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a Ver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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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를 찾으려는 이유가 뭐냐?”
포우가 다시 한 번 묻자 루치드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 대답하려니 뭔가 켕기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떠오른 과거의 한 장면이 있었다.
“그 미친놈은 말이다! 한 도시를 물에 잠기게 만들었어!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을 수장시켰단 말이다. 그리고 지명수배가 되어서 지금도 현상금 사냥꾼들과 기사들이 나를 쫓고 있을게다.”
핀체노, 아니 야누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버럭 화를 내며 해준 말이었다. ‘수장’, ‘지명수배’ 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루치드는 가슴이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도시로 가서 아무나 붙잡고 마법사 아세요, 라고 물으면 누군가가 마법사는 저기 살고 있단다, 라고 손가락을 가리키고,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한 뒤 알려준 곳을 찾아가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면 만날 수 있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지명 수배된 범죄자의 공범, 혹은 공모혐의를 받게 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이나 했었던가.
“왜 말하지 못하지?”
하지만 루치드는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거짓말을 꾸며낼 자신도 없었고, 계속 침묵을 지키는 것도 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루치드가 내밀 수 있는 카드는 대화를 통한 소통뿐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말이다.
“마법사를 만난 적이 있어요.”
“마법사를?”
포우의 눈이 커졌다.
“그 마법사는 서쪽 산맥을 넘어갔어요.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전 마법사를 찾아서 물어볼 게 있어요.”
“무엇을 말이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방법이요.”
포우의 눈이 시커멓게 변했다. 아니 얼굴이 모두 시커멓게 변해버린 것 같았다.
“너, 마법사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게 분명하군.”
“예?”
포우는 앞으로 쏠렸던 몸을 뒤로 뉘어 등받이에 기댔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기세가 한 순간 풀리는 느낌에 그제야 슬며시 숨을 내쉴 수 있게 된 루치드는, 그래도 궁금한 건 풀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되물었다.
“마법사, 는 어떤 사람이죠?”
포우가 감았던 눈을 살짝 떠 눈앞의 아이를 쳐다보았다. 저 표정이 일부러 꾸민 것이라 생각하긴 힘들었다.
“마법사는, 우리들의 적이다.”
우리들의? 루치드가 그 모호한 표현에 의문을 품는데 포우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은 마법사도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부분 마법사는 인간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 인간을 몬스터나 짐승과 같은 급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쉽게 사람을 다루고, 실험하고, 죽인다.”
루치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럴 리가요?
“그들이 어떻게 마법이라는 힘을 다루는지 모르겠지만, 그 힘을 가진 자들은 거의 전부 사람들을 해치는 데 사용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의 힘을 마력(魔力)이라고 부른다.”
마력(魔力). 다시 말해서 악마의 힘이란 이야기였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악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사람을 현혹하고 악의 길로 이끌며, 악마의 힘으로 사람을 개미 다루듯 한다. 가장 최근에는 한 도시를 수장(水葬) 시켜서 모든 사람을 익사시킨 적도 있었고, 또 어떤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팔 다리를 베어내고 난도질한 적도 있었다. 칼이 아닌 마법으로 말이다. 남자, 여자는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마력에 희생되었다.”
루치드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단 한 번도 마법으로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지톤’이었던 디아트리나 안트, 신테도 그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런 마법사를 만나고도 살았다는 것은 네게 천운이 있었다는 이야기겠지만, 마법사가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안다? 그럴 일은 없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만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이것도 오해일까? 아니면 자신만 몰랐던 사실일까? 핀체노를 떠올리면 ‘설마’ 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야누스를 떠올리면 ‘어쩌면’ 이라는 마음이 생겼다.
“니가 만난 마법사는 누구였냐? 이름은 아는가?”
“···핀체노라고 했어요.”
“핀체노, 라···. 어이!”
포우가 소리를 지르자, 밖에서 대기 중이던 경비대원들이 들어왔다. 그 중 훌린은 없었다. 아마도 본래 임무를 위해 동문으로 떠난 모양이었다.
“핀체노라는 마법사를 아는 사람?”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그래?”
“물의 마법사, 였던 것 같습니다.”
포우가 루치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가?”
“···네.”
“그 사람이 방금 이야기한, 도시를 수장시켰던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군.”
