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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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평시는 물론이고 전국구급 뉴스로 보도가 되었다. 3년여간 딸을 성폭행한 인면수심의 아버지. 보육원에 딸을 맡겨놓고 타지에서 일을 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딸을 추행하기 시작. 같은 원생의 제보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까지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공포에 떨어야했던 어린 여자 아이의 충격적인 사연.
이어지는 후속보도.
《그 날, 보육원에서는 무슨 일이.》
《보육교사를 비롯, 원 내의 누구도 소녀의 아픔을 알아채지 못했다》
《보육원의 느슨한 생활 관리 실태를 파헤치다》
원장은 신문지를 구겨다 바닥에 팽개쳤다.
“아직도 취재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만, 일단 모두 거절을…….”
사무국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보려는데, 원장이 홱 고개를 돌려 째려보자 금세 입을 다물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원장은 테이블에 놓인 담배를 다시 하나 꺼내든다. 제자리에서 벌써 4개째를 피워대고 있던 원장이었다.
“행정과장님. 이 일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왜 나한테 화살을 돌리십니까? 라고 묻고 싶지만 애써 참으며 머리를 굴렸다. 사실 지금이 행정과장으로서는 최적의 기회이기도 했다. 이참에 원장과 사무국장을 책임자로서 문책하고 사퇴시키면 될 일, 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차였다. 윗선에서 갑자기 자중하고 있으라는 지시만 떨어지지 않았다면 지금껏 모은 서류들을 품에 안고 먼저 달려가 일을 시작하자고 했을 텐데.
“…책임자를 문책하고 감독 시스템을 조금 손 봐야 하지 않을까요?”
상식적인 수준에서 일을 처리하자, 라는 말을 조금 풀어서 대답을 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원장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지금 이 사태에 책임자라면 출석을 맡았던 일직 선생님들 아닙니까? 그 선생님들 다 자르자는 말씀이십니까? 예?”
저는 원장님을 말한 겁니다만, 이라는 말이 정말 혀끝까지 나오다못해 입술이 살짝 열리고 첫음절을 발음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최대한의 이성과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아냈다.
“원장님의 복안이 어쩌신지 여쭙고 싶군요.”
한 발 물러서며 묻는 듯 공손한 태도, 같이 보이지만 니 속을 니가 밝혀봐라, 라는 뜻임을 모를 원장이 아니었다. 못마땅한 얼굴로 행정과장을 힐끔 보고는 입을 열었다. 담배연기가 새어 나왔다.
“이사회에서 아마 공식적으로 논의가 될 것입니다… 만, 귀띔을 듣기로는 윗선에서 보여주기를 해야 한다더군요.”
“보여주기라 함은?”
“…인적 쇄신이죠.”
아무 말 없이 시선을 깔고 있던 사무국장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행정과장은 말 그대로 행정적 업무를 전담하는 직책. 이 사태에서 책임을 묻기 애매한 자리인 반면, 사무국장은 원장을 대신해 책임을 질 만한 직책으로 적당했다.
사무국장은 사직서를 내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새로운 사무국장은 이사회에서 선임을 할 때까지 공석으로 남겼다.
“정이사님, 이번 일은 분명히 원장을 쳐내기 좋은 타이밍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왜 원장을 살려두는 겁니까?”
“과장님. 과장님의 마음, 저는 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보육원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저희도 자중해야지요. 이 때다 싶어 함께 춤판을 벌였다가는 개판이 될 겁니다.”
교양 있는 척 나긋나긋 말하는 어투랑 ‘개판’이란 용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혹시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는 겁니까? 원장을 쳐낼 수 없는 이유를 저는 모르겠습니다.”
“너무 직접적으로 물어 오시니 제가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그래, 우리 과장님도 이제 아셔야 할 거 같으니 말씀은 드려야겠네요. 저희는 현재 보류중인 정관 개정을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행정과장은 너무 놀라서 입을 벌렸다. 재단 정관 개정이라니? 정관개정과 함께 선거관리규정, 운영규칙 개정 등이 후속될 계획이라는 정 이사의 말에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원장은 내년에 퇴직을 할 겁니다.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거죠. 개정 정관에 따라 임원퇴직금 규정을 적용받게 되는 대신, 저희 쪽에 한 표를 던질 겁니다. 원장과 김 이사, 두 사람이 넘어오면서 개정이 되겠죠.”
원장은 시류를 읽고 빠져나올 틈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안전한 퇴직 절차를 약속받고 대신 권력을 이양한다. 자신의 치부는 묻는다. 대신 표를 옮겨준다.
늙은 너구리의 담배냄새가 몸에 배였는지 여기저기서 냄새가 난다. 이 놈의 빌어먹을 냄새.
보육원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보육교사 2명은 경질되었다. 사무국장이 바뀌는 정도로 책임이 끝나지는 않으니 당직교사도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 사건은 무려 3년에 걸쳐 벌어진 사건이었기에 2명 모두 사직하는 것으로 일이 처리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보육교사로 무려 4명이 부임하게 되었다. 기존의 관리 시스템이 아이들을 모두 챙기지 못했다는 여론에 대한 대응으로서 이사회는 과감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보육원 내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육교사를 늘리니, 적어도 감시 감독의 역할만은 이전보다 좋아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반대로 아이들의 생활은 좀 더 타이트하게 변했다.
