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15화 (115/956)

Mera Ver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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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 마법사가 있다는 걸 들었나?”

뜬금없는 포우의 말에 루치드는 눈만 껌뻑대다가 뒤늦게 의미를 알아차렸다.

“예, 마법사요?”

“딴 소리 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알아, 몰라?”

뒤에 선 센베크가 버럭 하며 윽박을 질렀다. 하지만 루치드로서는 이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포우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마법사에 대해 들었나?”

포우로서는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이 바로 루치드였다. 사실 요 몇 년간 녹스에 의심스러운 정황이 보고되고 있는 형편이긴 했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서 ‘마법사’의 존재를 입에 올린 사람이 없었다. 있다면 오직 눈앞에 있는 꼬마가 유일했다.

“아, 아뇨. 없어요.”

녹스가 부오노 공국에 정식으로 편입된 이후로 성의 입출입관리에 만전을 다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몰래 들어오는 인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몇 년간 녹스에 몰래, 혹은 위장해서 들어온 인물들이 있다는 첩보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같이 어떤 ‘물건’을 찾는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그 ‘물건’이 마법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뜬소문이 윗분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으나, 자세한 지시사항이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경비대장이라는 직함을 가졌기에 그나마 이 정도라도 들을 수 있었다.

“거짓말입니다. 이 녀석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센베크가 씩씩대며 루치드의 뒤통수를 쪼개버릴 듯이 노려보았다. ‘마법사’를 찾는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꺼낸 후, 곧바로 ‘마법사’의 소행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당연히 제1용의자, 혹은 공범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정말 모, 몰라요.”

루치드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마법사가 어디 있는지 알았다면, 마법사를 찾겠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곧바로 마법사를 찾아가면 그만인데.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경비대로서는 루치드를 가장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센베크는 루치드가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자식이!”

감히 어린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거짓말을 지껄이는가, 라는 생각에 분을 못 이긴 센베크가 루치드를 걷어차 버렸다. 루치드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구석으로 처박혔다. 잘못 걷어 차인건지, 혹은 제대로 걷어 차인건지 일순간 호흡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통도 고통이지만,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들어 루치드는 항변했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예요?”

“······.”

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센베크가 루치드를 걷어차는 것을 말리지도 않았다. 다시금 폭력을 행사하려는 센베크를 말린 것은 곁에 서 있던 타난이었다. 그의 생각에 루치드는 의심만 있을 뿐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용의자도 되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어쩌면 수사를 위해 협조를 받아야 할 대상일지도 모르는데 강압적으로 나갔다가는 어찌될지 모르기에 일단은 여기까지 하는 게 옳다고 여겼다.

“타난, 그 녀석 일단 가둬놔라.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해야겠다.”

가만히 지켜보던 포우가 지시를 내렸다. 타난은 가벼운 목례로 답한 뒤, 루치드를 데리고 본부를 나섰다. 센베크가 씩씩 거리며 그들이 나간 곳을 바라볼 때, 포우가 물었다.

“센베크, 신원조회는?

신원조회의 대상이 저 아이가 아니라, 새벽에 발견된 인물임을 알아차린 센베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게··· 어렵습니다.”

“왜?”

“사실, 온 몸에 자상도 자상이지만, 머리 부분은 완전히 훼손돼서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랍니다.”

보고는 그렇게 했지만, 실상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짓뭉개진?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머리 고기 썰어내듯, 얇게 저민 상황이라 얼굴이라 볼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단단한 두개골마저도 얇게 저며진 상태라 조사원들이 연신 구토를 하면서 맞춘 끝에 겨우 얼굴뼈를 모두 모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뼈를 제외한 부분들은 기름덩어리처럼 흐물흐물해져서 조합이 불가능했다.

센베크는 보고를 계속했다.

“일단, 그나마 남은(?) 몸뚱이에서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알아보고는 있습니다, 만······.”

수사대원들이 신도 아니고, 얼굴이 없는 사람의 신원을 쉽게 알아차리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또 불가능 한 것만은 아니리. 시간이 걸릴 뿐일 것이다. 포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다른 지시를 내렸다.

“오늘 하루는 성내 출입을 완전히 금하도록. 그리고 순찰대와 협조해서 최대한 빨리 범인을 색출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

“오늘, 만인가요?”

“······.”

포우가 지긋이 바라보자, 센베크는 냉큼 허리를 숙여보이고는 본부를 빠져나갔다. 텅 비어버린 본부에서 포우만 홀로 남았다.

