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족(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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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들 어깨에 물고기를 하나씩 걸치고 있었다. 디아트리는 4m짜리 청새치 한 마리와 3m짜리 참치 한 마리를, 안트는 3m짜리 부시리와 1m짜리 광어를, 신테는 2m짜리 농어 두 마리를 각각 짊어졌다. 반면 루치드는 네 개의 낚싯대를 둘러메고, 오른손에 10㎝짜리 노래미 한 마리를 든 채로 세 사람을 뒤따랐다.
신테는
“역시 오늘 조황이 좋았어. 그치?”
라며 희희낙락했다. 루치드는 왠지 의기소침해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디아트리가 주방으로 갔다. 서랍에서 칼을 꺼내 들더니, 같이 놓여있던 칼갈이에 대고 날을 다듬었다. 적당히 날이 섰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그제서야 선반에 올려놓은 참치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안트는 남은 물고기들을 염장하기 위해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신테가 도와주겠다며 두 마리의 물고기를 어깨에 다시 짊어지고 졸래졸래 따라 나섰다. 루치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거실을 서성거렸다.
루치드는 디아트리의 등을 보며 물었다.
“저기, 좀 도와드릴까요?”
“아니.”
뭔가 뒷말이 붙을 법도 한데, 간결하고 단호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디아트리였다. 루치드는 그냥 서있기도 뭣해서 의자에 앉았다. 시선 둘 곳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그냥 디아트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디아트리는 내장을 들어낸 후 참치의 꼬리부분을 돌려 깎듯 잘라내고 있었다.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봐라.”
디아트리가 무심하게 한 마디를 뱉었다. 꼬리를 잘라낸 그의 칼은 어느 새 참치의 머리를 가르고 있었다. 루치드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기는 어디죠?”
“에르케넨.”
“······.”
디아트리는 묵묵히 잘라낸 머리를 들어 한 편으로 치운 뒤, 뱃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여기 다른 사람들은 안 사나요?”
“그래.”
“······.”
이럴 때는, 말이 좀 많긴 해도 신테가 훨씬 대화하기 좋은 상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없나?”
더 궁금한 게 없는지 물어보는 디아트리였지만, 어떻게 더 물어봐야 할지 난감한 심정이었다.
“그럼 내가 물어봐도 되겠나?”
어?
“어, 예.”
디아트리의 칼은 멈추지 않고 계속 참치를 해체해 나갔다.
“넌 어떻게 여길 올 생각을 했지?”
“예?”
산에서 내려온 자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신 분이 그렇게 물어보시면 어떻게 대답하란 말이지? 루치드가 또 한 번 대답에 곤란함을 느낄 때, 디아트리는 도려낸 뱃살을 옆에 치우고 등을 갈랐다.
“여긴 사람들이 오지 못한다.”
산이 너무 험해서 오기 힘든 곳이다, 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왜요?”
등살마저 깔끔하게 분리해 낸 디아트리가 잠시 칼을 놓았다. 뱃살보다 등살이 더 색이 진하고 붉은 색이구나, 라고 잠시 생각했다.
“혹시 이곳에 오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느냐?”
디아트리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물었다.
“아니요. 없어요. 그러고 보니 다들 이곳이 대륙의 최남단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돌산을 넘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잠시 생각에 잠긴 루치드는 곧 말을 이었다.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저희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이곳에 오려고 했던 사람이 없었던 것 같지만, 확실하진 않네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일일이 이야기하고 나가시는 건 아니니까요. 또 우리 마을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왔을 수도 있죠.”
“없다.”
디아트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이견이란 있을 수 없다는 듯 단정을 지었다.
“예? 혹시 있을 수도 있지 않나요?”
이토록 넓은 곳에 사람이 한명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믿기 힘들었다. 겨우 세 사람이서 저 장벽 전체를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혹시 왔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건너왔다면 모를 수도 있을 테고.
“없다. 왜냐하면··· 이 곳은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땅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디아트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렸다.
“신테!”
밖에서 신테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손에는 염장을 할 때 쓰는 소금이 묻었는지 하얀 가루가 묻어 있었다.
“왜? 아직 염장 안 끝났는데?”
“안트에게 맡기고 넌 루치드 데리고 경계에 다녀와.”
“경계? 왜?”
“그냥 가서 보여주고 와.”
신테는 흘낏 루치드를 보았다. 거기가 어디예요, 라고 묻기도 전에 신테가 고개짓을 하고 집을 나섰다.
루치드는 신테를 따라 ‘경계’라는 곳을 갔다. 아직 저녁이 되기엔 이른 시간이라 빨리 갔다 오면 저녁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거라며 콧노래를 부르는 신테를 따라간 곳은 다름 아닌 예의 절벽이었다. 여전히 구름 아래로 높다랗게 치솟은 절벽의 웅장함은 고개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여긴 왜 온 거예요?”
높고 가파른 절벽은 아래에서 보기에도 아찔할 정도였다.
“너 여기로 왔다고 했지?”
“예.”
신테가 가만히 루치드를 바라봤다. 영문을 모르는 루치드는 빤히 자길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슬쩍 시선을 피했다.
“넌 저기가 뭐로 보이니?”
평소의 유쾌한 어투가 아니었다. 여전히 비음이 섞인 목소리였지만,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들렸다.
“네? 무슨··· 절벽이잖아요?”
“아, 그래. 절벽. 그래서 디아트리가 널 여기로 보냈구나.”
루치드는 대답 대신 신테를 바라보았다. 어제도 느꼈지만, 뭔가 계속 핀트가 나간 대화가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신테는 절벽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저길 경계라고 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인지의 경계선’이라고 표현해야겠지.”
처음 듣는 말이 나왔다.
