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93화 (93/956)

감사합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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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전, 점심시간 종이 울리고 급식을 위해 교실을 뛰쳐나가려던 아이들을 불러 세운 명수였다. 명수는 주먹을 위로 뻗으며 소리쳤다.

“오늘 이기자!”

“와!”

남자아이들이 신나게 함성을 지르고 급식실로 뛰어갔다. 명수는 씩 웃으며 자기반 반장을 붙잡았다.

“내가 석고한테 이야기할게.”

단유와의 친분을 내세우는 명수의 속내는 뻔했다. 자기가 축구 시합 대표라는 걸 뽐내고 싶은 거였다. 축구 시합이 자기 공약이기도 했지만, 생애 처음 맡은 임원직을 꽤나 자랑스러워하던 명수였다. 체육부장이 된 뒤로 교실에서 어찌나 유난을 떨 던지···. 5반 반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넌 우리 반 체육부장이니까 날 대신해서 명을 전달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반장.”

사극 톤으로 말하며 반장이 어깨에 손을 얹자, 두 손을 공수해서 화답하는 명수였다. 두 사내 녀석들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급식실로 달려갔다.

잠시 후, 명수는 운동장 근처에 있던 아이들에게 말했다.

“야, 오늘은 우리끼리 한다.”

“왜?”

“자기들이 준비가 안됐대.”

“에이, 뭐야. 쫀 거 아냐?”

“몰라, 우리끼리 하지 뭐.”

반장이 물었다.

“왜? 안한대?”

“아니, 자기들끼리 이야기가 안됐대.”

“응? 무슨 소리야? ···혹시 우리 시합하자고 말 안했었어?”

명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난 오늘 말하면 되는 줄 알았지.”

“에휴.”

반장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명수의 팔을 툭 쳤다.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부장은 당장 골문 앞으로 가도록 하라.”

“아니, 반장! 아니 반장님! 아니 반장 마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골키퍼라니요!”

“벌이다!”

“안 돼! 내가 골키퍼라니!”

명수는 머리를 감싸며 골문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이내 신나게 골문을 비우고 운동장을 질주하는 명수였다.

****

오여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차를 몰았다. 자신의 뜻대로 임원직을 맡았을 뿐 아니라 학부모들의 아들 칭찬으로 하루 종일 귀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에게도 ‘솔선수범’하는 착한 학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할 수 없이 뿌듯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그랬다. 도어락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 학원에 간 줄 알았던 상훈이 집에 와 있었다.

“너 왜 학원 안 갔어?”

책상에 앉아 노트를 보고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두 팔을 엇갈리게 품어 책상에 올려두고 노트를 보고 있던 상훈은 시선을 돌리지도, 답을 하지도 않았다.

“지상훈. 엄마가 묻잖아? 왜 학원에 안가고 왔어?”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가니 찔끔 어깨를 떠는 아들은, 그럼에도 답이 없었다.

“지상훈. 일어나.”

“···학원가기 싫어.”

여전히 시선을 노트에 둔 상훈은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다가간 오여사가 조심스럽게 상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

대답은 하지 않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는 상훈의 반응에 오여사는 가슴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누가 해코지했나? 몇 몇 엄마들한테 전화해서 수업시간에 상훈이만 발표할 수 있게 협조 좀 부탁했던 게 아이들 사이에서 문제가 된 걸까? 아니면 선생님이 뭐라고 한 걸까? 아까는 자기 앞에서 나긋나긋하게 웃더니 감히 내 아들한테 몹쓸 소리라도 했던 걸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상훈아, 엄마 봐.”

오여사는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며 상훈을 돌려 앉혔다. 상훈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무거운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보고 있자니, 오여사 가슴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뭔가가 있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무슨 일이니? 엄마한테 이야기해봐. 엄마가 다 해결해줄게. 무슨 일이야?”

“···엄마, 나 반장 안할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름.

“왜? 단유라는 애가 뭐라고 했어? 너보고? 무슨 소릴 해?”

상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이제 반장하기 싫어. 진짜 반장도 싫고 그냥 하기 싫어. 나 반장 아니잖아.”

