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36화 (36/956)

크레센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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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인은 현재 인평중학교 재학 중인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성적도 보통이고 교우관계도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학생이었다. 누구도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의 생활 모토가 중간은 가자, 쯤은 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결코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튀려는 의지도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닌 법이다.

동인은 사실 또래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얼굴도 나름 잘 생겼다고 평가할 만큼 콧대가 높고, 짙은 눈썹과 뾰족한 턱을 가진 소년이었다. 보육원생이라고 해서 모두가 얼굴에 그늘을 만들고 살지는 않지만, 그는 오히려 귀한 집에서 자란 아이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보육원에 다니는 것을 감추지 않았기에―어차피 학교 앞에서 보육원 승합차에 타기 위해 기다리는 무리를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이었기에 다들 그의 사정을 잘 아는 편이었다. 상위 1%의 우수함을 보이지도 않았고 하위 1%의 불량함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두루두루 사귐에 어려움이 없는 괜찮은 친구, 동생, 선배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동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것을 경계했다.

“동인아, 도서관 같이 가자.”

반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가 물으면, 환한 미소로 답했다.

“그래.”

점심식사는 최대한 빨리 끝내야했다. 그래야 아이들과 같이 운동장에 나가서 공을 찰 수 있었다. 누구보다 빨리 먹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땀을 한가득 쏟아내며 5교시가 되기 바로 전까지 운동장을 누볐다. 축구에 가장 열정적이고 팀워크에 가장 헌신적이며 언제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부르던 동인은, 보육원에서는 공을 차지 않았다. 철용이나 형근이 아무리 졸라도 공을 차지 않았다.

그는 자주 거울을 봤다. 거울을 보며 미소 짓는 연습을 했다. 누구에게나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연습했다. 어린 나이에 표정을 연습한다는 것은 얼핏 이해하기 힘든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동인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척받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신의 외모라는 사실을 꽤 빠르게 깨달았다. 부모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는 유일한 것이 바로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을 맞이하여 아이들이 외출이나 외박을 나가고 보육원이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당연히 동인은 외출을 하지 않았다. 찾아오는 친척들도 없었고, 구태여 나갈 일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어쩐지 마음이 심란했다. 그 주에 봤던 시험의 성적이 걱정이 되어서도 아니었고, 점심시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돼지불고기 반찬을 많이 못 먹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방 안에서 책상에 앉아 한 쪽 손으로 턱을 괴고 창밖을 내다보는데, 창밖으로 조용히 해가 저물어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 동인은 기분을 풀고자 보육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때마침 소녀가 보육원의 정문을 지나 본관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걷는 모양이 시원치 않아 보여서 도와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일단 지켜만 봤다. 현관 앞으로 다가왔을 때, 동인은 소녀의 모습을 두 눈에 가득 담았다.

본관 앞을 지나던 여름 바람이 그녀의 머릿결을 흐트러뜨리며 지나갔다. 저녁노을을 받아 자줏빛으로 물든 머리가 허공에 잠시 나풀대다 어깨위로 떨어졌다. 레이스가 달린 하얀 원피스의 소녀는 두 손으로 원피스 옆자락을 가볍게 움켜쥐고 있었다. 시선이 아래로 향한 탓에 긴 속눈썹이 두드러졌다. 살짝 눈물이 맺힌 것 같은 착각을 주는, 투명하고 붉은 노을빛 눈동자가 보였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동인은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이내 소녀에게 다가갔다.

“도와줄까?”

라고 이야기를 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소녀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가 느낀 완벽한 이미지의 풍경화에 금이 갔다. 그녀에게 있어 단 하나의 흠집이었다. 그 흠집만 사라진다면 그녀는 완벽한 이미지로서, 풍경으로서, 자신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한 냄새 나.”

동인은 그저 참을 수 없었을 뿐이었다. 완벽한 그림을, 완벽한 그녀의 모습을 비릿한 향기와 함께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소녀는 순간 눈물을 왈칵 터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소리도 내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보며 동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기 말이 심했나, 라고 반성해볼 찰나에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

동인은 거울을 자주 보면서 눈에서 나오는 감정의 빛을 여러 번 읽어보았다. 나름 익숙했다. 그리고 지금 소녀가 자신에게 내뱉는 소리 없는 비난까지도 읽어낼 수 있었다.

소녀는 자신을 경계했다. 자신을 싫어했다.