루치드는 마른 떡을 삼킨 것처럼 목이 메여왔다.
“이 아이가 어떻게 아는 겁니까?”
조금만 수상한 낌새를 보이면, 즉시라도 제압할 요량으로 루치드의 뒤에 선 남자가 물었다. 포우가 조금 전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물어보려 했다는 말에 다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마법사에게 나 죽여주소, 하는 거랑 뭐가 다른 거야?”
“아직 어리잖아. 모르니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부모가 그런 것도 안 가르쳤대?”
포우는 그제야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너희 부모는 어디 있느냐?”
“안계세요.”
“돌아가신 거냐?”
“···네.”
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센베크, 얘한테 일단 먹을 것 좀 갖다 주고 숙직실에서 눈 좀 붙이게 해줘야 할 것 같다.”
“···예. 보아하니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으면 배고파 뒤졌을 얼굴이네요.”
“센베크!”
센베크라는 남자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루치드를 데리고 경비대 숙소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포우가 옆에 선 남자에게 물었다.
“타난. 어떻게 생각해?”
“센베크가 말이 심했네요.”
포우가 슬쩍 고개를 들고 노려보자, 타난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꼬마, 노예는 아닌 것 같고요. 다만 마법사를 찾는 아이가 평범할 리도 없잖습니까? 지켜봐야 할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감옥에 넣어둘 명분도 부족하네요. 소매치기라도 시켜볼까요?”
“그 쯤 해둬. 농담은 너희끼리 해.”
“대장. 대장은 너무 심각한 게 문제요. 좀 웃으면서 지냅시다.”
“6년 전의 일이 생각나지 않는 거냐?”
타난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곧 억지 웃음을 지으며 표정이 일그러지는 타난이었다.
“그런 일이라도 웃으며 넘겨야 하잖수? 대장은 그 때 열심히 했잖수?”
“열심히 한 결과가 그 죽음이었던가.”
“불가항력의 상황이었고, 불가피한 선택이었소, 대장.”
포우는 한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루치드란 녀석, 니가 좀 맡아라.”
“제가요? 센베크도 있잖아요?”
“센베크 손에 있으면 멀쩡한 빵도 흙이 된다.”
무언가를 온전한 상태로 두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란 뜻이었다.
“뭐라도 시킬까요?”
“약초상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살펴보도록.”
“그리고요?”
당연히 뒤에 따라올 지시가 있겠거니 해서 물었다.
“당분간은 그냥 지켜봐. 그리고 다른 의도가 있는지 살피는 것도 잊지 말고.”
“흠. 기생충 한 마리 키우라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포우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부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주변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몇몇 순찰대원들이 횃불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일렁거리는 횃불을 보니 가슴이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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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밤, 차가운 바람이 거리를 쓸고 지나갔다. 높은 성벽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다 해도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지 못하듯, 구렁이처럼 성벽을 넘어 송곳니로 내리꽂듯 불어온 바람을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으, 춥다.”
걸치고 있던 클록(Cloak)을 여미며 순찰대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들고 있던 횃불을 가까이 대고 그 작은 온기라도 쐬려는 듯 손을 가져갔다.
“제대로 들어. 안보이잖아.”
파트너가 한 소리 했다.
“이 밤에 누가 있다고 그래? 이렇게 추운 날 돌아다니는 놈이 있겠어?”
순찰대원이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건지 헛소리를 해댔다. 파트너는 혀를 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기라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작은 횃불이 거리를 밝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횃불이 비치지 않는 구석구석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근거 없는 의심과 추측이 불안을 만든다는 말 몰라?”
오들오들 떨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심산인지, 옆에서 계속 일을 방해하는 순찰 대원이었다. 왜 하필 이런 수다쟁이랑 파트너가 됐는지 답답한 네이트였다.
“아인델. 나랑 같이 다니는 동안에는 게으름 피울 생각 하지마라. 나중에 당직보고 해버릴 테니까.”
깐깐한 녀석. 아인델은 보란 듯이 횃불을 높게 치들었다. 바람이 불며 횃불을 크게 출렁였다.
“됐냐?”
“잠깐.”
“응?”
네이트는 자리에 서서 골목 한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인델, 저기 비쳐봐.”
“응? 뭔데?”
“저기 뭔가 있었어.”
