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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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교실 환경이 보시다시피 많이 깨끗해졌죠.”
선생님은 뿌듯하다는 듯 연신 하이 톤의 웃음과 함께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선혜는 수첩에 마침표를 찍고, 핸드폰 녹음기능을 중지시켰다.
“예, 여기까지 할게요. 이대로 기사에 실어도 좋은 내용이겠는데요? 아마 여러 곳에서 선생님께 연락이 올지도 몰라요?”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호호. 사실 제가 한 건 하나도 없는 걸요. 애들이 다한 거죠.”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인터뷰는 끝났지만 이후에 또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터뷰이와 기분 좋게 헤어지는 것도 기자로서의 덕목이고 스킬이었다.
“그래도 선생님의 지도가 있었으니, 화목한 교실 환경이 조성된 것 아닐까요?”
“아유, 말씀도 참.”
겸양이 미덕이라,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면서도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아마도 머릿속으로는 표창장이라도 받는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선혜는 핸드폰이며, 카메라며, 수첩을 가방에 욱여넣었다.
“그럼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인사드릴게요.”
“예,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선혜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학교를 나왔다. 마감까지 2시간. 지금 빨리 차를 몰면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을 것이다. 가는 동안 정리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기사 작성하면, 아슬아슬하게나마 오케이는 받아낼 수 있으리라.
학교 본관 뒤편에 주차된 자신의 차로 이동해 운전석에 올라탄 선혜는 가방을 옆 좌석에 던져놓고 시동을 걸었다. 할아버지 코 푸는 소리 같은 시동 소음에 괜히 민망해서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도 쉬이 안심하지 못하는 것은 이 차를 바꿀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조만간 무리를 해서라도 괜찮은 연식의 중고차로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낚이지 않으리라.’
괜히 값싼 차 산다고 멀리 지방까지 찾아갔었다가 하루 종일 뱅뱅이만 돌고, 빈손으로 돌아왔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분한 마음이 들었다. 명색이 기자라는 놈이 그 흔한 수법에 당하냐고 비웃음도 많이 받았었지.
‘아이고, 이럴 시간이 없는데.’
선혜는 상념을 정리하고 주머니에 넣었던 핸드폰을 조작해서 인터뷰 녹음본을 재생시킨 후 차를 출발시켰다. 가는 중에라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정리를 한다면, 노트북 앞에서 손가락이 멈추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김단유라고 했지?’
핸드폰에서 단유의 단조롭지만 정갈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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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별 생각은 없었는데요.”
얼핏 들으면 아무 감정도 없는 목소리였다. 너무 단조롭게 들려서 오히려 나이를 의심케 만들었다. 단유를 인터뷰하기 전 상훈의 인터뷰에서는 한 문장 안에서도 단어와 호흡 사이에 감정이 널뛰기 하듯 격렬하게 움직여, 누가 듣더라도 ‘신나 죽겠어요’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인터뷰였다. 반면 단유는 마치 낯선 분위기에 딱히 긴장은 하지 않았지만 즐거운 분위기도 아닌 노련한 인터뷰이를 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지시도 없이 스스로 내린 결정 아니었니?”
“네. 맞아요.”
“그 때, 어떤 생각이 들었던 거니?”
단유는 시선을 지그시 내리고 과거의 그 때를 회상했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의견을 제시했던 걸까?
‘모델 할 만하네.’
선혜는 속으로 생각하며 슬며시 카메라를 들어 그 모습을 촬영했다. 이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개인 촬영을 끝냈지만, 욕심이 나는 그림이어서 저도 모르게 촬영을 지시했다.
―찰칵
그 소리에 정신이 들었는지, 단유가 시선을 올려 선혜를 마주보았다. 선혜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감정의 파도가 없는 잔잔한 눈에서 달빛이 부서져 반짝이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 때는요.”
선혜가 이내 카메라를 내려놓고 수첩을 들며, 단유를 응시했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상훈이가 절 오해하는 것 같았거든요. 전 상훈이를 미워하지도 않았고, 싫어하지도 않았어요. 비웃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상훈이는 제가 자기를 비웃는 거라고 오해를 한 것 같더라고요. 전 오해를 풀고 싶었어요.”
“그래서 너의 오해를 풀기 위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말을 하시면 또 오해가 생기네요.”
응?
“저만의 오해를 풀기 위한 건 아니었어요. ···전 평소에 상훈이가 교실에서 하는 모습들을 계속 보았어요. 누가 봐도 착하다고 말할 만한 일들, 혹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고 있었거든요. 상훈이는 당연히 우리 반 아이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 반 모두가 너를 비웃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훈이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오해를 푸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에 대한 오해가 아니라 우리 반 모두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었어요. 오해는 갈등을 만들고 갈등은 분쟁을 만든다고 했어요. 그리고 분쟁은 싸움이나 미움을 만든다고 들었어요. 전 그런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중간에서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게 반장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장으로서?”
“네. 저는 반장이 뭘 해야 하는 자리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반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걸 막아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반 아이들 모두가 똑같은 걸 원하고 똑같은 걸 바라지는 않으니까 당연히 부딪히는 일들이 생길 거예요. 실제로도 많이 생겼었고요. 그런 일들을 최대한 중재해서 서로가 만족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돕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선혜는 펜을 잠시 손가락 사이에서 돌리다가 툭 한 마디 뱉었다.
“혹시 정치가가 되고 싶니?”
“네?”
“니가 말한 걸 듣자니 어쩐지 정치에 대해서 공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전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요?”
