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a Ver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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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 지금 바로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두터운 로브를 둘러 입고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채 여관을 빠져나왔다. 여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불어 닥친 바람에 후드가 날아갈 뻔 했다. 간신히 두 손을 들어 벗겨지지 않게 누른 라보네는 앞서 가는 텔리오의 뒤를 따랐다.
새벽에 벌어진 사건이 그새 퍼졌는지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임에도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차가운 날씨에 로브를 둘러 쓴 사람들이 없지 않아, 그리 튀는 복장은 아니었다.
“감옥이 여기서 먼가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라보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텔리오 역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옥은 북문과 서문 사이의 중간쯤에 있습니다. 게다가 성벽 가까이에 있어서 조금 걸음을 빨리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서두르죠.”
두 사람은 이내 중앙대로에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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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제가 데려오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타난은 대장이 직접 감옥으로 가는 게 마땅치 않다고 여겼다. 모름지기 이 성의 경비와 치안을 관할하는 경비대장이 경비본부를 비운다는 것이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아니다. 어차피 볼 거라면, 빨리 가서 보는 게 낫다.”
포우는 옆에 놓인 칼을 허리에 찬 후, 벽에 걸린 잿빛 로브를 집어 들었다.
“어쩐지 시간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
“공교롭지만, 마법사가 이 시기에 나타났다는 것이 수상해.”
포우는 경비본부의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섰다.
“무슨 뜻입니까?”
“최근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마법 물품이 녹스성에서 발견됐다는데,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없어.”
“마법 물품 말입니까? 어떤?”
“그건 잘 모르겠다. 사실 물건인지,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그것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녹스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과연.”
그러고 보니 최근 녹스 성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평년보다 많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게만 알아둬. 당장 중요한 것은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타난은 고개를 끄덕이고 포우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센베크는?”
“아, 아마도 순찰대와 함께 조사 중일 겁니다.”
“그래?”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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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당신 거기 서봐.”
“저요?”
센베크는 중앙대로 근처에서 실골목을 들어가거나 나오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붙잡고 심문하고 있었다.
“오늘 새벽에 뭐했어?”
“예? 집에서 잤죠.”
“확실해? 조사하면 다 나와.”
사람들은 센베크 덕분에 새벽에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았고, 군데군데에서 퍼져있던 소문이 모이자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새벽에 마법사에 의해 순찰대원이 죽었다.’
비교적 정확한 이야기가 녹스 성 전체로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래서 오늘 성 밖의 출입이 금지됐던 거구만.”
“그런데 위험한 거 아니에요?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살인을 저지르는 마법사가 성내에 있다는 거 아니에요?”
“어, 그러네.”
사람들은 외출을 삼가기 시작했고,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집으로들 들어갔다. 덕분에 중앙대로에 늘어선 상점들에는 파리만 날렸다. 다만 그 덕분에 상행을 왔던 상인들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녹스의 상인들과 느긋하게 거래를 할 수 있었다.
“더 느긋하게 거래를 하라고요?”
“그래. 최대한 느긋하게. 시간을 끌면서 유리하게 거래를 하도록 해.”
대머리 사내가 마른 손등을 비비며 추위를 조금이나마 이겨 내보려 했다.
“듣기로는 살인자가···.”
“어허, 이 사람이? 자넨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상행에 참가한 상단 소속 상인이 어쩔 수 없단 듯이 대머리 사내의 지시에 따랐다. 그들은 최대한 성주나 경비대의 시선을 빼앗아야 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모든 상인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빠져나간 두 사람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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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이라고 불린 둥근 얼굴의 사내가 루치드의 손가락을 잡고 힘을 주려는 순간.
“어이, 거기.”
철창 밖에서 익살맞은 목소리가 들렸다. 철창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바깥으로 쏠렸다.
“어린 애한테 무슨 짓이야?”
바깥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때마다 바닥을 퉁퉁 찍는 소리가 들렸다. 루치드가 갇힌 철창으로 사내가 다가오자 사람들은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손에 들린 창으로 바닥을 내리찍는 소리였다.
창을 든 사내는 턱짓으로 문을 물러서게 했다.
“왜 계속 잡고 있어? 비켜.”
