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9화 (59/956)

성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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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가을,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불꽃놀이를 봤다는 사람들의 목격담과 희미한 흔적의 사진들이 SNS에 올라왔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흥미를 가진 미스터리로 기억되며 곧 묻혔다. 굳이 그런 일들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건, 사고와 쓰잘데기 없는 잡담들이 넘쳐나는 시대였다. ‘좋아요’가 10만이 넘는 게시물이 넘쳐나는 SNS에서 인평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화제 거리가 될 뿐인 그 글이 관심을 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후로도 가끔 야심한 밤에 불꽃놀이를 봤다는 목격담이 학교, 상가, 기관에서 종종 이야기 거리로 거론되었지만, 역시나 도시전설 같은 괴담으로 취급되면서 점점 사람들―인평시에 사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폭죽 터지는 소리도 없었는데, 무슨 불꽃놀이야?”

“소리 없는 아우성은 들어봤어도, 소리 없는 불꽃놀이는 처음 듣는다.”

결국 그 불꽃놀이가 한 어린이에게 일생일대의 선물과도 같았다는 사실은 두 사람만의 비밀로 남았다.

****

루치드는 3학년이 되었다. 이번에도 명수는 다른 반이 되었는데, 또 공교롭게도 바로 옆 반이었다.

“야, 석고. 가자!”

루치드가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가방을 둘러멘 명수가 뒷문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명수야. 우리 아직 종례 안 끝났다.”

3학년 담임선생님이 교탁에서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아이들이 꺅,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 우린 끝났는데요?”

-딱

명수의 머리 위로 출석부가 떨어졌다. 머리를 감싸 쥔―세게 때린 것도 아닌데 아픈 표정을 지으며 엄살을 부리는―명수 뒤로 명수네 반 선생님이 서 계셨다.

“우리도 안 끝났다. 이 멍청아. 종례는 하고 나가야 할 거 아냐!”

선생님이 명수를 데리고 갔다. 루치드는 피식 웃으며 담임선생님을 바라봤다.

“쟤는 정말 변하는 게 없네.”

푸념같이, 핀잔처럼 툭 꺼낸 말이었지만, 루치드는 그저 웃음을 지으며 종례가 마치기를 기다렸다.

명수는 변함이 없었고, 여전히 루치드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 날 이후, 루치드의 마법 실력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마법을 구현함에 있어 다양한 응용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빛에 색깔을 넣거나, 거리를 조정하거나, 움직이는 동선까지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발견이었고, 발전이었다.

또 하나는 빛의 속성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것이 다른 마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불의 경우에, 예전에는 붉거나 노란 빛이 띄는 속성을 제거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보랏빛의 불도 구현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빛이 없는 불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빛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빛이 없는 불이 있을까?”

처음에는 가능할까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가시광선 바깥의 빛을 뿜어내는 불도 구현할 수 있었다. 다만, 열을 포함하는 가시광선 바깥의 빛이란 보통 적외선을 의미했다. 즉, 적외선을 다량으로 방출하는 발화 현상의 구현에 성공했다는 의미였다. 단, 이 경우에 불의 온도는 올릴 수 없었다. 적외선 자체가 파장의 특성상 에너지가 낮다. 때문에 온도를 올릴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었다.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 중의 하나는 적외선을 이용한 의료기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온열자극형 치료기법으로서 적외선을 활용해 통증의학과 등에서 이용한다고 했다.

루치드는 아직 안전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은 실험을 타인에게 구사할 수 없었기에, 무모하지만 자신에게 사용해보기로 했다.

손바닥을 편 뒤, 그 위에 불의 이미지를 투영하고 대신 적외선만이 나오도록 했다. 불의 이미지는 투명해지고 대신 열기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밤에 실험했을 때는 희미하게나마 붉은 빛이 감도는 불이었다. ‘불’을 베이스로 하는 이상, 완전히 불의 이미지를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희미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발등에 살며시 갖다 대었다. 너무 뜨거우면 바로 취소할 수 있게 준비를 하고 나서 손을 가져다 대니, 발등이 점차 따뜻해졌다. 하지만 손을 발등에 붙이기도 전에 뜨거워지는 느낌이 강해져서 금방 마법을 취소해버리고 말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루치드는 아주 천천히 열이 오르는 적외선의 구현에 성공했다. 이것은 일종의 합성마법이었다. 불의 이미지와 빛의 속성을 동시에 구현시켜 성공시킨 ‘작품’이었기에 루치드는 더할 수 없이 흥분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다행히 빠른 자제력으로 참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옆에서 곤히 자는 명수를 깨울 뻔 했다.

