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76화 (76/956)

이종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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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여전히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찬 까닭에 낮임에도 주변은 햇빛 하나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숲 속이라면 구름이 있든지 말든지 어둡긴 매한가지였겠지만, 지금 루치드가 있는 곳은 구름이 너무나도 잘 보이는 곳이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루치드가 아슬아슬한 자세로 서 있는 곳은 나무의 가장 꼭대기였다. 곧게 뻗은 나무줄기에 한 발을 딛고 뻗어 나온 가지에 한 발을 걸쳐 균형을 유지한 채로 서 있던 루치드였다.

“괜찮아. 자리만 잘 잡으면 떨어질 일 없을 거야.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긴 하지.”

오늘따라 흥이 나는 건지 코맹맹이, 아니 신테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가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위에서 보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초록의 평원. 풀 대신 나뭇잎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다른 세 사람도 서 있었다. 루치드와 달리 세 사람은 아주 편안한 자세로 가지 끝에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이들이 이 곳에 온 이유는 다름 아닌 낚시 때문이었다.

“여기서 낚시가 되냐고? 당연하지! 여기가 포인트야. 특히 네가 서 있는 곳. 내가 큰 맘 먹고 양보한 거니까 잘 해보라고. 의심스러워? 그럼 옆의 나무로 가봐. 당장 조과(釣果)가 달라질걸?”

묘하게 포인트(?)가 빗나간 대답이었다. 신테가 허리에 두른 주머니에서 조그만 조약돌을 하나 꺼내 낚시 바늘에 끼우며 대답했다.

“오늘 여기 색을 보니까 조황이 좋을 것 같단 말이지. 보통 이렇게 좋기가 쉽지 않거든? 아마 네 덕분에 운이 좋을 것 같아.”

아무리 둘러봐도 여기나 저기나 똑같은 녹색의 숲이었다.

신테가 낚싯대를 크게 휘둘렀다. 바늘에 꽂힌 조약돌이 멀지 않은 나뭇가지에 맞고 숲 속으로 떨어졌다.

“지금까지는 말이야. 디아트리가 항상 대물을 낚았어. 근데 오늘은 내가 대물을 들 차례인 거 같아. 만약 정말로 대물이 나오면 그건 네가 행운을 빌려준 덕택일거야. 물론 초출은 내꺼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루치드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디아트리는 원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원래 나무의 줄기였던 것처럼, 흔들림 없이 서서 낚싯대를 붙잡고 있었다. 안트는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게, 얇은 가지 위에 등을 굽히고 앉아서 낚싯대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맞잡고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며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루치드가 안트를 바라보고 있자, 신테가 다시 재잘대듯 수다를 계속 떨었다.

“저 녀석은 말이야. 안보는 척 하면서도 다 보고 있는 건지도 몰라. 아니라면 정말 감각이 좋던지. 저렇게 멍 때리다가도 잘 낚아채더란 말이야. 방법을 알려 달래도 가르쳐주질 않아. 조황이 좋든 안 좋든 늘 일정량 이상은 낚는 선수지. 그런데.”

신테는 소곤거리듯 말했다.

“대신 대물 낚시는 별로야.”

“다 들린다.”

헛기침을 한 차례 뱉은 신테가 말을 이었다.

“별로 탐내는 것 같지도 않아.”

아무리 둘러보아도 숲일 뿐이었다. 단지 촘촘하리만치 잎사귀와 가지들이 얽혀서, 겉만 보면 걸을 수도 있을 것처럼 보여 ‘평원’이라는 비유가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빽빽하게 들어선들 푸른 잎사귀 위를 걷는 게 가능할 리도 없지만, 비유적으로 ‘푸른 바다’라고 부를 수 있을지언정 낚시를 한다는 것은―루치드의 상식으로는―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잡생각하지 말고 낚시에 집중해라.”

멀리 있던 디아트리가 숲 아래를 응시한 채로 말을 건넸다. 믿든 안 믿든 흉내라도 내볼 요량으로 신테가 끼워준 돌을 던져 숲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러고 보면, 돌을 바늘에 끼운다는 것 자체도 말이 안 되는데?

그렇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자니, 자신의 모습이 꽤 우습게 보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문득 어젯밤의 대화가 다시 떠올랐다.

