“네? 아니···.”

우물쭈물 거리자 다시 한 번 탁자가 들썩일 만큼 쿵 소리를 내며 오여사 주위를 집중시켰다.

“우리 애가 시험에서 부정한 일을 시도한 것도 아니고, 선생님 말대로 아팠다면서요? 그럼 재시험 치게 해주셔야 할 거 아니에요!”

“······.”

“선생님께서 약속 못해주시면, 저 이대로 교장선생님에게 갑니다?”

“네?”

선생님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사실 재시험이라는 게, 다른 아이들과의 형평성도 있고요. 다른 아이들도 다 함께 시험을 치려면 아무래도 교과학습 스케줄이란 게···.”

“스케줄은 모르겠고요, 어쨌든 시험 도중에 일어난 문제로 우리 아이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된 건 사실이잖아요?”

말을 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던 오여사가 말을 이었다.

“여기 좋네요. 여기서 상훈이 재시험 치게 해주세요. 선생님은 수업하고 상훈이만 따로 여기서 재시험 치면 될 거 아니에요?”

“네?”

“여기 계신 상담선생님이 감독을 해도 되고요. 그렇죠?”

재시험이라기에 다른 아이들도 함께 쳐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더니, 상훈이만의 재시험이었나?

“저기 어머니, 그건 너무 공정치 못한 처사라서 할 수 없겠는데요?”

“공정치 않다니요?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우리 아이가 부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여기서 시험 친다고 책을 보고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공정치 않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가 양심적이라면서요? 선생님 입으로 그러셨잖아요? 게다가 여기 선생님도 감독으로 들어오면 컨닝을 하지도 않을 거 아니에요? 객관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는 건데 뭐가 공정치 않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죠? 오히려 지금 이대로 사회시험 성적이 반영되는 게 공정치 않은 거죠. 안 그래요?”

담임선생님은 어깨를 움츠리고 상담교사의 눈치를 봤지만, 상담교사는 시선을 피했다. 도와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일단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어머니가 진정이 된 뒤에나 상담이 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담임선생님은 어머니의 눈치를 보다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러면 말이죠, 어머니.”

“말씀하세요.”

“아버님도 함께 오셔서 다 같이 이야기를 하죠.”

“네?”

“아버님도 오셔서 상훈이가 재시험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때 재시험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그 때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우선 상훈이에 대한 상담을 함께 받는다는 조건입니다.”

오여사는 벌떡 일어났다. 상담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버렸다. 담임의 생각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모셔서라도 상훈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겠다는 교사로서의 양심이 바탕에 깔렸을 것이다. 교사의 태도로만 본다면, 담임선생님은 분명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큰 사람이라고 인정할 만 했다. 다만 문제는 그 이야기를 듣는 상대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을 지피는 정도가 아니라, 불에다 기름을 끼얹어 버린 모양새가 돼버렸다.

“선생님, 지금 무슨 가정 분란이라도 일으켜 보겠다는 거예요, 뭐예요? 정말 듣자듣자 하니까 못하는 소리가 없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오여사는 가방을 챙겨들곤 상담실을 뛰쳐나갈 기세를 보이자, 부랴부랴 일어서 오여사를 말리는 담임선생님이었다.

“어머니, 잠깐 진정 좀···.”

“진정이라니!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놔요, 이거. 당장 교장선생님 뵙고 제 입장 밝힐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오여사는 신경질적으로 소매를 뿌리치고는 상담실을 나갔다.

“···어떻게 해요?”

“일단 따라가 보세요. 교장 선생님 앞에서라도 이야기를 잘 풀어보세요, 선생님. 그리고 한 마디만 드리자면, 아버님도 함께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생님 생각이 옳다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섣부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

“얼른 따라가 보세요.”

울상이 된 선생님이 서둘러 오여사의 뒤를 쫓았다. 상담교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챙겨온 자료들과 책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교권침해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교사의 지위와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것은 분명해보였다.

****

“괜찮아?”

“응.”

영지가 걱정스런 눈으로 상훈을 바라보았다. 영지는 학기 초 상훈과 짝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던 아이였다. 딱히 상훈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상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영지는 어제 일 때문에 상훈이 많이 걱정됐었다. 다행히 상훈은 별 탈 없이 등교를 했다.

“아픈 건 아니고?”

