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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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은 눈이 작고 콧대가 그리 높지 않지만 얼굴이 작고 입술도 흔한 표현처럼 ‘앵두’같이 작고 도톰해서 마치 순정만화체의 인형 같은 이미지였다. 덕분에 주로 ‘귀엽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하지만 이미지와 달리 욕심이 남다르게 강한 편이었다. 특히 식탐이 강한데, 그에 비해 먹는 양이 많지는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미각적 자극에 특이하게 집착하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뭐든지 먹을 것만 있으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달려들었다.
예를 들면, 반에서 한 친구가 간식거리를 가지고 왔을 때, 윤정은 여지없이 냄새를 맡고 나타난다.
“어, 이거 뭐야? 나 한입만!”
그녀는 적어도 상대의 허락이 있기 전까지 손대지 않는 매너는 갖추고 있었다.
“마카롱인데······.”
“아, 이게 마카롱이야? 말로만 들었지, 처음 봐!”
그리고 눈을 빛내며 상대를 쳐다본다. 인형 같은 귀여움은 동성의 친구들에게도 인정사정없는 폭격을 가했다. 그 모습을 보며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듯, 이라고 친구들은 생각했다.
“하나 먹어.”
그 순간부터, 윤정은 햄스터처럼 두 손으로 마카롱을 들고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먹는 것에 있어서는 경건한 태도로, 맛을 음미할 때는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로 대한다.
이 모습을 친구들이 보기에, 윤기가 흐르는 보드라운 털을 가진 햄스터 한 마리가 꼬물대며 먹이를 먹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을 윤정은 몰랐다. 그리고 그 모습을 기대하며 친구들이 먹을 것을 ‘일부러’ 가지고 온다는 것도 몰랐다.
윤정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보육원에 정말 귀여운 애가 한 명 들어왔다. 얼굴이 조각같이 잘생겼다며 친구들이 떠들어도 사실 관심이 가진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의 외모에 관심을 가질 시간에 좀 더 맛을 탐구하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보육교사의 허락 하에―식당에서 아주머니들을 돕는 유일한 학생이었다. 그 일을 돕는 대가로 아주머니들에게 요리를 배우거나, 남은 재료를 이용해 특이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소문의 아이가 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와.”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옆의 친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거봐, 잘생겼지? 쪼그만 애가 어떻게 저렇게 생겼을까? 쟤 크면 진짜 한 인물 할 거 같지 않니?”
윤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윤정이 감탄한 것은 그 아이의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진정 감탄한 것은 그 아이가 식판에 둔 음식을 대하는 태도였다.
‘저런 경건함이라니!’
밥알 하나, 반찬 하나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나하나를 음미할 줄 아는 아이였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냥 ‘먹는 행위’로만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문가(?)인 자신은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아이가 자신만큼이나 음식에 대한 리스펙트(?)를 가진 이라는 것을!
윤정은 가끔씩 특식이 나올 때면 배식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괜히 그 아이가 오면 조금 더 양을 준다거나, 속이 꽉 찬 것을 주는 식으로 대우를 해주었다.
‘쟤는 그런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어.’
보육원이 좋지 않은 사건으로 언론의 집중 포화에 시달리다가 겨우 벗어났을 무렵, 보육교사 한 명이 찾아왔다.
“초등 중에 책을 좋아하는 애가 한 명 있는데, 걔가 도서관에 가고 싶어 하거든, 그런데 같이 가줄 사람이 필요한데, 혹시 주말에 시간되니?”
“혹시 ‘석고’예요?”
“어머, 니들도 걔를 ‘석고’라고 부르니? 걔네 또래 애들만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는데?”
“저희 다 그렇게 불러요. 잘 생겼잖아요.”
잘 먹기도 하구요. 굳이 입 밖으로 꺼낼 말은 아니어서 하지는 않았지만 속내는 그랬다.
마침 자기도 주말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나갈 일이 있기도 했는데 데리고 가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 싶었다. 그리고 나간 김에 바깥 음식도 한 번 먹여주면서 그 모습을 관찰해 보고 싶기도 했다. 마치―자신은 여태껏 모르고 있다지만―친구들이 자신을 관찰하고 싶어 하는 마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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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거 한 번 먹어봐. 저것도. 이것도 먹어볼래?
시내로 나가서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식탐원정대’라 불릴만한 길이었다. 길거리에 있는 각종 먹거리부터, 골목 구석의 분식집들까지 다 찾아다니며 조금씩 한입씩 군것질을 했다. 대형 마트라도 갔으면 그야말로 나스카레이싱 뺨치는 속도로 하루 종일 돌고, 돌고, 또 돌았을 일이었다. 다행히도 목적지는 도서관이었기에 이 정도로 끝났다 싶을 정도였다.
눈빛을 반짝이며 윤정이 물었다.
“어때?”
“되게··· 많네요. 책이.”
도서관에 들어서며 루치드는 오랜만에 웃음을 지었다. 반면 도서관에 음식을 들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손에 들고 있던 마지막 닭꼬치를 루치드에 입에 넣어줬던 윤정은 아기 햄스터(?)같은 표정으로 꼭꼭 씹어 먹는 소년의 표정을 감상하다가 물음을 던졌던 것인데······.
“맛은?”
“아, 맛있었어요. 닭꼬치.”
