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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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드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동인은 억지로 냉정을 찾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돌이켜봐도 자신이 심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굳이 그 곳에서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없었다. 조용히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그르쳤다.
“씨발놈.”
저도 모르게 입에서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태엽인형처럼 방 안을 빙글빙글 맴돌며 건방진 꼬마를 어떻게 처리할 지를 궁리했다.
“동인아, 안에 있어?”
닫힌 문 밖에서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 아무것도 안했건만 큰 일 치르다 들킨 사람모양으로 덜덜거리며 물었다.
“누구세요?”
“나다. 기웅이 형. 들어가도 되냐?”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다. 지금은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기웅이 형에게까지 날을 세우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문을 열었다.
기웅이 두 손을 호주머니에 끼워 넣은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복잡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기웅은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벌써 키가 180을 넘을 정도로 키가 크고 운동신경도 좋아서 만약 고등학교에 운동부라도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모셔가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은 남학생이었다. 하지만 기웅이 다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는 운동부가 없었고, 그저 특별활동 수준의 농구부와 축구부가 있을 뿐이었다. 사실 운동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웅은 활동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개인적인 형편에서 운동부에 가입해 활동할 만한 여력이 안 된다고 판단한 이유가 하나고, 또 하나는 기웅이 바라는 것은 안정된 직장을 얻어 독립하는 것이었기에 공부에 좀 더 치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웅은 전교 수위권에 들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편이었다.
동인이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현재까지, 거의 5년 이상을 보아 온 기웅은 ‘친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상하고 똑똑하며 자신을 잘 보살펴 준 형이었다. 숙제를 도와줄 때도 있었고, 고민 상담을 들어줄 때도 있었으며 외출을 할 때도 종종 함께 나가던 사이였다. 동인이 보육원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동인아.”
여전히 친근하게 불러주는 이름.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동인은 울컥하고 말았다.
“혹시 무슨 일 있어?”
기웅은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았다. 동인이 잘못했다고 혼내지도 않았고, 사실관계를 추궁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 이유를 물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
기웅은 그런 형이었다. 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사려 깊은 남자.
“······.”
하지만 그런 형에게도 쉽게 속을 털어놓지 못하는 동인이었다.
“난 니가 쉽게 주먹을 쓰는 애가 아니란 걸 안다. 너처럼 속 깊은 애가 갑자기 그런 행동을 보였다는 건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었을 거야. 혹시 내가 도울 수 있는 문제라면 돕고 싶어. 내가 친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널 친동생처럼 생각하니까.”
미안해요, 미안해요. 속으로 삼킨 말이었다. 동인은 기웅을 마주 볼 수 없었다. 바라보면 울어버릴 것 같아서. 자신의 추악함을 들킬 것 같아서.
기웅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던 동인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내가 너무 성급했나보다. 일단 좀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정되면 그 때 다시 이야기하자. 알지? 난 니 편이야.”
이런 형에게 자신은 그리도 모질게 욕을 해댔었다. 못난 서동인. 어쩐지 자책의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았다.
기웅은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문을 닫아주고는 계단으로 가려는 찰라, 복도 한 편에 서 있던 아이와 마주쳤다. 아까 현관에서 동인에게 맞았던 아이였다.
기웅도 소문으로만 들어 얼굴 아는 정도였다. 너무 어린 아이이기에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영리하고 심성이 바른 아이라고 들었다. 사실 그 보다는 모델 뺨치는 ‘외모’로 더 소문이 났지만, 그것은 관심영역 밖의 일이었다.
“여긴 왜 왔어? 동인이 보려고?”
“예.”
목소리의 고저가 없는, 차분하고 냉정함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저러나?
“음, 저기 방에 있는데. 무슨 일인데?”
“······.”
루치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웅은 기다려도 대답이 나오지 않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기웅이 아이의 용건을 추측해보니, 사과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2차전을 벌이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생각해보니 이대로 둘을 만나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럼 혹시 그 전에 나랑 먼저 이야기 좀 할래?”
루치드는 머뭇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조금 늦춰진다고 해서 별 일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둘은 기웅의 방으로 갔다. 루치드는 들어서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남자가 쓰는 방 치고는 꽤 깨끗한데다, 무엇보다 책이 많았다. 책장에도 침대 위의 책꽂이에도,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루치드가 책장의 책들을 훑으며 호기심을 보이자, 기웅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책 좋아해?”
“예.”
자판기 음료수처럼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공부를 잘하겠구나. 근데 여기 있는 책들은 형이 읽는 것들이라 조금 어려울 텐데?”
“전 어떤 책이든 좋아요. 지금 당장 이해를 못해도 계속 읽다보면 배울 게 있을 거고 이해하는 부분도 늘어날 거예요.”
마치 자기 또래 아이가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어투다.
“아, 그렇구나. 그럼 나중에 읽고 싶은 책 있으면 언제든지 허락받고 빌려가도록 해. 당장 필요한 책만 아니라면 언제든지 빌려줄게.”
“고맙습니다.”
루치드는 감사의 뜻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그 전에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여기 앉을래?”
빈 침대를 툭툭 두드리는데 먼지 하나 없었다. 루치드는 침대에 걸터앉아 기웅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직 니 이름을 모르네. 이름이 뭐야?”
