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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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루치드는 안트를 따라 숲 속을 걸어갔다. 안트는 남쪽으로 갔다. 아니, 사실 이 곳에서 동서남북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서 사실 남쪽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어, 이건가?”
“뭐가?”
안트가 걷던 걸음을 멈추고 되물었다. 여전히 그의 빨간 머리는 숲 안개 긴 어둠 속의 횃불처럼 흔들렸다. 머리 위의 광원으로부터 쏟아진 빛에 더욱 활활 타오르는 안트의 붉은 머리카락이었다.
“어제 디아트리가 한 이야기 중에 생각나는 게 있어서요. 언어가 내 생각에도 영향을 준다고 했는데요, 제가 방금 우리가 가는 방향을 ‘남쪽’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사실 남쪽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디아트리같은 말을 하는군.”
“예?”
안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몸을 돌렸다. 길 가운데로 늘어져 있던 축축한 덩굴을 잡아챈 후 옆에 선 나무에 걸치듯 던져 올렸다. 팔이 기니까 저런 것도 되는구나, 라며 감탄했다.
“그 녀석은 말주변이 없어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놈이야. 자기 머릿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꺼내는 게 힘들어서 그럴 거야. 알고 보면 우리 중에서 제일 멍청할 걸.”
서슴없이 디아트리를 깎아내리는 안트였다. 그가 정말 멍청하다면, 그의 말을 10%도 알아듣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은 자신은 뭐란 말인가.
“마침 방향을 이야기했으니 그걸 비유로 들어주마. 그 녀석은 자신이 남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면 남쪽으로만 가는 녀석이다. 다른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아. 하지만 왜 굳이 남쪽으로 가야하는가를 물으면 대답하지 못하는 녀석이지.”
처음에는 안트의 걸걸한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는데, 듣다 보니 저 목소리도 나름 들을 만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시 사람은 적응하기 나름인가보다.
“왜 그렇죠?”
“남쪽으로 가는 길 외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놈이거든. 남쪽으로 가야한다, 는 명제가 그의 머리에 있으면 오직 그것만 생각한다, 그 놈은.”
디아트리는 보이는 것만큼이나 우직한 사람인가보다.
“말하자면, 생각과 말이 일치해야 한다고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그런데 사실 그런 놈이 생각은 단순해. 오직 하나만 생각하지. 생각이 단순하니 말도 단순하게 내뱉는 거야.”
“안트는요?”
“나? 굳이 표현하자면, 남쪽 대신 북쪽으로도 가보는 거지.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굳이 남쪽으로만 가냐? 다른 방향도 가보고 그래야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지.”
지금까지 몰랐던 안트의 모습이었다. 늘 틱틱거리거나 딴지를 거는 모습만 보여서 어쩐지 불량한 반항아의 이미지였는데, 알고 보니 모범생 같은 스타일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으로 가보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왜냐고? 원래 그런 길이 스릴이 있거든.”
‘모르겠다. 무슨 생각인지.’
방금 전까지는 모범생 같았는데, 다시 불량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불량한 모범생? 그 때 안트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루치드는 혹시 속으로 한 생각을 들킨 건가 싶어 뜨끔했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무슨 소리요?”
“귀를 기울여봐라.”
가만히 있으니 여전히 숲 위로 부는 바람소리만이 두터운 지붕을 뚫고 들려왔다.
“아무것도 안 들려요.”
“아직 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안트가 루치드를 데리고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숲안개를 헤치며 나아간 그 둘 앞에 나타난 것은 작은 연못이었다.
“어, 물이네요?”
지금껏 왜 물이 생각나지 않았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물을 보자마자 갈증이 이는 것을 보니 우선 마시고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마셔도 되는 거예요?”
안트가 옆에서 긴 나뭇잎을 떼어다 루치드에게 건넸다. 그리고 자신도 잎 하나를 따서는 둥글게 말아 물을 떠 마시는 시범을 보였다. 루치드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안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줄 건 별로 없다.”
무슨 소리냐는 눈빛을 보내는 루치드를 보며 안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알려줄 게 있다면, 난 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
“네?”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이야기다.”
