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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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드는 등에 매고 있던 배낭을 다시 한 번 고쳐 메고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고개를 넘다 밤을 맞이하였을 때 찾아올 위험이나 산 아래에서 밤을 맞이하는 거나 비슷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무런 힘도 없는 자신에게는 이러나저러나 같은 조건, 그렇다면 조금 더 빨리 도시를 향해 가는 게 낫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왕래가 적은 길이어서 그런지 어제 오른 산길만큼이나 험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게다가 어제 무리했던 탓인지, 제대로 피로를 풀지 않았던 탓인지 고개를 오르는 게 무척 힘이 들었다. 고개를 반도 오르지 못했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가빠졌다. 해는 이미 대산맥 너머로 넘어가 사위가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발끝에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자꾸 걸려 신경이 쓰였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나뭇가지들을 피하느라 허리를 굽히거나 몸을 비트는 바람에 체력이 더 빨리 소모되었다. 주변의 색이 점점 사라질수록 마음속의 두려움은 점점 커져갔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오르던 루치드가 마침내 잿마루에 올랐을 때는 거의 녹초가 되다시피 한 때였다. 쉬는 것도 참아내며 억지로 올라와 마루에 서니 아래로 잡목들의 우듬지가 보였다. 다시 저 한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야 하지만, 도저히 지금 상태에서는 한 걸음 걷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굽이진 고갯길 가장자리에 큰 바위가 있어 그 곳에 몸을 기대고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눈을 감으니 금방 잠이 들 것 같았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만 않았다면 진짜 잠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 아우우~
눈이 번쩍 뜨였다. 루치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그나마 잿마루 근처에는 높게 자란 나무가 없어 주변으로 달빛이 들어와, 희미하게나마 사물을 구별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울음소리를 낸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 아우우~
- 아우~
늑대소리란 것은 알겠다. 가까운 곳에서 나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도대체 몇 마리가 주변에 있는지, 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루치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당장 무언가를 대비할 방도는 없었다. 그저 주변을 둘러보며 두려움에 떠는 일 밖에. 두 발이 제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른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긴장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소리가 들리는 방향도, 눈에 보이는 잡목들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하지?
- 크르르
일단, 뛰기 시작했다. 아까 보았던 잡목숲을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어깨에서 배낭이 덜커덕거리며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지만 벗을 타이밍도 잡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뛰었다. 내리막을 뛰어가는 거라 힘에 부치는 일은 없었다. 다만 긴장에 시야가 좁아져 제대로 길을 따라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뛸 뿐이었다. 내려갈수록 가속도가 붙어 몸의 중심이 흔들렸다.그럴수록 더 빨리 뜀박질을 하며 넘어지지 않도록 애를 썼다. 하지만 몸은 계속 앞으로 넘어질 듯 기울어져만 갔고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지도 모르게 정신이 없었다. 바로 뒤에서 늑대들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포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정신을 잃기 전까지 내몰린다는 게 바로 이런 걸 말하지 싶었다.
갑자기 앞에 나무가 나타났다. 시야가 너무 좁아져서 눈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나무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앗!”
짧은 비명과 함께 앞으로 넘어졌다. 방어적으로 손을 뻗어 몸이 그대로 땅에 처박히는 것은 막았다. 하지만, 고갯길을 구르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두 세 바퀴를 굴렀지만 대신 나무에 그대로 코를 박고 넘어지는 일은 피했다. 가까스로 나무 옆을 지나는데 뒤에서 둔탁한 충돌음이 들렸다. 힐끔 쳐다보니 자기만한 덩치를 가진 늑대가 나무에 머리를 박고 쓰러지고 있었다.
‘정말 늑대가 바로 등 뒤에까지 쫓아왔다!’
헛바람을 들이킨 루치드는 그 때부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뛰다보니 튀어나온 나무초리가 얼굴과 몸을 사정없이 할퀴지만 아픔도 제대로 못 느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도 나무 사이를 교묘하게 몸을 비틀어 피해 다녔다.
- 컹!
언제 따라잡은 것인지 바로 옆에서 늑대가 쫓아와 달리고 있었다. 짐승의 눈에서 광망이 흘렀다.
‘안돼!’
더 빨리, 더 멀리 달리고 싶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빽빽하게 들어선 잡목들이 늑대들의 발을 잡아 끌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하지만 루치드에게 그걸 떠올릴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 때,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반대편에서 늑대가 달려들었다. 루치드의 목을 노리고 뛰어오른 늑대.
