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09화 (109/956)

아름다운 이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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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되물었다. 문제가 뭐냐고.

“그 아이, 단유는 말이야. 내 친구를 생각나게 만들어.”

언제는 자기랑 닮았다고 해놓고선? 대답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생각한 주영이 툴툴댔다.

“그 친구는 별로 친하진 않았어. 사실 나도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그 아이는 더 심했어.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거든. 근데 가만 보면 이상한 게, 그 애한테는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어. 그냥 다가가기 무서운 느낌이랄까? 무섭게 생긴 얼굴은 아닌데 말이야.”

그런 아인 각 반마다 하나씩 있지 않았나?

“세월이 지나고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갔을 때, 그 아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소년원에 갔다고 하더라고. 왜 가긴. 죄를 지었으니까 갔지. ···사실 가벼운 죄는 아니었어. 당시에 신문에도 났던 사건이긴 한데, 그 아이 사람을 죽였어. 세 사람을 죽였다고 하더라고.”

주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반면 재훈의 음성이나 표정은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세상에. 세 사람을 죽인 사람을 두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나? 이 사람 제정신 아닌 줄 알았지만, 이 정도였나?

“나중에 알았어. 그 아이, 사이코패스라고 기사에 났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까, 그 친구가 무서웠던 이유가 뭔지 알게 되었어. 그 친구는 말이야.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어. 가끔 눈이 마주쳐도 그 아인 아무런 감정이 없는, 마치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유리구슬을 박아놓은 것 같은 눈이었지. 그 이질감이 무서웠던 거야. 다만 나나 다른 아이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 이질감의 정체를 분명히 알지 못했을 뿐이고, 그래서 그 아이를 무서워했던 거겠지.”

“그럼, 아까 그, 단유도 사이코패스라는 거예요?”

“아니, 전혀 아닌데?”

무슨 뚱딴지같은 반응이냐는 듯 대답하는 재훈의 말에 순간 욱하는 감정이 들었다.

“네? 그럼 무슨 소리예요?”

“너도 참. 내가 아무리 사이코패스 이야기를 했기로서니 그걸 가지고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매도하면 쓰나? 이주영, 심보가 고약해?”

“놀리지 말구요.”

피식 웃으며 재훈은 손을 내밀었다. 뭐냐는 눈짓을 보이자, 간단하게 ‘물’이라고 대답하는 재훈이었다. 물을 마신 후 재훈은 협탁에 컵을 올려 두었다.

“실은 단유의 말에서 느낀 게 뭐냐 하면, 너무 이성적이라는 거야. 단유, 걔는 아버지의 슬픔이나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어. 감정적인 대응보다 이성적인 대응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는 거지.”

“예? 이해를 못하겠어요. 아니··· 저기 아까 걔가 그랬어요. 혜린이를 보려고 했던 이유가 일어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라고. 그게 어떻게 이성적인 행동이에요? 지극히 감성적인데?”

“그래서 말했잖아. 단유는 사이코패스는 아니라고. 걔는 다분히 감성적인 면도 많은 친구야. 그러니 나랑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워했지. 그런데 말이지, 자식의 사고에 화를 내는 부모의 감정 앞에 노출되었을 때,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이제 11살이 된 아이가 말이야.”

“······.”

“결과만 말하자면, 단유는 그 격렬한 감정 앞에서 자신을 격리시켰던 거야. 그리고 이성적인 대응을 한 거지. 분노하지 말고 차분하게 행동하라, 는 행동강령에 따른 거야.”

“선배, 그것도 무서운 이야긴데요?”

주영은 자기도 목이 탄다는 듯, 컵을 하나 더 가져왔다. 목을 축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영이 컵을 내려놓자 말을 잇는 재훈이었다.

“단유는 일부러 감정을 격리하고 있어. 그 아이는 아마도 심한 감정의 격류에 휘말렸던 경험이 있었을 거야. 트라우마라고나 할까? 확신할 순 없지만 그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계속 가두고 있는 거야. 상처가 되새김질 되는 걸 막고 있는 거지.”

“그런데, 그게 사이코패스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 사이코패스란 녀석, 학교에서 특별활동을 나랑 같이 했거든.”

“네?”

“나 어릴 때, 학교에서 토끼를 키웠어. 우리 때는 토끼 키우는 게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때였거든. 학급 차원에서 토끼를 기르자고 했어. 그리고 나랑 그 친구가 당번을 맡게 되었지. 어느 날, 그 토끼가 죽었어. 이유는 잘 모르겠어. 먹을 걸 잘못 줬던지, 아니면 그냥 병이 든 건지.”

