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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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쌤, 4학년이 가기로 한 수련캠프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1반 담임이자 4학년 주임을 맡은 더벅머리의 선생님이 2반 선생님에게 물음을 던졌다. 요 며칠 아이들 수련회 문제로 신경을 쓰느라 눈 밑이 검게 변했다.
“이미 안전점검이 끝났고, 다른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시설보험도 가입되어 있다고 하던데요.”
“안전점검이 끝났다는 말은 아무 문제도 없다는 뜻인가요?”
“예. 해당 캠프의 관할소방서에서 실시한 소방시설 점검도 통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 쌤이 신경 좀 써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사실 4학년이 수련회에 가는 것에 대해 말이 없지는 않았다. 모든 학교가 시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학교에서는 5, 6학년만 수련회 참석을 허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초등학생들의 안전문제 때문에 어떤 학교는 아예 수련회를 없앤 학교도 있었다. 하지만 인평초등학교는 4학년부터 수련회를 갈 수 있게 허락 했다.
학교의 수련회가 향후 학생들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는 감성적인 이유에서 실시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학생들의 정신수양과 단합, 협력, 그리고 체험 교육이라는 취지에 걸맞은 활동이라는 학부모와 학교의 종합된 의견으로 인해 시행되는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의견은 그랬다.
“요즘 방과 후에 각반에서 장기자랑을 연습한다고 들었습니다. 하는 건 좋은데, 너무 시끄럽게 음악을 틀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주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임선생님이 수첩을 보며 한마디 했다.
“요즘은 애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댄스만 하려는 거 아니에요?”
한 선생님이 푸념하듯 말을 보탰다.
“우리 때는 동요 부르고 그러지 않았나?”
“에이, 선생님 때도 춤추고 노래하고 다했죠. 선생님 나이 때면 김완선이나 소방차 아닌가요?”
그 말에 몇 사람이 키득거렸다.
“조용하세요. 잡담은 나중에들 하시고. 다른 이야기 없으시면 이만 마치도록 하죠.”
1반 교실에서 간단히 진행된 회의를 끝낸 후, 4반 선생님과 5반 선생님은 나란히 교실로 향했다.
“그 반도 댄스라면서요?”
“우리 반은 체육부장이 워낙 열성적이어서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투다. 하긴 명수라면.
“우리 반 애들도 되게 열심히 더라고요. 예전부터 그러긴 했지만, 요즘 아이들 중에는 연예인이 꿈인 애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춘기라서 그래요.”
“사춘기요?”
5반 선생님은 뒷목을 쓸며 대답을 이었다.
“조금 빠르게 사춘기가 온 애들이 독립 성향이 강하다고 하잖아요.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정신적으로 스타에게 기대는 경우가 많다잖아요. 그들의 화려함에 정신적인 의지를 하는 거죠. 그리고 스타와 동일시를 하면서 꿈을 꾸는 거죠.”
“그냥 어릴 때부터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죠.”
“노래와 춤을 그냥 좋아하는 것과 연예인을 꿈꾸는 건 별개라고 생각해요.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그 장기를 이어가려는 학생들의 태도와 연예인을 꿈꾸고 행동하는 학생들은 조금 달라요.”
“그런가?”
5반 선생님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목 뒤를 주물렀다. 짧지 않은 회의 시간을 버티느라 힘들었다는 듯이.
“원래 아이들이 한 번쯤은 그런 꿈을 꿀 수 있어요. 그런데 너무 심하게 연예인에 빠진 아이가 있다면 적절한 지도가 필요해요. 4학년이면 아직 그럴 때가 아니지만, 5학년이나 6학년 중에 연예인에 빠진 애들 있죠? 그런 애들은 수업도 빼먹고 기획사 찾아간다고 말도 없이 서울로 상경하는 경우도 있다니까 조심해야 돼요.”
교실 앞에 당도한 두 사람이 서로 갈라서기 전, 5반 선생님이 한 마디를 보탰다.
“그래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런 아이들의 의견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선생님이란 직업이 어려운 거예요. 아이들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해줄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죠.”
4반 선생님은 가벼운 목례로 선배 선생님에게 예우를 갖춘 뒤 교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댄스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자기 수업할 때보다 더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니 괜히 샘이 날 정도였다.