소녀는 자신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동인이 중학교로 올라갈 때까지 소녀와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보육원 식당에서 마주칠 때라도 소녀가 먼저 자리를 피했다. 동인이 초등학교 졸업을 하던 날, 보통은 보육원 내 초등학생들이 모여 축하해주는 자리를 갖지만, 소녀는 그 자리마저도 피했다.

동인은 소녀에 대한 감정이 점점 비틀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중학교에 올라온 뒤 소녀를 보기란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온 뒤 동인은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 몰랐던, 그녀가 가끔씩 풍기던 냄새의 정체를.

사실 남자 중학교란 소년이 남자가 되도록 만드는 강제 수용소 같은 곳이었다. 어른들이나 어린 아이들은 모르는, 하지만 그 곳에 속한 아이들만이 공유하는 강한 유대감과 응집된 결속력으로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든다. 그리고 세상의 갖가지 난잡하기 이를 데 없는 정보들을 공유하며 진화를 한다. 그 진화의 과정에 동참한 동인 역시 이전까지 몰랐던, 어른들이 감추려 했던, 혹은 어떤 어른들은 모르는 정보들을 듣고 배우고 알아갔다. 찰지게 욕하는 법, 싸움으로 서열을 정하는 법, 그리고 비밀스런 밤의 일들까지.

동인이 진실을 알게 된 이후, 그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모나리자가 남자라고 해도 이렇게 분노할 리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봤던 풍경들 중 가장 완벽하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그림이었는데, 그 그림이 사실 예전부터 오염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염된 것은 더러운 것이다. 더러운 것. 친구들은 그런 것을 두고 ‘걸레’라고 불렀다.

고작 ‘걸레’에게 구더기 취급을 받았던 것일까? 고작 ‘걸레’에게 버림받았다고 지금까지 가슴 아파했다고? 내가?

언젠가 그녀가 자신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자신은 기꺼이 그녀의 냄새를 지우고 그녀의 완벽함을 소유하리라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녀의 냄새는 지울 수 없는 냄새였다.

그녀는 지울 수 없는 냄새를 가진 ‘걸레’였다. 시간이 갈수록 빨지 않은 걸레처럼 그녀에게서 냄새가 진해졌다.

이제는 자신이 그녀를 피했다. 그녀의 냄새 자체가 싫었고, 그녀의 눈빛을 기억하기 싫었고, 그 눈빛에 상처 입은 듯이 행동했던 자신의 과거가 싫었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그녀를 곤란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너도 알잖아?”

생각대로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동공의 흔들림이 온 몸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녀의 얇고 붉은 입술이 보기 흉하게 떨렸다.

루치드는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에서 다영과 함께 팔짱을 끼고 걷던 소미의 얼굴이―원래도 하얀 편이었지만 지금은 아예 색이란 것 자체가 사라졌다고 느껴질 정도로 창백하게 변했다.

떨리는 무릎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인데, 본인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지 멍한 시선이다.

“무슨 소리야? 그게?”

양기자. 그는 놀라운 촉을 발휘했다. 뭔가 있다고 느끼고 바로 동인에게 물었다.

“얘한테서 정액 냄새가 자주 나거든요.”

양기자는 들으면서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이 나이대 애들이 거침이 없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고 듣고 있으니 괜히 손발이 저리고 무서워졌다. 그리고 소녀의 하얀 얼굴을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 라는 고딕체의 굵은 타이틀을 떠올렸다. 직업정신이란.

보아하니 인솔을 맡았던 법원 직원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당황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분위기를 감지한 아이들이나 주변의 사람들마저도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마녀사냥’을 떠올렸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자신은 ‘재판관’이 아니라 ‘기자’였다. 사실만을 보도하고 진실을 깨우치게 할 ‘의무’를 가진 기자.

“저기요.”

우선 어리바리한 직원부터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예?”

“지금 이 학생들 관련 인솔자부터 데려오세요.”

“예?”

역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범죄 사건이에요. 고발을 하든, 제보를 하던 책임자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보아하니 중학생은 아니고, 그럼 초등학생이지. 초등학생이라면 ‘합의하에 성행위’란 것은 없다. 무조건 ‘미성년자 성폭행’이다.

양기자는 머릿속으로 타이틀과 기사내용들이 획획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만약 TV시사 프로그램이었다면 이런 부제가 붙을 법도 하다.

‘―그날 법정에선 무슨 일이?’

법정에서는 강간현행범에 대한 재판이, 법정 밖에서는 미성년자 성폭력법 위반건이 제보되어.