“혹시···.”

“아냐, 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그 친구 등교하자마자 토끼를 보러갔다가 죽어있는 걸 알게 되었어. 그리고 그 날 하루 종일 토끼를 붙잡고 울었어. 너무 울어서 선생님이랑 아이들이 수업도 포기하고 달랠 정도였어.”

“예?”

“그 아이가 사이코패스라는 이름을 달고 신문에 등장했을 때 놀란 건 그 때문이었어. 그 아이는 사이코패스가 아니었거든. 그 아이는 그동안 자신의 감정을 닫고 살아온 녀석에 불과했어. 그런데 아끼던 토끼의 죽음에 닫아 걸었던 빗장에 틈이 생기고 말았던 거 같아. 그날 그 친구가 쏟아낸 감정의 격류에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휩쓸렸었지.”

주영은 아무 말도 못했다.

“얼마 후. 그 아이가 소년원에서 자살 했다는 소리를 들었어. 사람들은 사이코패스인 아이가 더 이상 자기 멋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하지만, 난 믿지 않아. 그 아인 살해당한거야. 주위 사람들의 편견과 거짓이란 칼날아래 살해당한거야.”

재훈은 협탁 위에 놓인 컵을 들어 목을 축였다.

“그런 생각을 해. 그 때 단순히 어린 마음에 무서워했던 마음을 버리고 친구로서 다가갔다면,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행동을 했다면, 그 친구는 여기 날 보러 병문안을 왔을지도 몰라. 싸구려 과일 바구니라도 들고 말이야.”

“그럼 단유는?”

“단유는 그렇게 만들지 말아야지. 영재원 같은 곳에서 공부를 하는 건 나중에라도 가능해. 단유라면. 그런데 지금 그 아이가 겪고 있을 거라고 추측하는 문제에 대해선,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일단 좀 더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어. 그래서 아까 그렇게 이야기한 거고.”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져보라거나 친구들이랑 놀라고 한 거?”

“그렇지.”

“혹시 꿈이 선생님이었어요?”

“주영아. 내가 꿈이나 목표를 갖는 게 싫었다고 말 안했나?”

“······.”

이 사람 말 한번을 곱게 하지 않는다. 꼭 그렇게 비아냥거려야 속이 시원하냐?

****

단유의 학교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영재원 따위 생각해 본적도 없었을 뿐더러, 다른 교과목에 대한 관심도 슬슬 생기고 있던 무렵이었다. 특히 혜린이를 통해 관심을 갖게 된 음악에 대해서도 그랬지만, 다양한 학문에 대한 관심을 넓혀 나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조금씩 재미를 붙여 나갈만한 것이기도 했다. 더구나 기말 시험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 좋든 싫든 여러 과목을 공부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단유는 단 한 번도 1등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공부한 적은 없었다. 그냥 공부하다보니 1등이 되었을 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딱히 열심히 공부할 필요도 없었다. 적당히 공부를 해도 웬만한 논리력과 사고만 있으면 초등학교 시험 정도는 언제든 100점을 맞을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였기 때문이다.

주영은 혹시 부탁할 게 있으면 전화하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전화를 할 상황도 없었고, 전화를 걸 휴대폰도 없었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그래도 나중에 어떤 상황이 올지 몰라 외워두고는 있었다.

“석고! 너! 공부! 가르쳐 준다며!”

명수가 씩씩대며 교실로 들어왔다.

“응? 갑자기 들어와서 무슨 소리야?”

“시험 다음 주 월요일이라며? 그거 왜 안 가르쳐 줘?”

“몰랐어?”

“몰랐지. 당연히 몰랐지. 안 가르쳐 주는데 어떻게 알아? 방금 영철이가 안 알려 줬으면 나 큰일 날 뻔 했단 말이야.”

영철이는 명수의 짝이었다. 단유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선생님, 얘가 몰랐다는 데요?”

명수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단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5반 담임선생님이 붉어진 얼굴을 하고 명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명수야.”

으르렁.

“서, 석고야. 나 공부하러 간다. 안녕. 저녁에 봐.”

명수는 급히 교실을 뛰쳐나가려 했다. 교실 뒷문을 지키고 선 4반 선생님만 없었다면.

“명수야. 도대체 넌 지금 수업시간이란 걸 아니, 모르니?”

