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21화 (21/956)

Chapter(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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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어린 아이에게 맞는 설명을 해야겠지만, 핀체노는 지금까지 이토록 어린 아이에게, 게다가 아무런 지식이 없는(?) 아이에게 마법을 가르쳐줘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말 한마디를 해도 많은 생각을 하고 검증을 마친 뒤 꺼낼 정도여야 했다.

“쉽게 설명해주마. 마법은 상상을 구현해내는 일이란다. 아니, 다시 설명하마. 네가 상상하는 것들, 네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것들을 현실에, 눈앞에 만들어내는 거란다.”

“만드는 게 아니라면서요?”

이 아이는 분명 똑똑한 아이다. 다만 아는 게 많지 않을 뿐이겠지. 그건 앞으로 자신이 하나씩 알려주고 채워주면 될 문제이리라.

“그래. 음. 예를 들어보자꾸나. 지금 네 머릿속으로 어떤 물건을 상상해 볼 수 있겠니?”

“예.”

길가에 툭 튀어나온 나무초리를 꺾어 손에 쥔 핀체노가 말을 이었다.

“어떤 물건이니?”

“··· 공이요.”

“그래, 그 공을 이제 눈앞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마법이란다.”

“··· 어떻게요?”

“마법의 힘으로? 하하. 농담이란다. 뭐 반쯤은 진담이기도 하다. 어쨌든 아까 했던 이야기와 연결시켜보자꾸나. 나는 네 머릿속이라고 예를 들었지만, 사실 머릿속이 아니라 ‘라티오’라는 곳에서 끄집어내는 것이지. 여기서 ‘라티오’를 설명해보자면, 그 곳은 모든 사물과 개념의 원형이 있는 곳이란다. 예를 들자면 네가 ‘공’을 상상했을 때 ‘공’의 모양을 떠올렸겠지?”

“예.”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공이 다 똑같은 모양은 아니지?”

“예.”

“모양도 다르고 색도 다르고 땅에 튀어 오르는 정도도 다 제각각일 테다. 그치?”

“예.”

핀체노는 손에 든 나무초리를 앞으로 뻗어 둥근 모양을 그려냈다.

“하지만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 우리는 ‘공’이라고 부른단다. 그렇다면 ‘공’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게다. 역으로 그 특성들을 모두 포함하는 물체를 ‘공’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여기까지는 이해하겠느냐?”

아이의 머리가 순간 멍해졌지만 이내 고속엔진이 돌아가듯 머리를 굴려 그 정의를 논리적으로 추론, 통합하여 개념을 이해해 나갔다.

“알 것 같아요.”

“영특한 녀석 이로고. 자, 여기서 ‘라티오’의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아까 ‘라티오’에는 사물의 원형이 있는 곳이라고 했지? 원형이라는 것은 일단은 모든 사물들의 원래 모습이라고 이해하는 게 좋겠구나. ‘공’도 마찬가지란다. 그 곳에는 이 세상 모든 종류의 실체하는 공들의 ‘원형’이 존재한단다. 어떤 모양이나 색으로 정의되지 않고 단지 그 본래 고유의 특성만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그럼 그 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모르겠어요.”

“인간은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없지. 왜냐하면 상상하는 순간, ‘공’은 특정한 성질로 정의되기 때문에 라티오의 ‘원형’과는 다르게 된단다.”

루치드는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를 도모했다. 사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축구공’이었다. 그런데 축구공도 굉장히 다양한 디자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학교 운동장에서 경험했다. 뿐만 아니라 공에는 테니스공, 야구공 등, 별의 별 ‘공’들이 존재했다. 그 모든 것들을 ‘공’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공’에는 분명 그 모든 디자인들을 아우르는 고유의 이미지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고유의 이미지만으로 존재하는 공을 핀체노는 ‘원형’이라고 불렀다. ‘원형’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럼 ‘라티오’에 있는 원형들은 모두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겠네요?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이니까요?”

한 동안 궁리에 빠져 있던 아이가 툭 내뱉는 말에 핀체노는 또 한 번 감탄했다. 몇 가지 고급단어들을 쓰는데도 확실하게 의미를 알고 활용하는 것도 놀랍고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이 아이가 빈촌에서 살던 아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혹시 도시에서 납치된 귀족? 하지만 그렇다쳐도 저 나이 대 아이의 귀족이라도 고급학문을 배우고 익혔을 리가 없다. 그냥 이 아이가 천재(?)인 것이다.

“그렇지.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라티오’에 있는 ‘원형’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영원불멸의 속성도 가진다. 이 나무를 보거라. 그리고 저기 저 나무도. 우리가 ‘삼나무’라고 부르는 이것들이 현실에서는 이렇게 제각각이지만 ‘라티오’에서는 오직 ‘삼나무’의 ‘원형’으로서 홀로 존재하기 때문에 고유하며 유일하다.”