아, 저 미소! 정말,
“너 내동생해라.”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네?”
“어?”
“······.”
속으로만 생각했던 말이 절로 튀어나왔던 탓에 윤정도 당황하고, 루치드도 어리둥절했다. 윤정이 피식 웃으며 루치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기에 내심 뿌듯했던 윤정은 미소를 지으며 물음을 던졌다.
“그럼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모르겠어요. 언제까지 있을 수 있어요?”
“음, 그래도 6시까지는 돌아가야 하니깐 5시에는 여기서 나와야겠지? 누나는 약속이 있어서 잠깐 어딜 좀 갔다 와야 돼. 그러니깐 여기서 얌전하게 책보면서 기다려. 알았지? 혹시 궁금하게 있으면 저기 저 데스크에 있는 선생님한테 부탁하면 될 거야. 알았지?”
“예.”
“그래도 너 혼자 두는 게 걱정돼서 금방 올 거야. 2시간 정도? 그러니깐 그 때가지는 잘 참아야 돼. 무섭다고 울지 말고?”
“예, 다녀오세요. 저 책보고 있을게요.”
“아이, 어쩜 이렇게 말도 잘하니?”
도서관은 영유아 아동들을 위한 자료실과 일반 성인들을 위한 일반 자료실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루치드는 당연히, 일반 자료실로 들어가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단연 물리학이었다. 수학과도 연계가 되는 중학교 1학년 수준의 물리학은 어렵긴 해도 이해를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공부하기에 효율이 좋은 분야였다. 다만 독학이다 보니 진도를 나가는 수준이 다소 떨어지는 면은 있었다. 대신 여러 책들을 참조하여 보면서 깊이 있게 이해를 해나가도록 했다. 빨리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 탓이었다.
-찰칵!
작은 소음이 터졌지만, 루치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만큼 책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때문에 자기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소년을 구경했다. 어려보이는 아이가 『물리』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을 옆에 쌓아두고 읽는 모습이 특이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아이의 외모였다. 그래서 몇 몇 사람들이 몰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몇몇은 SNS에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주말 도서관행. 오늘도 열심히 공부를. 그런데 도서관에 이런 귀여운 꼬마가!
#도서관 #열공 #어린왕자
―오늘 친구들이랑 #도서관에 왔어요. 그리고 #그림같이 #잘생긴 #꼬마아이를 봤어요!
어때요?
―세상에 영재가 많다고는 들었는데 오늘 그 영재를 봤다. 그런데 잘생기기까지!
#영재 #영재교육 #세상은 불공평
수군거림이 커지고 몇 몇의 불만이 커지자 직원이 나서서 정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런데도 아이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고개도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페이지를 넘길 때만 손가락이 까딱 움직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왔던 부모들은 조용히 소년을 가리키며
“너도 저 애처럼 공부해야 나중에 성공할 수 있어.”
라고 소곤거렸고, 친구들이랑 공부하러 왔다가 책가방만 던져두고 돌아다니던 아이들은 자극을 받아 책장으로 가서 책을 골랐다. 소란스런 분위기에 짜증을 내려던 어른들은 아이를 보고 나라의 미래가 밝다며 흐뭇해 하셨다.
그 날, 도서관은 모처럼 독서 열풍에 휩싸여 너도나도 독서에 몰입했다. 같은 날,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며 사람들은 새로운 도서관 광고냐며 ‘좋아요’를 눌렀다.
윤정이 와서 보니, 그날따라 사람들이 열을 내며 독서에 열중하고 있었다. 책을 고르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로 자료실이 북적거린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유독 빛을 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루치드였다. 윤정은 차마 그 집중하는 모습을 방해하기 싫어 5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이 분위기에 휩쓸려 저도 모르게 책 한 권을 꺼내 읽었던 것은 덤이었다.
****
“관장님, 며칠 전 SNS상에 올라온 사진 때문에 저희 도서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늘었다는 보고 들으셨죠?”
“아, 그래요. 제가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도통 실감이 안나요. 이런 게 입소문인가 싶기도 하고.”
헛헛한 웃음을 짓는 관장을 마주보며 관리과장이 말을 이었다.
“예, 그 때문에 저희 직원 한 명이 기획 하나를 발안했습니다.”
“어떤 거죠?”
“요점만 말씀드리자면 광고를 하나 찍어서 홍보하자는 겁니다. 그 아이를 모델로 해서.”
관장이 잠시 생각하는 틈을 보이자 과장은 태블릿에 띄어진 사진을 들이밀었다.
“어차피 저희는 이번 가을맞이 기획전도 준비하고 있던 터라 홍보물도 준비해야 되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기성모델보다 신선하고 그림도 괜찮다는 평입니다.”
“···그런가요?”
기성모델이 아니니까 광고비가 조금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라는 말은 삼켰다. 어차피 다 아는 사실을 꺼내서 속물처럼 보일 필요가 있나. 홍보 이미지 효과가 좋을 것이다, 라는 포장이면 만사형통일지니.
“그 아이는 누굽니까?”
“처음엔 잘 몰랐는데 말입니다. 마침 그날 데스크 직원이 그 아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아네스 보육원에 있는 아이라고 하더라고요.”
“보육원이요?”
“예.”
“···협조 공문 보내보세요. 아니, 한 번 찾아가보죠. 어쩌면 좋은 기획 하나 만들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