연습이 거듭될수록 혜린의 표정이 살아났다. 안무 대열의 가장 선두에 서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춤을 추면 뒷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혜린의 춤과 열정이 전염된 탓인지, 연습이 숙달될수록 아이들의 춤도 점점 늘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선생님은 장기자랑 대회당일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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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명수야. 준비 다 했어?”
보육교사가 방에서 짐 챙기는 것을 도왔다. 아직 어린 두 아이가 처음으로 보육원 밖에서 외박을 하게 되었다는 것에 걱정도 있었겠지만, 보다 걱정인 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명수 때문이었다. 최근에야 조금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만, 그래도 명수다.
“준비 다했어요.”
명수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속옷은 챙겼니?”
명수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보육교사가 다시 물었다.
“왜?”
“필요 없어서요.”
속옷이 필요 없다는 명수의 말에 보육교사는 이마를 짚었다.
“갈아입을 옷은?”
명수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안 가져가는데요.”
“왜? 저녁 되면 춥잖아.”
“안 추워요. 그리고 추우면 빌리면 되는데.”
“누구한테 빌려?”
명수는 자신만만하게 손가락으로 단유를 가리켰다.
“그럼 뭘 가져가는데?”
“축구공이요.”
“그걸 왜 들고 가!”
보육교사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명수가 주춤거렸다.
“제가 체육부장이거든요.”
“단유야, 넌 뭐했니? 명수가 저러는 거 못 봤어?”
설마요. 단유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보육교사는 가방에 불룩하니 솟은 공을 빼버리고 하나하나 점검해가며 짐을 쌌다. 명수는 공을 어떻게 들고 가야 하나를 고민했지만, 보육교사는 틈을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사고 치지 말고, 혹시라도 문제가 있으면 바로 담임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하던가 아니면 단유한테 이야기하도록 해. 단유는 다른 반이더라도 명수 좀 챙기고.”
명수가 영 못 미더운 보육교사의 당부를 뒤로하고 두 사람은 취침에 들었다. 명수는 베개를 베자마자 잠이 들었지만 단유는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기대감? 흥분? 이런 감정보다는 낯선 경험을 앞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지금껏 비교적 안전한 생활을 영위해 왔다지만 고작 보육원과 학교를 오가는 수준에서 생활해왔던 단유였다.
요 며칠간 선생님이 안전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보여준 시청각 자료의 영상도 떠올랐다.
“낯선 곳에서 선생님 허락 없이 돌아다니지 마세요.”
“낯선 사람의 부탁을 함부로 들어주거나 따라가면 위험해요.”
“불장난을 하면 위험해요.”
“친구들과 위험한 장난을 하지 마세요.”
솔직히 그 정도라면 위험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늑대, 스크로파, 거대 새, 수직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정도라야 위험이라고 여겨볼 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단유를 괴롭히는 것은 ‘위험요소’가 존재한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생존이 제 1의 원칙이었던 루치드와는 달리 단유라는 이름의 자신은 독립이 제 1원칙이다. 위험이 적은 사회라는 인식 하에, 생존에 매달려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려는 자세 대신 독립을 위한 준비로서 세상과 마주하기로 결심했던 단유였다.
그런데 ‘위험요소’의 상기는 지난날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자신의 결심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살지 못하면 독립도 없는 것 아닌가?’
부모도 없고, 무슬라도 없다. 여전히 자신은 한 명의 어린 소년에 불과하다. 운동을 했다지만, 그래봐야 10살의 약하디 약한 꼬마에 불과하다. 주위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위험이 닥쳤을 때, 자신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이런 걱정을 할 줄 알았다면 보다 열심히 마법을 수련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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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유로 잠 못 드는 아이가 또 있었다.
“엄마, 나 내일 실수하면 어떡하지?”
혜린이 이불을 뒤집어 쓴 상태에서 눈만 내밀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달빛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혜린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걱정 마. 혜린이가 그 동안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아마 실수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실수 좀 하면 어떠니? 우리 혜린이는 귀여우니깐 다른 친구들도 애교로 봐줄 거야.”
“그래도 무대에서 실수하면 엄청 창피할 거 같아.”
“아니야. 안 창피해 해도 돼.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거야. 설령 실수해도 당당하게 티내지 말고 하면 돼. 나 이만큼 연습했다, 하는 걸 보여주면 되는 거야. 그러면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이 모두 혜린이보고 멋지다고 할 걸?”