“어? 몰랐어요. 정말요.”

“인. 명. 수!”

명수의 뒷덜미를 잡은 5반 선생님의 일갈에 명수가 찔끔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아이들이 와~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단유도 피식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오늘 저녁부터 특별과외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명수는 맨날 왜 저래?”

단유 옆에 있던 유림이 툴툴댔다. 언제나 부끄러움은 남의 몫이라던가? 단유는 연한 웃음을 담아 대답했다.

“저래야 명수지.”

“하긴 그래.”

유림도 쉽게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명수를 싫어하는 아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명수는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초등학교에서 리더십이 가장 강한 아이는 반장도 아니고 전교회장도 아니었다. 바로 축구 잘하는 아이였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체육시간, 틈날 때마다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게 초등학교였다. 운동장으로 달려 나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결국 축구밖에 없었다. 야구를 할 수도 없었고, 농구를 즐기기에도 키나 기술이 되지 않았다. 결국 가장 손쉽게 즐길 운동은 축구 밖에 없으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축구를 잘하는 아이를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그리고 명수는 축구를 잘하는 아이였다. 때문에 반장이 아니더라도 5반의 남자 아이들은 명수를 중심으로 뭉쳤고, 명수가 운동장에서 내리는 지시에 따르는 것이 함께 축구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체육부장이 된 후, 명수의 영향력, 리더십은 4학년 전체를 아우를 정도가 되었다. 직접 나서서 반 대항 경기를 벌이기도 하고, 철용의 도움 아래 고학년들과의 경기도 종종 벌였던 것이다.

게다가 명수는 설령 축구를 못하는 아이가 있어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만큼 자기가 뛰면 된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움직이는 아이였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5반이든 4반이든 아이들은 명수를 싫어하지 않았다. 축구도 잘하고 쾌활한 성격의 명수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이상하다고 취급 받을 정도였다.

“패스!”

단유는 잡고 있던 공을 허공에 띄었다가, 오른 발로 힘차게 걷어찼다. 날아간 공은 언제나처럼 명수 앞에 정확히 도착하였다.

“나이스!”

단유는 한숨을 쉬었다. 분명히 오늘 저녁부터 공부를 하자고 하교할 때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쩌다보니 또 명수의 조름에 못 이기고 이렇게 보육원 더비에 끌려 나왔다. 저녁식사 후에는 꼭 공부를 시키겠노라 다짐하던 와중에 골문을 향해 공이 날아오고 있었다. 단유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좌측으로 뛰었다. 힘껏 손을 뻗어 막으니, 공이 손을 맞고 위로 튀었다. 코너킥이 되긴 했지만, 일단은 골이 될 뻔 한 공을 막았으니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역시 석고!”

운동장을 힘차게 가르며 달려온 명수가 손을 뻗었다.

―짝!

두 사람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

“선생님! BP(혈압) 떨어지는데요?”

“이런! 수혈팩 더 빨리 짜! 어서!”

ECG(심전도모니터)가 미친 듯이 울어대고 있었고, 의사는 비명을 지르듯 지시를 내렸다. 온 몸에서 쏟아내는 땀방울이 가운을 적실 정도임에도 가슴을 압박하는 손을 멈추지 못했다.

“양 선생, 이 선생이랑 자리 바꿔. 아트로핀은 어딨어!”

“여기요, 선생님!”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던 의사가 이 선생으로 바뀌고, 양 선생은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쉴 틈은 없었다.

“과장님 호출하고, 수혈팩 더 가져와! 서둘러!”

한편, 혜린의 부모는 중환자실 바깥에서 두 손을 꼭 부여잡고 기도를 했다. 아무리, 아무리 해도 들어주지 않는 기도였지만 세상이 끝나더라도 멈추지 않을 기도였다.

“하느님. 제발 우리 딸, 우리 혜린이가 일어날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 눈만 뜨게 해주세요. 제 모든 걸 버릴 테니, 차라리 절 데려가시고 우리 혜린이는 살려주세요. 아무 죄도 없는 아이예요. 이제 막 꽃을 피우려는 아이예요. 그 아이를 아껴주세요. 착한 아이잖아요. 착한 아이한테 이러는 건 아니잖아요. 세상 누구보다 착하고 맑은 아이잖아요. 제발 살려주세요.”

눈물이 떨어져 차가운 바닥에 검은 점이 되었다. 금방 말라버릴 것 같은 눈물자국은 마르기는커녕 점점 더 넓어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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