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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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루치드는 광고 사진 속의 얼굴보다 훨씬 신비스러운 느낌이었다. 문득 이런 얼굴에 소미가 호감을 나타냈으리라 생각하니, 동인은 괜히 화가 났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예?”
영문을 모른다는 듯, 순진한 ‘척’을 하는 저 얼굴을 보니 가슴 속에 바위가 하나 더 얹어지는 느낌이었다.
“너 왜 째려봐?”
“예?”
루치드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동인을 쳐다보았다. 몇 번 본적도 없던 형이 갑자기 자길 불러 세우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새끼야, 왜 째려 보냐고?”
양끝이 치켜세워진 눈썹 사이의 일그러진 미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루치드는 한 발 물러서며 답했다.
“안 그랬는데요?”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본새가 영 못마땅했다.
“이 새끼가? 야, 너 내가 만만하냐? 응? 만만해?”
어깨를 툭툭 밀치며 다가오는데, 루치드로서는 저항할 이유가 없어 그저 밀쳐지는 대로 물러났다.
“니가 저기 지나가다가 나 째려보는 걸 봤는데, 안 봐? 씨발, 어디서 뻥을 치고 있어, 이 새끼야!”
그러는 사이에 식당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점점 현관 앞에 착착 쌓이고 있었다. 갑작스런 사태에 호기심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씨발, 눈 안 깔아! 눈깔 확 뽑아버릴까?”
이런 걸 ‘시비’라고 표현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당하는 상황에 놓이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잔뜩 찌그러뜨린 동인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왜’라는 단어만 떠올릴 뿐이었다.
“이 새끼, 눈 봐라. 씨발 그래 내가 만만하다, 그치? 응?”
이제는 이마를 툭툭 쳐댔다. 이해를 떠나 그냥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할 수만은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만만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쳐다본 적도 없어요. 어떤 모습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오해하신 거 같아요.”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지며 마치 ‘흉신악살’이란 표현에나 들어맞을 모습이 된 동인이었다.
“이런 개새끼가, 오해? 졸라 혓바닥 길다, 응? 애새끼가 어디서 배워먹었기에 선배한테 대들고 거짓말이야? 죽을래?”
평소에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 없던 동인의 화난 모습에 다른 아이들은 깜짝 놀라서 감히 끼어 들 생각조차 못하고 있을 때였다. 계단 쪽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삐죽 튀어나왔다.
“서동인, 너 뭐야! 왜 그래!”
어느새 윤정이 명수와 함께 다가왔다. 따라오던 루치드가 보이지 않아 되돌아왔더니, 그 사이에 이 난리가 났다.
“이 새끼가 야리고 가잖아요. 잘못을 저질러 놓고 사과도 안하고, 말대꾸나 하고.”
“정말 그랬니?”
“아니요.”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새끼가, 어디서 거짓말을 해! 너 아까 저기서 나 째려보고 갔어, 안 갔어?”
“안 봤어요.”
동인은 주먹을 휘둘렀다. 갑작스런 주먹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루치드는 그대로 얼굴에 들어맞았다. 윤정은 비명을 질렀다.
순간적인 주먹질에 놀라 주저 앉아버린 루치드에게, 동인은 주먹에 그치지 않고 발을 휘둘러 쓰러진 루치드를 걷어찼다. 이어지는 폭력에 놀란 아이 몇이 새된 비명을 지르는 사이, 남자 고등학생, 기웅이 끼어들어 동인을 말렸다.
“야, 서동인. 이게 무슨 짓이야! 원에서 주먹 쓰면 안 되는 거 몰라? 어디서 애들을 때려!”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기웅을 보던 동인이 제 화를 참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아, 씨발. 이 새끼가 자꾸 구라치잖아요. 열 받게.”
순간 멍, 했던 기웅이 정신을 차리고 일갈했다.
“야, 너 형 앞에서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너 왜 그래?”
“아, 진짜. 씨···. 졸라 열 받네.”
“뭐?”
홱 얼굴을 치켜들며 기웅을 노려보는 동인.
