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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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4학년 첫 기말시험을 앞두고 다들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3학년 때랑은 또 달라진 점이었다. 3학년 때까지는 이렇게까지 기말 시험 성적에 매달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4학년부터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건만 시험을 대하는 아이들의 자세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당장 명수만 해도 그랬다.
“체육부장이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야.”
굳이 체육부장이 아니더라도 학생이라면,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데 명수에게는 특별한 이벤트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공부하지 않겠다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유는 자기가 생각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들을 따로 요약 정리하여 외우도록 시켰다. 수학의 경우에는 평소의 실력이 중요했던 터라 크게 의미가 없지만, 다른 과목의 경우에는 요약한 부분만 잘 정리해도 괜찮은 점수를 얻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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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학원 안다니지?”
유림은 뻔히 다 알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응.”
“걱정 안 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단유는 보던 책을 내려놓고 유림을 쳐다보았다.
“학원 다니는 애들이 성적이 더 잘 나올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너 1등자리 뺏길지도 몰라.”
“1등이 중요해?”
어안이 벙벙, 하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구나. 유림은 뺑소니 사건을 목격한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진심이야?”
“뭐가?”
“1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말하잖아, 너? 그러면 지금까지 1등은 왜 계속 한 거야?”
늘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항상 오해는 생길 수 있다. 그리고 단유는 늘 오해를 풀어나가는 쪽이었다.
“난 1등을 하려고 한 적이 없어. 그냥 1등이 된 거지.”
재수 없다. 평소에도 가끔 재수 없다고 여길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더 재수 없다. 유림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럼 1등은 안 중요하다는 거야?”
“응. 안 중요해. 그럼 넌 왜 중요한데?”
“어? 1등하면··· 좋잖아?”
“어떤 점에서?”
어떤 점에서 1등이 좋을까? 유림이 잠시 대답을 고르느라 생각에 잠겼다. 1등을 하면 좋은 점을 생각하니, 가장 먼저 기뻐할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그 다음은 다른 아이들보다 성적이 좋다는 점에서 우월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1등 하면 좋은 점이 너무 많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인정. 성적표에 기록되는 점. 뒤따라 붙을 선물들. 칭찬과 찬사.
유림은 1등을 했을 때 좋은 점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유림이 하나하나 거론하자, 단유는 가만히 듣더니 한 마디 했다.
“난 지금까지 1등 했을 때, 거기에 해당하는 것들을 받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특별히 기쁘다고 느낀 적도 없었고.”
유림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대화가 이런 식으로 전개되리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어 당황스러웠다.
단유는 늘 결여된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다만 그걸 티를 내지 않을 뿐이었다. 때문에 유림은 종종 이런 식으로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이했지만, 정작 단유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니 매번 유림만 곤란함을 느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둥의 사과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과를 했다가는 왜 했냐는 둥, 어떤 의미냐는 둥의 자기 머리만 아픈 토론이 진행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공부 열심히 해.”
“너도.”
가끔 이런 감정소모가 없는 교류가 답답했다. 아니 일방적인 감정 소모를 강요받는 기분에 화가 나기도 했다. 왜 나만 열 받고, 왜 나만 억울한 거지? 한 학기 내내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은 질문이었다.
“반장.”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러고 보니 오늘 따라 선생님이 늦게 들어오셨다.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목이 잠겨서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선생님은 짧게 헛기침을 해서 목을 푼 후, 수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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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이네요?”
“왜?”
“웃고 계시길래 그냥 그렇게 물어봤어요.”
주영은 들고 온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병실의 블라인드를 걷었다. 아침햇살이 창문을 넘어 병실 안으로 쏟아졌다. 창문을 여니, 아침의 서늘하면서도 맑은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초여름 아침의 상쾌함이 폐부에 깊숙이 들어오도록 숨을 한껏 들이마시는 주영이었다.
“요즘은 미세먼지 걱정 안하나 봐?”
“선배!”
키득거리는 재훈을 흘겨보던 주영은 소매를 걷고 노트북을 펼쳤다.
“일단 부지 매입은 잘 진행되고 있네요.”
“그래야지. 병원 건립 계획서는 내가 써야 하는데 어떡하지.”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하셔도 되요.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요. 땅은 미리 매입하더라도 병원은 천천히 짓는 쪽으로 하셔도 무방하실 것 같고요.”
재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지. 내가 병원을 지으려는 이유는, 아니 할아버지가 병원을 지어주려는 이유는 내가 그 병원에 들어가서 일하기를 바라는 게 아냐. 내가 정을 붙일 사업체를 주려는 거지. 내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러니 이왕이면 멋있게 지어놓고 나를 기다려야 맞아.”
“왕궁을 먼저 건설하고 왕을 영접하라는 건가요?”
“그런 식으로 비아냥대야 속이 후련하니?”
“나 참. 선배가 평소에 저한테 하시는 거에 비하면 비아냥도 아니네요.”
“마음 넓은 내가 봐줘야 한다 이거지? 알았어. 마음대로 해. 어쨌든 되도록 빨리 짓는 쪽으로 가자.”
주영은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재훈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혹시 서두르는 다른 이유가 있어요?”
재훈은 얌전히 주영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영리법인이야. 다른 병원들과 경쟁을 해야 된다고. 지금도 전국에 수십 개의 병원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왕이면 보다 먼저 세워서 치고 나가야지. 그냥 지어놓고 세월아 내월아 할 거면 애초에 지을 생각도 안 했을 거야.”
