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07화 (107/956)

아름다운 이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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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주영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그 전에 보육교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받는 과정이 있었지만, 역시나 명함의 힘은 대단했던 건지, 이후에 보육원까지 데리고 오겠다는 약조를 받은 후 단유의 외출이 허락되었다.

단유는 자신이 탄 고급 승용차의 안락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껏 타고 다녔던 통학차와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단유와는 별로 이야기를 나눈 바도 없어, 그저 묵묵히 운전만 하고 있던 주영이었다.

“아저씨가 왜 절 보고 싶어 하는 거죠?”

주영은 잠시 고민을 했다. 호칭을 바꾸도록 해야 할까?

“모르겠어. 그냥··· 데리고 오라고 해서 그 말에 따를 뿐이야.”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응? 누구? 아저···씨?”

“예.”

뭐라고 해야 되나?

“대학생이야. 조금 늦깎이긴 하지만.”

재훈은 대학을 늦게 들어갔다. 고3을 마친 뒤, 외국으로 도망을 갔기 때문이다. 도피라고 해야 될까? 대학에 가기 전에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는 출국을 시도했다. 뒤늦게 알아챈 아버지가 방방 뛰었지만, 역시나 연 회장이 손자의 편에서 응원해 준 탓에 급귀국을 해야 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전 세계 가고 싶은 곳을 모두 돌아다니는 만행(?)을 저지르며 무려 3년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기념품이랍시고 나무로 깎은 정체불명의 인형을 가족들에게 하나씩 선사한 후, 수능을 쳤다. 그리고 의대에 합격했다.

“제가 아는 형도 의대에 들어갔는데.”

“그래? 어딘데?”

“청인대, 라고 하던데요.”

지방대인 것 같은데 기억에 없다.

“재훈형은 어느 대학이에요?”

“서울대.”

국내 대학 서열 1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딱히 감흥은 없었다. 단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빠르게 달리는데도 마치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 안락함과 편안함을 주는 차였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안계시고?”

“예.”

주영은 괜히 말을 꺼냈나 싶었지만, 단유는 여상하게 대답했다. 괜한 질문은 했다 싶어서 머쓱한 마음에 한 마디를 더 꺼냈다.

“한 숨 자도록 해. 도착하면 깨어줄게.”

‘그냥 자라. 그게 마음이 편하겠다.’

속마음을 감추고 이야기했는데, 아이는 대답 없이 밖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멀리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보육원과 학교 사이만을 오가던 일상이 깨졌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괜히 뭔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오후. 늦은 오후의 햇살이 썬팅지 너머에서 흐릿하게 다가와 단유의 입가를 비추고 있었다.

****

주임선생님과 4반 담임선생님이 병원에 도착했다. 선물 바구니를 사야하나를 고민하다가 중환자실이라는 말에, 일단 그냥 가기로 했다.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면회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대신 그 앞에 계시는 학부모는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돼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주임선생님이 앞으로 나서서 말을 꺼냈다. 혜린의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데, 어머니의 표독스러운 눈빛에 뒤에 서 있던 담임선생님이 찔끔 놀라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당신들이, 당신들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의자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달려들려고 했다. 옆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말리지 않았다면 멱살잡이라도 벌어졌으리라.

“여보, 여보! 참아. 선생님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래!”

“잘못이 없다니요! 우리 애가 이렇게 됐는데 잘못이 없다니!”

“보호자분들, 조용히 해주세요. 원내 정숙 지켜주세요.”

간호사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가 달려와서 말렸다.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는 어머니를 데리고 아버지가 자리를 옮기기를 제안했다. 네 사람은 병원 밖 1층의 쉼터로 나갔다. 담임선생님은 눈치 빠르게 음료수를 사들고 와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건넸지만, 당연히 받지를 않았다.

“제가 이 사람 말린 건 진짜로 당신들한테 화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요. 당신들이야말로 1차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인데 내가 참을 것 같아요? 만약, 정말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당신들. 각오하는게 좋을 거야.”