****

“이름이랑 어울리지 않는군.”

“예?”

이름을 물어 보길래, 대답했더니 웬 엉뚱한 대답인가? 디아트리는 한 마디를 뱉고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대신 신테가 의아하다는 얼굴을 하고 루치드에게 질문했다.

“진짜 이름이 루치드야? 신기하네?”

“뭐가요?”

신테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음, 이름이랑 너랑 안 어울려.”

디아트리가 한 말이랑 같은 말이었다.

“저랑 어울리는 이름이 있나요?”

“아, 그런 의미는 아니야. 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신테가 고민에 빠진 디아트리를 힐끗 보며 대답을 궁리하는 사이에, 언제 돌아누웠는지 안트가 루치드를 바라보며―여전히 누운 채로―신테를 대신해 대답했다.

“니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랑 너의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야. 하긴 그러니까 여기 올 수도 있었던 거겠지.”

안트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반색하며 반응을 보이는 신테였다.

“무슨 소리야, 안트?”

안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일으켜 두 다리는 앞으로 곧게 펴고, 두 팔을 뒤로 뻗어 몸을 지탱했다. 그 자세로 루치드를 말없이 주시했다.

뭔가 벌거벗겨진 기분이 드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과 상관없이 궁금한 것은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 여러분들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침묵을 지키던 디아트리가 입을 열었다.

“사물과 이름은 하나다. 이름이 잘못된 사물은 없고, 사물은 이름을 가져야 그 가치가 있는 법이다.”

“예?”

처음으로 길게 말한 디아트리건만, 루치드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신 신테가 보충설명을 했다.

“우리 앞에 놓인 이게 뭐지?”

신테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것.

“접시···죠?”

“그래, 그런데 접시가 이 사물의 이름이라고 생각해? 아니라고 생각해?”

어? 이름인가? 아닌가? 루치드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신테는 익살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루치드의 대답을 기다려 주었다.

“이름, 은 아닌 것 같네요.”

“이름은 아니지. 그런데 이름이기도 하지.”

···말장난인가?

“그런데 이것도 접시고, 저것도 접시야. 그리고 이런 종류의 사물에 붙이는 이름은 모두 접시야. 자, 그럼 접시라는 이름에는 공통점이 있지?”

순간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공통의 성질, 특성인가요?”

신테가 씩 하고 웃었다.

“역시. 아무튼, 접시들은 공통의 특성 혹은 효용성을 가지고 있어. 반대로 그 특성이나 효용성을 지닌 사물에 대해 우리는 ‘접시’라고 부른다, 이 말이지.”

루치드에게 꽤 익숙한 이야기였다. 순간 핀체노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사람은 다르지. 사람에겐 각자의 이름이 있어. 그렇지?”

“예.”

“개인에게 붙은 이름에는 개별적인 특성이 존재해.”

“혹시 고유성질, 인가요?”

신테가 탁자를 탁 두드렸다.

“그래! 역시! 역시야. 그치? 디아트리?”

디아트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뭔가 자신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아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은데. 어리둥절해하는 루치드에게 신테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사람들은 각자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그것은 이름과 직결되지. 즉, 그 사람의 삶과 그 사람의 이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이거지.”

일단 수긍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넌 너의 이름과 묘하게 어긋난다 이 말이지. 마치 다른 삶을 사는 사람처럼 말이야.”

루치드를 뜨끔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분명 루치드는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생활과 경험을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혹시··· 관상가?

“쟤 또 우릴 이상하게 보는데?”

신테가 디아트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우리에게 이야기할 것이 있느냐?”

디아트리가 루치드에게 물었다. 물론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았다. 하지만 겨우 자기소개만 했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와중에 감춰둔 비밀이 폭로당하는 느낌에 루치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쉽사리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지?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걸까?’

“피곤해 보이는군.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 그래. 피곤해 보이네. 내일 이야기해. 저쪽 방에 들어가면 침대 있어. 거기서 자.”

루치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첫째 날이 지나갔다.

****

“아이쿠, 아깝다. 대물인 줄 알았는데.”

신테가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빈 바늘만이 허공에서 그네처럼 왔다 갔다 했다. 다시 주머니에서 조약돌을 꺼내어 낚시 바늘에 꽂은 뒤 숲 아래로 줄을 늘어뜨렸다.

