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33화 (133/956)

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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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과 함께 중환자실 앞으로 돌아온 단유는 그 앞에 서 있는 혜린의 부모들을 볼 수 있었다. 혜린을 보고 있던 두 사람은 단유를 보고 반색하며 반겼다.

“괜찮니? 쓰러졌다고 들었는데.”

단유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창 건너편으로 보이는 혜린을 보았다. 며칠 전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물론 ‘여기’에서는 20분 전의 이야기겠지만.

“지금 면회 되나요?”

주영이 둘러보니 마침 의사 한 분이 다가왔다. 물론 의사가 다가간 상대는 주영이 아닌 혜린의 부모님이었다.

“오후 면회 시간이니까 30분 정도 면회가 가능합니다, 만···.”

의사는 굳은 낯빛을 한 부모님들을 향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런 역할을 맡을 때마다 의사로서의 신념과 인간으로서 도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의사 가운을 입고 있으니 그에 맞게 이야기를 건넸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괴로운 투병생활을 하며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돕는 일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혜린의 선행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결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혜린의 어머니는 입술을 바르르 떠셨고, 아버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혜린을 바라보았다. 두 분 다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제 3자인 주영의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이 옳을지 쉽게 대답할 수 없는데, 하물며 부모 된 입장에서 어찌 결정이 쉬울까?

다만 의사의 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닌지라, 눈치 없다, 냉혈한이다, 탓할 수만은 없었다. 그라고 어찌 한 소녀의 죽음이 가볍게 다가올까. 다만 더 많은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신념이 저렇게 말 하도록 시킨 것이겠지. 주영은 고개를 돌려 중환자실을 바라보았다.

부모님을 비롯해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고 중환자실로 입장했다. 다른 환자의 가족들도 면회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었기에 한 명씩 입장해서 환자들을 면회했다. 중환자실의 특성상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없었다. 혜린의 경우에는 두 부모님이 먼저 들어가셨다가, 아버지가 나온 뒤 단유가 들어가 만날 수 있도록 배려되었다.

잠시 후, 단유 역시 마스크를 끼고 혜린에게 다가갔다. 혜린의 머리맡에선 여전히 규칙적으로 비프음을 내는 기계가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고, 옆에서는 산소호흡기의 펌프가 쉭쉭거리며 소리를 냈다.

단유는 가만히 혜린을 바라보았다. 손을 내밀어 혜린의 손을 붙잡았다. 죽었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따뜻한 손이었다. 단유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대략 5초 정도 후 천천히 숨을 내셨다.

연신 눈물을 찍어 훔치던 어머니가 간신히 입을 열어 혜린에게 말을 건넸다.

“혜린아, 친구 왔어. 네가 늘 웃으며 말하던 반장 말이야. 그 친구가 고맙게도 너 마지막 모습 보고 인사해주려고 왔어.”

어머니 역시 오전에 정신을 잃고 응급실 신세를 졌었다. 깨어난 이후, 계속된 의사들의 설득에 반쯤은 마음이 결정된 상태였다.

단유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대신 혜린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어찌 보면 너무 담담한 표정이 더욱 슬퍼 보이기도 했다.

“반장아, 우리 혜린이, 예쁘지? 이 가여운 아이 기억해줘. 기도해주고. 응?”

애원하듯, 호소하듯,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단유에게 이야기하는 혜린의 어머니에게 단유는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그럴게요.”

그리고 그 때, 그래프가 요동을 쳤다. 기계의 비프음이 빨라지고 변화가 생겼다.

“어?”

뒤에서 지나가던 간호사가 급히 다가와 보더니,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곧장 중환자실을 뛰쳐나간 뒤, 가까운 곳에 있을 의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 때, 혜린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혜린의 어머니는 무슨 상황인가 싶어 당황하던 와중에 그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의 눈이 놀람과 당황으로 가득 차올랐다.

“혜, 혜린아!”

어머니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혜린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힘겹게 눈을 뜬 혜린이었다.

“혜린아, 혜린아! 정신 들어?”

혜린 어머니의 목소리가 중환자실을 가득 채웠다. 놀란 아버지가 급히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고, 그 뒤를 의사 한 분이 뒤따랐다.

