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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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타라? 저주의 가문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긴 사각 원목테이블 위에 은제 3봉 촛대가 놓여져 있고, 그 위로 불꽃들이 흔들거렸다. 테이블의 크기에 비해 둘러앉은 사람은 고작 세 사람. 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가 적당했다. 많은 귀는 많은 입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그들이 아카넬을 얻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한 번 두들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정신 차리게 만들 수는 있겠지요. 그간 상단으로 가세가 살아난 탓에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것도 그렇군.”
상석에 앉은 사내가 팔짱을 끼고 선택의 시간에 들어갔다. 오른편에 앉은 사내는 주군의 선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단정한 자세로 기다렸다. 반면 로브를 둘러쓴 왼편의 사내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사내가 고개만 살짝 돌렸다. 잿빛 플란넬 로브의 두건이 살짝 들리며 사내와 눈을 마주했다.
“까타라 가(家)에서 보이는 작태가 못마땅한 것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그들이 최근 이뤄낸 세가 약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만일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준다 해도 배후에 저희가 있음이 알려진다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고려해주시길 바랍니다.”
부오노 공국에서 까타라 가문은 그렇게 큰 가문은 아니었다. 그들이 유명했던 것도 단지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 때문에 유명했을 뿐이고, 게다가 지금까지 신의 저주를 벗어난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한 남자가 신의 저주를 이겨낸 후 축복을 받았는데 하필이면 드뷔시 최고의 강국이었던 제국의 여왕의 눈에 들었다. 여왕은 그 남자를 궁에 들이고 남자의 가문, 까타라는 부(富)를 얻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상단을 운영한 까타라는 남자의 도움아래 전 드뷔시를 돌아다니며 상행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대륙 5대 상단에 들 정도로 커져버렸다.
이후 남자는 정치적 모략에 의해 씁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상단은 용케도 힘을 잃지 않았고, 세월이 흐름에도 기세가 죽지 않아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많은 정치적 경쟁자와 상단 라이벌들의 견제에 위태롭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공자님 말씀도 틀리지 않습니다만, 저희 정체가 그리 쉽게 드러나진 않을 것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보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용살대를 보내서 일을 처리할 것이니 흔적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껏 가문의 뒤에서 온갖 일들을 처리해 온 용살대라면 믿음직스러울 것이다. 남자의 자신감은 끝이 올라간 콧수염만큼이나 높이 솟아 있었다.
“지젤 공의 자신감을 믿어보고 싶군.”
상석의 사내가 툭 뱉었다. 다른 무엇보다 ‘아카넬’이었다. 아카넬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에 다른 가정들은 무의미하다 할 정도였으니까.
“지젤 공. 공을 믿겠소.”
“감사합니다, 주군.”
지젤은 콧수염을 위로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반면 공자의 눈에 서린 어둠은 조금 더 깊어졌다. 3봉 촛대의 불빛으로도 가시지 않는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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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어요.”
라보네가 루치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루치드는 고개를 저었다.
“제게 고마워하실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전 여전히 신에 대해 모르겠으니까요.”
라보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어린 마법사의 정신세계는 자신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그랬다. 자신의 말재간으로는 무엇도 간명하게 이해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그러는 사이, 마차는 눅진한 공기와 퀴퀴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는 곳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기가 리아빈이라는 곳인가요?”
루치드의 물음에 라보네가 들창을 닫으며 대답했다.
“예. 예전에는 오고가기 힘든 늪이었다지만 지금은 마차정도는 지나갈 정도로 길이 만들어져서 위험하지는 않다네요.”
녹스로 올 때도 이 길을 이용했으니 신뢰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다만 덜 위험하다는 것이지, 위험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부단주님. 뒤에서 말을 탄 무리가 쫓아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누군가 쫓아올 때, 피할 곳이 없었다. 라보네의 음성이 떨리기 시작했다. 짐작은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정체는요?”
“아직은 멀어서 확신은 못하지만, 갑주를 입었다는 것을 보니 어쩌면 녹스의 근위대일 확률이 높습니다.”
노상강도일리는 없고, 병력이라면 녹스에서 나온 병력일 것이다. 그리고 녹스의 병력 중 상시 갑주를 착용하는 병력은 근위대뿐이다.
라보네가 루치드를 돌아보았다.
