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a Ver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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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타난이 경비대로 돌아와 포우 앞에 섰다. 포우는 아침 점호 후 받은 몇 개의 보고서를 검토하던 중이었다.
“음? 뭔가?”
“그 사건 관련한 내용입니다.”
타난이 주위를 보며 눈짓을 했다. 포우는 경비본부 내에서 잡무를 보던 몇몇 대원들에게 나가 있으라는 명을 내렸다.
“어젯밤 순찰대원 중 2명이 사라졌답니다.”
“뭐? 순찰대원이 사라졌다면 큰일 아닌가? 왜 이제 보고가 들어온 거지?”
화들짝 놀란 포우의 반응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타난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시잖습니까? 순찰대가 워낙 느슨해서 그런 거죠. 아무튼 실종된 순찰대원이 둘인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피해자랍니다.”
“응? 무슨 피··· 설마?”
포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민간인도 아니고 순찰대원이었다?
“예. 옷이 벗겨져 있어서 몰랐는데 발목에 난 문신을 본 순찰대원 한 명이 신원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문신은 일종의 부적이었다. 경비대원이나 순찰대원 혹은 소수의 민간인들이 무사를 기원하며 몸에 문신을 새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보통은 신화 속 영웅의 이름이나 무기를 그려넣는다. 하지만 녹스에서는 조금 특이하게도 몬스터를 그려넣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에 희생된 순찰대원 역시 발목에 ‘트로글(Trogl)’을 새겨 넣었다. 트로글은 원숭이처럼 생긴 몬스터로 숲속에서는 바람보다 빠르다고 알려져 있었다.
“한 명이 피해자라면, 다른 한 사람은?”
“그게, 찾지 못했답니다. 아마 다른 곳에서 죽임을 당했거나 혹은···.”
타난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범인이 마법사라고 가정할 경우, 실험체로서 다루어졌을 가능성도 있음을 포우 역시 짐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모두 끌고 가기 어려워서 한 사람은 죽이고 한 사람은 데려간,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대장님. 이상한 점이 하나 더 발견됐습니다.”
다른 실종된 한 명에 대해 추리를 해보던 포우는 타난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 순찰대가 발견된 곳이 원래 순찰하는 곳과 다른 곳이랍니다.”
“어디?”
“원래 북문 쪽 거리를 순찰하는데, 중앙대로 쪽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 대원의 집은?”
타난이 뒷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다.
“집은 남문 근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제는 교대 후 순찰대 숙소에서 잘 예정이었다고 하더군요. 교대는 순찰대 본부가 있는 동문 쪽에서 무사히 교대를 한 모양인데, 그 후에 숙소로 간 줄 알았답니다.”
순찰대 본부는 동문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 남북을 가르는 중앙대로를 기준으로 보면 경비대 본부와 대칭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경비대 숙소가 본부에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면, 순찰대 숙소는 순찰대 본부의 약간 아래쪽, 즉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순찰대 숙소로 간줄 알았던 놈이 아침 점호시간이 되도록 오지 않아서 다들 의아해했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골 때리는 게, 죽은 놈이 평소에도 아침 점호를 밥 먹듯이 빼먹는 놈이었다는 거죠. 짬이 좀 되니깐 그랬는지는 몰라도 참···. 아무튼 그래서 으레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놈이 시체로 발견된 것이죠.”
“엉망이군.”
짧게 감상평을 내린 포우였다. 아마 순찰대장은 이번 일로 경질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건 그 쪽의 일. 지금은 살인 사건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다른 사항은 없고?”
“일단 그 쪽은 끝입니다만···.”
“또 있나?”
“순찰코스가 말입니다. 저희 숙소와 가까운 거리까지 포함되었나 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타난을 바라보자, 타난이 침을 꿀꺽 삼키고 답했다.
“그 꼬마 놈 말입니다. 어제 저희 경비숙소에 있었잖습니까?”
“하지만, 숙소에 다른 놈들도 있었을 거 아냐?”
포우가 타난의 억측에 대해 미리 반론을 펼쳤다.
“그렇긴 해도 굳이 방법을 찾자면 못 찾을 것도 없지 않습니까? 체구도 작은 아이니 몰래 빠져나가려 한다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 놈이 마법사라도 된다는 소린가?”
포우는 말을 뱉으면서도 부정했다. 마법사일리는 없었다. 그렇게 어린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만약 그렇다면 자기 앞에서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숨겨야 할 일이지.