루치드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를 보이자, 안트가 말을 했다.
“넌 왜 이 곳에 왔다고 했었지?”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요.”
“가족을 왜 찾으려고 하지?”
“네?”
“가족을 왜 찾으려고 하지?”
“가족이니까요.”
“가족이니까 당연하다?”
“네.”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 여기지 말라는 이야기다.”
디아트리보다 더 이상하다. 말을 못 알아듣겠다는 수준을 벗어났다.
“가족은 소중한 것이냐?”
“예.”
“왜?”
막상 대답하려니 대답이 궁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그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너의 부모가 널 한 시도 빼놓지 않고 때리고 학대하는 부모라면, 그래도 너의 가족은 소중한 것인가?”
순간 머릿속에 소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미에게 가족은 소중할까?
“표정을 보아하니, 어떤 일이 있었나보군.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내 말의 요지는 니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언제나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니까.”
“의심하라는 말은요?”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은 마법사에게도 중요한 일일 텐데?”
거기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던 루치드였다.
“지톤이 마법사를 가르치다니. 이번에도 예를 들어보마. 저 물을 봐라. 방금 마시기도 했으니 저 물이 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
“예. 그렇죠.”
“지금처럼 니가 경험적으로 체득한 사실을 지식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지식 습득 과정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에는 한계가 있지. 그래서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저 잎으로 컵을 대신해 마시는 방법을 가르친 것처럼. 혹은 책을 통해서 지식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루치드가 절감한 부분이었다. 책이 아니었다면 저 세계의 그 많은 지식들을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말이다. 니가 마신 저 물이 사실 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겠느냐?”
“예?”
“왜 저 것을 물이라고 생각했지?”
“어? 저, 그러니까··· 물처럼 생겼고, 또··· 물맛도 나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스러워서 더듬거리는 루치드를 보며 안트가 이야기했다.
“니가 저 것의 정체를 알게 되는 날, 넌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예?”
루치드는 그저께 저녁에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그 때도 분명 저런 말을 했었다. 루치드는 물의 정체에 대해 물었지만, 안트는 숙제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안트는 연못 옆에 핀 노란 꽃들의 잎을 하나씩 따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걸 갈아서 음식에 넣으면 좋은 향신료가 되거든.”
이 곳에 사는 세 사람은 거의 대부분 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루치드에겐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던져놓고, 거기다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도 잡을 수 없는 숙제나 떠넘기고 말이다.
“일하지 않으면 먹을 것도 없다, 는 말 들은 적 없나?”
루치드는 미간을 좁히고는 안트 옆에 앉아 잎을 따기 시작했다.
3일차. 신테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나무 위에 서 있었다. 루치드는 신테를 따라 나무 위에, 역시, 아슬아슬하게 서서는 신테를 바라보았다.
“이틀 동안 많이 배웠어?”
그 동안 신테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더니, 조금 편하게 여겨졌다.
“아니요. 다들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설명도 잘 안 해주셔서요. 일단은 혼자 고민하면서 풀어보려고 하는 중이예요.”
“원래 지톤의 삶이 그래. 풀기 힘든 이야기에 매달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하지.”
“왜 그렇게 하나요?”
“그게 지톤의 삶이니까. 넌 마법사로서 뭘 하고 있지?”
“마법사로서요?”
딱히 마법사로서 하는 게 없던 루치드였다. 머리를 좀 더 굴려 생각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 쪽 세상에 있을 때는 좀 더 많은 마법을 쓸 수 있도록 공부도 했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 연구한 마법은 어떤 게 있지?”
“일단 불이랑, 빛이랑, 열, 그리고 마찰력 정도?”
“마찰력?”
생소하다는 표정을 짓는 신테였다. 루치드가 미끄러지는 현상으로부터 응용하게 된 마찰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야, 너 대단하구나. 마찰력이라고? 난 처음 듣는 이야기였어. 니가 만든 단어야?”
순간 말문이 막힌 루치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대답했다.
“아니요. 배운 거예요.”
