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45화 (145/956)

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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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어쩐 일이야?」

주영은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처음 핸드폰에 보육원의 전화번호가 찍혀 나오기에 혹시 단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놀란 마음으로 급히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를 한 사람이 바로 단유 본인이니 다른 의미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상의 드릴게 있어서요.”

「어, 그래? 뭔데?」

단유는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공부는 하고 싶은데요,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주영은 입을 꾹 다물고 단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재훈 형이 그랬어요. 너무 한 과목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른 과목도 소홀히 하지 마라고요. 그런데요, 너무 답답해요. 재미도 없고요.”

주영은 자신이 해결해주기엔 단유를 재훈만큼 이해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이런 문제는 재훈이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언제 방학이니?」

“일주일 뒤요.”

「그럼 그 날 누나가 보육원으로 갈게. 그날 같이 병원에 가 보지 않을래? 아무래도 이 문제는 형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는데?」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형은 퇴원 안 해요?”

주영의 웃음소리가 수화기를 넘어 들려왔다.

「곧 할 거야.」

몇 가지 안부를 묻는 몇 마디 말이 오간 후 통화를 종료했다. 단유는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통화를 하던 동안에도 느끼지 못했던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지?’

뭔가 대단히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방금 전의 통화가 어떤 중요한 갈림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문제는 갈림길에서 표지판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단유는 목 뒤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냉기를 느꼈다.

****

“상훈아, 이거 먹고 해.”

“네.”

상훈의 어머니, 오여사가 과일 깎은 접시를 책상 위에 올려주었다.

“열심히 해.”

“네.”

오여사는 웃으면서 상훈의 방문을 닫고 나왔다.

“왜 그렇게 웃어?”

오여사가 연신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상훈의 아버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웃긴, 상훈이가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예뻐서 그러죠.”

“언제는 공부를 안했나?”

오여사가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를 억지로 누르며 아버지가 앉아계신 소파로 과일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

“사실은 말이에요. 요즘처럼 일이 잘 풀린다면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뭐가?”

아버지는 포크로 단감 한 조각을 푹 찔렀다. 잘 익은 단감이 저항 없이 포크에 찍힌 채, 입으로 들어갔다.

“상훈이는 반장을 맡았고, 성적도 1학기 때보다 올랐죠? 게다가 학부모회 임원도 연임했으니, 봄에 난리 쳤던 거에 비하면 얼마나 잘 풀렸어요?”

“이그, 이 여편네야. 본심은 그거였구먼.”

“그게 뭐 어때서요? 이번에도 상훈이가 성적이 잘 받으면, 5학년 때도 반장을 할 수도 있고, 게다가··· 어쩌면 말이죠, 교장선생님 통해서 영재교육원 추천장도 받을 수 있다니까요?”

“영재? 상훈이가 영재야?”

아버지는 처음 듣는다는 얼굴로 오여사를 바라보았다. 오여사가 아버지의 팔뚝을 찰 지게 내려치며 째려보았다.

“당신은 당신 아들이 얼마나 똑똑한지도 몰라요?”

“아니까 이런 소릴 하지.”

“이이가 정말. 이래서 남자들이 다 욕먹는 거야. 자기 아들이 영재라고 하면 당연하다고 맞장구는 못 칠망정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가 팔뚝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 이핼 하지. 상훈이가 똑똑하긴 해도 영재까지는 아니잖아? 아무리 자기애라도 객관적인 사실을 부정하면서까지 보게 되면 안 되지.”

“이 남자가 정말? 객관적이라니? 뭐가 객관적이라는 거예요?”

오여사의 목소리가 격앙되게 높아지자, 찔끔 놀란 아버지가 검지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애 공부하는데 방해 돼. 소리 낮춰.”

씩씩거리던 오여사가 날선 눈으로 바라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솔직히 요즘 영재 교육원에 들어가는 애들 중에 진짜 영재가 어디 있어요? 다들 학원 다니면서 입학문제 미리 풀어보고 들어가는데. 그리고 그렇게 들어가야 그게 또 나중에 스펙이 되는 거란 말이에요.”

스펙이란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럼 영재교육원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나?”

“아무나라니? 상훈이가 아무나 에요?”

“또, 또!”

발끈하는 오여사를 진정시키며 아버지가 급히 변명을 했다.