―드르륵

의자가 뒤로 밀리며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팔짱을 끼고 탁자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한 포우. 그의 직감에 이 사건이 단순히 단발성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사건의 열쇠를 저 아이가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비록 그 아이가 진실로 마법사의 위치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

“그래서요?”

라보네가 면사가 달린 모자를 벗으며 텔리오에게 물었다. 텔리오는 두 손을 뒤로 하고 공손한 자세로 대답했다.

“금일 성주 방문은 어렵다고 알려왔습니다.”

라보네는 손에 낀 하얀 장갑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진짜 마법사인가요?”

“경비대에서 들려온 전언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경비대 내에서도 쉬쉬하는 이야기건만, 텔리오는 요령 좋게도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간 수차례 상행을 벌이며 쌓아온 인맥이 이렇게 통할 때가 있었다.

“잘 됐네요. 그럼 저희 일부터 처리하도록 하죠. 서쪽 평야라고 했죠?”

아카넬, 붉은 마법의 씨앗에 대한 정보는 오직 라보네와 텔리오만 알고 있었다. 텔리오는 라보네의 상단이 첫 삽을 뜰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했던 사람이었다. 본래 상단주인 아버지 곁에서 일해야 할 사람이지만, 스스로가 자청해서 멀리 떨어진 상행을 주도하곤 했다. 그러면서 매번 좋은 성과를 냈기에 신임이 매우 높은 인물이었다. 녹스행도 여러 번 다녔던 텔리오는 라보네가 부단주직을 맡으면서부터는 라보네 곁에서 상단에 관한 여러 가지를 밀착과외하는 식으로 돕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녹스행도 함께 왔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비밀스런 지령, 아카넬을 찾는 임무까지 함께 하게 된 것이었다.

그에 대한 신뢰에는 그의 외모도 한 몫을 했다. 얼핏 보면 귀족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단정하게 빗은 머리와 정갈하게 다듬은 턱수염, 그리고 깊은 눈매와 부리부리한 콧날이 어울려, 얼굴만 봐도 ‘정직(正直), 정의(正意), 정도(正道)’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였다. 텔리오는 뒷짐을 풀지 않은 채, 짧은 헛기침과 함께 대답을 이었다.

“그게··· 어렵게 됐습니다.”

“네?”

텔리오는 한층 낮은 목소리로 사유를 밝혔다.

“오늘 하루 성외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는데, 사실 언제 금지령이 해제될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라보네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그럼 어떡하죠?”

“우선, 상단의 일을 먼저 처리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미리 준비를 한 듯,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텔리오가 이렇게 말하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렇게 해요.”

텔리오는 가볍게 허리를 숙여 보인 뒤, 방을 나갔다. 라보네는 장갑과 모자를 침대위에 내려놓고 창가로 다가갔다. 조금 전에도 보았던 그 길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아까와 달리, 어쩐지 생기(生氣)가 죽은 것처럼 보였다.

****

“어린놈이 여긴 왜 들어온 거야? 소매치긴가?”

히죽대며 묻는 거한의 물음에 루치드는 침묵을 지켰다.

“허, 참. 이 어린놈의 새끼가 어른이 묻는데 대답도 안하네?”

거한의 옆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던 날선 눈매의 마른 사내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루치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타난이 루치드를 데리고 온 곳은 경비본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지하감옥이었다. 1층에서는 경비대원 두 명이 철장 앞을 지키고 있었고, 철장을 지나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어둡고 눅눅한 감옥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각 칸마다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략 4명 내지 5명이 들어가 있었다.

사실 녹스에는 범죄자가 많았다. 출신을 무시 못 한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였다. 애초에 대륙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녹스로 도망쳐 들어온 사람들은―새 출발을 꿈꾸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대부분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히기 일쑤였다.

“형님, 제가 손 좀 볼까요? 손가락 하나 정도는 꺾어도 티가 안날 텐데요?”

날선 눈매의 반대편에 앉아있던 또 다른 사내가 실실 웃으며 물었다.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만큼 키가 작은 사내는 얼굴이 동그랗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사내였다. 헤프게 웃는 모습과 달리 눈에서는 붉은 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왜? 손이 근질근질해? 넌 임마, 그 손 좀 묶어 둬. 뭐 맨날 꺾네 자르네 하고 있어? 저 봐라. 애가 벌써 겁에 질려서 울려고 하잖아?”

