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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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가 어둑해진 시간, 산 중턱에서 산 아래 국도까지 가는 좁은 비포장도로가 가장 큰 문제였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그나마 앞을 비춰주고는 있지만 마음 급한 재훈의 눈에는 한 없이 어두웠다. 덕분에 아찔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조수석의 소녀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빠르게 산길을 내려갔다.
거의 15분여를 넘게 달린 끝에야 국도에 오른 검은 색 벤츠는 거칠 것 없다는 듯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방황의 시간동안 단련된 드라이빙 스킬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가장 큰 도움은 제로백 3.9초, 최고속도 시속 290㎞의 빠른 차가 가장 크긴 했다.
“조금만··· 조금만 참아. 금방 데려다 줄게.”
재훈은 핸들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액셀을 꽉 밟았다. 속도계가 한없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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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혜린이 어떡해요?”
“혜린이는 괜찮을 거야.”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발 빠른(?) 대처와 함께 각자의 교실로 돌아갔다. 무대에서 떨어진 친구를 본 아이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고, 몇 몇 아이들은 심각한 불안 증세를 보였다. 선생님들은 최선을 다해 아이를 달래는 동시에 학교에 사실을 알린 후 지시를 기다렸다. 역시나 학교에서는 우선 기다려보라, 는 지시가 하달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지만 별 다른 지시사항은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금방 나을 거야.”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군것질거리들이 각각의 교실로 전달되었다. 본래 다음 날 캠프파이어 직전에 나눠줄 생각이었는데 지금 당장 그 쓸모를 다하게 되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속으로는 발을 동동 구르고, 하늘을 향해 혹은 불특정인을 향해 어찌해야 하냐고 하소연을 하고픈 심정이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선생님이 의연한 자세를 보여야 아이들의 동요도 가라앉을 테니까.
그 태도가 적절했는지는 둘째 치고 효과는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어수선한 가운데 아무것도 없는 교실에 앉혀두었더니 한둘씩 짝을 지어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웃음소리 비슷한 것이 새어 나오더니, 어느 샌가 교실은 토론과 화합의 광장처럼 변해버렸다.
“니가 먼저 했으니까 내 차례지.”
“아냐, 니가 먼저 했어.”
“진구야, 너 옆에서 봤지? 누가 먼저 했어?”
“···모르겠는데?”
결국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몰라도 끝은 내 순서에 끝내겠다는 남자아이들의 토론과,
“나중에 같이 자자.”
“미연이도 같이 자기로 했는데?”
“그럼 셋이서 한 이불 덮으면 되지.”
“나는? 왜 너네만 자?”
“넌 내 옆에서 자면 되지.”
한 이불 덮고 잘 사람을 구하는 화합의 장이 교실 곳곳에서 펼쳐졌다.
더러 불안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은 가장 앞에서 혜린을 목격했던 아이들이었다. 특히 가운데 자리했던 4반과 5반의 아이들은 단순히 목격만 한 것이 아니라, ‘쿵’ 하는 소리까지 들었다.
“머리 다친 거 같은데?”
“그럼 죽는 거 아냐?”
“기억상실증 같은 거 걸릴 수도 있는데?”
“그럴 일 없으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각자 조용히 대기하도록 해.”
선생님이 애써 아이들을 말려보지만, 아이들의 망상과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반장.”
담임선생님이 단유와 유림을 불렀다.
“선생님은 저기 저 누나 차타고 병원에 갔다 올 거야. 선생님이 없는 동안 5반 선생님이 우리 반 봐주기로 했으니까, 반장이 5반 선생님 말씀 잘 들어서 우리 반 아이들 도와주도록 해. 알았지?”
“예.”
단유는 같이 가면 안 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끝내 묻지 못하고 속으로 삼켜야 했다.
“유림이 너도 반장 잘 도와주고. 알았지?”
“네.”
5반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부탁을 드린 후, 선생님은 주영의 차를 타고 캠프를 떠났다.
빨간 테일 램프(Tail lamp)의 불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 서서 바라보던 단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육원에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별빛들이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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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의 검은 벤츠 쿠페 승용차가 거침없이 도로를 질주하던 중이었다. 이미 제한 속도 따위는 잊어버렸지만 다행히도 도로 위에 오가는 차가 거의 없어 위험은 덜했다. 다만 국도의 특성상 갑작스런 커브길 에서는 급하게 차를 감속시켜야만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정신을 잃은 소녀를 향해 손을 내밀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그렇게 병원을 향해 달리던 중이었다. 뒤에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차가 워낙 방음이 잘되던 탓에 웬만해선 잘 들리지 않을 텐데도 그 벽을 뚫고 들어올 만큼의 소음이 들리니 신경이 쓰였다. 룸미러를 통해 확인해보니 파란 LED 실내등을 연신 번쩍거리며 달려오는 차가 보였다.