루치드는 앞으로 넘어지다시피 굴렀다. 화끈! 늑대의 앞발이 루치드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며 깊은 상처를 남겼다. 루치드는 정신없이 앞으로 굴러 내려갔다. 다시 다른 늑대가 쫒아왔다. 늑대는 굴러가는 루치드보다 빨랐다.
- 컹!
늑대는 바로 뒤에서 땅을 박차고 뛰어와 붉은 아가리를 벌렸다.
“!”
늑대는 루치드를 물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아가리에 물린 것은 루치드의 배낭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루치드와 함께 했던 낡은 배낭은 늑대의 아가리에 뜯겨져 그 속에 들었던 옷가지들과 함께 허공을 비산(飛散)했다. 늑대와 부딪히는 충격에 루치드는 더 빠르게 비탈길을 굴러 떨어졌고 그의 생명을 구한 배낭과 안녕을 고했다.
늑대와 부딪힐 때쯤 잡목숲도 끝나 더 이상 늑대의 추격을 방해할 장애물도 없어진 상태였다. 골짜기에서 떨어지는 낙석처럼 구르던 루치드의 뒤를 두 마리의 늑대가 쫓았다. 메마른 숨소리를 내며 치달린 늑대들의 광기서린 눈빛이 금방이라도 루치드를 덮치려는데.
루치드가 늑대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상황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바로 뒤를 쫓았던 늑대 한 마리도 모습을 감췄다.
- 우우~
대신 사라진 늑대는 희미한 울음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다른 늑대들은 눈치를 채고 달리던 속도를 줄였다. 이윽고 루치드와 늑대가 사라진 즈음의 위치에 다다른 늑대들은 아래로 푹 꺼진 벼랑 위에 멈춰 서서 검은 어둠 속의 우듬지만 바라봤다. 스산한 바람이 벼랑 위를 가르며 지나갔다.
- 아우우~
- 아우~
날이 밝았다. 우듬지 위로 새들이 아침먹이를 구하기 위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이슬을 머금은 야생화들과 잡풀들 사이로 청설모 한 마리가 가로지르며 달리다가 이내 나무 위를 타고 올라 모습을 감춘다. 초봄의 온기가 서린 바람이 우듬지를 쓰다듬듯 스치고 지나가는 가운데, 그 속 어딘가에서 부스럭거리는 움직임이 나무를 흔들었다.
루치드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을 때,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으윽.”
아파도 아프다고 투정부릴 대상이 없어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인 루치드는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숲 속인지라 바로 경계를 했지만 다행히도 별 다른 위험이 없어 보였다. 마음을 놓지 못하고 일어서려는데 옆구리에서 통증이 느껴져 비명을 질렀다.
쉽게 몸을 움직일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듯해서, 우선 자신의 몸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일단 어깨가 아팠다. 고개만 살짝 돌려 보니 왼쪽 어깨에 깊이 파인 흔적이 보였다. 멈췄던 눈물이 다시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아냈다. 팔 다리는 제대로 움직일 만 한 것 같았지만 워낙 피범벅에 흙투성이가 된 모습이라 자세히 살펴볼 요량으로 소매와 바짓단을 조심스럽게 뒤집어 살폈다. 긁히고 찢어진 자국이 처참하게 새겨져 있지만 어깨보단 나았다. 오른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눌러보니, 사실 보이지가 않아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쨌든 주변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에 일어서 보려는데 또다시 옆구리의 통증이 심해서 몸이 절로 숙여졌다. 이를 악물고 옆의 나무를 의지해 일어서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늑대가 있었다. 흠칫 놀란 루치드는 잠시 그대로 움직이지도 않고 늑대를 바라보았지만 늑대에게서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있다 천천히 다가가보니 목이 기이하게 꺾인 채로 혀를 빼물고 죽어 있었다.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루치드는 자리에 주저앉더니 이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처지가 너무 비참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일들부터 해서 왜 늑대에게 쫓겨 가며 이 고통을 느껴야 하는 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이런 일들을 왜 계속 당해야 하는지, 왜 친구들처럼 살 수 없는 것인지, 누구에게 묻고 싶어도 대답해줄 사람 하나 없는 이 현실이 너무 비참했다.
“흐윽, 엄마···.”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