숲 위를 산책하듯 여유롭게 불던 선선한 바람이 슬며시 다가왔다가 낚싯줄을 한 번 흔들고는 조용히 지나갔다. 가끔 성난 바람이 지나가면 잎사귀들이 불쏘시개 맞은 불씨처럼 화들짝 일어났다가 금세 가라앉곤 했다. 그런 와중에도 세 사람은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루치드가 선 나무가 튼튼하던지, 아니면 루치드가 가벼워서 인지 떨어질 위험은 없어보였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아슬아슬한 느낌에 땀이 송글 솟아났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지?’

라고 생각할 즈음, 디아트리가 낚싯대를 추켜세웠다. 낚싯줄에 뭐라도 걸린 듯 팽팽하게 당겨진 모습이었다.

“이야, 오늘도 추출은 디아트리 몫인 거야?”

신테가 한탄하듯 말을 꺼내자, 신호라도 된 듯 안트가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오오, 안트도? 과연 누가 먼저일까나?”

신테가 신이 난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응원을 하는 사이, 디아트리는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놨다를 반복하며 챔질을 했고, 반면에 안트는 낚싯대를 높이 들어 올린 채로 가만히 아래를 응시했다.

가장 먼저 낚싯대를 거둔 것은 안트였다. 실이 팽팽하게 된 상태에서 이쪽저쪽으로 기울이며 낚싯대를 움직이다가 한 순간 힘차게 들어 올리니, 이내 허공으로 잎사귀를 뚫고 물고기 한 마리가 뛰어올라왔다. 넓적한 몸통을 가진 거대한 크기의 물고기였다.

루치드가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바라보는데, 신테가 탄성을 질렀다.

“와, 안트! 광어다, 광어!”

대략 1m는 될 법한 크기의 물고기, 광어가 낚싯줄을 물고 허공에 뛰어올라 꼬리질을 했다. 낚싯대를 낚아채듯 당긴 안트가 긴 팔을 내밀어 광어의 머리 부분을 움켜잡았다. 그러고 보니 안트의 손가락도 보통사람보다 길어보였다. 그 긴 손가락이 광어를 붙잡자, 광어는 한차례 퍼덕이더니 이내 얌전하게 붙잡혔다.

그에 뒤이어 디아트리도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낚싯줄에 걸린 것은 족히 3m는 될 것 같은 거대한 크기의 두툼한 살집을 자랑하는 물고기였다. 저토록 연약해 보이는 나무 재질의 낚싯대가 부러지지도 않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아, 아쉽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안트를 이겼을 텐데.”

“저건 뭐죠?”

“저거? 참치. 처음 봐?”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이 처음입니다.’

참치가 숲의 잎사귀를 뚫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앞의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루치드가 얼이 빠져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는 사이, 손에 감각이 왔다. 깜짝 놀라 움켜쥐었더니 낚싯대로부터 엄청난 반동이 느껴졌다.

“너도야? 너도? 아니, 왜 나는 아직 인거야?”

신테는 투덜대면서도 루치드를 옆에서 코치해줬다.

“놓치지 마. 살살. 그래, 살살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가 살짝 놔줬다가를 반복하면서 힘을 빼줘야 돼.”

루치드의 힘이 먼저 빠질 것 같았다.

“도와줄까?”

도와주세요, 라고 말하려는 찰나 낚싯대에 걸린 힘이 약해졌다. 루치드는 저도 모르게 낚싯대를 힘차게 들어올렸다. 팽팽해진 줄을 타고 올라온 것은 역시 루치드가 알지 못하는 물고기였다.

“이야. 대단한데? 첫 낚시에 노래미를 건져 올렸네. 초출이지? 축하한다!”

루치드의 낚시에 걸린 노래미는 얼룩덜룩한 무늬의 작은 물고기였다. 대략 10㎝정도?

이만 한 놈이 그렇게 힘이 세다니. 아니 그것보다, 숲에서 이런 생선이 잡혀도 되는 건가? 루치드는 할 말을 잊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 첫 낚시에 그 정도라면 잘한 거라고.”

신테가 루치드를 위로했다. 루치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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