마지막 말을 뱉을 때는 흡사 인육이라도 씹어 먹겠다는 살인자의 예고처럼 들려, 두 팔에 소름이 돋았다.

“어머니, 아버지. 물론 저희가 잘못을 했습니다. 그런···.”

“하 선생님”

주임선생님이 말리기도 전에, 아버지가 먼저 담임선생님을 불렀다.

“우리 애 담임이라고 하셨죠? 그렇죠? 부디 우리 애가 무사하시길 기도하셔야 할 겁니다.”

아버지의 말에 곁에 있던 어머니마저 이를 말려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담임선생님은 너무 놀란 나머지 딸꾹질을 했다. 아버지는 두 선생님을 노려보다가, 하늘을 올려보았다. 마른세수를 하며 시선을 잠시 돌렸던 아버지가 다시 선생님들을 바라볼 때는 세상 누구보다 처연하고 연약한, 눈물 가득한 아버지의 눈으로 돌아왔다.

“우리 애가, 춤 연습을 그렇게 열심히 했다고 하더군요. 수련회에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춤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집에서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왜 이런 일에 빠지게 된 걸까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당신들 잘못이요? 아니면 운전했다는 남자의 잘못이요? 아니면 그 양아치라는 놈의 잘못이요? ···이 사람 잘못이요? 아니면 내 잘못이요? 왜 그 아이가 지금 저 위에서 호스를 달고 오늘내일하는 처지에 당해야 하냐 말이오.”

누구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버지의 분노는 슬픔으로 변해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그 절절한 물음에 선생님들마저 목이 메어왔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다른 두 사람이 있었다. 주영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올렸다. 간접적으로나마 이 사건에 얽힌 사람으로서 저 아버지의 슬픔을 그냥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었다. 재단의 힘으로 아이를 이곳으로 옮기고 수술비도 대납을 했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단유 역시 혜린이 아버지의 독백을 들었다. 다만 그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이 시점에서 필요한 일인가를 생각해보았다. 따진들 혜린이가 낫는 것도 아닌데.

“어?”

시선을 피해 주위를 보던 선생님의 눈에 단유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의 시선을 눈치 챈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 단유를 바라보았다. 단유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누구?”

혜린의 어머니가 물었다. 선생님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대답을 했다. 여기 있을 애가 아닌데?

“단유라고, 저희 반 반장이에요.”

“아, 쟤가 단유구나.”

선생님이 양해를 구하고 단유에게 다가왔다. 주영의 얼굴을 보고 간단히 목례한 다음 물었다.

“여기 어떻게 왔니?”

“이 누나랑 같이 왔어요. 재훈 형 병문안을 왔어요. 혜린이도 이 병원에 있는 건가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왕 온 김에 혜린 부모님한테도 인사하자고 권유했다.

“안녕하세요. 김단유라고 합니다.”

“반갑다. 이렇게 와줘서 고맙구나.”

혜린 어머니가 단유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버지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말을 하지 못했다. 그를 대신해서 혜린 어머니가 말했다.

“지금은 면회가 안 되기 때문에 보기가 힘들 텐데. 어쩌지?”

선생님이 단유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의아해하는 단유를 대신해 선생님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와서 혜린이가 빨리 낫기를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죠. 그렇지 단유야?”

평소 얼마나 똑똑하고 영민한 아이였는지 보여줬잖니? 부탁이니 여기서 멍청한 모습을 보이진 말아다오.

“예. 혜린이가 빨리 나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제가 아무런 힘도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까이 왔으니 제 진심이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역시! 단유 넌 대단해. 고맙다. 속으로 고마움을 표하는 선생님과 달리 혜린 어머니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쩜, 말하는 게 이렇게 의젓할까? 고맙다. 단유야. 그렇게 말해주니까 아줌마가 한결 마음이 편해지네. 고마워.”

