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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19화 (19/956)

Chapte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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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체노가 눈치를 보아하니 저 아이는 쉬이 입을 열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핀체노라고 한단다. 드뷔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하느라 이 모양이다만. 어쨌든 너는, 아니 이 마을에 너 밖에 없는거냐?”

아이는 슬쩍 옆을 둘러보았다. 외지인의 출현에 호기심을 드러내며 고개를 삐죽이는 마을 사람들, 의 모습 따위는 볼 수도 없었다. 핀체노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만 바라볼 뿐이었다.

“··· 그런거 같아요.”

“넌 여기 사는 게 아닌가 보구나?”

이건 정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피하기도 그렇고, 대답을 하려니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기가 미묘하다.

“여기 ··· 여기가 우리 집이예요.”

“부모님은?”

“사라지셨어요.”

“사라져?”

핀체노는 긴 다리를 뻗어 바위 아래로 내려왔다. 아이와 대화를 하기엔 너무 높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내려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저··· 저기 숲을 갔다왔는데 마을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어요.”

“호오, 그렇다면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말이구나.”

핀체노는 역시나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며 시선을 옮겨 텅 빈 마을 속길을 바라보았다.

“한번 둘러봐도 되겠느냐?”

아이는 딱히 막아야 할 이유도 없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장서 걸어가는 핀체노의 뒤를 따라갔다. 핀체노는 아이의 옆집을 먼저 확인해보았고 이를 시작으로 마을의 집들을 순회했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집에 들어 온 두 사람.

“흐음. 신기하구나. 보아하니 얼마 전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말 사람들이 ‘사라진’ 건가?”

노인이 자신과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것에 뜻모를 위안을 받은 아이였다. 그래서 노인이 선반을 가리키며

“저거 먹어도 되겠니?”

라는 요구에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컵에 물까지 따라 식탁 위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식탁에 앉아 빵을 떼어 먹으며 조촐한 아침 식사를 함께 하였다.

“고맙다. 그런데 여기는 마을 이름이 뭐니?”

아이는 자기 물컵을 만지작거렸다.

“몰라요. 다들 그냥 빈촌이라고 했어요.”

노인은 아이의 말본새가 나이에 비해 꽤 정연(整然)하다고 느꼈다. 분명 배움이 있었던 아이이리라.

“혹시 글을 배웠니?”

“······아니요.”

빵을 우물거리며 대답을 늦췄던 아이였다. 확실히 이곳의 글은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맞는 대답을 한 셈이다.

반면 핀체노는 요 근래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에 조금 흥이 돋은 상황이었다.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이나 빈촌과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존재는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였다. 게다가 아이가 은연중에 보여주는 차분함과 총기(聰氣) 역시 흥미롭다.

“아까는 뭘 보고 있었던거냐?”

‘핀체노’라는 이름만 알 뿐,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이다. 다만 위험하다는 인상은 아닌지라 마주앉아서 함께 식사를 하고는 있지만 학교에서 ‘낯선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교육받은 아이는 경계심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산을 보고 있었어요.”

“왜?”

“···혹시 다른 사람들이 산으로 간 게 아닐까 싶어서요.”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고?”

“···어제까지는 기다리려고 했는데, 이제 찾으러 가봐야 될 거 같아요.”

“그런데 왜 가지 않고 보고만 있었누?”

컵을 매만지는 손길이 사뭇 긴장돼 보였다.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했어요. 가면 못 올 수도 있다고요.”

저 아이는 분명 혼자서라도 가 볼 생각이었을 것이다.

“무섭고?”

“···예, 무서워요. 그래도 가야돼요.”

솔직한 아이다.

“만약 사람들이 없으면 어쩔테냐?”

“그럼 또 다른 곳을 찾을거예요.”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아이의 눈빛이 노인에 보기에 마음에 들었다.

“내가 같이 가주랴?”

“예?”

