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46화 (146/956)

부(2)

-------------- 146/952 --------------

연필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눈을 들어 올렸더니 마침 선생님이 고개를 돌려 자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른 눈을 내리 깐 상훈은 가슴이 두근거려 진정시킬 수 없었다.

‘봤나? 봤을까? 지금도 보고 있으려나?’

쿵덕대는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짝에게도 들릴까봐 겁이 날 정도였다.

‘의심하실까? 아직 안 봤는데. 이쪽으로 오면 어떡하지?’

그 때, 선생님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교실,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만 들리는 이 곳에서 선생님의 걸음걸이는 마치 바닥에 못을 박는 것만 같았다. 상훈은 못이 박히는 상상에 두려워졌다.

문득 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거짓말 하지마라. 남자는 거짓말 하는 거 아니다.」

‘난 아직 컨닝을 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럼 왜 보고 있었냐고 물으면 어떡하지? 컨닝 하려고 했다고 말하면 안 되겠지? 그럼 엄마한테도 이야기 할 텐데. ···엄마한테 혼나기 싫은데.’

걸음소리가 멎었다.

‘바로 앞인가? 고개를 들어서 확인해볼까?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엄마한테 이르면 어떡하지?’

그러나 곧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뒤로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였다. 상훈은 이번엔 뒤에서 자길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뒤통수가 따가워 지는 느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너무 숙이고 있었던 탓에 시험지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갱지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다.

‘시험 끝날 때까지 뒤에서 날 지켜보고 있는 걸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뭐하냐고 물어보실 지도 몰라. 그럼 뭐라고 하지? 아까 왜 눈치 봤냐고 물으면 어떡하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선의 주박에 꽁꽁 묶인 셈이었다. 어깨가 아파왔다. 배도 아팠다. 콕콕 찌르는 통증에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다.

‘아프다고 할까? 그러면 시험 못 치게 될까? 그럼 3등도 못하게 될지도 몰라. 그런데 너무 아프다. 손 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할까? 그런데 난 컨닝 안했는데. 컨닝했다고 의심받으면 어떡하지? 공부도 잘하는 애가 왜 컨닝하냐고 혼내면 어떡하지? 왜 공부안하고 컨닝하냐고 하면 어떡하지? 엄마한테 전화하면 어떡하지? 엄마랑 아빠가 화내면 어떡하지?’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다. 고개를 들기가 무서워서 숙이고 있다 보니 목도 아파왔다. 그렇다고 고개를 들었다가는 그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상훈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시험지를 검게 적셨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개도 들지 못하고, 손도 펴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입술에서 침이 고였다가 떨어지는데도 소리가 날까봐, 괜히 들킬까봐 아무것도 못했다.

상훈의 이상을 알아차린 것은 짝이었던 영지였다.

“선생님! 상훈이 울어요.”

반의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고개 돌아가는 소리가 착착 하면서 들리자, 눈에서 더욱 많은 눈물이 쏟아졌다. 부끄러웠고 창피했고 억울했다.

“상훈아! 무슨 일이야? 왜 울어?”

선생님이 놀라서 달려왔다. 상황 파악을 위해 고개 숙인 상훈의 얼굴을 들어 올리자, 얼굴이 가관이었다. 눈물, 콧물에 침까지 흘리면서 오열을 했다.

“상훈아, 상훈아! 왜 그래? 왜 갑자기 그래? 어디 아프니?”

그러나 상훈은 대답도 하지 않고 꺽꺽거리며 눈물만 한없이 흘렸다. 주변을 살피니, 상훈의 시험지는 이미 엉망으로 젖어 있었고, 문제를 대충 푼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풀지 못하고 빈 칸으로 남겨둔 문제도 눈에 들어왔다. 그 외에 책상 위에는 다른 이상한 물건이나 특이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상훈아, 많이 아프니?”

결국 선생님은 상훈이 아파서 우는 거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가자, 선생님이랑 양호실부터 가자.”

선생님은 억지로 상훈을 일으켜 세웠다. 상훈은 선생님이 붙잡는 대로 힘없이 딸려 올라갔다.

“너희들은 계속 시험치고, 다른 선생님 곧 들어오실 거니까 조용히 하고 있어. 부반장은 반 친구들이 떠들지 않게 하고. 알았지?”

선생님은 대답도 들을 겨를도 없이 상훈을 데리고 교실을 나갔다. 그러자 교실의 아이들이 일제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시험 중간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반장에 대한 이야기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들 중 최고의 소재거리였으니까.