혜린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자, 단유는 어쩐지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혜린이는요. 의지가 강한 아이였어요. 장기자랑 연습 때 다들 힘들어서 쉬자고 할 때도 끝까지 연습을 마무리하던 친구였어요. 그리고 친구들이 따라하지 못하면, 곁에서 동작을 따라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요. 평소에는 조용해서 잘 몰랐는데, 사실 굉장히 밝은 친구였어요. 노래도 곧잘 따라 부르고 친구들이 힘들어 할 때도 곁에서 웃긴 이야기로 힘을 북돋아 주기도 했어요. 힘들 때 가장 환하게 웃는 친구라는 걸 그 때 알았어요.”

어머니가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혜린이는 춤을 너무 잘 췄어요. 그래서 제가 보다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친 적도 있어요. 그 때 그랬어요. 스스로 신나서 춤을 추기도 했지만 다른 친구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멋진 춤을 추겠다고. 혜린이는 다른 사람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더 많이 땀을 흘리던 친구였어요.”

아버지도 입술을 깨물었다.

“혜린이는 쉽게 쓰러지지 않는 친구였어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아이였고요. 분명히 지금도 열심히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을 거예요. 제가 본 혜린이는 그랬으니까요.”

혜린 어머니가 단유를 껴안았다.

“고맙다. 고마워.”

선생님도 눈시울을 붉혔다. 주영은 뒤돌아섰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바라보자니 재훈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아이란 걸 알고 그랬던 걸까?

****

“어, 왔네?”

“안녕하세요.”

단유는 침상에 누워있는 재훈에게 인사했다.

“이런 모습으로 만나니 괜히 내가 미안하네.”

“아뇨. 전 이렇게 불러주실 줄 몰랐는데요.”

“왜? 내가 그냥 그렇게 갈 줄 알았어?”

“그런 생각도 있긴 했는데요. 그래도 오래 만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저한테 친절을 베풀 이유가 없잖아요?”

“내가 너한테 친절을 베풀었나?”

“형은 제가 가장 고민하던 문제를 짚어주셨어요. 그것만 해도 제게 큰 친절을 베푼 셈이죠.”

주영은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원래도 능글맞은 면을 보이던 재훈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느끼하고 능글맞은 톤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나이에 안 맞게 요상한 어투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단유라는 아이도 영···.

헛기침으로 대화의 틈을 낸 주영이 단유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는 왜 그런 말을 했던 거야? 부모님을 위로해주려고?”

“무슨 일인데?”

사정을 모르는 재훈이 먼저 되물었다. 주영은 최대한 간략하게 조금 전의 상황을 설명했다. 재훈도 궁금해 하며 물었다.

“어떤 생각이었는데?”

“별 생각은 없었어요. 누나가 말한 대로 위로하려던 것도 아니었고요. 그냥··· 혜린이 엄마 눈을 보고 있으니까, 그 엄마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그냥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줬다?”

단유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전에 혜린이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어요. 혜린이가 다친 게 누구 잘못이냐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엔 혜린이가 다친 건 누구의 잘못이다, 라고 따지는 건 지금의 상황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혜린이는 병원에 누워 있잖아요. 혜린이가 얼마나 다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일어나길 바래야죠.”

숲에서 새가 보이지 않았다. 새가 왜 보이지 않는지를 물을 게 아니라, 새를 보려고 해야 했다. 목이 마르면 왜 목이 마른지를 생각하기 전에 물을 마셔야 했다.

혜린이가 다쳐서 누워있다면, 빨리 낫기를 바라는 게 옳다.

“혜린이가 빨리 나을 수 있기를 바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혜린이도 빨리 나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는 걸 부모님이 잊지 않으셨으면 싶어서요.”

주영이 뭔가 반론을 말하고 싶어 했다.

“혜린의 어머니가 가장 바라는 건, 혜린이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요? 그건 저 역시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그 상황에서 했던 말은 사실 혜린 어머니가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일 거란 이야기였어요.”

주영은 입을 다물었다.

“혜린이는 의지가 강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였어요. 지금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예요.”

확신에 찬, 단호한 음성으로 단유는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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