이후, 몇 번의 자기생체실험(!) 끝에 루치드는 자신의 방식으로 물리치료가 가능한―검증되지는 않은―적외선 치료기를 완성했다. 재료는 단순했다. 자신의 손, 그리고 마법으로 구현한 ‘불’.

캄캄한 밤만 아니면 들키지 않을 만큼 가시광선의 발현을 억제하면서 동시에 적외선 자체의 에너지 전달력을 이용, 충분한 열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루치드가 재능과 노력을 다한 끝에 ‘약손’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야, 정말 너 덕분에 피로가 싹 풀렸다. 고마워.”

고3수험생 기웅이 루치드의 손길이 닿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한 말이었다.

“할 거 없으면 마사지나 해라. 어디 가서 굶지는 않겠다.”

주말에 무리하신 행정과장님이 루치드의 손맛에 감탄하며 뱉은 말이었다.

“어젯밤에 잠을 잘못 자서 그런지 목이 계속 결렸는데, 고마워.”

오전 내내 인상을 피지 못하고 계시던 보육교사가 고마워하시면 한 말이었다.

공부에 지친 고3수험생, 업무에 시달리는 회사원, 잠 못 잔 어머니들이 모두 감탄하며 다시 찾게 되는, 약손 루치드의 마사지 효능 되시겠다.

“아 더워, 안할래.”

명수는 2분을 버티지 못하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

3학년이 되면서 교과과정에 변화가 생겼다. 국어, 수학과 통합교과로서 교양 교과목들을 배웠던 1,2학년과 달리 3학년부터는 국어와 수학 외에도 교양 교과로 통합 실시되던 부분이 분과되며 도덕, 사회, 과학, 체육, 음악, 미술을 분리하여 배우게 되었다.

특히 과학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루치드에게 새로운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일부 분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은 아니어도, 초등학교 수준은 훌쩍 뛰어넘은 루치드였지만 그 외 주제들에 대해서는 깜깜했기에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과학은 크게 ‘물질과 에너지’와 ‘생명과 지구’의 두 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루치드가 관심 있어 했던 분야는 당연 ‘물질과 에너지’였다. 특히 ‘에너지’쪽은 많은 공부와 연구, 실험이 동반되어 성과를 보인 반면, ‘물질’ 쪽은 투자한 시간이 적었던 것도 있고 이해력이 부족하기도 했다.

“여러분들 지난 시간에 선생님이 숙제를 줬어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물체들을 살펴보고 그 물체를 이루고 있는 물질이 무엇인지 알아보자고 했었죠?”

“예.”

3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의 대답에 성의가 없어졌다. 1, 2학년 때였으면 뭔지 몰라도 일단 소리 지르듯 대답했었는데. 좋게 말하면 학교 수업에 그만큼 적응했다는 말이기도 했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머리가 좀 커졌다고 할 수 있겠다.

다행히도 3학년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 7년차 베테랑 선생님이셨다. 그 정도쯤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으시는 분이었기에 오히려 귀 안 따갑고 좋네, 라며 넘어가실 분이었다.

“우리 어린이들이 많이 쓰는 지우개는 어떤 물질로 만들어 진건지 말해볼 사람?”

아이들 몇몇이 손을 번쩍 들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느긋하게 구경했다. 손들고 그러는 거 유치한 거야,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무요.”

“예, 맞았어요. 그럼 문손잡이는 어떤 물질인지 맞춰볼 사람?”

“철이요.”

오고가는 문답 속에 아이들의 지식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선생님이 들고 있는 이 구슬은?”

“유리요.”

“모래요.”

응? 이상한 답이 들렸는데?

“탄산소다, 석회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였으면 무시하고 넘어갔으련만, 어느새 주변의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 선생님께 저게 무슨 소리예요, 라고 묻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높은 온도에서 급랭시켜서 굳히면 유리가 된다고 들었어요.”