“혜린이, 혜린이가 뭐!”

곧 아버지는 혜린이가 눈을 뜨는 모습을 목격했다. 아버지는 너무 놀라서 마치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뒤따라온 의사는 급히 아버지 앞으로 나섰다.

“잠시 만요, 선생님, 잠시 만요. 제가 좀 보겠습니다.”

놀란 것은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도 아이의 부모에게 이별을 준비하시라고 제언(提言)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뇌사상태의 아이가 눈을 뜬다? 인터넷 신문 가십에나 볼 법한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의사는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손전등 불빛으로 혜린의 동공을 비쳐 보았다.

“동공반사도 되고······. 포화도는요?”

옆에 있던 간호사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어버버 거리면서도 의사와 함께 혜린의 상태를 점검해나갔다.

****

“정신이 드니?”

“···엄마.”

삽관된 튜브를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콜록대던 혜린은, 목소리가 이상했지만, 말을 하는데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에 눈물을 터뜨리며 주저앉아버린 어머니 곁에선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혜린아, 나 보이니? 아빠 보이니?”

“···아빠.”

“그래, 그래. 보이네. 아빠 보이네.”

울먹거리면서도 혜린의 뺨을 연신 쓰다듬는 아버지였다. 그렇게 눈물바다가 되는 와중에 혜린이 물었다.

“단유는?”

“응?”

“단유··· 같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눈을 뜬 혜린이 뜬금없이 누구를 찾나 싶었는데,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서 물었다.

“반장이 왔던 것도 알아?”

“응.”

뇌사상태에서 정신이 없던 아이가 그 사이에 찾아온 반장이 왔었다는 사실을 안다? 어머니는 놀라운 기적이라며 성호경을 긋기 시작했다. 냉담자로 살아온 지난 세월을 반성하며, 앞으로 열심히 성당에 다니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어머니였다.

“반장은 조금 전에 돌아갔어. 시간이 늦었다고 해서. 나중에 엄마가 주말에 반장 데리고 올게. 반장 보고 싶어?”

“···응.”

우리 딸이 이렇게 단유라는 남자애를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생경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죽음에서 돌아와 보고 싶은 사람이 엄마 아빠도 아니고 남자친구(?)라니.

이런 상황이고 보니, 괜히 웃음도 나왔다. 그래, 아무렴 어떠냐.

“아빠가 그 놈이랑 한 번 이야기해야겠다. 어떤 놈이 우리 딸 데리고 가려나 했는데, 고얀 놈. 아빠한테 이야기도 안하고.”

딴에는 농담이라고 웃으면서 말씀하는데, 혜린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농담이었나 보다. 혜린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어머니는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된 상황이었는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눈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깔깔대는 모습에 모르는 사람들이 봤다면 다른 과에 내원을 권했을 정도로 웃었다. 그 마음을 이해 못할 아버지가 아니었기에 굳이 말리진 않았다.

혜린은 그렇게 생환을 축복받으며, 마지막 검사까지 마치고 1인 병실로 옮겨졌다.

그 시간, 주영은 재훈의 곁에서 조금 전의 일을 이야기했다. 원래는 단유를 데리고 오려 했지만, 오늘 일도 일이지만, 시간도 많이 늦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단유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보육원으로 데리고 가게끔 해놓고선 재훈의 병실로 올라와, ‘기적의 생환’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너무···기적 같은 일이어서 딱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네.”

“저도 그랬어요. 저는 바로 옆에서 봤는데, 그 순간은 너무 놀랐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누구한테 말한다 해도 믿지 못할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도리어 할 말이 없더군요.”

“기적이라···.”

“전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뇌사상태의 환자가 기적적으로 눈을 뜬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가 바로 곁에서 벌어졌으니 놀라지 않을 리 없다.

“의사들은 뭐래?”

“할 말이 없죠. 무엇보다 뇌가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는 완전 뇌사상태였다는데···. 이런 걸 보면 의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믿을 만 하지는 않다고 생각되네요.”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에 대한 신비는 풀지 못할 거란 말도 있잖아.”

다소 자조적인 목소리로 대답하는 예과 재학 중인 의대생이었다.

“단유는?”

