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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20화 (20/956)

Chapte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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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루치드는 자기가 겪은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을까, 하는 고민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 기현상을 아무에게나 털어놓기엔 꺼림칙했다. 어른들이라고 해서 다 알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초등학교 1학년 천재소년 ‘루치드’였다.

“역시 아직은 쌀쌀하구나.”

로브를 여미며 루치드의 뒤를 따르던 핀체노의 푸념에 루치드는 대꾸하지 않았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지만 덕분에 루치드는 몸에서 나는 열을 조금이라도 식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숲의 경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였기에 급하게 서둘 이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빨리 산에 올라야 부엉이 울음소리 들으며 산을 헤매는 꼴을 피할 수 있기에 조금 서두른 감도 없잖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숲의 경계를 넘기 전인데도 입에서 단내가 나는 듯 했다.

핀체노는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잠시 걸음을 멈추도록 했다.

“루치드, 잠깐 쉬었다 가자꾸나. 너무 급하게 가다보면 오히려 지쳐버려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될 거야.”

짐짓 괜찮은 척 하려던 루치드는 핀체노의 말이 옳다 여겨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적당한 자리를 잡아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핀체노를 따라서 쉴 곳을 찾았다. 마침 옆에 지면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가 보여 그 위에 걸터앉았다.

“물 좀 마시겠느냐?”

그러고 보니 목이 말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안타깝게도 이곳은 물이 없는 곳이었다. 루치드의 기억에 숲을 가로지르는 물길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아마 2,30분 전에 지나쳤을 것이다. 만약 저쪽 세계였다면 조그만 물통에 시원한 물을 담아 들고 다녔을 텐데 여기서는 그런 물통을 본 기억이 없다.

“물이 없어요.”

핀체노는 아이에게 컵을 건넸다. 아이는 컵을 받으면서 어리둥절한 눈치로 핀체노를 바라보았다. 언제 컵을 챙기셨지? 아니 그보다 이 컵은 우리 집에서 쓰던 컵이 아닌데? 그리고 컵을 받아들고는 더욱 놀랐다. 컵 안에는 맑은 물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게 ··· 어떻게 된 거죠?”

“우선 마시거라.”

즐거워 보이는 낯빛을 하고 아이를 바라보는 핀체노의 입은 그저 싱글벙글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을 금세 해줄 모양새는 아니었다. 아이는 우선 마른 목을 축이자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정체불명’의 물을 마셨다.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었다.

컵을 반 쯤 비우고 건네자 헤플 정도로 웃음을 짓던 핀체노가 물었다.

“다 마시지 그래?”

“아니요. 이제 괜찮아요. ···할아버지도 드셔야죠.”

“이런, 내가 마실 것 정도는 알아서 챙겨 마실 테니 걱정 말고 더 마시거라.”

“아니요. 정말 괜찮아요. 이제.”

“그래? 그럼 알았다.”

핀체노는 컵을 받아 마셨다. 남은 물을 마저 마시고 난 뒤, 컵을 든 손을 내리는데 어느새 컵이 사라졌다. 루치드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아이의 반응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핀체노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 어. 분명히··· 손에 들고 있었는데? 손에 있었는데?”

핀체노가 손을 들어 앞뒤로 뒤집었다. 아이는 미어캣처럼 그 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런 건 처음보지?”

“···예. 이거 ···마술인가요?”

“응? 마술? 음, 조금 비슷한 표현이긴 한데, 마술은 아니고 마법이다.”

“아, 그런가요?······. 예? 마법이요?”

“그래. 마법. 마법사 처음 보니?”

당연하다. 마법사를 처음 보냐고? 마법사는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책에서나 나오는 내용이었다. 아, 저 쪽 세계에서도 마법사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뭐였더라?

“익스페토 패트로늄?”

“응? 그게 무슨 소리냐?”

“네? 아, 저, 마법사 하면 무슨 주문을 외우고, 지팡이에서 번개가 치고······.”

“뭐? 큭, 크하하!”

아이의 어리바리한 리액션에 핀체노가 결국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괜히 민망해진 루치드가 쭈뼛거리는 모양이 또 웃겨보였는지 허벅지를 치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런 이상한 주문은 도, 도대체 누가 한다는 것이냐?”

적갈색 와인 빛을 한 얼굴의 주름이 쉴 새 없이 부르르 떨리도록 폭소를 터뜨리는 핀체노의 모습을 보면서도 어쩐지 멍하게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짓는 루치드였다.

“해리···.”

“푸하하, 그거 이름도 걸작이로세. 해리라니? 마법사의 이름을 ‘약탈자’라고 지은 걸 보니 꽤 못된 마법사인가 보구나!”

“······.”

계속 핀트가 나간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인데, 막상 루치드로서는 지금 상황을 논리적으로 이해할만한 배경지식이 없어 그냥 핀체노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핀체노는 한참을 웃다가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까지 돼서 꺽꺽거리기까지 했다. 한참이 지나고 난 후 겨우 진정이 된 듯 웃음이 잦아든 핀체노는 보굿같이 거친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내며 물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기막힌 마법사 이야기를 들었는지 정말 궁금하다만 그만 물으련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가는 제 명에 못살 듯 싶구나.”