“응.”

평소에는 잘 웃던 상훈이었는데, 오늘은 얼굴이 굳은 채로 마주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함께 수다를 떠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단답식으로 대답하면서 대화를 기피하던 아이가 아니었기에, 영지는 더 걱정스러웠다.

“아프면 선생님한테 말해. 내가 대신 말해 줄까?”

“아니.”

상훈은 책상에 엎드렸다. 너랑 대화할 기분이 아니다, 라는 뜻을 단호하게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영지는 걱정스런 얼굴로 상훈을 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상훈이 등교했을 때부터 몇몇 친구들이 상훈 주위에 모여 있었다.

“어떡해?”

영지의 물음에 다들 난색을 표할 뿐, 딱히 답을 내놓는 친구들은 없었다. 이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한편, 이 모습을 지켜보던 혜린이 고개를 돌려 단유에게 물었다.

“상훈이 많은 아픈 걸까?”

반 친구가 아프면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

“그럴지도 모르지.”

단유는 책을 읽고 있었다. 상훈이 들어왔을 때, 아이들이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잠깐 시선을 주긴 했지만, 큰 흥미를 끌진 못했다.

“넌 상훈이가 걱정 안 돼?”

단유가 고개를 들어 책상 위에 엎어져 있는 상훈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혜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별로.”

“왜?”

“정말 아프면, 병원에 가면 돼. 아프지 않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만약 어떤 사정으로 병원에 가지는 않지만 아픈 것이라면 내가 해줄 게 없으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고, 달리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때 고민해도 될 거라고 생각해.”

혜린이 단유를 바라보다가, 툭 한 마디 뱉었다.

“내가 아파도 그럴거야?”

“응?”

“내가 아파도 그렇게 할 거냐고.”

“아파?”

“아니, 지금은 안 아프지만 그래도 친구가 아프다는데 너무 무신경한 거 같아. 너.”

단유는 눈썹을 긁으면서 어렵게 이야기를 했다.

“니가 아프다고 했을 때, 난 니가 입원했던 병원에도 갔었는데?”

혜린이 아, 감탄사를 뱉으며 작게 손뼉을 마주쳤다.

“그렇네? 그럼 상훈이한테는 왜 그래? 상훈이 싫어해?”

아무래도 혜린은 단유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는 모양이었다.

“그냥, 난 내가 상훈이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봤어. 내가 상훈이의 사정을 전부 알지 못하지만, 지금 상훈이는 아픈 건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 저러는 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이럴 때 섣부르게 다가가서 위로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단유는 그런 경험이 많았다. 남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겪었고, 그 때마다 단유는 홀로 고민을 했다. 그럴 때, 보육교사나 다른 사람들이 와서 괜찮냐, 어쩌냐 하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귀찮기만 했다.

“나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정리가 되면 그 때 찾아가서 위로해줘도 돼. 힘들어한다면 힘들지 말라고 격려를 해도 되고, 외로워한다면 외롭지 말라고 위로를 해도 되고.”

단유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런 것이었다. 무작정 다가와서 위로하고 걱정해주는 건 도리어 민망해지는 일밖에는 되지 않았다.

“언제 정리가 되는지 어떻게 알아?”

“친구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단유가 다시 고개를 돌려 상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책상에 엎드려 있는 상훈이었다. 확실히 단유는 상훈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긴 했다.

그 때, 뒷문으로 그림자가 홱 지나가는 듯 하더니, 어떤 아이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석고야! 큰일 났어!”

명수였다.

“왜?”

“나 체육복 안가지고 왔어.”

“사물함에 있어.”

“고마워!”

명수는 단유의 사물함에서 체육복을 꺼냈다.

“체육부장이 체육복을 안가지고 와서 망신당할 뻔 했어!”

씩 웃고는 자기 교실로 건너갔다.

“저게 친구야.”

“응?”

혜린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내가 체육복 가지고 왔다는 걸 아는 거.”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하지만 단유는 미소를 지었다. 명수가 친구인 이유는 별 거 아니었다. 명수는 단유를 안다. 그리고 단유도 명수를 안다. 서로 알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한다. 다른 사람들이 섣불리 걱정할 때도, 명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상시와 같이 대해주고 웃어주었다. 그래서 명수를 대할 때 부담이 없었고, 늘 고마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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