“너 대단한 스승이 있었나보네. 아무튼 내가 본 마법사 중에서 가장 놀라움을 준 친구야. 세상에 마찰력이라니.”
그는 마치 새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쉴 새 없이 마찰력을 흥얼거리며 숲 위의 잎사귀들을 쓰다듬듯 쓸어내렸다.
“뭐 하시는 거예요?”
“이거? 오늘은 면요리를 먹고 싶어서 반죽하는 중이야.”
“예?”
보육원 식당에서 두 볼과 턱에 밀가루를 묻혀대며 반죽을 주무르던 윤정의 모습이 생각났다. 하지만 지금 신테의 모습에서는 그것과 단 1%도 일치하는 면이 없었다.
“나중에 보면 알게 될 일이고,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서 뭘 들었어?”
루치드는 더듬거리며 지난 이틀간 배운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더불어 혹시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에 숙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그 두 사람은 정말 대단해. 벌써 그렇게까지 나가다니. 하긴 마찰력을 이해하는 너라면 그리 어렵지는 않겠다.”
가끔 신테는 이렇게 핀트가 어긋나는 이야기로 사람을 당황시킬 때가 있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버렸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마법사가 마법을 연구하는 것처럼 지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연구하는 거야. 디아트리는 언어를 연구하지. 나는 시간을 연구하고.”
“안트는요?”
“없어.”
“없어요?”
“주제를 정하는 게 귀찮나봐.”
“그럼 연구를 안하는 건가요?”
“아니, 연구는 하지. 대신 주제가 없을 뿐이야. 그는 모든 걸 의심해.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지.”
신테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숲 위를 쓸 듯이 팔을 휘두르던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나무 아래로 손을 쑥 넣었다. 그가 손을 뺐을 때, 그의 손 위에는 하얀 밀가루 반죽 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루치드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그거 마법인가요?”
“응? 아니야. 난 지톤인걸. 지톤은 마법을 쓰지 않아.”
“그럼 어떻게······?”
“나중엔 너도 알게 될 거야. 돌아가자.”
신테는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뒤이어 루치드가 나무를 내려갔을 때, 신테는 반죽을 양손에 들고 던졌다 받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넌 왜 사물 구현 마법은 쓰지 않는 거지?”
“어, 그게 제가 아직 사물에 대한 지식이 모자라서요.”
“니가?”
마치 못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신테는 조금 심각해진 얼굴로 되물었다.
“넌 빛이나 불도 마법으로 구현해내면서 정작 사물은 구현을 못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데? 사물 구현이 더 쉽지 않나?”
그 밀가루 반죽 처럼요? 라고 묻고 싶었다. 신테는 반죽을 눈앞에 들어보였다.
“이게 뭐로 보이지?”
어제도 비슷한 질문을 들었는데.
“혹시 밀가루 반죽처럼 보이지만 사실 밀가루 반죽이 아닌 건가요? 그것도 의심해야 한다는, 그런 건가요?”
“공부는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아쉽게도 이건 그런 게 아니야. 당연히 이건 밀가루 반죽이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보이는 물건을 제대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야. 제대로 보게 된다면, 사물 구현 마법을 어려워 할 이유가 없어.”
“제대로 본다는 게 어떤 뜻이죠?”
“나무를 보고 나무라고 인식하는 것. 돌을 보고 돌이라고 인식하는 것. 물을 보고 물이라고 인식하는 거지.”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자신도 제대로 보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안트의 말 때문에 헷갈려버린 지금 상황이다.
“이런, 그럼 나도 숙제를 줘야겠는데?”
또 숙제인가? 루치드는 저도 모르게 콧잔등을 찡그렸다. 신테가 피식 웃으며 루치드의 코끝을 툭 건드렸다. 코끝에 밀가루가 묻었다.
“지금 아무것도 안 들리지?”
“예.”
조용한 숲이었다. 곤충의 소리도, 숲속에서만 사는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숲이었다.
“제대로 보는 것만큼이나 제대로 듣는 것도 중요하지. 우선 듣자. 들으면 보일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하루 종일 귀를 기울여봐. 들릴 때까지.”
뭘 들으라는 거지? 루치드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신테가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