지나가는 고양이라도 본건가, 싶었던 아인델은 입술을 삐죽대며 횃불을 돌려 골목 쪽을 향하게 비추었다.
―으으
골목에서 음산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기울이니 잠시 후 조금 더 큰 신음소리가 정확하게 들려왔다. 듣는 순간 소름이 돋는 소리였다. 네이트가 한 발을 떼자, 아인델이 서둘러 네이트를 붙잡았다. 네이트가 왜 붙잡냐는 표정을 짓자, 아인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 줄 알고 가는 거야?”
“뭔지 모르니까 가는 거지.”
“저긴 너무 어두워. 뭐가 있을지 모르는데 우리 둘만 가서는 안 돼.”
“나 혼자 갈게. 횃불 줘.”
그렇다고 냉큼 줄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 불러서 같이 가든가, 아니면 아침에 다시 보자. 조금 있으면 날이 밝을 거라고.”
“그 사이에 일이 나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정 못가겠으면 기다려.”
네이트가 다시 가려는데 아인델이 붙잡고 늘어졌다. 네이트의 미간이 좁혀졌다. 결국 아인델은 울상을 지으며 파트너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으으으.
아인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오히려 자기가 놀랬다. 네이트도 무식하게 돌진하지는 않았다.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들어 올린 횃불에 골목이 점차 밝아지더니, 이내 신음소리를 내는 정체를 발견했다.
“헉!”
아인델이 놀라서 주저앉았다. 손에 든 횃불이 떨어지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네이트도 꼼짝할 수 없었다. 그들 앞에는 사람이 한 명 쓰러져 있었다. 사람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팔과 다리가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놀란 이유는 그 사람이 새까만, 혹은 새빨간 피웅덩이 속에 잠겨있었기 때문이었다.
****
아침이 되었다. 긴 겨울밤을 이겨내고 맞이한 아침의 풍경은 여느 도시와 다를 게 없었다. 거리에는 이른 아침부터 성 밖으로 나가기 위해 분주한 사냥꾼들과 약초꾼, 농부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고, 부지런한 아낙들이 두터운 로브를 걸치고 물주머니를 채우러 우물을 찾아가고 있었다.
―똑똑
“일어나셨습니까?”
문 밖에서 텔리오가 부르는 소리에 라보네가 기침소리와 함께 대답했다.
“예. 일어났어요.”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텔리오가 주둥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전자와 대야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이미 물이 반쯤 차 있는―대야를 놓고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어 온도를 맞춰 주었다.
“식사를 하신 뒤, 성주를 찾아뵐 수 있도록 미리 성에 사람을 보내놨습니다.”
“고마워요, 텔리오.”
“식사는 곧바로 가져오겠습니다.”
텔리오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손끝만 살짝 찔러 물의 온도를 가늠한 라보네는 천천히 세수를 했다. 얼굴에 물이 닿자 은근스레 남아있던 잠기운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세수를 마치고 환복까지 끝낸 라보네가 면사가 드리워진 모자를 눌러쓰고 기다리니 곧 노크소리와 함께 텔리오가 찾아왔다.
“부단주님. 문제가 조금 생겼습니다.”
라보네가 의아해하자, 텔리오는 굳은 얼굴로 사정을 설명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마법사의 소행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라보네의 얼굴이 겨울하늘처럼 새파랗게 질려 몸을 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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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간단한 요깃거리로 배를 채운 뒤 경비대 숙소에서 잠든 루치드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아침 일찍 눈을 떠야만 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바라보고 있으니, 자신을 데리고 왔던 남자, 타난이 다가왔다.
“따라와라.”
어제 음식을 먹으며 짧은 시간이나마 사담을 나누었던 기억을 되돌려보면, 꽤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타난은 디아트리보다 더욱 엄격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눈치가 없지 않은 루치드는 별다른 물음 없이 순순히 타난을 따라갔다. 그리고 곧장 간 곳은 경비대 본부의 대장 앞이었다.
도착하는 순간, 대장의 곁에 서 있던 센베크가 루치드의 어깨를 거칠게 눌러 무릎 꿇게 만들었다.
무릎을 바닥에 세차게 찧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새까만 눈동자의 포우가 루치드를 내려다보았다. 마르고 갈라진 입술이 천천히 열리며 잇소리가 났다.
“너, 솔직히 말해라.”
루치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