“그건 아니더라도,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마법사를 봤다던가, 아니면 불렀다던가.”
“···일단 데리고 와봐. 아니,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
포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리와 봐라.”
“······.”
“끌고 와.”
거한, 리밋은 괜한 심술이 났다. 말을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꼬마라니. 감히 누구 앞에서. 이쯤 되니 귀엽다고(?) 봐주고만 있을 시기는 지난 것 같았다.
이번에는 마른 사내가 일어나 루치드의 머리끄덩이를 붙잡더니 거한 쪽으로 던졌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쓸리며 구른 루치드는, 그래도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 했다. 괜한 오기일 수 있지만 이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가 뜯겨나가는 고통은 어지간해서는 참기 힘들었다.
“윽!”
“고 놈 새끼? 독종이네?”
마른 사내가 히죽 웃고는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리밋이 손을 들어 마른 사내를 제지했다. 그리고 왼손으로 자기 앞에 너부러진 꼬마의 머리채를 붙잡고 들었다.
“너 이름이 뭐냐?”
리밋이 물었다. 루치드는 상체를 억지로 들고 독기가 서린 눈으로 리밋을 마주보았다.
이놈들에 대한 분노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전부터 이유 없는 폭력과 억압에 얼마나 많이 시달렸던가. ‘이유 없이’ 두 세상 사이를 오가며 고생해야 했고, ‘이유 없이’ 폭력과 죽음의 위협에 놓여야 했었던 게 몇 번이던가. 게다가 조금의 시간도 아껴서 목표를 달성해야 할 이때에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처지에 놓여야 한다는 게 답답하고 억울하고, 그래서 화가 났다.
“이 새끼 눈깔 봐라. 보기 좋네?”
리밋은 히죽 웃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루치드의 뺨을 올려붙였다. 감옥 전체가 울릴 만큼 커다란 소리가 났다. 루치드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뒤늦게 고통을 감지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소리를 내면 더 억울할 것 같았다.
―빠드득
어금니를 꽉 깨물고 리밋을 노려봤다. 왼쪽 뺨이 거의 두 배로 부풀어 올랐다. 리밋은 피식거리며 옆을 돌아봤다. 검지로 루치드를 가리키며,
“야, 얘 눈깔 멋지지 않냐? 니들은 이런 거 본받아야 돼.”
―짝!
다시 손바닥이 같은 자리를 때렸다. 거한의 두툼한 손바닥은 넓적한 쇠몽둥이와 다를 게 없었다. 루치드의 여린 볼 살이 빨갛게 부어오르더니 몽글 피가 솟아났다. 얼얼함이 고통을 넘어서 감각이 아주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밋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니들도 이런 눈을 해야 내가 마음 놓고 때리지. 안 그러냐, 아가?”
―짝!
이전보다 더욱 세고 날카롭게 올려붙였다. 귀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는데, 루치드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머리가 웅웅거릴 정도로 울려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거한이 잡고 있던 머리채를 놓자 철퍼덕, 땅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고작 세 대를 못 참네. 야, 문! 얘 깨워봐라.”
둥근 얼굴이 웃으며 루치드에게 다가갔다. 루치드 앞에 쪼그리고 앉은 그는 루치드의 손가락을 붙잡더니 히죽 웃었다.
****
“벨로?”
탁자에 앉아있던 라보네가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텔리오가 푸른색 로브를 입은 채로 방으로 들어왔다. 아마도 외출했다가 바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죠? 성 밖으로 나갈 방법이 생겼나요?”
“아닙니다. 대신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보고 드리려고 왔습니다.”
“어떤 이야기요?”
텔리오는 한 호흡을 쉬었다가 대답 했다.
“마법사를 찾는 아이가 있었답니다.”
라보네가 벌떡 일어났다. 원래 하얀 얼굴이었지만 아주 핏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창백해진 얼굴이었다.
“마법사를 찾다니요? 누가요?
마법사를 찾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 리는 없다. 다만 찾더라도 몰래 찾지, 이렇게 소문이 돌도록 찾지는 않는다.
“그게 어린 아이랍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마법사를 찾는다고 경비대에 이야기한 뒤, 어제 그 사건이 벌어졌답니다. 그래서 지금 그 아이는 경비대 감옥에 갇혀있다고 합니다.”
라보네는 잠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마법사라니. 혹시 그 아이가 뭘 아는 게 아닐까요?”
“다른 이야기는 흘러나온 바가 없어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를 만나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감옥에 갇혀있다면서요?”