“당신 말대로 학원 다녀서 들어가는 거라면, 누구라도 시험만 치면 들어갈 수 있단 말 아니야?”

“다른 지역의 영재 교육원은 필기시험을 없애고, 교사추천제를 시행하는 곳도 있다는데, 인평시에 있는 영재교육원은 교장추천제랑 입학시험을 병행해요. 그래서 교장이 추천만 하면 되는 거라고요. 그런데 교장이 아무나 추천을 하겠어요? 그래서 내가 기를 쓰고 임원이 되려고 한 거란 말이에요. 특히 영재교육원은 5, 6학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제부터가 중요한 거예요.”

아버지는 포크를 접시 위에 올려놓은 뒤, 팔짱을 꼈다. TV도 끌까?

“교장추천인데 부모가 입김을 불면 추천장이 나온다는 이야기네?”

“말 참 속되게 한다. 꼭 그렇게 말해야 속이 편해요, 당신?”

“말이 그렇잖아? 그런데 상훈이가 거기 가면 적응은 잘 할까?”

“잘할까, 가 아니라 잘해야죠. 무조건. 그리고 상훈이는 잘 할 거예요. 봄에도 잘 버텼던 것처럼.”

아버지는 머리를 긁적이다 무심코 툭 뱉었다.

“그거 단윤가 뭔가 하는 애 때문이라며? 오히려 걔가 영재라며?”

아버지는 또 한 대, 매운 맛을 봐야 했다.

“걔는 보육원 애라서 안돼요.”

“보육원 애는 입학이 안 돼?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어디 있긴요, 여깄죠.”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보육원 애한테 돌아갈 추천장 따위 인평초등학교에는 없다.

“당신도 이제 상훈이한테 관심 좀 가져요.”

“아니, 내가 언제 관심이 없었대?”

“당신은 그저 당신 혼자 잘 살면 되는 줄 알고 살잖아요? 당신이 아무리 돈 잘 벌고 승승장구 해봐야, 당신 아이가 잘못되면 당신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당신 아들이 성공을 해야 당신도 성공을 인정받는 거라고요. 부모가 괜히 부모인 줄 알아요? 우리가 이런 거 지원 못해줄 형편도 아니고, 다 해줄 수 있는 데 안 해주면 나중에 원망 듣는 것도 우리고, 주위 사람들한테 욕먹는 것도 우리에요, 알아요?”

“···알았어, 그만해.”

랩 하는 줄 알았다. 하여튼 이 여자는 흥분만 하면 말이 빨라지는데 이 때 멈추지 않으면 새벽 1시, 2시는 기본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면 다음 날 피곤한 얼굴로 출근해야 하는 부담은 오로지 자기 몫이 된다. 그러니 적당히 져 주는 것이 좋다.

오여사는 다시 한 번 검지로 남편의 입을 가리키며 당부를 했다.

“다시 한 번, 당신 아들이 영재냐 아니냐, 이딴 소리 해봐요. 내 가만 두지 않을 거예요.”

아이 앞에 선 어머니는 언제나 강한 법이었다. 그리고 가족 앞에선 언제나 작아지는 아버지였다.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며, TV 볼륨을 높였다.

“소리 낮춰요.”

아버지는 다시 볼륨을 줄여야 했다.

****

다음 날, 기말 시험이 시작되었다. 인평초등학교는 인근 다른 초등학교에 비해 1주일 정도 늦게 시험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보통 학원에서는 다른 학교의 아이들도 모이기 마련인데, 다른 아이들이 시험을 끝내고 희희낙락일 때, 그 모습을 목격한 인평초 아이들은 더욱 큰 부담과 스트레스를 떠안아야 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관계로 시작된 인평 초등학교의 2학기 기말고사는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점수를 맞춰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탄성과 탄식, 환호와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과 조금은 상이한 광경을 볼 수 있는 학급도 있었다.

“1번에 3번, 34제곱센티미터.”

“아아!”

“···11번에 5번, 몸무게가 줄어든 때는 4월과 6월.”

“아아!”

“안 돼!”