루치드는 시원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너를 ‘석고’라고 부르더라. 이렇게 좋은 이름이 있는데 말이지.”
대답을 기대한 말은 아니었는지 기웅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까 일은 내가 대신 사과할게. 형들이 동생들을 잘 보살펴야 하는 건데, 이유가 어쨌든 폭력은 나쁜 거거든.”
“···나쁜 건가요?”
으음? 예상치 못한 반응에 기웅이 잠깐 주춤거렸다. 조금 핀트가 나간 대화가 진행될 조짐이었다.
“나쁘지. 가만, 혹시 너랑 가장 친구가 누구지?”
“명수요.”
생각보다 말이 더 빨리 나온 것 같은 대답이었다. 루치드는 이제까지 굳어있던 표정이 살짝 풀리는 것을 느꼈다. 생각만으로도 자신을 기분 좋게 해주는 친구.
“명수? 같은 반이니?”
“아니요, 여기서 저랑 같은 방을 써요.”
“아, 그렇구나. 그럼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명수가 니가 가장 아끼는 물건을 망가뜨렸어. 그래서 니가 무척 화가 났다고 가정해보자. 화를 참지 못하고 친구를 때리면 넌 기분이 좋겠니?”
“아니요.”
앞의 가정이야 둘째 치고, 명수를 때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만약 누가 명수를 때린다면 그 즉시 ‘응징’을 가할 것이다.
“그래, 친한 친구를 때리는 게 기분이 좋을 리 없을 거야. 마찬가지로 명수도 친한 친구에게 맞기까지 하면 기분이 매우 안 좋을 거야.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면 명수랑 친구로 지낼 수도 없겠지?”
초등학교 1학년의 수준에 맞게 폭력의 비도덕성을 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고작 고등학교 1학년인 주제에 누굴 가르친다는 말인가. 차라리 맞춤법이나 사칙연산을 가르친다면 모를까. 콧잔등 위로 땀이 송글 솟아 미끄러졌다.
“이 세상도 비슷하단다. 사람은 살면서 다른 사람과 문제가 생길 때도 있어. 그런데 그 때마다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과 같이 살 수 있겠니? 그 사람과는 친구도 될 수 없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도 힘들 텐데? 언제 또 주먹을 휘두를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게 쉽겠니? 결국 불신, 사람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생기겠지? 그래서 폭력은 나쁘다는 거야. 폭력은 사람의 몸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마음에도 상처를 입히는 행동이니까. 또 폭력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만 자신에게도 상처를 남긴단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게 아닌 이상 사람은 함부로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되는 거야. 그것 때문에 아까도 동인이를 혼낸 거고, 너한테도 동인 대신 사과를 한 거야.”
땀에 젖은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해냈다! 라는 감정보다는 해낸 걸까? 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왜 형이 사과를 해요?”
“동생의 잘못은 형의 잘못이기도 하니까. 동생이 바르게 자라도록 돕는 게 형의 역할인데, 형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지. 너도 마찬가지란다. 만약 니가 보육원 밖에서든 안에서든 잘못하면 형이 먼저 나서서 사과할거야. 너도 내 동생이니까. 그렇지?”
루치드에게 형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 생겨난 형’이 물었다.
“그럼 아까는 왜 그 방에 가려고 했었어?”
“······.”
어쩐지 자기 생각을 곧이곧대로 이야기했다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루치드는 그냥 입을 열지 않았고, 기웅은 아이의 침묵에 단순히 ‘사과’를 하려고 갔던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짐작했다.
“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얘기해 주겠니?”
기웅은 어깨를 살짝 낮추고 루치드와 눈을 마주쳤다. 루치드는 보육교사에게 이야기한 것과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했다.
“흠. 그것만 가지고는 원인을 모르겠네. 혹시 짐작 가는 것은 있니?”
“아니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왜 그랬냐고요.”
“아, 그래서 아까 동인이 방에 가려고 했던 거야?”
루치드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바뀌기 전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으니까.
“정말 착하고 똑똑한 아이네. 하마터면 널 오해할 뻔 했어. 아까도 말했지만 서로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은 어른들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기웅이 씩 웃으며 루치드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루치드는 그 사이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 대화로 갈등을 해결···. 나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만약 모든 원인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동인을 ‘제거’하려 했다면, 앞으로도 그런 원인을 제공할지 모를 ‘사람들’을 찾아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 모든 사람을 제거한단 말이며, 그 사람들이 ‘원인’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무엇보다 자신 역시 이 ‘사회’에 속해서 살아가게 될 텐데, 이 사회에서 ‘제거’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규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아마도 ‘저쪽 세계’의 규칙이리라. 폭력과 야만의 세계, 라고 자신이 규정했던 곳의 규칙.
이 문제는 몇 번이고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이 세운 규칙과 이 세계의 규칙, 그리고 저 세계의 규칙을. 그 규칙들이 옳은 건지, 틀린 건지를 오래도록 고민해야 할 것 같았다.
이 날은 루치드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맞은 날이며, 자신의 세계관과 사회관을 고민한 계기가 된 날이었다. 또 비록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사람을 상대로 위해를 줄 수 있는 마법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던 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