“누가 떠드니!”

그러나 이내 소란은 옆 반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잠재워졌다.

“누가 시험시간에 옆의 짝이랑 떠들어? 조용히 하는 거 모르니?”

아이들은 곧 침묵에 빠졌다. 그러길 잠시,

“선생님이 교실에 안 계신다고 떠들거나 부정행위를 하다가 불시에 잡히면 무조건 빵점 줄 거야. 알았지? 선생님이 갑자기 교실에 들어와서 확인할 거야.”

그리고 선생님은 다시 옆 반으로 이동하셨다.

“인명수! 넌 그냥 자라, 좀!”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 교실과 복도 전체에 소음이 사라졌다.

그 시간, 상훈을 양호실에 데리고 간 선생님은 파래진 얼굴로 양호 선생님을 찾았다. 양호선생님은 상훈에게 다가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지만, 상훈은 그저 울기만 할 뿐이었다.

“119 불러야 하나요?”

담임선생님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양호선생님에게 물었다. 양호선생님도 이런 상황은 별로 겪지 못했기에, 어떻게 병을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는데요? 일단 부모님한테도 연락을 하셔야죠?”

그 때, 상훈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안 돼요, 선생님! 안 돼요!”

“왜? 뭐가? 뭐가 안 돼?”

“선생님, 안 돼요. 엄마한테 전화하지 마세요.”

잔뜩 울먹이는 목소리로 꾸역꾸역 말하는 내용이 결국 엄마한테 전화하지 말아달란 소리였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두 선생님이 멀찍이 서서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대화를 했다.

“아픈 건 아닌 거 같죠?”

“그러네요.”

“무슨 일일까요?”

“시험시간에 갑자기 누가 때렸을 리는 없고.”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양호 선생님이 상훈에게 물었다.

“어디 아픈 곳은 없니?”

상훈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만약에 아픈 곳 있으면, 병원에 전화를 해야 돼.”

그러자 상훈이 느릿하게 고개를 저으며 아픈 곳이 없다고 고백했다. 담임선생님이 상훈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상훈과 눈높이를 맞췄다.

“상훈아, 무슨 일인데? 선생님한테 말해줄 수 없어?”

처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번 대답을 요구하니, 그제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죄송하단 말, 무서웠다는 말. 그리고.

“저···컨닝 안했어요.”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양호선생님과 시선을 맞춘 선생님은 몸을 일으켰다. 잠시 상훈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 물러선 두 사람은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여린 아이네요.”

양호 선생님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선생님이 돌아보자, 보충 설명을 했다.

“보통은 혼날 일이 두려워서 임기응변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게 보통이에요. 그런데 가장 먼저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건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거죠. 컨닝을 안했다는 말도 사실일 거예요. 그런데 컨닝을 했다고 오해 받을까봐 무서웠던 거죠.”

“컨닝을 할 애가 아닌데 그러네요. 우리 반에서 단유 다음으로 공부를 잘하는 앤데.”

단유 다음이란 말은 보통의 학급에서는 1등을 할 정도의 실력이란 말과 똑같았다. 그런 아이니만큼 컨닝을 할 리가 없다고 판단해도 무방하리라.

“뭐, 그렇다고 해도 저 나이때 아이들은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기 위해 급하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또 대부분 아이들이 죄의식 없이 그러기도 하고요. 하지만 상훈이라 했던가요? 저 아이는 그런 죄의식을 너무 깊이 느끼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거짓말을 못한 거라고 봐요.”

선생님이 고개를 주억거릴 때, 양호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아마 저 아이, 상담이 필요할 지도 몰라요.”

“왜요?”

왜 해야 되느냐, 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떤 주제의 상담이 필요 하느냐, 란 질문이었다.

“저 아이 약간 강박이 있어요.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착하다고 인정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저 정도의 감정을 억눌러야 할 만큼 평소 거짓말이나 충동의 표현에 강박이 있었다고 봐야할 것 같아서요. 공부를 잘하고 평소에 저런 행동을 잘 보이지 않던 아이라 하니, 아마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도 많았을 거라고 추측이 되네요.”