“그게··· 별로 놀라지 않더군요.”

“응?”

주영은 옆에서 의자를 끌어와 재훈의 침대 곁에 두고는 앉았다. 오른 다리를 들어 왼 무릎 위에 올려두고, 턱을 괴고는 재훈을 바라보았다.

“그 때, 혜린이가 눈을 뜨고 사람들이 모두 놀라 몰려들 때요. 단유는 중환자실 밖으로 나오고 있었어요. 그리고 밖에서 혜린이를 보더라고요. 사실 저도 그 때는 너무 놀라서 단유를 관찰할 틈이 없긴 해서 정확히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 때 단유가 특별히 놀라고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죽은 사람이 살아났는데?”

재훈의 반응에 주영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스스로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그게요. 애초에 혜린이 죽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게 너무 충격이었는지 오늘 오자마자 혜린이를 보더니 정신을 잃었거든요. 20분 정도?”

“20분이나? 단유는 괜찮고?”

“예. 대충 검사는 했는데, 이상은 없다고 하네요.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도 몰라요. ···뇌사가 뭔지 모를 수도 있고요.”

실제로 정신을 잃기 전까지 단유는 혜린의 상태를 부정했었다.

“그렇군. 단순하게 보자면···사람들이 호들갑을 떤다고 볼 수도 있었겠지. 그 아이라면.”

‘죽음’을 배제하고 혜린을 바라보면, 그 아이는 그냥 병에 걸려 치료를 받는 아이, 정도로 이해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유는 그 때문에 병이 나았구나, 정도로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뇌사 상태에서 깨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 그 확률과 심각성을 아직 나이 어린 단유가 알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침착해보였던 걸 수도 있지요. 게다가 감정 격리라면서요?”

재훈은 찬찬히 단유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당장에는 알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모든 것은 가정에 불과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무리해서라도 잠깐 만나서 이야기해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다음 주말에라도 괜찮을 것이다. 급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조금 전에 차타고 나갈 때 배웅을 했는데, 꽤나 침착해보이더라고요.”

“일단 알았어. 단유 문제는 나중에 물어보면 될 문제고. 일단 혜린이가 살아났다니까, 나도 마음의 짐을 조금 덜게 생겼네.”

주영이 입 꼬리를 올리며 가벼운 톤으로 흥얼거리듯 받아쳤다.

“그러네요. 선배, 마음고생이 심하셨는데 말이죠. 울기까지 하고.”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아니, 애가 뇌사라는데 울 수도 있는 문제지, 그걸 굳이 부정하는 건 무슨 심보래요?”

눈이 동그래지며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주영을 바라보니, 배시시 웃으면서 재훈에게 핀잔을 주는 주영이었다.

“······.”

머쓱해진 재훈은 고개를 돌렸다.

“피곤하다. 너도 이만 가봐.”

주영은 피식 웃으며 가방을 챙겨 들었다. 치마를 정리하고 일어선 주영은 재훈을 향해 살짝 허리를 숙였다.

“내일 봐요.”

재훈은 대답 없이 손만 까닥거렸다.

****

늦은 시간, 온갖 검사와 환대 속에서 정신없는 오후를 보낸 혜린은 간신히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피곤하다는 말에 두 부모님도 불을 꺼주시고 잠시 병실을 나간 틈이었다.

혜린은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기 집 거실만한 크기의 병실에 혜린 혼자만 덩그러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주황색 야간 등이 은은하게 병실을 비추는 가운데, 낯선 천장과 낯선 침대의 촉감 때문인지 통 눈을 감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광경 때문이었다.

“괜찮아?”

자신의 손을 붙잡고 안부를 묻던 안정감 있던 목소리. 그리고 자신을 덤덤하게 바라보던 깊은 눈동자.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던 모습. 그 때 꽤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가며 몸을 살짝 떨기도 했지만, 당시의 기억은 단유의 입가에 살짝 머무른 미소만큼 따뜻했다.

돌이켜보면 단유의 웃는 얼굴을 본 적이 드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보기 힘든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더니, 괜히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혜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거기가 어디지?”

혜린은 단유의 옆으로 보이던 낯선 풍경을 떠올리고는 의문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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