“야, 저 차 졸라 빠르다?”
“씨발, 여기가 달리기 좋다는 소문이 나긴 났나보다. 어중이떠중이가 다 끌고 나와서 달리네.”
“벤츠 같은데?”
어중이떠중이는 아니지 않냐는 친구 말에 운전 중이던 사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씨발, 벤츠면 다냐? 어디 주인 허락도 없이 끌고 와서 길을 막고 지랄이야?”
마치 자기가 이 도로의 주인이라도 된 듯 말하는, 왁스로 한껏 머리에 힘을 주고 멋을 낸 블랙 재킷의 사내는 생긴 것과 달리 입이 걸었다. 물론 친구도 그에 못지않았다.
“병신아, 그래서 어쩔 건데?”
“씨발. 오늘 폐차 하나 만들어 볼까?”
왁스는 수동기어를 올리고 액셀을 밟았다. 은색 페라리가 스프링을 밟았다가 튀어 오르듯 앞으로 치고 나갔다. 페라리의 급작스러운 가속력에 앞서 달리던 벤츠도 여간 빠른 게 아니었지만, 곧 페라리에게 추월을 당하고 말았다.
재훈은 그런 페라리의 움직임이 영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지금 어떻게 할 방법도 없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부디 그냥 무사히 지나가는 양아치이기를 속으로 빌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재훈의 바램은 10초도 지나지 않아 무너졌다.
앞서나간 은색 페라리가 앞에서 얼쩡거리더니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페라리의 꽁무니가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 씨!”
깜짝 놀란 재훈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틀었다. 하지만 페라리는 부딪히기 직전 다시 액셀을 밟으며 거리를 늘렸다. 벤츠는 순간적인 핸들의 작동으로 오버스티어링이 날 뻔했지만 다행히 차체자세제어장치(VCD)가 제대로 작동해서 자동차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막았다.
룸미러로 그 장면을 보며 키득대던 왁스는 한 번 더 벤츠의 앞으로 가서 얼쩡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재훈도 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 아까처럼 당황하진 않았다. 하지만 갈길 급한 와중에 웬 양아치한테 걸려서 시간을 낭비할 수만은 없었다.
“젠장.”
재훈은 제로백 3.9초의 위엄을 보이리라 다짐하고, 액셀을 밟았다. 앞선 페라리를 서서히 따라가던 벤츠. 왁스는 피식 웃으며 한번 당해봐란 심정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타이밍에 맞춰 벤츠는 페라리의 옆으로 뛰어들며 페라리와 나란히 서더니 이내 뛰어난 가속력으로 페라리를 앞섰다.
“이 새끼가!”
왁스가 재빨리 액셀을 밟아보지만, 이미 가속을 내고 있던 벤츠에겐 밀려 결국 뒤를 쫓아가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와 졸라 빠르네?”
“씨발, 닥쳐봐라. 내 얌전히 보내줄라고 했는데 안 되겠다.”
그리고 둘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재훈도 필사적으로 액셀을 밟으면서 페라리가 앞서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동시에 최대한 빨리 병원에 닿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너무 급박한 순간이라 조수석을 챙기지 못하고 있지만, 부디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면서 연신 룸미러와 사이드를 보며 뒤를 견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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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린이 괜찮겠지?”
유림이 약간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잠들 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선생님들은 임시조치로 빠른 취침시간을 갖기로 합의했다. 아이들이 세면과 취침준비로 교실을 들락날락거리는 가운데, 단유와 유림은 선생님을 대신해서 아이들 취침 준비를 도왔다. 물론 5반 선생님이 먼저 와서 지시를 내려놓았고, 그에 맞춰 순서대로 아이들을 세면장으로 보내고 취침준비를 시키는 중이었다.
“괜찮을 거야.”
비록 절벽에서 떨어져보고, 산비탈에서 늑대에 쫓기다 구르기도 했었지만, 그 때랑 지금은 또 다른 문제였다. 자신이 무사했다고 해서 혜린도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무대 옆쪽에서 달려갔었기에 혜린이 떨어질 때 머리가 땅에 부딪히는 모습도 목격했던 단유였다. 앞으로 떨어지면서 팔을 짚긴 했지만 머리도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 예상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무사해야 할 텐데.”