“‘인지의 경계선’이요?”
“저 곳은 애초에 눈으로 보이는 곳이 아니거든. 다시 보거라.”
루치드가 눈을 돌리니, 이게 웬걸?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 있던 절벽이 보이지 않았다. 그 곳에는 하늘거리는 빛의 장막이 있었다. 루치드는 숲에서 참치를 낚아채는 모습보다 더 놀라운 광경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심정적으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땅이 무너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분명 동서로 죽 늘어선 절벽이었다. 방금 전까지도 보고 있었던 절벽이었다.
“저게 뭐죠? 아니, 방금 전까지 저기 절벽이······.”
말을 끝맺기도 어려웠다.
“그게 네가 인지했던 경계선의 이미지겠지.”
혼란스러워하는 루치드를 보던 신테가 손을 끌고 경계선에 다가갔다. 경계선에 가까워질수록 장막에 서린 빛이 투명해졌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장막이 있는 줄도 모르게 변해버렸다. 하지만 장막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 별개로 그 너머는 보이지 않았다.
루치드가 손을 내저었다.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었다. 하지만 막이 있던 자리, 그 경계를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알겠니? 저기 저 경계 너머는 네가 인지할 수 없는 공간이야. 눈으로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하지만, 전 저기서 넘어왔는데요?”
신테가 엄지와 중지를 튕겨 딱, 소리를 냈다.
“바로 그거 때문에 우리가 놀란 거지. 저긴 평범한 사람은 올 수 없거든. 우리도 마찬가지로 저길 넘을 수 없고 말이야.”
“그럼 전 어떻게 넘어온 거죠?”
신테는 대답대신 질문을 했다.
“그 전에 말이야. 넌 저길 절벽이라고 불렀어. 그렇지?”
“예.”
“그리고 반대편은 돌산이라고 했고.”
“예.”
신테는 무릎을 굽히고 루치드와 눈을 마주했다.
“아마 네가 살던 대륙의 사람들은 그 돌산을 인지하지 못할 거야. 돌산을 보지도 못했을 테고. 지금 네가 보는 장막 너머처럼. 게다가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마저 모를 거야.”
모르는 걸 모른다?
“그래서 아무도 그 곳으로, 돌산으로 오려는 생각도 안했고, 넘어볼 시도도 하지 않은 거지. 인지 너머를 향해 발을 딛는 것은 보통의 인간은 할 수 없으니까. 추측컨대, 너희 마을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은 아마도 네가 말했던 습지까지였을 거다.”
루치드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그 말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요? 사람들은 분명히 이곳, 아니 돌산을 보았을 거예요.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고요. 뻔히 보이는 걸 모를 리가 없잖아요?”
“혹시 마을 사람들 중에 너에게 돌산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이 있었어?”
루치드는 돌이켜 보았다. 그러고 보니 돌산에서 돌을 캐거나, 캐다가 다칠 것 같다고 예상했던 것은 오직 자신만의 추측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돌산을 생각하다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넘겨짚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아버지나 어머니, 그리고 다른 마을 사람들까지도 돌산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이 없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 가지 돌산을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생각났다.
“저기, 근데요. 전 돌산을 오르다가 그림을 봤어요.”
“그림?”
루치드는 돌산 고갯길에 있던 동굴에서 보았던 그림을 설명했다. 신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림은 아마도 니가 그렸을 거야.”
“네? 아니 그게 무슨······.”
“실제로 그렸다는 말은 아니고, 네가 눈으로 본 산의 이미지를 투영시킨 것이라는 거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자기 눈으로 보았고, 그 질감, 촉감, 색감을 또렷이 기억하는데 그게 그 벽화가 사실은 벽화가 아니고, 그린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라고?
루치드의 눈이 초점을 잃고 크게 흔들렸다. 신테가 두꺼운 손바닥을 들어 루치드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다시 돌산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겠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늦으면 디아트리랑 안트가 식사를 못할 거야. 그러니 우선 돌아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니?”
식사고 뭐고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루치드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저 세계로 넘어갔을 때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알던 지식, 상식, 진실이 모두 무너지고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저 세계 말로 ‘멘탈이 붕괴’된다는 것이 바로 지금의 상황이리라.
루치드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신테와 함께 집 앞에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식탁에는 디아트리가 참치회가 수북이 쌓인 접시를 내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실에 누워있던 안트가 일어나 식탁에서 접시 하나를 챙기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누웠다.
“보고 왔어?”
“이번에 바로 보던데?”
“그랬겠지.”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려는데, 디아트리가 선수를 쳤다.
“우선 먹자.”
네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수다를 떨던 신테마저도 말이 없었다. 루치드는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 배를 채울 따름이었다. 하긴 세상이 무너지는데 식사가 다 무슨 의미인가.
식사를 마친 후 컵을 하나씩 붙잡고 이야기를 나눌 준비를 끝냈다. 디아트리가 말했다.
“넌 아마도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것 같구나.”
컵을 바라보고 있던 루치드의 고개가 전광석화처럼 번쩍 들렸다.
“경계의 근처에서 우리가 처음 봤을 때, 니가 마법을 쓰려고 하던 것 같아서 말이야.”
신테가 덧붙여 말했다. 루치드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호, 혹시 디아트리도 마법사예요? 아니 세분 다 마법사예요?”
신테가 대답했다.
“아니, 우린 마법사는 아니야. 그냥 평범한··· 평범한?”
말을 잇던 신테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디아트리를 바라보았다.
“지톤이야.”
루치드의 등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안트를 바라보았다. 팔베게를 하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안트가 한쪽 발을 반대 다리 위에 올리며 말했다.
“지톤(ziton), 구도자(求道者)라고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