문은 슬며시 손을 놓고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경계서린 시선을 풀지 않았다. 사내가 비록 경비대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이 감옥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임지가 다른 곳의 경비대원이 감옥에 올 일이 있을까?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이야, 여기 사람 너무 많네? 눈이 너무 많아. 어쩌지?”
말은 경박하고, 행동은 가벼웠다. 창끝을 발로 톡톡 두드리는 행동이나 다소 가벼운 어조의 목소리가 괜히 수상하게 여겨졌다. 참지 못하고 리밋이 물었다.
“당신 뭐요?”
“보면 몰라? 경비대.”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소.”
“여기서 일하든, 저기서 일하든 경비대는 경비대지, 안 그래?”
리밋은 마치 자신을 놀리는 것 같다는 생각에 뿔이 났다. 하지만 철창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애 좀 데리고 가려고?”
말끝이 올라갔다. 목적이 불명확하다는 어투다. 리밋은 천천히 일어섰다.
“어허, 그냥 앉아. 왜 일어나고 그래?”
“당신, 뭐지?”
“경비대라니까?”
“내가 원래 감이 좋소. 그래서 이날 이때까지 죽지 않고 살았지. 그런데 지금 감이 안 좋소. 매우 불쾌한데 마치 개미가 내 살을 뜯어먹고 있는 기분이오.”
“오호, 신기한데?”
경비대원이 히죽 웃었다.
“정확해. 사실 당신같이 재미있는 사람하고는 오래 대화해 보는 게 소원인데 말이야,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미안해.”
경비대원의 마지막 말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느꼈는지 슬슬 일어섰다. 도망칠 곳은 없지만 그래도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여겼다. 다른 철창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일어섰다.
“허, 거참.”
경비대원은 슬쩍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가 짧게 혀를 찼다.
“미안.”
경비대원은 리밋을 보며 한 쪽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감옥 안에 난데없는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아니, 칼날이라고 해야 할까? 투명한 칼날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천지 사방으로 불어 닥쳤다. 순식간에 감옥 안이 피바람과 비명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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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도착했을 즈음, 포우와 타난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지독한 피비린내가 감옥에서부터 퍼져나오고 있었다. 포우는 허리에 찬 칼을 빼어들고 감옥으로 달려갔다.
뒤따른 타난이 포우보다 빨리 뛰어가 앞을 막았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타난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건물로 들어갔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의 철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진득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포우는 입구에 놓인 횃불을 하나 들어 그 뒤를 따랐다.
타난은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앞에서 무엇이 나타나든 곧바로 베어낼 기세로 한 걸음씩 전진했다. 그리고 그 뒤를 포우가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타난이 지하계단을 밟고 내려가다가 그만 발을 헛디뎠다.
―쿵
“타난!”
포우가 서둘러 내려와 타난을 일으켰다. 다행히도 크게 다친 곳이 없었던 타난은 민망함을 감추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곧 그는 칼날을 아래로 늘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감옥의 좌우 내벽 높은 곳에 뚫린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과 포우가 든 횃불을 통해 감옥 내부가 환히 드러났다. 신발 바닥이 철벅댈 정도로 피범벅이 된 바닥과 마찬가지로 피칠갑이 된 내벽도 끔찍했다. 하지만 가장 심한 것은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시체들과 철막대들이었다. 아마도 철창이었을 쇠막대들이 모두 잘게 토막이 나서 바닥을 뒹굴고, 그 막대들만큼이나 잘게 썰려서 예전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토막 난 시체들이 감옥 전체에 널려 있었다.
“우욱!”
타난이 그 자리에서 허리를 꺾으며 구토를 했다. 그간 지옥을 봤다고 자부했던 포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하얀 점액이 나올 때까지 구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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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이보다 앞선 시간.
“볼레, 잠시만 멈추시지요.”
간발의 차이로 경비대장보다 먼저 도착한 라보네와 텔리오는 감옥에 왔음에도 다가가지 않았다. 위험신호를 먼저 느낀 것은 텔리오였다.
“왜요?”
“더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피냄새가 납니다.”
그러고 보니 감옥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감옥에서 웬만큼 떨어져 있음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냄새는 보통이 아닌 것이다.
“쉿!”
텔리오는 라보네를 골목 안쪽으로 밀며 몸을 숨겼다. 잠시 그러고 있으니, 이윽고 한 경비대원이 웬 꼬마를 두 팔에 안아들고 북쪽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쩐지 저 꼬마가 두 사람이 찾아보려했던 꼬마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떡하지?”