교사가 바뀌었으니, 아이들도 바뀌어야 했다. 첫 번째로, 한동안 외박이 금지되었다. 여론이 다소 누그러지면 외박이 허용될지라도 현재는 외출만 허락하는 상황이 되었다. 외출 시에도 행선지를 분명하게 밝히도록 하며, 허락 없이 시 외부로 나가는 것을 금했다. 두 번째는 방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학년별로 나뉘어 동급생들끼리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게 한다는 방침이었는데, 이번을 기회로 아예 남녀 구분을 나누도록 했다.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기획은 좋았으나, 그게 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도―그런 게 다 보여주기의 일환으로서 의미가 있다 하니, 일단 층을 나누어 남자는 3층부터 5층까지, 여자는 1층과 2층을 쓰도록 했다.
다영은 중학생 언니 한명과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함께 방을 쓰며 생활해왔던 다영은 갑작스런 소미의 부재로 인해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다. 특히 소미가 겪었을 아픔을 자신이 전혀 몰랐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다행히 함께 방을 쓰게 된 언니가 잘 다독여줘서 며칠이 지난 지금은 다소 안정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루치드를 비롯한 초등학교 남학생들은, 원래 낮은 학년이었기에 아래층을 쓰고 있었는데 남녀분리정책에 따라 기존의 1층에서 3층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우와, 여기서는 저기 길 다 보인다, 석고야!”
명수는 더 높이 올라가게 되었다는 사실에 좋아했다―어쩌면 층이 안변했어도 좋아했을 것 같다. 오르거나 말거나 명수는 그저 보육원 이삿날 가장 들떠있던 아이였다.
형근은 학교도 제일 위층에 있는 교실을 쓰기에 매일 아침마다 계단을 오르는 게 귀찮았다고 했다. 그런데 보육원마저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게 되었다고 짜증을 부렸다.
“운동장 나가기가 힘들어졌어.”
철용은 간단하게 소감을 말했다.
루치드는 새로 바뀐 보육교사를 찾아갔다.
“법원 가기 전날 소미누나한테 빌린 책이 있는데 어떡하죠?”
“누구?”
“소미누나요.”
바뀐 보육교사는 잠깐 생각하다가 곧 그 이름의 주인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굳혔다.
“괜찮을 거야. 이미 소미 짐을 다 빼서 다른 곳으로 옮겼어. 그러니 그 책은 그냥 니가 가져도 될 거야.”
소미는 다른 시의 보육원으로 옮겨갔는데 최순경을 따라간 뒤로는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남아있던 짐들은 지도원 선생님들이 모두 챙겨서 소미가 옮기게 된 보육원으로 보냈다. 그래서 루치드는 미처 빌린 책을 반납하지 못했다.
교사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선 루치드는 방으로 돌아왔다. 한참을 침대 위에 앉아 책의 제목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더러운 나의 불행 너에게 덜어 줄게』 라는 제목의 책이 책꽂이에 올려졌다.
루치드는 방학동안 더욱 미친 듯이 책에 매달렸다. 이제 그에게 공부는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과도 같은 문제가 되었다. 비단 소미의 사건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들, 자신이 아는 것이 부족했기에 통제할 수 없었던 상황들, 자신의 힘이 약해서 벌어진 일들 모두 결국은 자신의 배움이 일천한 까닭이었다.
무슬라의 죽음 이후, 한동안 깊은 슬픔과 무기력에 빠져 있던 루치드는 소미의 사건 이후 기력을 회복했다. 아니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이전에는 검은 아우라를 두른 것처럼 생기 잃은 시체마냥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자아냈었다면, 지금은 다소 생기가 돌아온 대신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에 바친 것처럼 보였다. 루치드가 책을 읽을 때면 보육교사들마저 말을 걸기가 무서울 정도로 열을 내며 독서에 몰두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독서는 치열한 생존의 투쟁이었다.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을 모두 읽고 이해하지 못하면 또 다시 무기력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늘 그를 짓눌렀다. 더 이상 독서는 세상의 신비를 알아가는 여행이 아니었다. 턱 밑까지 다다른 스크로파의 송곳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혈투였다. 그래서 그의 독서는 치열했고, 화끈거리는 열기가 느껴질 만큼 뜨거웠던 것이다. 그 치열함과 정열이 소녀들의 눈에는 좋게 보였는지 보육원 내에서 루치드가 책을 읽고 있을 때면, 몰래 찾아와 엿보는 소녀가 늘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각’같은 외모 때문에 ‘석고’라고 불리는 소년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어떤 정물화보다도 빛나는 그림이었다.
보육원 내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거의 다 읽었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몰두했던 탓인지, 방학이 끝나기 2주 전쯤 루치드는 보육교사의 허락을 받아 외출을 할 수 있었다.
그날, 루치드는 처음으로 시립 도서관을 가게 되었다.
“여기 처음 와보지?”
같이 외출을 나온 고등학생 누나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예.”
“어때?”
“되게… 많네요. 책이.”
루치드는 오랜만에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