“형이 뭔데? 엉? 형도 뭐, 씨발 저 새끼랑 짰어? 왜 나한테만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그래? 저 새끼가 잘못했다고. 잘못했다니깐? 근데 왜 나한테 그래? 내가 거짓말 했어? 내가 잘못한 거야? 잘못한 거냐고!”
소리를 꽥 질러대는 동인의 악기(惡氣)에 기웅을 비롯한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현관 앞이 싸늘해질 쯤.
“이게 무슨 짓이야! 다들!”
보육교사가 소란 통에 나타났다. 몇 몇 아이들이 물러서며 그 자리로 교사가 다가왔다. 둘러보니 루치드는 바닥에 쓰러져 있고, 그 곁에 윤정이 붙어 부축을 해주고 있었다. 반대편에 동인이 씩씩거리는 와중에 키가 큰 기웅이 가운데 서서 싸움을 막는 모양새였다.
“무슨 일이야. 기웅이 너, 얘기해 봐.”
기웅은 자신이 본 장면부터 설명을 했다.
“너희 둘 따라오고, 나머지는 다 제 방으로 올라가. 어서!”
교사의 명령에 아이들은 평화를 쫓는 비둘기 무리들처럼 우르르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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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부터 얘기해봐.”
교사는 동인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지만, 입을 꼭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 중인 동인이었다.
“니가 얘기해 봐.”
어느새 한 쪽 볼이 부어오른 루치드는 그 때까지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동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교사가 보기에 루치드의 눈에서 눈빛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때린 동인을 노려본다거나, 더 큰 힘을 보인 형을 무서워하는,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감정 없는 눈빛? 벽을 바라보는 눈빛? 루치드는 그런 눈으로 동인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래서 윤정이 누나가 명수를 데리고 외출 허락을 받기 위해 올라가고, 그 뒤를 제가 따라가는데 이 형이 절 불렀어요. 그래서 돌아봤고 제가 자신을 째려봤다면서 사과하라고 하셨고, 전 보지 않았다고 이야기 했어요.”
누가 때렸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보육교사가 듣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 나온 셈이었다. 그런데 짧지만 묘한 느낌이 드는 브리핑이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루치드의 이야기는 초등학교 1학년이 이야기했다고 생각하기에 너무 이상했다. 그 또래 아이들의 화법을 쓰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건조하고 담백한 어투로 사실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 나이 때 애들에게서 가능할까? 문득 예전에 아이의 담임교사로부터 들은 ‘영재설’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건 급한 일이 아니다 싶어 다시 기억 너머로 묻어버리고, 일단 동인에게 사실관계를 재차 확인했다.
“······.”
여전히 묵비권 행사 중이었다. 루치드의 말만 들으면 누가 잘못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시비가 붙은 원인이 저 ‘영재’인지, ‘묵비권 행사 중’인지, 아니면 단순한 오해로 인해 빚어진 일인지를 판가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교사로서 분명히 선을 긋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보였다.
“서동인.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는 일단 나중에 판단하도록 하마. 그런데 원에서 주먹을 휘두른 거, 특히 어린 동생한테 폭력을 행사한 것은 누가 봐도 니 잘못이다. 그렇지?”
여전히 묵묵부답. 그러거나 말거나 보육교사는 우선 서동인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은 안 된다는 원칙을 주지시켰다.
“너도 형한테는 언제나 공손하게 행동해야 돼. 알겠니?”
“예.”
루치드는 변명이나 여타의 덧붙임 없이 간결하게 대답을 했다. 때문에 교사 역시 더 할 말이 없었다. 교사는 다시 한 번 싸우지 말라는 주의를 주고 두 사람을 돌려보냈다.
상담실을 나와 3층으로 가는 계단에서, 동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너 내가 언젠가는 죽여 버린다.”
그러고는 투벅투벅 걸어 올라갔다. 루치드는 잠시 제자리에 서서 올라가는 그를 지켜봤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 루치드는 방으로 돌아왔다. 명수가 요란하게 맞이하며 괜찮냐, 아프냐고 물어보는데, 오히려 루치드가 명수를 진정시켜야 할 판이었다.