돌이켜보면 1학기 때 반장선거 문제도 있었고, 2학기에 들어서 다시 반장에 재도전한 일이나, 평소 보이던 모범적인 태도에도 그런 욕구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른 아이와 비슷하다, 고 생각하기에는 다소 과한 느낌도 있다고 선생님은 판단했고, 양호 선생님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저런 경우, 보통은 가정 혹은 학교에서 강압적으로 주입된 어떤 가치관이 오류를 일으킨 경우겠지요. 사소하고 민감한 문제에도 가치관이 흔들리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거나 공포를 느끼죠. 상훈이는 바로 그 공포의 단계에서 저런 반응을 보인 거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부모님을 불러야겠네요.”

“그리고 부모님을 만나실 때는 상담 선생님과 함께 뵙는 걸 추천하죠. 대부분 부모님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반복될 테니까요.”

다소 익살스런 말에 선생님은 추임새를 넣었다.

“우리 애는 그럴 리가 없어요?”

“그렇죠.”

너무 어두운 분위기인지라 억지로 농담 한 마디 꺼내보았지만, 결론은 웃픈(?) 상황이었다. 거짓말을 못하는 아이, 오히려 남들보다 죄의식이 강한 게 문제가 되는 아이라니.

어느 부모님이든 말은 그렇게 할 것이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하지만, 요즘 아이들 중에 진짜 건강한 아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원에서 공부하고, 집에서 공부하고, 주말에도 공부하는 요즘 초등학생들이 과연 예전의 초등학생들보다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성인병, 비만을 앓는 아이들, 스트레스에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팔 다리 잘 붙어 있다는 이유로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요즘 다른 시도의 초등학교에서는 기말고사나 중간고사 같은 시험들을 모두 없애고 있다는데, 도대체 이 구시대 유물 같은 시험을 아이들 줄 세우기의 잣대로 남겨둔 학교 측의 태도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요즘 선생님들은 정말 선생 노릇하기 힘들어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담임선생님의 푸념에 가볍게 동조해주는 양호 선생님이었다.

****

“시험 잘 쳤니?”

혜린이 가방을 챙기면서 물었다. 물론 실제로 잘 쳤는지 궁금하진 않았다. 단유가 못 칠 리도 없거니와, 그저 말을 붙여보기 위한 노림수였으니까.

“잘 쳤어. 넌?”

‘넌’이라고 물어봐 준 게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 한 마디씩 말을 붙여나가면 그게 또 대화가 되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분도 좋아질 테니까.

“난 그냥. 사실 난 수학도 못하지만, 마지막 과목도 못 친 것 같아서 말이야.”

“너 정도면 조금만 공부해도 수학 점수는 잘 나올 거야. 똑똑하니까.”

칭찬해주니 고맙긴 한데, 이렇게 대화가 끝나면 섭섭하다.

“그런데 마지막 시간에 말이야, 갑자기 상훈이가 울었잖아? 왜 그랬을까?”

“······.”

단유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자세한 정황도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을 내리고 입에 올리기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혜린이 괜한 걸 물었나 싶어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사회는 잘 쳤어? 다른 아이들은 소란 때문에 제대로 못 친 아이들도 있나봐.”

“그냥 쳤어. 사회는 나도 잘하는 과목이 아니니까.”

단유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사회 과목 같은 데 취약점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암기력.

이상하게도 단순 암기 과목에는 취약점을 보이는 면이 있었다. 수학이나 물리학의 경우에는 어려운 공식들도 곧잘 외우는 편인데 말이다.

“그래도 너라면 잘 쳤겠지. 근데 이제 방학이잖아.”

“응.”

“혹시 방학 때 뭐 할 거야?”

무슨 뜻인지 몰라서 혜린을 돌아보자, 혜린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방학 때 우리 집에 한 번 오지 않을래? 1월 20일이 내 생일이거든.”

겨울에 태어난, 혜린은 홍조를 띠운 채 소년의 대답을 기다렸다.

“난 보육원에 살고 있어서 마음대로 나가질 못해. 나가려고 해도 선생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다가, 혼자서는 외출을 못해서 같이 나갈 보호자가 필요해.”

혜린의 얼굴이 금방 하얗게 변하면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 변화를 바라보던 단유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방법을 찾아볼게. 어쩌면 나 후원해주시는 누나 도움으로 외출할 수도 있으니까.”

혜린의 얼굴이 환해졌다.

“진짜?”

“일단 해 볼게. 대신 못 가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았어. 못 와도 괜찮아.”

와주면 더 좋고.

“혹시 못 가게 되면 알려줄 테니까, 전화번호 알려줄래?”

단유가 혜린에게 물었다.

“전화번호?”

혜린이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단유는 가끔 혜린이 저런 멍해 보이는 미소를 지을 때,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