그 후로도 상훈은 그저 반장하기 싫다는 소리만 반복했다.

“이 놈의 자식이! 이 고아 놈이!”

분명 단유라는 놈이 시샘을 한 거다. 그래서 귀한 내 아들한테 해코지를 했음이 분명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당장 그 놈 사는 집에, 아니 보육원에 쳐들어가야겠다, 마음먹은 오여사가 벌떡 일어나 현관 앞으로 향했다.

-삐리릭

도어락이 열리면서 상훈의 아버지가 들어오다 현관 앞에 서 있는 오여사를 발견했다.

“어, 당신 나 마중 나온 거야?”

이 답답한 양반이 이 시국에 속편한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오여사는 분개하며 말했다.

“아니, 여보. 지금 상훈이가 학원도 안가고 지 방에서 울고 있는데 그런 소리가 나와요?”

방금 문 열고 들어온 상훈아버지는 얼떨떨해하며 되물었다.

“왜? 왜 우는데?”

“그게 중요해요?”

“응?”

애가 울고 있으면, 왜 우는 지가 중요하지 않나?

“애가 울고 있으면 달려가서 달랠 일이지, 여기서 나랑 말장난이나 하고 있을 거예요?”

오여사의 기백에 흠칫 놀란 아버지는 서둘러 방에 들어가려다가 오여사를 붙잡았다.

“당신은 어디 가는데?”

“어디긴 어디겠어요? 우리 아들 해코지한 놈 잡으러 가지.”

“싸운 거야?”

“우리 애가 누구랑 싸울 애에요? 아니, 당신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응?”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아버지는 일단 오여사가 너무 흥분한 것 같아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대로 오여사가 밖으로 나갔다가는 무슨 사고라도 나지 싶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신, 일단 들어와서 진정해.”

“어떻게 진정하란 거예요? 지금?”

“어허! 좀 말 좀 들어. 왜 사람이 앞뒤 구분 없이 행동하려고 그래.”

오여사는 남편에게 팔목을 잡힌 채 집안으로 들어왔다. 거실로 끌고 간 아버지는 상훈을 불렀다.

“상훈아. 거실로 나와 봐라.”

어기적거리며 방에서 나온 상훈은 소매로 눈을 문지르며 등장했다. 그 모습에 더 속이 터지는 오여사가 팔짱을 끼고 씩씩거렸다. 아버지는 오여사를 옆에 억지로 앉힌 뒤, 상훈에게 물었다.

“왜 울었어?”

“······.”

상훈은 아버지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자기가 왜 우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눈물이 났을 뿐이었다.

“왜 울었어?”

“그냥요.”

“그냥?”

“······.”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얘기해 봐.”

상훈은 그제야 더듬거리며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단유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애들이 다들 그러자고 했어요.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밥을 먹는데, 아무도 제 말을 안 들었어요. 그래서 진짜 반장하기 싫어졌어요.”

“진짜 반장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상훈이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아버지도 옆에 앉은 오여사를 쳐다보았다. 오여사는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날, 오여사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

월요일, 평소와 다름없이 교실로 들어온 단유는 문득 지난주와 다른 점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왁자지껄한 교실이지만 언제나 그 중심에 있던 상훈이 보이지 않았다. 상훈의 자리로 눈을 돌리니, 언제나 자신보다 일찍 등교하던 상훈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유는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시선을 돌렸다.

‘오늘 1교시는 학급회의고, 2교시는 수학이네···.’

조례가 시작하기 전, 상훈이 뒷문으로 들어와 자리를 찾아갔다. 몇 몇 아이들이 손을 들며 반겼지만, 평소라면 활짝 웃으며 이름을 불렀을 상훈은 낯선 듯이 어색하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자, 오늘은 1교시 학급회의죠? 반장?”

단유는 교단 위로 올라가 학급회의를 시작했다. 선생님이 정해준 식순에 따라 학급회의를 진행한 단유는 이번 주 학급회의 주제를 발표했다.