“다행이다. 그럼 나 화장실 좀. 니가 걱정돼서 화장실도 못 갔거든.”
그러고는 화장실로 뛰어가는 명수였다. 그 모습을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보던 루치드는 명수가 나간 뒤,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다.
분명한 사실부터 짚어보았다.
1. 동인은 거짓말을 했다.
이 부분은 자신의 입장에서는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을 부르기 전까지 그곳에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2. 동인은 먼저 폭력을 행사했다.
역시 분명한 사실인데, 이 점을 짚어보는 이유는 단 하나. 말다툼 따위와 상관없이 그가 주먹을 휘둘렀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루치드는 그가 주먹을 휘두른 이유가 궁금했다. 당시의 대화를 돌이켜 보아도 그가 갑자기 주먹을 휘두른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아무런 준비 없이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3. 선생님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면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게 들통 나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쩐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고등학생 형한테 이야기 했던 것처럼 거짓말로 자신의 입장을 변호했다면 이해를 했을 텐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4. 죽이겠다는 협박을 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루치드는 앞서의 의문들 중 몇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처음의 거짓말을 한 이유는 ‘일부러’ 시비를 걸기 위해서 한 것이다. 또 폭력을 행사할 만큼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혹은 진실―이 타인, 특히 선생님과 같은 어른에게 ‘드러나는 것’을 경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까, 라고 추측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겠다는 말을 남겼다는 것. 요컨대 그는 처음부터, 아니 이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부터 자신을 미워했거나 증오하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결론이 되겠다.
그러고 나니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왜 나를 싫어하지?’
그와 자신과의 접점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나 떠올려보니, 법원이 떠올랐다. 그리고 유소미를 기억해냈다. 유소미와 서동인, 그리고 자신?
루치드의 입장에서는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이 특별히 소미와 친했던 것도 아니었던 터라 ‘관계’라는 표현을 쓰기도 애매했다.
‘가서 물어봐야 하나?’
그런데 문득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왜 내가 이걸 고민하고 있지?’
루치드는 자기가 궁금해 하는 이유 자체에 의심을 품었다. 만약 자신이 아닌 다른 이였다면, 지금 어떤 생각을 했을까?
루치드는 다시 한 번 지금 상황을 정리했다.
‘나는 이유도 없이 증오심을 품은 상대에게 맞았고, 죽이겠다는 협박을 들었다.’
이것은 단지 자신의 기준에서 상황을 판단한 것. 따라서 ‘이유 없음’이란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결과가 있는데 원인이 없을 리 없다. 때문에 루치드는 원인을 찾는 과정을 짚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원인을 찾으면 결과를 바꿀 수 있는가? 생각해보니 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바꿀 수 없다. 이미 상대에게 맞은 상태이고, 협박을 들은 상황인데, 결과를 바꾼다고 맞은 게 맞지 않은 게 되는 것이 아니고 죽이겠다는 협박을 듣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루치드는 한 달 전에 속으로 했었던 다짐이 생각났다.
‘힘이 약해서 무슬라가 죽었다. 힘을 키우면 무슬라가 살아나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힘을 키우는 이유는? 다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무력하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
번뜩이는 생각과 깨달음.
“아, 목적이 잘못 되었구나.”
‘달려드는 스크로파를 무찌르고 위험에 놓인 사람을 구한다는 등식은 옳지 않아. 애초에 스크로파를 제거해서 위험한 상황 자체를 없애야 옳은 거야. 그래. 단순히 힘만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고 고칠 수 없다면 제거를 해야 돼. 그래야 진짜 예방법이 되는 거야.’
지금 상황도 잘못된 원인을 찾아 수정하고 닥쳐올 위험을 예방하자는 식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었다. 아예 원인을 ‘제거’해서 부정적인 결과, 그 자체가 나오지 않게 해야 바른 등식이 된다.
다시 말해서 서동인이란 사람은 루치드의 미래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원인’이며, 따라서 '제거'해야 할 대상.
루치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