단유네 반은 아이들이 시험이 끝나자 곧 단유가 자리에 일어서서 답을 불렀다. 선생님이 시킨 것은 아니고, 1학기 때 아이들이 단유에게 부탁을 했고, 이를 단유가 받아들이면서 이런 진풍경이 만들어졌다. 단유가 시험에 나왔던 수학문제의 답을 불러주면, 그걸로 아이들은 답을 맞춰보았다. 적어도 수학에 있어서만큼은 단유가 틀릴 리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었다.

“20번에 정사각형의 총 개수는 6개.”

“와!”

“아아!”

아이들의 탄성과 환호 속에서 선생님은 쓴 웃음을 지었다. 인평초등학교는 시험지를 배부 후 끝나면 모두 수거해서 거기에 바로 채점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보통 종이에 답만 적어서 기록해 놓는다. 그런데 단유는 시험 문제를 모두 외우기라도 했다는 듯이 각 답의 보기나 설명을 달달 외우며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더욱 단유의 답을 공식적인 것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자, 그만. 다들 자리로 돌아가. 이번 시간은 과학이야.”

아마도 이 시간이 끝나면, 또 이런 진풍경이 벌어질 것이고 선생님은 또 몰래 쓴웃음을 지어야 할 것이다. 단유라는 저 아이는 이미 탈(脫)초등학교 급의 ‘영재’였다.

‘하필이면 고아라니.’

신이 모든 것을 주지 않는구나,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분단별로 시험지를 배부하는 선생님이었다.

****

“20번 답은 빛의 직진. 혹은 빛은 곧게 나아간다.”

“우와.”

“빛이 구부러지지 않아서는?”

“맞을 거야.”

“빛이 앞으로 나가니까는?”

“애매해.”

“빛이 직접 비춘다는?”

“틀려.”

“왜?”

“빛의 성질을 묻는 질문인데, 니 답은 그런 성질을 전혀 의미하지 않아.”

선생님은 시험지들을 정리하며 또 쓰게 웃어야 했다. 하지 말라고 하기에는 아이들의 반발이 심하고, 하라고 권장하기에는 또 우습고 그래서 못 본 척하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보는 앞에서 대놓고 저러고 있었다.

그때, 상훈은 자신의 답을 적은 종이를 붙잡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2개!’

과학시험에서 2개나 틀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수학은 오히려 1개 밖에 틀리지 않아서 점수가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다 맞을 줄 알았던 과학시험에서 2개나 틀릴 줄이야.

‘단유가 틀렸을 수도 있잖아!’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믿기 힘든 가정이었다. 단유가 수학과 과학을 엄청나게 잘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어떡하지?’

다음 시간은 사회 시간. 주요 암기과목이라서 어제 저녁에도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 그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쉬는 시간은 이제 5분 정도 남았는데, 이 시간에 책을 더 본다고 해서 잘 할 자신이 없어졌다. 여기서 더 틀리게 되면 반 석차 2등은 물론이고 3등도 아슬아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의 결과, 어머니가 보여줄 모습과 아버지가 보일 반응이 떠오르니 더더욱 손이 떨려왔다.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 답을 체크한 종이를 보면서 짝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상훈의 짝도 뒤에 앉은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시험을 잘 본 모양이다. 자기만 못 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

위기감이 느껴졌다.

시험이 시작되었고, 상훈은 열심히 머리를 써서 시험을 치기 시작했다. 일단 되는대로 풀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어제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 헷갈리는 문제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옳지 못한 방법을 제시한 사람은 누구인가.」

간단한 문제인 것 같은데도 답이 너무 헷갈렸다.

‘공청회를 열어서 의견을 모은다. 맞는 것 같은데? 대표자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투표로 결정한다? 맞나?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 토론을 통해 답이 나올 때까지 이야기한다. 그렇게 해야 되나? 의견이 다른 두 단체의 대표가 나와서 협상을 한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상훈은 슬쩍 시선을 들어보았다. 마침 선생님은 다른 분단 쪽을 보고 계셨다. 옆의 짝은 긴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리고는 침착한 자세로 시험을 치고 있었다.

‘어떡하지?’

옆의 짝이 뭘 찍었는지 보고 싶은데, 가려져서 그냥 곁눈질 만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자세만 침착하지, 짝의 답마저 침착하게 정답을 가리키리란 법은 없었다. 상훈의 짝은 자신보다 성적이 좋지 않은 친구였으니까. 하지만―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그 친구의 것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상훈은 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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