현재 재판 중인 사건은 사실 크게 기사거리가 되기 어려웠지만, 이 사건은 자신이 손만 본다면 전국구급 사건으로 보도될 수도 있다. 사건 자체는 잘 모르지만 사이드 스토리가 맘에 들었다. 법원에서 이루어진 제보, 보육원에서 생활 중인 아이의 일탈, 게다가 아네스 보육원.

지금껏 언론이나 지역에서는 꽤 호평을 받는 축이었던 아네스 보육원이지만, 실상은 금이 가기 시작한, 언제든지 들추면 꽤 구린내를 풍길법한 곳이라는 것을 양기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미성년자 성폭행? 재미있다.

직원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때 법정에서 참고인 진술을 끝내고 나온 최순경이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양기자님?”

양기자는 마침 잘 됐다는 듯 최순경에게 말했다.

“다행이네요. 여기서 이 아이 진술을 받을 조사권을 가진 사람이 없었는데 최순경님이 딱 맞춰 나오셨네. 이제 보니 최순경 일 복이 있어요.”

양기자는 중2병의 제보에서 자신의 추측―집단 성폭행, 혹은 지속적인 성폭력이 이루어졌을 가능성―까지 조리 있게 설명했다. 때마침 보육교사 한 명이 인솔직원과 함께 도착했고, 소미는 결국 최순경과 함께 법원을 빠져나가야 했다.

루치드는 멀어져가는 소미의 등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루치드는 법정 견학을 하면서 이 곳의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사건 처리 과정에 감동을 받을 정도였다. 사건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과 서술―검사의 공소장 낭독과, 죄를 지었더라도 최소한의 합리적 변호―변호사의 모두진술이 허락되는 곳. 모든 사실과 증거를 두고 합리적인 변론과 토론으로서 죄를 평가하고 벌을 정한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고무되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전의 세계는 몽둥이찜질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을 쫓아 등 뒤를 후려치거나, 상대가 울며불며 사정해도 발길질을 멈추지 않던 곳이었다. 이제 그런 곳을 ‘폭력’과 ‘야만’이란 단어로 묘사할 수 있을 만큼 지식이 생긴 루치드였기에 여기서는 더 이상 그런 장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소미의 모습은 마을에서 봤던 그 아저씨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소미의 그것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며 마을에서 쫓겨나던 아저씨. 그 아저씨가 마을을 나갈 때 아무도 그를 붙잡지 않았었다. 오히려 날 선 눈초리와 사나운 욕지기로 그 아저씨의 뒷모습을 배웅했었다. 흙먼지로 덮인, 찢어진 옷가지가 너덜거리는 채로 마을 밖으로 나가던 아저씨의 뒷모습이 소미의 뒷모습에 겹쳐졌다. 달려가 소미를 붙잡았다.

“괜찮아?”

루치드는 위로해주고 싶었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소미는 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냄새가 나는 게 죄라고?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였다.

소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잠시 눈물 가득한 눈으로 루치드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최순경을 따라갔다.

루치드 외에는 아무도 소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소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들 소미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했다. 혀를 차는 어른들도 있었다.

왜 데려 가냐고 말리는 사람도, 잘못이 없다고 변명을 하는 이도 없이 즉석에서 재판이 이루어진 것처럼. 말 한마디에 한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는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루치드는 아직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고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죄를 시인한 사람도 없고, 죄를 확정할 만한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닌데, 단 한마디의 ‘말’이 죄를 단정 짓게 하고 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아니, 어쩌면 자신만 모르는 것인가 싶은데, 주변의 아이들도 모르는 눈치다. 다만 동인과 다른 어른들만이 다른 눈빛으로 멀어져가는 소미를 바라봤다.

“어린 게 벌써부터······.”

“고아원 애들이잖아요.”

고아원. 부모가 없다는 게 죄의 증거가 될 리 없을 텐데.

루치드는 알아야 할 게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단순히 많이 배우고 익혀서 지식을 채우고 마법을 연구한다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알지 못하면 언젠가는 자신도 소미처럼 등을 보이며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존의 개념으로서 각인되었다.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인솔교사가 다시 아이들을 이끌었고 루치드도 명수의 손에 붙잡혀 자리를 떠났다. 양기자는 최순경을 따라갔고, 직원은 잠시 보고를 위해 자리를 피했다. 소미는 떠났고 견학은 계속되었다.

이후 소미는 보육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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