“······.”
“단유야. 우리 기도할까? 혜린이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누구한테?”
“하느님한테 해야지?”
“효과 있는 거야?”
“TV보면 다들 이렇게 하던데?”
평소에도 종종 느끼는 부분이지만, 유림은 TV를 자주 시청하는 것 같았다. 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신에게 기도를 하는 행위가 과연 효과적이냐는 질문에 단유는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일들을 겪은 과거를 떠올리면, 차라리 신이 혜린을 다치게 한 거라고 믿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고 싶으면 해.”
굳이 하겠다는 아이를 말리고 싶진 않았다. 그건 유림의 자유니까. 다만 자기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해서 좋은 결과가 있을 리 없는 무의미한 행위니까.
‘그래, 원래 이상한 아이였지.’
이제는 단유가 이해하지 못할 말이나 행동을 해도 그러려니 하게 된 유림이었다. 슬쩍 눈치를 보다가 아이들에게 다가가 함께 기도하기를 요청했더니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함께하였다.
“우리 혜린이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세요.”
“우리 친구가 부디 아무 일 없게 해주세요.”
아멘이고, 아미타불이고 간에 단유의 관심은 끌지 못했다. 지금 당장의 관심은 과연 단유는 그 장면을 막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답은 알고 있었다.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애초에 너무 멀었다. 그리고 너무나 순간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마법이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되면 돌아오는 답은 늘 하나였다.
‘새로운 마법 수련.’
차라리 재훈의 말대로 꿈과 목표 따위를 고민하느라 시간 보내느니 새로운 마법을 하나라도 더 수련했었다면, 어쩌면 오늘의 일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막지 못했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는 조금 남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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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먼저 가신 분, 어떤 분이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주영의 차를 얻어 타고 가던 선생님이 넌지시 물었다. 뒤늦게야 신분도 정확히 모르는 낯선 남자에게 소중한 반 아이를 맡겼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건 제가 말씀드리기 곤란하네요. 대신 제가 보증하도록 하죠.”
니가 뭔데, 라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명함이 말해주니까. 10대 재벌에 속하는 연성 그룹. 그리고 거기서 출자되어 만들어진 연성 재단의 기획팀장이라면 확실하겠지.
“조그만 빨리 가주실 수 있나요?”
옆에 앉은 느슨하기 짝이 없는 선생님은 깁스를 한 손이 보이지도 않나보다. 내심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사정이 이러니 별 수 있나 싶어 그냥 간단히 대답했다.
“그럴게요.”
국산 중형 승용차가 조금 더 속도를 올려 어둠을 뚫고 도로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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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의 레이스는 점점 살벌해져만 갔다. 결코 앞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검은 벤츠와 필사적으로 앞지르려는 은색 페라리의 대결은 치열했다.
“다음 코너에서 승부다!”
왁스는 오래전에 배워뒀던 드리프트를 염두에 두고 코너로 들어갔다. 벤츠는 특별히 수를 쓰지 않음에도 차의 월등한 성능으로 인해 부드럽게 코너인과 코너아웃을 이어나갔다.
왁스는 거칠게 발을 조작하여 드리프트를 완성, 가까스로 벤츠를 앞질렀다. 코너아웃을 위한 가속력을 높이려는데, 갑자기 뒷타이어 제동력에 문제가 생겼다.
“어? 왜 이러지?”
술 취한 할아버지처럼 테일 램프가 좌우로 거칠게 잔영을 남겼다. 핸들을 조작할수록 더욱 심해지더니 이윽고 시계반대방향으로 360도를 휘돌며 도로 위에 긴 스키드마크를 남겼고.
“이런 젠장!”
앞을 가로막는 페라리를 피하려고 조작하던 벤츠는 급작스러운 페라리의 제동에 미처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채 피하려고 핸들을 틀다가 그만 페라리의 왼쪽 리어도어와 맞닥뜨렸다. 시속 200㎞로 달리던 두 차는 그렇게 부딪혔다.
―쾅!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던 벤츠는 페라리의 왼쪽 리어를 강타한 후, 옆으로 튕겨나가더니 갓길너머 가로수를 박았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충격으로 튕겨나간 벤츠는 길 가의 언덕을 굴러 도랑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 사이 페라리 역시 부딪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듯 튕겨져 도로 위를 뒹굴다가 반대편 길가로 굴러 떨어졌다.
도로 위에는 온갖 차량 파편과 긴 스키드 마크만 남았고, 조금 전까지의 소란이 무색하게 정적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