“그러니?”
선혜는 입안에서 혀를 굴리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래 이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시간이 촉박하니 이를 두고 이야기를 나눌 계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선혜는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앞으로 어떤 교실을 만들고 싶니?”
“전 아무것도 안할 건데요.”
화목한 교실을 만들 거예요, 혹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교실을 만들 거예요 따위의 답변을 상상하던 선혜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아무것도 안 해? 왜?”
“제가 억지로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 반 학생들은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모두 다른 걸 원해요. 그걸 제가 억지로 바꾸려 한다는 건 무리예요. 게다가 지금 이대로도 좋은 교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굳이 어떻게 바꿀 필요가 있나요?”
“더 좋은 교실로 만들 수도 있잖니?”
“아이들이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학급회의시간에 다 얘기를 하거든요. 그것만 고쳐나가도 되는 것 같아요.”
“혹시 꿈이 뭐니?”
“······.”
단유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말할 수 없는 거니?”
“아니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뭘 하고 싶은지.”
선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정도 생각을 가진 아이라면 자신의 꿈을 섣불리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넌 정치가를 꿈꿔도 될 거 같아.”
“왜요?”
“그냥. 궁금하면 나중에 한 번 찾아봐.”
단유는 말없이 선혜를 바라보았지만, 선혜는 아무런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느긋하게 인터뷰이와 사담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
“수고했어. 다음에 또 기회 되면 보자.”
****
선혜는 사무실로 돌아와 거침없이 노트북을 두드렸고, 금세 그럴싸한 학교특집기사 한편을 만들어냈다. 오탈자와 비문 등을 간단히 훑으며 정리한 후, 데스크로 넘겼다.
“너 죽을래? 지금 몇 시야?”
“시간 지켰잖아요?”
“너 이게 한 두 번이야? 너 혼자 기사 써? 너 혼자 신문 만들어?”
“아, 죄송하다고요. 늦은 건 아닌데 너무 그러시네.”
“아이고, 두야. 내가 언제까지 봐줄 거라고 이렇게 뻗대는 거냐? 응? 나 데스크거든?”
“알거든요?
“아우, 저 개념 없는 오떡이.”
선혜는 싱긋 웃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의자에 몸을 파묻고 다리를 들어 책상 위에 올렸다. 데스크에 통과가 되면 늘 하는 세레모니 같은 행위였다. 쉽게 말하면 잘난 척 하는 중이었다. 시경팀이 아닌 사회부 기자들 중 가장 늦게 송고한 기사라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강철 멘탈의 여기자였다.
‘어쩌면 시경팀보다 늦었을 수도 있으려나?’
그러거나 말거나 선혜는 핸드폰을 들어 양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선배. 물어볼 게 있어서요. 거기 보육원 있잖아요? 아이 참. 기사 안 쓴다니깐 그러네. 그거 말고 다른 거 때문에 물어보려는 거예요. 거기 애들 있잖아요? 부모가 모두 살아있어도 보육원에서 사는 애들도 있는 거죠? ···당연히 알죠. 그냥 확인 차 물어본 겁니다. 예. 예.”
선혜는 옆머리를 긁으며 통화를 계속했다. 머릿속으로는 연신 섬광다발이 콩 볶는 번갯불처럼 이리저리 튀고 있었다. 이건 촉이었다. 분명 저 아이의 뒤에 뭔가가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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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으로 돌아온 단유는 저녁 식사 후 도서관으로 갔다. 평소 읽던 책은 잠시 놓아두고 직업과 관련된 책을 꺼내 들었다.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들을 위한 직업탐색 관련 서적이 시리즈별로 구비되어 있었다.
목차에서부터 낯익은 직업부터 생소한 이름의 직업들이 죽 나열되어 있었다. 경영 컨설턴트, 광고 AE, 방송작가, 손해사정사, 게임 마케터 등등. 이름에서 유추가 가능한 직업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직무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직업들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이렇게 많은 직업들이 바깥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단유는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서라도 이런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며, 목차를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목차의 끝에 이른 단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다음 책의 목차를 살폈다. 그리고 시리즈의 마지막 권까지 훑었다.
‘이상하네.’
단유는 다른 책을 꺼냈다. 역시 목차부터 직업들이 나열된 책이었다. 하지만 단유는 찾고자 하는 직업을 찾을 수 없었다.
“단유야, 뭐하니? 소등시간 다 돼 가는데?”
보육교사 한 분이 도서관 문 앞에서 단유를 불렀다. 그제야 정신없이 책을 읽던 단유가 주위를 둘러보니 도서관에 혼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단유는 마침 잘 됐다는 듯, 책을 들고 보육교사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응? 뭔데?”
“정치가는 직업이 아닌가요?”
“응?”
“오늘 낮에 기자님을 만났는데요, 그 기자님이 정치가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책을 찾아보는데, 책에는 정치가란 직업이 나오지 않아서요.”
“어, 아마 국회의원이라고 찾아야 하지 않을까?”
말하고도 민망한 보육교사였다. 국회의원만 정치가고, 지방의원은 정치가가 아닌가? 아니 그것보다 정치가란 게 직업인가, 를 먼저 고민했다.
“그래요?”
“어, 우선 늦었으니까 내일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 방으로 돌아가자.”
“네.”
말 잘 듣는 단유는 책을 돌려놓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보육교사는 단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괜히 뒷머리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일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마침 내일은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이라면 자원봉사자들이 오겠지? 그러면 조금 바빠지려나?’
내일은 조금 바빠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도서관의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