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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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의 일은 유야무야 되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게. 다행히도 동인은 무사히 깨어났고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후 모종의 일이 있었는지 동인은 보육원을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역시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게 이루어졌다. 심지어는 보육원 직원들 중에서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지만, 위에서 워낙 쉬쉬하는 바람에 알고 싶어도 알지 못했고, 물어보지도 못하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기웅은 소수의 아는 사람에 속했다. 발견부터 동인이 다른 보육원으로 이원(移院)되기까지의 과정에 모두 개입한 유일한 보육원생이었다.
동인이 이원을 결정하고 떠나기 전날, 기웅은 동인의 방을 찾아갔다. 동인은 묵묵히 짐을 싸는 중이었다. 짐이래봐야 몇 권의 교과서와 옷가지가 전부였다.
“마음, 그대로야?”
기웅의 걱정 가득한 물음에도 동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동인이 병원에서 깨어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기웅은 동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동인이 퇴원할 때도 함께였고,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도 위로와 격려를 위해 방문한 유일한 원생이었지만 동인은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동인의 이원이 결정됐을 때 보육교사가 귀띔을 해주지 않았다면 그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동인아, 니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형도 정확히 모르니깐 조언이랍시고 해줄 말은 없다. 하지만 예전에도 말했듯이 난 니 편이야. 힘든 일이 있으면 얘기해 줬으면 해. 도와줄 일이 있다면 도울 테니까.”
챙겨야 할 짐은 이미 다 챙겼다. 그럼에도 계속 방안을 서성이며 이리저리 들추고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기웅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멈추는 순간, 기웅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으로서는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원을 결정한 것은 이대로 이 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원장에게 털어놓은 결과였다.
“무서워요. 이 곳에 있기가. 저 죽을지도 몰라요.”
라는 말을 20번 쯤 했더니 원장이 오케이 했다.
“동인아, 제발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이대로 그냥 가는 게 너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고민이든 문제든 풀어야 앞으로의 길도 열릴 거야. 그냥 이대로 가면 도망가는 것 밖에 안 될 거야. 그건 너한테 도움이 안 돼.”
사정하듯이 기웅이 말하자, 그 모습이 못내 안타깝고 미안하여 결국 동인이 몸을 돌렸다.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형. 난 여기 못 있어. 여기 있으면··· 죽을 거야.”
무슨 소리냐고 묻고 싶은데, 그게 바로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동인의 눈에서 공포와 죽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마주한 사람에게까지 전염될 듯 한 격렬한 감정의 동요가 느껴졌다.
“그건, 사고였어. 동인아. 아무도 널 죽이지 않아.”
“아니, 날 죽이려고 했어.”
“누가?”
“······.”
사실 기웅도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생이었고, 보육원 현관에서든 산 정상에서든 동인이 휘두른 폭력의 피해자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아이는 힘으로 동인을 이길 수 없었고, 무기를 들고 있지도 않았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봐도 전혀 폭력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폭력이 왜 나쁜 거냐고 묻던 소년의 순진한 눈빛을 떠올리면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일 것이다. 아니 당연한 질문일 수도 있다. 도덕과 규칙은 후천적인 가르침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고, 그 나이 때 아이들에게 법, 문화, 사회, 규칙, 도덕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의 의무이고 가정의 의무이니까.
“동인아.”
동인은 분명 죽을 고비를 겪었고, 그 상황이 동인에게 정신적 충격을 줬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든다고 피해망상에 빠진 것이다. 동인이 두 손을 깍지 끼고 다리를 떨어댔다.
“걔가 날 죽이겠다고 했어.”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기도 한다. 입술을 삐죽대는 동인.
“난 잘못한 게 없어. 소미도 내가 잘못한 게 아냐.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피해망상과 과대망상에 빠져 현실성을 잃고 사회성에 문제가 생긴다. 동인이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중얼중얼 댔다.
기웅은 고개를 돌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기웅은 동인의 방을 나왔다. 제대로 달래주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동인을 떠나보냈다.
그가 떠나는 날, 기웅은 창가에 서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문을 향해 걸어가던 동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기웅은 손을 흔들어 배웅할까 했지만 관두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기웅의 집에는 물건들이 온전히 있질 못했다. 언제나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집어던지고 깨뜨리는 바람에 금이 가거나, 고장 나거나, 아니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저 사람이 날 죽이려 한다, 면서 도망가기 일쑤였다. 아들인 기웅을 보고도 피하거나 혹은 죽이려 들었다. 아버지는 밤에 기웅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잤다. 항상 방문을 잠갔다. 새벽이 되도록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비명을 들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어느 날, 기웅은 어머니에게 붙잡혔다. 왜, 어떻게 붙잡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미안해.”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 말에 담긴 공포와 슬픔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가 나타났고, 기웅은 풀려났으며 이후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기웅은 병원으로 보내졌고, 이후 보육원으로 왔다.
지금까지도 기웅은 어떤 일이 벌어졌고 어떻게 일이 마무리 됐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두 분이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보육교사가 자신을 데리고 납골당에 찾아갔었으니까.
또 한 가지 아는 것은 조현병이란 병이 그토록 무섭다는 것. 한 가정을 순식간에 파괴시키는 무서운 질병이란 사실이었다. 그 병을 알게 된 이후, 기웅의 목표는 오로지 의대였다.