“어떡하지?”
루치드라고 딱히 방법이 있을 턱이 없었다.
“속도를 더 내서 도망갈 수 없나요?”
리아빈의 길은 좁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땅 위에 난 길이 아니었다. 나무판을 덧대서 바닥에 깔아 길을 낸 탓에 속도를 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마차들을 끌고 다니는 상단이 말을 탄 병사들을 속도로 이긴다는 것 역시 말이 되지 않았다.
“일단은 조금이라도 더 무리해서 달려 봐요. 최대한.”
멈추지 말자는 소리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뷰익은 이내 큰 소리로 상단 행렬에 명을 내렸고, 조금 더 빠르게 길을 내달렸다.
“만일에 대비해, 벨로께서는 따로 말을 떼어내서 도주하시는 방법도 고려하셔야 할 겁니다.”
뷰익이 제시한 방안이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장 최선의 방법일지도 몰랐다. 다만, 그 이후 상단일행들이 받을 고초들을 생각하면 부단주로서 쉽게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정도는 저희도 각오를 합니다만, 부단주가 잡히는 상황이 오면 상단 전체에 피해가 올 수 있습니다. 그것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보네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라보네는 말없이 지켜보는 루치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치드라고 해서 딱히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작 앞에서 허풍을 떨 때는, 그나마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말을 타고 달려오는 병력 앞에선 그저 힘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가세요. 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더 이상 자신 때문에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다. 이들이 쫓기는 것도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에 불편했는데 차라리 자신이 저들 앞에서 스스로 잡혀간다면, 어쩌면 이들을 잡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늦었어. 너만 잡힌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야.”
라보네는 냉정하게 계산을 해보기로 했다. 루치드를 데리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인가에 대해.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다. 마법사‘였’지만 지금은 그냥 어린아이다. 외적인 면만 따진다면 이 아이를 버리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특별함’이 있다. 웬만한 어른들보다 영리하고 기발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 점은 상단을 운영하는 가문에 큰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아이가 특별한 점은 ‘마법’을 잘 안다는 것이다. 또 마법을 사용하지 못함에도 마법사를 홀로 상대할 수 있다는 점은, 조금 과장해서 ‘아카넬’에 비견될 정도의 가치다.
상인은 도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박에 가까운 확률에 몸을 던지는 것도 상인이다.
“뷰익. 이 아이 데리고 갈게요.”
“벨로! 두 사람은 무리입니다.”
“아니요. 저희 둘 다 성인에 비하면 몸이 작고 가벼우니 말에 부담이 되지 않을 거예요. 말 한 필을 같이 타도 괜찮을 겁니다.”
뷰익이 대경하며 말려보지만, 라보네는 결심을 굳혔다. 루치드는 두 사람을 보며 난감해했다. 자신을 데리고 가겠다는 라보네의 결정에 고마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무리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께부터 생사를 나누는 선택지 앞에 자주 놓였다. 그리고 매번 선택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겨우겨우 살아남았고,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이번 선택이 지난번과 같이 둘의 목숨을 살리는 선택일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루치드 개인으로서는 서로 나뉘는 게 옳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소년이 목소리를 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부디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어느새 근위대의 병력이 상단의 후미에 다다랐다. 뷰익은 핼쑥한 얼굴을 하고 라보네에게 당부했다.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마시고 달려가십시오. 여기는 미력하나마 제가 돌보겠습니다. 설마 상단 전부를 적으로 돌릴 생각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억지웃음을 지으며 뷰익은 라보네를 보냈다. 라보네는 말고삐를 쥐었고, 루치드는 라보네의 등에 붙었다.
“말 타본 적 있어?”
루치드는 고개를 저었다.
“많이 흔들릴지 모르니까 꼭 붙잡아야 돼.”
라보네는 힘껏 말의 옆구리를 찼다. 갈색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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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드는 위아래로 요동치는 말의 움직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잠시만 멈춰달라고 사정을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코 그럴 수는 없었다.
“멈춰라!”
뒤에서는 근위대 병사 몇몇이 쫓아오고 있었다.
상단을 두고 떠난 라보네가 전심전력으로 말을 몰았던 탓에 근위대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게다가 상단마차들이 길을 가로막으니 근위대들도 쉽게 쫓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몇몇 상인들을 칼로 협박하며 정리를 시작하니 곧 라보네를 추격할 수 있게 되었다.