“정말?”
“그럼, 엄마가 거짓말 하는 거 봤어?”
“······.”
“왜 그런 눈으로 보니?”
“엄마 거짓말 자주 해.”
혜린의 어머니는 의아한 눈으로 딸을 쳐다보았다.
“언제? 무슨 말을 했는데?”
“나 별로 안 예쁘고 안 똑똑한데 맨날 아줌마들한테 거짓말하잖아.”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무슨 말이니, 너 예뻐. 예쁘고 똑똑해. 누가 너보고 안 예쁘대?”
“······.”
“누가 놀려?”
“아니. 근데 우리 반에 예쁜 애들 엄청 많은데, 난 별로 안 예쁜 거 같아. 공부도 못하고. 유림이는 부반장인데 키도 크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혜린아. 넌 정말 예쁘고 똑똑해. 시험 잘 못 본다고 안 똑똑한 거 아냐. 너 TV에서 가수들이 춤추는 거 보면 금방 따라할 수 있지?”
“응.”
“그거 아무나 못해. 한 번 보고도 금방 외워서 따라 하잖아. 머리가 좋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예쁜 것도 기준이 조금씩 다를 뿐이야. TV에 나오는 가수들이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다 예쁘다고 하잖아? 너도 그래. 유림이도 예쁘겠지만, 너도 예쁜 얼굴이야.”
아무리 엄마라지만 너무 오글거린다 싶어서 혜린은 이불을 둘러썼다.
“푹 잠을 자야 몸도 개운하고 컨디션이 좋아질 거야. 그래야 내일 춤출 때 실수 안하지. 그렇지?”
“응. 잘게요.”
어머니는 방의 불을 끄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서는 낮은 소리로 뉴스 앵커가 뉴스를 보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았다. 건물 외경이 보였다가, 인터뷰하는 장면이 보였다가, 그래프도 나오는데 어머니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혜린이 저렇게 자존감이 약해진 데는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할 때 자녀의 정신적 충격에 대해 자문도 들었지만 막상 이렇게 현실에 부딪히니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자기 때문에 부모가 이혼했다고 생각할까봐, 그 점에 대해 여러 날 동안 이야기를 했었고, 그 이후 혜린이 늘 밝은 표정을 지으며 생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조금은 안심하고 지냈는데, 갑자기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에서 마른 껍질 갈라지듯 쩍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오늘 밤 쉽게 잠들기 어려울 것 같았다.
****
“선배, 담배 끊으시죠.”
“끊었잖아?”
“전자담배도 담배예요.”
전자담배의 LED등이 반짝였다. 이윽고 선배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전자담배에는 타르가 없어서 건강에 무해해.”
“타르가 아니더라도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많이 들어 있다잖아요.”
“그거 다 언론플레이야. 담배를 안사면 세금이 덜 걷히니까 전자담배에도 세금 물리려고 하는 공작이라고.”
말해뭐하나. 귓등으로 듣지 않을 걸 알면서도 한마디 해봤다. 주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색 벤츠가 고급스런 광택을 뽐내고 있었다.
“저건 왜 끌고 온 거예요?”
“그냥, 드라이브도 할 겸.”
“나 참. 이 산 구석에 퍽도 어울리네요. 밑에 다 망가져요.”
“망가지면 새로 사면 되지.”
“우와.”
금수저스러운 답변에 주영이 입을 쩍 벌렸다.
“왜? 뭘 놀라는 척을 해? 그러는 넌 계절별로 가방 모으잖아?”
“가방이랑 저거랑 같아요?”
“같은데? 취미로 모으는 거잖아.”
범접할 수 없는 금수저였다.
“갈 때 태워줄까?”
“저도 차 가지고 왔거든요? 그리고 전 여기 남아서 일 봐야 돼요.”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서서 건물로 들어섰다. 이 외진 지역에 하나 있던 이 학교는 폐교가 된지 10년이 지났고 그 이후 각종 수련회 캠프로 쓰이면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위치가 별론가?”
“큰 길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지만, 이정도면 적당하지 않아요? 오히려 가까운 게 이상하죠.”
“그런가?”
선배는 다시 전자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내 입과 코로 짙은 연기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