병을 고치겠다, 질병을 정복하겠다, 는 과장된 히포크라테스적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지켜야 된다는 자기 방어적인 선택이었다.
“조현병은 유전적 성향이 있다.”
기웅은 자신이 어머니처럼 될까봐 두려웠다.
동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또 한 사람. 루치드는 동인을 바라보며 무수히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 적어도 이번 사태는 루치드 개인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 악의에 가득찬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나 인간관, 세계관의 정립, 그리고 마법의 힘에 대한 과신과 통제.
하지만 그런 과제와 무관하게 지금 동인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혐오였고, 또 하나는 죄책감이었다.
루치드가 느끼는 혐오의 감정은 동인의 악의에 의해 피해자가 된 소미에 대한 감정과 연결되었다. 그녀가 얼마나 억울하게 느꼈을지,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를 이해하고 나니 동인의 배려심 없던 행동과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를 알게 되었고, 때문에 그를 미워하게 되었다. 혐오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과 동일선상에서 자신은 동인에게 같은 악의를 품었었다. 자신은 동인을 이해하려들지 않았고, 배려하지 않았으며, 죽이려고 들었다. 거의 죽기 직전에 이르도록 힘을 쓰기까지 했다. 자신이 그를 혐오하는 만큼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루치드가 이번 사태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 관심이 없으니 이해도 하지 않으려했고, 배려를 하지도 않았다. 그러고 나니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내가 그를 배려하려 들지 않으니, 남도 나를 배려하려 들지 않는다. 내가 남을 이해하려 들지 않으니, 남도 나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내가 그를 이해하려 했다면, 그도 나를 이해하려 했을까?’
그 점에서 기웅이 이미 답을 주었다. 결국 사람은 소통을 해야 했다. 소통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배려하려 해야 했다.
절로 한숨이 나올 일이다. 결국 이런 일을 직접 겪고 나서야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떠들고 외워봐야 진심으로 그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저 글줄로 된 껍데기만 머리를 채우고 있는 셈이었다. 물리학도 실험을 통해 이론을 검증하거나 반증하는데.
결론―이해와 실천이 없다면, 자신은 머릿속에 거대한 쓰레기통을 만들어 채울 뿐이다.
“난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루치드는 짐작할 수 없었다. 창문에서 시선을 돌렸다.
동인은 보육원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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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은 무척 추웠다. 너무 추웠던 나머지 수도관이 동파되는 사태가 인평시 내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수도관 동파쯤이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루도 걸리지 않아 수리공의 마법 같은 솜씨로 원상복구 되었다. 하지만 그 몇 시간의 불편도 불평거리가 되는지 인평신문에서는 몇 세대가 수도관 동파로 불편을 겪었다며 사회면 일부를 할당해 보도되었고, 인평시는 복지지원 예산을 확충해 소외지역 주민의 불편을 해소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보육원 역시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화단의 꽃이나 나무들이 동장군의 서슬에 잔뜩 웅크리고 숨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때. 하지만 아이들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뛰고 소리치고 웃었다. 아이들은 겨울에도 성장을 한다.
루치드도 성장했다. 먼저 윤정을 찾아가서 도서관에 같이 가자고 조르기도 했고, 명수와 함께 보육원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은 명수가 휘젓고 루치드가 수습하는 형태였다.
또 루치드는 기웅을 자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웅은 책을 빌려주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공부를 도와주었다. 사실 기웅은 루치드의 공부를 도우면서 여러 번 놀랐다. 영재라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될 아이가 중학교 과정의 수학을 풀어내는 것이 어디 보기 흔한 일인가. 다만 몇몇 개념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문제를 풀 때 고민을 많이 한다는 점은 초등학생 같은 면도 있었다. 사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여도, 5년 내지 6년의 시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그 시간을 살면서 각종 언론매체나 학교, 가정, 사회에서 듣고 배우는 양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단어나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그런 시간의 도움도 필요한 것이었다. 게다가 루치드가 읽은 책이라고 해봐야 초등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한정된 분량의 책에 불과하니 한계는 존재했다. 1년 동안 다 읽을 수도 없는 분량이기도 했고.
하지만 기웅은 루치드가 몇 년 안에 충분히 중학교 과정 전체를 이해할 만큼 지식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역량을 지닌 아이였으니까.
루치드 스스로의 변화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예전 처음 이 세상으로 넘어왔을 때처럼 인문, 사회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자신이 너무 한 분야에 매몰되는 바람에 편향성을 가졌다는 자각이 있은 후 부터였다. 좀 더 많은 책을 읽고 좀 더 많은 지식을 쌓아서 편중된 시야를 넓히고 자신의 가치관을 고민하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울려 공을 차기 시작했다. 물론 공을 찰 때 마법을 쓰는 일은 없었다.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었으니까.
아이들은 부쩍 그가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너무 동떨어져서 책만 읽고 있으니, 진짜 그의 별명처럼 ‘석고상’ 같았는데, 이제는 조금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석고야, 밥 먹으러 가자!”
‘석고’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은 여전했지만.
“예. 형! 형도 같이 가자.”
철용이 팔을 들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고는 씩 웃었다.
“오케이, 고고!”
“나도, 나도!”
“당연하지, 넌 안 가려고 그랬어?”
명수가 마당을 가로지르는 수탉처럼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