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8화 (78/956)

수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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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톤이요?”

루치드가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사 같은 건가요?”

신테가 검지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아니, 마법사랑은 다르지. 마법사는 마법을 쓰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는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거든.”

뭔지 모르겠다. ‘진리를 찾는’ 이라는 서술이 루치드의 지식수준에서 명확히 해석되지 않았다. 진리라는 게 보물찾기 같은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디아트리가 깍지를 끼며 말했다.

“진리 혹은 진실이다. 우리가 찾는 것. 세상의 모든 진리와 진실을 찾아 눈을 밝히는 일을 한다.”

신테가 덧붙여 설명했다.

“마법사들이 사물에 담긴 이치를 탐구하듯, 우리는 세상 만물의 진리를 찾는 거야. 마법사는 그렇게 찾아낸 이치를 활용하여 마법을 사용하지만, 우리는 만물의 진리를 밝혀 바르게 세상을 보는 눈을 갖지.”

디아트리가 마침표를 찍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다.”

루치드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을 골랐다.

“진리를 밝힌다던지, 세상을 보는 눈이라는 말이 이해가 잘 안돼요. 혹시 호기심 같은 건가요? 비가 왜 내리는지 궁금해 한다거나, 우리가 사는 땅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거요.”

신테가 웃었다.

“비슷하네. 그래, 사실 호기심에서 시작할 수도 있지. 하지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더라고. 예를 들어, 요즘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시간이야.”

“네?”

“우리는 모두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곳에서 자라고 살아왔어.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눈을 마주치고 있지. 왜 이 시점에 우리가 만난 걸까?”

“······.”

뭔가 차원이 다른 질문이 나왔다. 그게 중요한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저는 그냥 우연히 이 자리에 온 거 같은데요?”

“물론 이 세상에 ‘우연’이라는 게 없겠냐, 만은 사람은 매 순간 의미를 쌓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단 한순간도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나무가 매순간 나이테를 두르듯, 사람은 의미를 쌓으며 살아간단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만남에도 의미가 있지.”

“어떤 의미요?”

디아트리가 말을 끊었다.

“이건 너에게 어려운 이야기다. 아직 니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루치드도 이해도 잘 가지 않는 대화를 계속 이어나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또래보다 더 호기심이 강한 아이라지만, 자신의 이해 범위를 벗어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갈 만큼 호기심이 강하지는 않았다. 또 달리 물어봐야 할 것도 많았고.

“돌산, 아니 경계선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죠? 저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디아트리의 입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신테가 대답을 했다.

“두 번째부터 답을 줄게. 결론만 말하면 지금은 어려워.”

“나중에는 갈 수 있다는 뜻이네요. 언제요?”

신테의 희망적인 답변에 굳어있던 얼굴이 살짝 풀렸다.

“그건 니가 노력하기 나름이지.”

“거길 넘어가기 위해 제가 뭘 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신테는 입꼬리를 올리며 기특하다는 듯 루치드의 어깨를 툭 쳤다.

“맞아. 그리고 그건 너의 첫 번째 질문과도 관련이 있지.”

그러나 더 이상의 답은 없었다. 루치드가 답을 기다리자니 뒤에 누워있던 안트가 버럭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 둘 왜 이렇게 답답한 소리나 하고 있는 거지? 하여튼 저런 놈들과의 대화라니, 끝도 없지.”

안트는 투덜대며 루치드에게 말했다.

“잘 들어. 그 돌산은 지금의 니 수준에서는 아무리 설명해 줘봐야 알 수 없어. 니가 그 돌산의 정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경계선에 대한 의문도 풀릴 거다. 그리고 그 때가 니가 저 경계를 넘어갈 수 있게 되는 날이다.”

“제 수준이요? 어리다는 말씀이신가요?”

안트는 고개를 저었다.

“니가 쓰는 마법, 아무나 다 쓸 수 있는 거야?”

“아니요.”

“나이의 많고 적음이 마법을 쓰는데 제한이 있어?”

“아니요.”

“같은 거다.”

이 사람들과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인가,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말하자면, 니가 아직 멍청해서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거지.”

“안트,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신테가 안트를 나무랐지만 안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쟤는 이렇게 말해줘야 알아 들을걸, 그렇지?”

그 말대로 루치드는 마지막 말 만큼은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디아트리가 말했다.

“내일부터 우리들과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며 생활하도록 해라.”

“예?”

“한 사람씩 따라 다니며 가르침을 얻어라. 그 가르침으로 니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면, 이 곳을 나가는 것쯤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1:1 맞춤교육을 떠올린 루치드.

“다 같이 다니는 건 아닌가요?”

“오늘처럼 셋이서 한 자리에 모여 낚시하는 일은 드물어. 각자의 일이 있으니까 말이야.”

날이 완전히 저물었는지 바깥은 완전한 어둠에 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쭐게요.”

슬슬 자리를 정리하려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저희 마을 사람들, 저희 가족, 모두 여기에 없는 건 확실한가요?”

“그래. 이미 말했지만 여기는 사람이 올 수 없는 곳이니까. 너를 제외하고 말이지.”

신테가 빙글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여기는 누가 들어오면 누구든 알 수 있다. 그런 곳이니까. 자세한 건 앞으로 알아가도록 해.”

안트는 등을 돌렸다. 안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정리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더 대화를 할 여지도 없어보였다. 침대에 누운 루치드의 머릿속에 ‘멍청한 놈’이란 말이 맴돌았다.

하지만 목표는 정해졌다. 이 곳에서 빨리 나가는 것.

****

1일차. 루치드는 디아트리를 따라 나섰다. 디아트리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묵묵히 걸어갔다. 디아트리는 몸이 너무 검어서 숲 속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시야에서 놓치기 쉬웠다.