“구상은 제대로 하고 있나보네요. 사실 전 반쯤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선배가 해외에서 돌아온 지 1년도 안 지났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수능을 치고 의대에 들어가고 연성재단 이사직도 겸임해서 일하고 계시잖아요? 그렇게 바쁜 와중에 갑자기 저한테 찾아와서 땅 사, 라고 말씀하셨던 분이 선배예요. 당연히 충동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영리의료법인 설립을 구상하고 계획하고 있었노라고 말하면 열에 아홉은 믿지 않을 거예요.”
“그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낸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칫, 주영은 짧게 혀를 차곤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실 말이야 조금 폄하해서 표현했지만, 재훈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의대 정도야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었음을 자랑이라도 하듯 덜컥 수능을 보더니 다음해 서울대 의대 정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연성 재단 이사직을 맡더니 시스템 구축이란 이름 아래 혁명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덕분에 재단 내 보유금이 크게 늘었고, 더욱 많은 사업체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영리의료법인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들고 왔다. 물론 병원이 세워지고 나면 연성재단 이사를 그만둠은 물론이고 연성그룹으로부터 완전히 손을 떼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재훈의 미래는 어둡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 재훈 본인의 실력이 미래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혜린이는?”
멈칫. 주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제 밤에도 고비를 한 번 넘겼대요. ···그런데 여전히 불안하다고 주치의가 그러더군요.”
“수술은 더 이상 안하고?”
“이미 뇌부종과 간파열 등은 수술로 완전히 잡았대요. 다만 너무 큰 수술을 받기에 아이의 체력이 부족했었는데, 결국 그 체력이 지금 그 아이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네요. 그래서 더 이상 수술을 진행할 수도 없다고 하더군요.”
“방법이 없다?”
“···네.”
마치 자기가 죄를 지은 것처럼 움츠러드는 주영이었다. 눈치를 보니 재훈은 천장을 보며 깊이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때였다. 조용한 병실에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보세요?”
주영이 전화번호를 확인하더니 급하게 통화를 했다. 말없이 전화를 통화하던 주영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통화를 마쳤다. 재훈은 주영은 흘깃 보다가 이내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 안 물어봐요?”
“내가 니 애인이야? 뭘 물어봐. 말할 게 있으면 알아서 말하겠지.”
“···혜린이 주치의요.”
“···뭐라고 하는데?”
주영은 쉽게 말을 뱉지 못했다.
그 시간. 수업 중에 묵음으로 해놓은 전화가 번쩍였다.
“선생님, 전화요!”
가장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선생님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이 번쩍거리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넌 맨날 선생님 핸드폰만 보고 있니? 칠판을 봐야지.”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번호를 확인한 선생님은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였지만 전혀 반갑지 않았다.
“잠시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실 복도로 나갔다. 선생님이 멀리 간 것도 아닌데, 교실은 금세 시장통이 되어 시끌벅적 요란스러워졌다.
단유는 핸드폰을 보던 선생님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그 순간에 떠오른 당혹감, 처연함, 슬픔 등 형언할 수 없이 많은 표정들이 복합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던 얼굴이었다.
“선생님은, 대단히 표정이 많으시구나.”
“응?”
“혼잣말이야.”
왜 굳이 혼잣말을 하고 그래? 차라리 들리지 않게나 할 것이지, 괜히 사람 궁금하게. 유림은 투덜대며 고개를 돌렸다. 작은 시간도 아껴서 공부해야 했다. 단유는 1등에 대해 별 감흥이 없어 보였지만, 유림은 간절했다. 학원에서는 1등을 도맡아 하면서, 정작 학교에서는 2등 아니면 3등이었다. 3학년 때는 혜진이라는 맞수 때문에 그랬고, 지금은 상훈이라는 친구 때문에 순위가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등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단유가 마음 놓고 있을 때 따라잡아 보리라.
무심결에 앞을 보니, 역시나 상훈 역시 책에 시선을 박은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두고 봐라. 너나 단유나 모두 내 밑이 될 거야.’
그 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눈이 빨갛게 변했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무래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일제히 조용하게 앉아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너무 조용하다보니 선생님의 정돈되지 않은 숨소리만 교실 뒤까지 들려왔다.
“잠깐 자습하도록 하고, 반장. 나와서 아이들 떠들지 않게 좀 도와줘.”
선생님은 다시 교실을 나갔다.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야? 단유는 교탁 앞으로 나갔다.
“일단 자습하도록 하자. 시험 일주일 남았으니까 그거 공부하면 될 거야. 그리고 조용히 해주었으면 좋겠어.”
단유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공부를 시작했다. 단유가 나서면, 학급회의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정숙하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처럼. 괜히 말을 꺼내면 지목해서 발표를 시킬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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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래요.”
“······.”
재훈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혜린은 몇 번의 심정지가 있었는데 결국엔 뇌사가 판정되고 말았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뇌사는 고칠 수 없었다.
“부모님들은 일단 연명치료를 원하고 있어요.”
그럴 테지. 어느 부모가 딸아이의 손을 놓을 수 있겠는가. 아직도 따뜻한 피가 돌고 있을 그 손을.
“그렇게 해. 당분간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납득할 시간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주영은 하도 답답해서 툭 내뱉었지만 이내 후회했다.
“죄송해요.”
“야, 니가 죄송하다고 해버리면 난 뭐가 되냐?”
“···죄송합니다.”
“······.”
재훈은 눈을 감았다. 자신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 모든 걸 정리할 시간. 무엇을 정리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리하고 싶었다. 깔끔하게.
눈을 감았더니 눈꼬리 옆으로 눈물이 또르르 하고 떨어졌다. 그게 기폭제가 되었는지 눈에서 눈물이 거침없이 쏟아져 흘러내렸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꼭 깨물었지만 끅끅거리는 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 그 사이 주영은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한동안 재훈의 병실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