“지난주에 정한 것과 같이 이번 주 학급회의 주제는 급식 순서에 대해서입니다. 순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늘 늦게 식판을 받아야 하는 점이 부당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기에 이에 대해 논의를 하려고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고 발표해 주십시오.”

그런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발표하실 분 안계십니까?”

단유가 다시 물었지만 손을 드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러자 몇 몇 아이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몰리더니, 어느새 대부분 아이들의 시선이 한 쪽으로 돌아갔다. 그 모든 시선을 받은 아이, 상훈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급회의를 지켜보던 선생님도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물었다.

“상훈아, 어디 아프니?”

상훈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요.”

아프지도 않다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왜 발표하지 않니, 라고 묻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일단 뒤로 물러난 선생님이었다. 단유는 상훈을 계속 쳐다보았다.

“지상훈 학생, 혹시 하실 말 없으신가요?”

상훈이 얼굴이 붉게 변하며, 단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단유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였다.

“내가 무슨 말 해야 돼?”

어조가 다소 날카롭다. 그렇지 않아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아이들이 더 입을 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 아이들은 소곤댔다.

“오늘 상훈이 이상하지?”

“어디 아픈가?”

단유는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지상훈 학생이 평소에 우리 반의 일에 관심이 많았고, 친구들을 많이 도와주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혹시 발언하실 내용이 있지 않은지 여쭤본 겁니다.”

“······.”

상훈은 어쩐지 속이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저 말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주말, 어머니와 아버지의 다툼 속에서 생각이 많았다. 아니 그 전부터 속이 복잡했다. 아버지는 왜 애한테 이상한 걸 시키고 그러냐, 며 어머니께 화를 냈지만 상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상하다고 여기긴 커녕 뿌듯한 마음으로 ‘진짜 반장’ 역할을 했었다. 아이들은 자기를 보며 고맙다고 했고, 선생님은 똑똑하다고 칭찬했다. 교실에 떨어진 쓰레기를 찾다가 발견이라도 하면 재미있기도 했다. 아침에 등교할 때 이름을 불러주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갈 때면 길거리에서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해주는 아이들 때문에 신이 났다.

그런데, 자신이 ‘반장’이 아니라고 부정 당하자 모든 게 싫어졌다. 모든 게 헛짓거리 같았다. 아이들이 ‘반장도 아니면서’라고 놀리는 것 같았다. 잘난 척 한다고 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반장’이 자신을 보고 말을 거는 게,

‘진짜 반장도 아닌 게 왜 반장인 척 해?’

라고 놀리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 놀리는 거야? 응? 내가 잘난 척 했다고 비웃는 거야?”

아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특히 상훈의 작전을 알던 몇몇 아이들의 표정이 굳었고, 모르고 있던 아이들도 갑작스런 상훈의 돌발발언에 놀라워했다. 선생님은 당황스러운 가운데, 이 상황을 어떻게 주재해야할지를 궁리했다.

“아닙니다.”

단유가 여전히 감정 없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단유는 당황하지 않았다. 다만 이 상황에 필요한 것은 대화라고 여겼다. 그리고 대화를 시도했다.

“지상훈 학생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우선 그 점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전 지상훈 학생을 잘난 척 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으며 당연히 비웃지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지상훈 학생의 어떤 행동을 잘난 척으로 여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껏 봐온 지상훈 학생의 행동은 ‘솔선수범’하는 학생으로서 모범적인 모습뿐이었습니다. 일찍 학교에 등교하는 부지런한 학생의 모습과 친구들을 돕는 자상한 학생의 모습, 교실의 쓰레기를 줍거나 책상열 정리도 앞장서서 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범적인 학생이라고 생각했고,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상훈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아니 아이들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지난주까지 보여준 학생의 모습을 보면 지상훈 학생에 대해서 비웃는 친구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상훈 학생에게 고마워하는 친구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갑작스러운 단유의 부름에 선생님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왜?”

“주제를 바꿔도 되나요?”

“주제를?”

“예. 급식에 대한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 주제는 뒤로 미루고 다른 걸 다뤄야겠어요.”

“뭐로 바꿀 건데?”

“지상훈 학생에 대한 친구들의 고마움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교실의 아이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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