라보네가 흘깃 보더니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텔리오는 섣부르게 대답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단주의 안전이었다. 부단주의 안전이 전제되지 않으면 다른 무엇도 의미가 없었다.
“제가 따라가 보겠습니다. 아가씨는 다시 중앙대로로 돌아가시지요.”
“텔리오!”
텔리오가 라보네의 안전을 생각하듯, 라보네 역시 텔리오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제 한 몸 정도라면 얼마든지 빼낼 수 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상행만 20년입니다. 이 정도는 예전에도 경험해 봤으니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 말이 비단 허풍만은 아니겠지만, 위험도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텔리오는 시간이 없었다. 저 경비대원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 전에 뒤쫓아야 했다.
“여관에서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돌아가겠습니다.”
짧은 목례와 함께, 텔리오는 몸을 돌렸다.
“텔리오.”
부디 무사하기를. 라보네는 잠시 그 자리에서 텔리오의 무사귀환을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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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드를 든 경비대원은 북문 근처의 골목길로 접어들더니, 어느 허름한 집으로 들어갔다. 거리 전체에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퍼진 탓에 경비대원은 다른 사람과 마주침 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일어나라.”
루치드를 내려놓은 경비대원이 아이를 툭툭 발로 건드렸다. 몇 번 건드리니 루치드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되찾았다.
“안녕?”
경비애원의 인사에 루치드가 시선을 맞췄다. 얼굴을 보던 루치드는 그가 꽤 낯이 익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디서 봤더라?
“어?”
생각이 났다. 바로 어제 동문으로 들어올 때 봤던 사람이었다.
“안녕? 난 제윅이라고 해.”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다가 루치드는 조금 전 정신을 잃기 전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렸다.
“감옥에서 절 빼주신 건가요?”
“그래.”
아마 감옥에서 폭력을 당하는 것을 보고 구해줬음이리라. 그런데, 여긴 경비대 본부가 아닌 것 같았다. 둘러보면, 그냥 가정집 같았다.
“여긴 어디죠?”
“땡.”
“예?”
경비대원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질문이 잘못됐어. 다시 질문해.”
이게 무슨 소리야? 질문? 루치드는 가만히 경비대원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옳지. 대화를 하려면 우선 상대가 누구인지를 파악해야지. 이런 거, 저런 거 다 건너뛰어 버리면 상대가 섭섭하지 않겠어?”
‘무슨 소리야?’
루치드가 어벙벙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으니, 경비대원이 씩 웃었다.
“다시 한 번, 소개할게. 난 제윅이라고 해. 보시다시피 경비대원, 같이 보이겠지만 실은 마법사야.”
“에?”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 반응이 재밌었던지 제윅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제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루치드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을 들어 루치드의 왼쪽 뺨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와 동시에 루치드는 극심한 통증이 느껴져 순간 손길을 피했다.
“많이 아프겠구나. 좀 일찍 구해주고 싶었는데 파트너가 워낙 눈치가 없는 친구여서 말이야. 어제 봤었지?”
“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마법사라고요?”
“그래.”
“전, 마법사를 아냐는 질문을 받았다가 감옥에 갇혔어요.”
“그래, 알아. 그리고 좀 놀랬지.”
“전 이유도 모르고 감옥에 갇혔고, 이유도 모른 채 맞았어요.”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지금 이유도 모른 채 여기에 왔어요.”
제윅의 눈이 반짝이며 루치드의 뒷말을 기다렸다.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나요?”
“너무 광범위한데?”
“전 지금 제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도 몰라요. 아는 것도 없지만요. 그래서 제윅이 말해주는 것을 듣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어요.”
“나쁘지 않은 문답법이구나. 우선 내가 가르쳐주고, 질문을 받는다는 거지?”
“예.”
“꽤나 좋은 선생님을 만났었나보네. 늘 그런 식으로 지식을 쌓았던 거야?”
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지?
“아무래도 내가 먼저 이야기해야겠네. 널 보고 있자니 나도 억울하다고 느낄 정도야. 눈에 서글픔이 가득 찼어.”
루치드는 입술을 다물고 귀를 열었다. 그리고 마법사 제윅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