핀체노는 어느새 컵을 손에 들고 있었다. 볼수록 신기한 장면이라 루치드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목을 축인 핀체노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라티오’는 이 세상 모든 사물의 원형이 존재한다. 바꿔 말하면 이 세상은 ‘라티오’의 변형된 복제품이라고 할 수 있지.”

“인간도요?”

“그래. 인간도. 하지만 인간의 ‘원형’에 대해서는 설명을 미루자꾸나. 그건 마법에서 일종의 금기거든.”

“자, 이제 이 컵을 보거라.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컵들이 있느냐. 그런데 컵은 속성이 무엇이냐?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거라.”

“일단 둥근 바닥이 있고, 손잡이도 있고······.”

“그리고?”

“안에 물을 담을 수 있고······.”

“자, 그러면 보자. 둥근 바닥이라고 했는데, 둥근 바닥 말고 네모난 바닥이라면 컵이 아닐까?”

컵의 바닥면을 보여주며 핀체노가 연한 미소를 지었다.

“음. 아니요. 바닥 모양은 상관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바닥의 모양은 컵의 고유한 성질이 되지 못하겠구나. 그렇지?”

“네.”

“손잡이는?”

“손잡이도 없어도 될 거 같아요.”

“그래 손잡이 역시 컵의 고유성이 아니겠구나.”

“······.”

“어이구 벌써 여기까지 왔구나. 여기서부터 산을 올라야 할 거 같은데?”

어느새 숲의 경계를 빠져나온 두 사람이었다. 루치드는 당장 산을 올라야 한다는 생각과 마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부딪혀 갈등을 했다. 아무래도 산을 오르면서는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힘들 거 같았다. 그 생각을 눈치 챘는지 핀체노가 제안을 했다.

“우선 여기서 잠깐 쉬었다 오르자꾸나.”

“네.”

한 차례 긴 호흡을 뱉으며 숨을 가다듬던 핀체노가 끊어졌던 가르침을 계속했다.

“자, 루치드. 이 컵의 고유성은 과연 무엇일까?”

“잘 모르겠어요.”

“컵이 뭐지?”

“···물을 담는 거요?”

“물을 담아서 마시기 위한 그릇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겠다. 바로 그런 성질만 내포한다면 어떤 모양이라도 컵이라고 표현해도 괜찮겠지? 그게 바로 고유성질, 혹은 ‘샤락티라스’라고 표현할 수 있단다.”

‘공’을 예로 들었던 탓인지 루치드는 컵의 외양에서 고유성질을 파악하려 했지만 잘못된 접근이었다.

“‘샤락티라스’는 외적인 것만이 아니라, 내적인 것도 있단다. 아무튼 이런 샤락티라스를 이해한다면, 마법은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샤락티라스를 안다는 것은 ‘원형’, 마법사의 언어로 ‘포르마’를 안다는 것과 같은 말이거든. 마법사는 구현해낼 포르마의 샤락티라스를 온전히 이해하고 숙지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포르마를 현실에 구현해낼 수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샤락티라스를 모르는 포르마는 구현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단, 이것은 알아야 한다. 마법사가 모른다고 해서 포르마가 없는 것은 아니란다. 포르마는 항상 존재한다. 다만 사람들이 모를 뿐이지. 이해하겠느냐?”

고개를 끄덕이는 루치드를 보며 핀체노는 첫 번째 강의를 마치기로 했다.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와서 어렵겠지만, 알고 있는 게 좋을 거다. 사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표현해내는 단어나 의미들도 모두 포르마가 존재한단다. 포르마는 모든 만물의 원형이며 모든 개념의 원형이다. 그것은 절대적이고 고유하다. 그리고 마법사의 시작은 포르마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마법사는 평생을 포르마를 이해하고 연구한단다. 하지만 포르마를 직접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포르마의 복제품인 세상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지. 복제품에서부터 원형을 복원한 달까? 그런 비유도 들 수 있겠구나. 마지막으로 마법의 구현에 대해서 한 마디만 하고 끝내자. 마법사는 포르마 그 자체를 현실에 가져올 수 없단다. 당연하겠지? 그래서 포르마를 특정한 모양으로 구현해내게 된다. 마치 이 컵처럼 말이다. 특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과정은 마법사의 심상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네가 이해하기 편하게 표현하자면 여기, 머리에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지. 특정한 모양으로 만들어 눈앞에 구현해내면 마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핀체노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는 루치드의 얼굴에 빛이 서렸다.

“심상 공간에서 포르마를 특정한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심상수련이란다. 이를 마법사의 용어로는 ‘챕터’라고 표현한단다. 이 컵을 보면 ‘물을 담는 그릇’이라는 샤락티라스를 가진 포르마에 나무재질, 동그란 바닥, 손잡이를 덧붙여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수련과정이라고 할 수 있단다.”

“포르마, 샤락티라스, 챕터······.”

루치드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지금까지 들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떠올려보며 암기를 했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루치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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