그 낌새를 눈치 챈 디아트리가 말했다.

“쫓아오기 힘든 가?”

루치드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시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어두우면 초를 들면 된다.”

문 옆에 놓여 있던 초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에 앞서 루치드가 다른 방법을 물었다.

“마법을 써도 되나요?”

디아트리가 걸음을 멈추고 루치드를 돌아보았다. 하얀 눈동자만 어둠 속에 둥둥 떠다니는 광경은 볼 때마다 어쩐지 섬뜩하다는 느낌이었다.

“써 봐라.”

루치드는 머리 위로 광원을 만들었다. 디아트리가 위를 흘깃 보더니, 다시 루치드를 보았다. 광원 덕분에 주변이 밝아졌지만 여전히 디아트리의 표정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놀랐다는 건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지, 인상을 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가자.”

디아트리는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래도 광원 덕분에 어둠속에서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게 된 루치드는 조금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한참을 걷던 디아트리가 어떤 나무 앞에 멈춰 섰다. 옆의 나무와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나무였다. 굳이 찾자면, 옆의 나무보다 색이 희미하다는 거? 그나마도 빛이 환하게 비쳐주었기에 알 수 있었다.

“이 나무는 오래 전에 죽은 나무다.”

고개를 들어보니 여전히 가지에 잎이 달려 있었다.

“이 근처에서 장작으로 쓸 만한 나무는 오직 이 뿐이다.”

디아트리는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를 꺾었다. 마른 나무처럼 퍽퍽한 나뭇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나뭇가지에 달려있던 잎은 어느새 낙엽처럼 노란 색을 띄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줄기에 붙은 나무껍질을 손으로 뜯어내 보니, 역시 죽은 나무였다.

“죽은 나무만 장작으로 이용한다. 그게 이 숲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철칙이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건가요?”

학교에서 자주 배우던 가르침이었다. 산에 소풍을 갈 때, 산에 함부로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이야기.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는 이야기.

“아니. 그냥 죽은 나무는 장작으로 쓴다는 것이다.”

0은 그냥 0이다, 라고 말하는 어투였다. 그러고 보면 디아트리는 항상 핵심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어법을 사용했다. 미사여구를 덧붙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난 말이 많지 않다. 왜냐하면 말은 오해를 부르기 쉽기 때문이다.”

또 하나, 디아트리는 어찌된 일인지 루치드의 속마음을 읽는 것 같았다. 디아트리가 나뭇가지를 또 하나 꺾어 아래로 떨어뜨렸다. 루치드는 그 나뭇가지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등에 맨 바구니에 하나씩 집어넣었다.

“말은 서로의 갈등을 해결해주는, 그런 거 아닌가요? 대화를 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그런 거요.”

“언어는 사상과 인식을 재현하고 발전시키는 수단이다.”

맞다, 틀리다도 없이 그냥 자기 할 말만 한다. 디아트리는 옆의 나무를 가리켰다.

“이 나무는 처음부터 이 모양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조금만 씨앗에서 시작되었을 거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대지 위로 싹을 틔어 점점 자라났을 것이다. 해가 갈수록 줄기는 굵어지고 높이도 높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우리가 보는 이 모습이 된 거다.”

디아트리는 더 위의 가지를 붙잡고 몸을 띄어 위로 올라갔다. 몸놀림만 보면 원숭이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다른 두 사람보다 더 몸이 묵직해 보이는 것과 달리 가벼운 몸짓이었다.

“우리가 언어가 없다면, 방금처럼 나무의 성장을 묘사할 방법이 있었을까? 몇 십 년, 몇 백 년의 세월을 함축하여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여전히 그의 굵은 목소리는 거리가 멀어지든 상관없이 루치드의 귀에 딱딱 틀어박혔다.

“그런데 한 가지를 짚어 보자. 이 나무와 저 옆의 나무는 서로 다른 나무다. 그런데 앞서 표현한 나무의 성장이 이 나무를 설명하기 위해 한 것이라고 가정하자. 나는 이 나무를 설명했지만 넌 저 나무를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있을 것 같은데요.”

“있다. 왜냐하면 그 묘사에는 이 나무를 특정 하는 표현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다시 말해서 모호한 묘사와 설명은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어차피 똑같은 나무잖아요.”

“똑같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이지. 개별적 주체로서 동일하냐, 라는 질문에는 같은 답을 할 수 없다.”

루치드는 잘못 대답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한 번 자신의 머리가 멍청한 건가, 라는 자책을 하는데, 디아트리가 말을 이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언어는 사상과 인식에 관계한다. 잘못된 단어 사용이나 불명확한 표현, 혹은 서로 합의되지 않은 이해와 개념들이 언어로 표현되면 서로의 생각이나 사상에 충돌이 일어나고, 그것은 니가 말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디아트리의 말은 길어지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되도록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그래야 진리에 다가가는데 도움이 된다.”

두 문장을 말했는데, 그 문장 사이의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리에 다가가는 길은 내 생각을 다듬는 길이다. 그런데 나의 말과 나의 표현 역시도 내 생각을 저해하거나 단정 짓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루치드는 자신이 최초에 디아트리에게 무엇을 물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걸 생각해내야 다음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디아트리와 대화를 나눈 지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아 생전 처음으로 공부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숙제를 주마. 이 숲이 얼마나 넓은지 설명해 보아라.”

“예?”

“당장 할 필요는 없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고 답하면 된다.”

그 날의 수업은 이걸로 끝이었다. 루치드는 자신이 멍청한 건지, 디아트리가 수업에 재능이 없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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