“너희는 이들을 데리고 다시 녹스로 돌아가라. 그리고 너희들은 나를 따라서 도주한 여자와 아이를 잡는다.”
경비대장은 빠르게 명을 내리고 이내 앞서간 두 사람을 잡기 위한 추격전을 재개했다. 갈 길은 뻔했고, 다른 길은 없으니 기마술이 뛰어난 근위대가 금방 그들을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당장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결코 가만두지 않으리라.”
잡혀도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아서 라보네는 계속 달렸다. 교양정도로 배운 기마술이었다. 근위대들을 따돌리기엔 턱없는 실력. 그나마 추격전이 쉬이 끝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말이 꽤 비싼 말이었다는 점과 두 사람이 탔음에도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았다는 점―오히려 갑주를 입은 성인 남성보다 가벼웠을 게 분명했다―, 또 리아빈의 길 자체가 평야에서처럼 마구 달릴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루치드가 고개를 돌려보았다. 우중충한 잿빛 투구를 눌러쓴 근위대 병사 한 명이 바로 뒤를 쫓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광기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꽉 잡아!”
라보네가 정신없는 와중에도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꼬마의 팔이 느슨해진다는 느낌에 외쳤다. 차라리 앞에 태울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뷰익이 반드시 뒤에 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탓에 그러마 했던 것이 지금은 너무 불안한 모양새가 되었다.
루치드는 엉덩이가 너무 얼얼했다. 말 등은 생각보다 딱딱했고 넓어서 루치드의 가녀린(?) 허벅지로는 제대로 감싸 안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계속 중심이 흐트러졌는데, 그나마 라보네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던 탓에 낙마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부터 떨어뜨려라!”
가장 앞서 달리던 병사가 허리춤에서 칼을 빼어들었다. 왼손만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칼을 늘어뜨린 채 빠르게 접근을 했다. 루치드는 더욱 허리를 세게 부여잡았고, 라보네는 조금 더 빨리 달리도록 말을 채근했다.
하지만 거리는 금세 가까워졌고, 병사는 칼을 들어올렸다. 라보네가 탄 말의 왼편에서 다가온 병사의 칼이 늪의 눅눅한 공기를 가를 때, 라보네는 고삐의 오른쪽을 급히 당겼다. 말은 오른쪽으로 튈 듯이 방향을 틀었고, 병사의 칼날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병사가 칼을 휘두른 사이에 말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고, 라보네는 조금 더 거리를 벌릴 기회를 얻었다. 마침 또 길이 구부러지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병사는 칼을 든 손으로 고삐를 조종하느라 잠시간의 틈이 생겼고 그 사이 두 말의 사이가 벌어졌다.
루치드는 왼편을 쳐다보았다. 숨을 헐떡이면서 달리는 말의 얼굴이 보였다. 젖은 코에서 허연 콧김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루치드는 왼발을 뒤로 올렸다. 라보네의 허릴 붙잡고 있던 왼손을 뒤로 뻗어 신발을 벗었다. 달리는 말 위에서 하기에는 위험천만한 동작이었다. 때문에 라보네는 기겁을 했다.
“뭐하는 거야!”
간신히 신을 벗은 루치드는 서둘러 라보네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옆을 바라보다가 왼손을 휘둘렀다.
‘달리는 말 위에서 신발을 던지면, 신발은 어떤 궤도로 날아갈까?’
물리학을 좋아했던 소년은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실험을 강행했다. 사실은 궤도를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옆의 말이 너무 바싹 따라 붙은 까닭이었다.
날아간 신은 운 좋게도 말의 눈을 때렸다. 말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좌우로 휘둘렀고, 병사는 말의 통제력을 일순간 잃었다. 좁은 길에서 통제를 잃은 말이 달려 나간 곳은 다른 곳도 아닌 늪의 한가운데였다.
“살려줘!”
제때 뛰어내릴 틈도 없었던 병사는 말과 함께 늪 안으로 들어갔다. 라보네는 놀란 눈으로 옆을 봤다가 다시 정면을 향했다. 바로 뒤에 붙었던 말이 떨어져 나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그 말의 최후가 너무 남 같지가 않다는 것이 불안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