루치드가 추가 설명을 했다. 너, 2학년 때 얌전한 학생으로 변했다며?

“그, 그래요. 맞아요. 유리는 말이죠. 모래랑··· 석회암이랑···.”

“탄산소다.”

“예, 탄산소다라는 물질을 섞어서 만들어요. 다음에 선생님이 유리 만드는 영상을 여러분께 한 번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그 때 다시 유리에 대해서 자세하게 공부해 봐요. 알았죠?”

‘일단 이렇게 넘어가자, 제발.’

다행히 선생님의 소원을 알아들었는지 루치드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거둬들였다. 미소를 짓던 담임은 돌아서서 분첩으로 이마의 땀을 콕콕 찍어 닦아냈다.

반면 ‘생명과 지구’의 분야는 루치드에게 낯설지만 흥미로운 주제였다. 전혀 상이한 문명의 두 세계를 경험한 루치드였기에 이 분야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양 쪽 세계를 경험하며 의외로 두 세계가 유사한 생태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른다. 단지 이곳에 ‘스크로파’나 ‘카싸르’ 같은 몬스터가 없다는 것 정도만 어림짐작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 쪽 세계의 생태계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곳의 생태계와 자연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과학시간은 체계적이며 학술적으로 생태계를 분류하고 그 지식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소년은 마음껏 그 시간을 만끽했다.

“조금 있으면 여름이죠? 여름에 우리가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곤충은 뭐죠?”

여기저기서 다양한 대답들이 터져 나왔다. 매미부터 시작해서 모기, 파리, 거미, 나비, 나방, 잠자리 등등.

“오늘은 매미의 한 살이에 대해 한 번 알아볼까요?”

매미를 비롯한 대부분의 곤충들은 알에서 부화하여 애벌레 단계를 거쳐 성충으로 자라며, 자라는 동안 허물을 벗습니다, 라는 설명을 담임선생님은 그림 자료를 곁들여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징그럽게 생긴 번데기 사진에서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딱딱한 껍질의 매미 성충의 모습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 시간만큼은 루치드도 사진 자료와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했다. 가장 지식이 부족했던 분야였고, 숲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지만 이런 곤충의 변태(變態)과정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역시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용한’ 루치드를 보며, 내심 다행이야, 라고 되뇌었다.

3학년의 달라진 점 중의 하나는 바로 영어였다. 영어가 신설되며 국어도 제대로 모르던 아이들이 또 하나의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주당 2시간의 과목이지만 학부모들의 열의는 일주일 내내 가르쳐도 모자라다는 입장이었다.

덕분에 아이들 중 다수는 영어 과외를 받았다. 엄밀하게 실상을 들여다보자면, 이미 그 이전부터 과외를 받으며 영어를 배우고는 있었는데, 보다 본격적으로 성적 향상을 위한 사교육에 돌입했다고 봐야 옳겠다.

“Hello?”

선생님이 선창하면,

“Hi? Nice to meet you.”

라는 대답이 아이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과외를 받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감 있게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쳤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지기 싫어 외쳤다.

덕분에 선생님은 적당히 해도 다 들린다는 듯, 제스처를 취해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볼륨 다운’ 시켜야 했다. 그 정도로 아이들은 활발하게 수업에 참여했다. 선생님은 오히려 학생들의 뜨거운 열기와 수다스러움을 억지로 자제시키면서 수업을 진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이 흥분하듯 소리치며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들을 보며,

‘쟤들은 왜 저러나?’

라는 표정으로 멀뚱하게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었고,

‘난 누구? 여긴 어디?’

라며 자신감을 잃고 고개를 숙인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주로 입을 열지 않았고, 먼 산 보듯 수업에 참관하고 있었다.

루치드 역시 이 수업에서는 거의 대부분 입을 열지 않았다. 다른 수업에서도 ‘되도록이면’ 입을 열지 않았지만―2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파괴공작을 피했다―이 수업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워낙 다른 아이들이 적극적인 덕분에 선생님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루치드는 별 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루치드는 사실 이 수업을 받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루치드가 이 세계에 온 이후 받았던 것들 중 가장 큰 충격과 혼란과 쇼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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