타난은 루치드를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철장에 집어넣었다. 집어넣는 순간까지도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철장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얌전히 있어라, 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전혀 실효성이 없었다는 게 드러나는 중이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시끄럽게 울려고 그래? 소리 냈다간 봐라. 발모가지를 분질러 버릴 테니까.”

루치드는 울려고 하지도 않았고,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는데 지들끼리 만담(?)을 즐기고 있었다.

“야, 야. 애 그만 놀려라. 그러다 진짜 울겠다. 어이, 꼬마. 너 뭔 짓 하고 들어온 거야?”

처음에 물었던 거한이 다시 루치드에게 물었다. 머리가 완전히 벗겨진 거한은 온 몸이 울퉁불퉁해서 여간 힘 잘 쓰게 생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락부락한 얼굴은 보기만 해도 시선을 피하게끔 하는 힘이 있었다.

루치드는 대답대신 무릎을 세우고 그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 새끼, 끝까지 쌩까네?”

마른 사내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으며 엉덩이를 들었다. 발을 쭉 내밀어 루치드를 밀었더니, 루치드는 자세가 무너지며 바닥에 너부러졌다. 그 꼴을 보고 마른 사내가 키득거렸다.

“아무 짓도 안했어요.”

“아무 짓도 안하고 들어오는 곳이 아냐. 여기가.”

둥근 얼굴의 남자가 말투를 따라하며 비아냥거렸다.

“새끼, 지가 뭘 했는지도 몰라?”

마른 사내는 꼭 말머리에 ‘새끼’라는 어휘를 붙여야만 문장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처럼 굴었다.

“아니면 미친놈이겠지. 지가 저질러놓고도 죄라고 생각 안하는 놈들 있잖아.”

다른 구석에서 촌극(?)을 바라보듯 구경만 하던, 눈 밑이 유난히 검은 사내가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아, 너 같은 놈?”

이라고 둥근 얼굴의 붉은 눈빛의 사내가 킬킬거리며 받아쳤다.

“씨발 새끼가. 어디서 야부리 털고 지랄이야?”

다크 서클이 그르렁대며 일어서려는 흉내를 냈다.

“야부리는 개뿔이.”

콧노래라도 흥얼거릴 것처럼 구는 둥근 얼굴.

“이 새끼가 아침부터 성질나게 만드네. 야, 죽고 싶어? 응?”

“미친 새끼, 너나 죽고 싶냐?”

“와, 이 새끼. 너 꽤 오래 살았다, 그치? 이제 그만 살고 싶은 거지?”

다크 서클이 벌떡 일어나 둥근 얼굴에게 다가가자, 둥근 얼굴도 붉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마주 섰다.

“조용히 해라.”

가만히 있던 대머리의 한 마디에 두 사람은 다가가길 멈췄다. 눈싸움을 벌이던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돌리고 자기 자리로 찾아갔다.

루치드는 다시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단서가 없어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마치, 그 때와 같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지구’로 떨어졌던 그 때처럼.

그러고 보니 루치드는 너무 자연스럽게 저곳을 ‘지구’라고 부르고 있었다. 마치 이곳은 ‘지구’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면서.

‘둘은 다른 세상일까?’

두 세상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문명의 수준, 언어의 차이 등등. 하지만 그 외에 유사한 점은 더 많았다. 지구와 유사한 식생. 하나 뿐인 해와 달. 공기, 물 등. 오히려 지구과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같은 지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인류학적인―물론 루치드가 인류학을 배운 적은 없지만―측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긴 했다. 그저 다르게 생긴 인종, 정도의 구별점 외에는 두 세계의 인류 사이에 다른 점은 없었다. 그 덕분에 루치드도 ‘지구’에서 쉽게 융화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법의 존재와 사상의 차이―왕, 귀족, 기사―는 ‘지구’와의 선명한 구별점을 지녔다. 게다가 ‘에르케넨(디아트리네가 있던 곳)’의 존재가 지구에는 있을 턱이 없었다. ‘지구’는 인공위성이라는 기물을 통해 우주 밖에서 전 지구를 탐색하는 수준이다. 인류의 눈 밖에 난 지역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이런 점 때문에 두 세상은 루치드에게 전혀 다른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저곳을 ‘지구’라고 부르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그만큼 저곳 세상에 융합되어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단지 그런 이유라면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할 거리가 안 된다. 문제라면, 융합이 될수록 루치드가 ‘마법’을 사용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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