그러든지 말든지 루치드는 인내심을 가지고 핀체노가 무엇이든 설명해주길 기다렸다. 아기 고양이 같은 아이의 눈빛을 보며 핀체노는 다시 헤픈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돈으로 비유한다면 핀체노는 이미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하고도 빚을 지었을 인물이리라. 하지만 핀체노는 기꺼이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묘하게 자신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저 아이의 눈빛을 바라보는 대가라면 말이다.

“돌려 말하지 않으마. 난 마법사란다. 컵이든 물이든 언제든지 꺼낼 수 있지. 내가 웃은 건 널 비웃으려고 했던 건 아니란다. 다만 지난 10년간 마법을 쓰지 않았던 터라 너처럼 반응하는 모습을 본 지가 꽤 오래되어서 말이다. 아니, 생각해보니 그 전에도 너처럼 신선한 반응을 본 기억이 드물 구나. 게다가, 해리, 큭. 흠흠.”

억지로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무릎을 주먹으로 두어 번 내리치며 진정하려 애쓰는 핀체노를 보며 루치드는 이 세상이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지식 이상의 비밀을 간직한 세상임을 깨달았다.

원하지 않았지만 나름 신비한 경험을 겪은 루치드였다. 처음 저 쪽 세계로 갔을 때, 놀라운 기술 문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 쪽 세계로 다시 돌아오니 이번에는 이야기 책에서나 나올법한 마법의 존재를 알 게 되었다. 루치드를 경악에 빠뜨리게 하고 황당한 처지에까지 놓이게 하는 이것들은 그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강력하게 자극했다. 그리고 이 쪽이든 저 쪽이든 ‘세계’는 무궁무진한 지식과 비밀을 담고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

루치드는 궁금했다. 얼마나 많이 보고 듣고 배워야 ‘세상’이란 것을 알 수 있을까? 자신이 어른이 될 때까지, 혹은 눈앞의 핀체노처럼 늙기 전까지 ‘세상’의 신비라는 것을 모두 알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까? 당장 초등학교 교과서들만 해도 자신이 모르는 것투성이고, 그것마저도 어느 세월에 다 배울 수 있을까 염려되었던 판국에 ‘세상’의 진실, 비밀, 신비를 모두 알게 되는 날이 과연 찾아올까? 언제쯤이면.

“저는 알 수 있을까요?”

그 모든 것들을.

어디를 바라보는지 모를 눈으로 힘없이 뱉어내는 말에 웃음을 그치고 바라보던 핀체노가 한마디 툭 던졌다.

“배워볼테냐?”

“···네?”

어리둥절한 루치드.

“알고 싶다며? 가르쳐줄테니 배워보겠냐는 말이다.”

무엇을, 이라는 물음에 앞서 루치드는 답을 찾았다.

“마법, 말인가요? 제가 배울 수 있나요?”

“그럼, 마법은 배울 수 있지. 누구나 마법은 배울 수 있단다.”

“··· 그런가요?”

“그럼, 다만 마법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인거지.”

루치드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쓰는 건 둘째다. 우선 배워야 한다. 뭐든지 알아야 한다.

“예, 배우고 싶어요, 마법. 가르쳐주세요.”

핀체노의 입술 끝이 또 말려 올라갔다.

지금 그는 노름으로 모든 가산을 탕진한 노름꾼의 얼굴을 했다. 탕진한 가산 이상을 채워줄 금광을 발견한 노름꾼의 얼굴을.

“지금 당장 모든 마법을 배우기도 어렵거니와 시간이 많지 않으니 걸으면서 이야기 할까?”

“예!”

툭 튀어나온 덤불 끝을 발로 밀치며 나아가던 핀체노는 마법에 대해 설명했다.

“마법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눈에 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 아까 네가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컵과 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신기하겠지. 그런데 사실 마법이란 게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란다. ‘가져오는’ 거지. 그럼 궁금하지? 가져온다면 ‘어디서’ 가져오는 것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그 곳을 나는 ‘라티오’라고 부른다. ‘라티오’는 모든 것의 원형이 존재하는 곳이란다. 물론 이 세계에 존재하는 곳은 아니지.”

“그럼 다른 세계인가요?”

“호오. 꽤 신선한 반응이구나. ‘다른 세계’라는 개념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다. 넌 타고난 마법사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런데 ‘다른’ 세계는 아니란다. ‘라티오’는 어쩌면 이 세계나 다른 세계 ? 다른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념적으로는 존재할 법한 세계를 지칭하자꾸나. 어쨌든 그 모든 세계를 초월하는 곳이지.”

루치드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옆을 돌아보았다. 핀체노가 바라보니 그 얼굴이 거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느냐?”

“··· 전부 다요.”

루치드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분은 루치드가 ‘이 쪽 세계’에 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과 그럼에도 영특한 면이 보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저 쪽 세계’ 기준에서도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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