어느 성을 막론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돈을 좀 쓰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뇌물로 가능할까요?”
텔리오는 엄지로 턱을 살살 긁으면서 대답했다.
“많이 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경비대장이 워낙 강성이라서 대장은 안 통할 것 같습니다만, 그 아래쪽은 조금 비벼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텔리오가 가능하다고 하면 가능한 것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말에 책임을 지는 사내고, 가능하기 때문에 말을 꺼낸 것이리라.
“그럼 해야죠. 곧 점심때이니 그 때 틈을 볼 수 있을까요?”
“서두르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두르세요. 헛걸음일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정보니까요.”
텔리오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아, 안된다니까요. 오늘은 아무리 부탁해도 안 돼요.”
“이유가 뭐요? 도대체?”
실랑이를 한참 벌이던 사냥꾼이 가슴을 내밀며 따지기 시작했다. 생계가 걸린 일이니 절박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경비대에게 들이대면 쓰나?
“에휴, 가끔가다 이렇게 소식이 먹통인 사람이 있다니깐.”
“제윅!”
“알았어, 알았다고.”
성내 주민들이 모두 알아야만 하는 사건도 아니었고, 경비대도 되도록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쉬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눈 막고 귀 막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다들 얼굴에 입 하나씩 달고 다니는 이들이다 보니 알음알음으로 사건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말하건대 눈 막고 귀 막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니 눈앞에 서 있는 사냥꾼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튼 오늘 경비대장의 지시로 성 밖 출입이 금지됐으니 돌아가세요.”
“그럼 난 뭐 먹고 살라고?”
“나 참. 스팅. 내가 하루 종일 여기서 멍청하게 서 있으니 바본 줄 알아요?”
주위를 살피던 제윅이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조용히 속삭였다.
“옆 집 여편네랑 붙어먹는 걸 모를 줄 알아?”
스팅이 흠칫 놀래더니 얼굴이 붉어졌다.
“오늘 하루만 빌붙어봐. 그 동안 해먹은 게 있는데 정을 생각해서라도 하루쯤은 괜찮을 거야.”
손만 대면 금방 터질 것 같은 얼굴이 된 스팅을 보며 제윅이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세요.”
아무 말도 못하고 씩씩거리던 스팅은 콧바람을 크게 내뿜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제윅, 뭐야?”
영문을 모르는 훌린이 물었지만 제윅은 능청을 떨었다.
“아, 걱정 마. 별 거 아니었어. 그나저나 배가 좀 고픈데, 왜 교대를 안 해 주는 거야?”
“곧 오겠지.”
“하아. 어이, 거기 아저씨, 오늘 못 나가요. 돌아가세요. 어?”
제윅이 반응이 이상해서 훌린이 물었다.
“뭐야?”
“저 아저씨 갑자기 왜 달려가지?”
중얼거리는 제윅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거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똥 싸러 갔나?”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평야를 바라보는 제윅. 훌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아니.”
“그럼 수상한 사람 아냐?”
“수상하긴, 뭐가 수상해? 그냥 오다가 돌아간 거지.”
훌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파트너 바꿔달라고 요청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지금 전 경비대와 순찰대에 경계령이 떨어졌는데, 너만 한가하게 그러고 있을 거냐?”
“내가 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제윅을 보니 괜히 속에서 욱하는 감정이 들었다.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보고하라는 말 못 들었어?”
“뭐가 수상해? 그냥 오다가 못 나간다, 하니깐 그냥 돌아간 거지.”
훌린은 팔짱을 끼고 물었다.
“어디야?”
“뭐가?”
“그 사람이 어디로 갔나고?”
제윅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한 쪽 골목을 가리켰다.
“쫓아가봐.”
“나? 지금? 왜?”
“그 사람 얼굴 본 게 너였잖아? 가서 물어보던가, 잡아오던가 해.”
“점심 교대 하고 가자.”
“미친 놈. 당장 가!”
“그렇다고 파트너한테 욕을 하냐?”
제윅이 정말 내키지 않는 듯 억지로 가고 있다는 시늉을 보이며 달렸다. 하지만 곧 뜀박질을 멈춰야 했다.
“제윅!”
“아, 왜!”
“창 가지고 가야지.”
궁시렁거리며 돌아온 제윅이 창을 들었다.
“지금쯤 멀리 가서 못 잡을 텐데.”
“빨리 뛰어가.”
“쳇.”
제윅이 다시 무거운 걸음을 옮겨 사라진 사내를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