“어차피 나도 급할 게 없고 어린 너 혼자 저 산에 보내는 게 영 마음에 걸리는구나. 어른인 내가 어린 너를 보살피는 게 또 도리에 맞지 싶구나.”

아이는 노인의 친절이 당황스러웠다.

“저기, 위험한 곳이라고 하던데요.”

“나를 걱정해 주는 거니? 아이야, 고맙지만 난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약한 사람은 아니란다. 내 몸이랑 너 하나 정도는 지킬 힘이 있고.”

저 주름진 얼굴과 굽은 어깨를 보면 오히려 아이가 하루종일 부축해야 할 거 같은데.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많은 어린 너를 저 ‘위험하다는 곳’으로 혼자 보내느니 내가 혼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너한테 이야기를 해주는 게 더 좋은 생각 같지만, 어쩐지 그 방법은 니가 싫어할 거 같구나. 그렇지?”

당연하다. 아이는 제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마음이 풀릴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다음 계획도 세울 수 있다. 다른 방향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저 산을 넘어야 할지.

“그러니 내가 같이 가자는 것이다. 어떠냐? 같이 가겠느냐?”

썩 내키는 선택은 아니지만, 어떤 위험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산에 어린 아이 혼자 올라가는 것보다는 어른이 곁에 있는 것이 좀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예. 그럴게요.”

핀체노는 입가에 선 주름을 밀어 올리며 마주 앉은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혹시 따로 준비할 게 없다면 지금 바로 일어나자꾸나. 너무 늦게 출발했다간 깊은 밤에 산을 헤매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에서 몇 가지 두꺼운 옷가지를 챙겨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섰다. 배낭에 넣어두었던 땔감들이 현관 옆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었으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팡이를 짚으며 아이의 걸음에 맞춰 걷던 노인이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그런데, 아이야.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루치드예요.”

그 순간 아이의 목에 걸렸던 펜던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웃옷 속에 파묻혀있던 터라 두 사람은 전혀 알지 못했다. 게다가 뿜어졌던 빛은 나오기가 무섭게 다시 펜던트로 스며들었다. 다만 산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던 핀체노가 정체 모를 위화감에 아이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빛을 갈무리하고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간 펜던트였다. 노인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좋은 이름이구나. 새벽에 태어난거니?”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 의미가 있나요?”

짧게 웃음을 터뜨리며 핀체노는 ‘루치드’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옛 고어로 남쪽지방에서 쓰이던 언어가 있는데, 거기서 ‘루치드’는 ‘밝은 새벽’을 의미한단다. 하루의 시작이며 희망의 아침을 비유하기도 하는데, 아마도 네 미래를 축복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 같구나.”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가진 의미를 알게 된 루치드는 담담히 ‘밝은 새벽’을 반복해서 읊었다.

“누가 지어준 이름이니?”

“···모르겠어요.”

그냥 루치드라고 불리며 살아왔는데 누가 이름을 지어줬는지는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일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진행하다보니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자신에게 글자를 알려준 적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숫자나 셈법을 알려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이세계로 가기 전의 날짜로 2년 전이었다. 그 때는 자신도 고작 5살 밖에 되지 않았기에 아버지가 무엇인가를 자세히 가르쳐준다고 해도 배울 준비가 되지 않았던 탓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납득을 한다 쳐도 어머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무언가를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글자든 숫자든 가르침은 물론이고 사용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아이가 아는 숫자는 컵 3개, 의자 2개 정도에 불과했었고 나머지는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며 지냈다. 보육원 뒤의 낮은 산도 ‘용천산’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저 높은 산이나 넓은 숲에는 이름이 없다. 아니 아이는 이름을 몰랐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생활에 불편함이 있었나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지난 1년간의 교육이 있었기에 이 정도로 자각을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알지 못했을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 이름은 옛 고어에서 나온 말이다?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혹시 부모님은 글이나 숫자를 몰랐던 것일까?

‘그럼 내 이름은 누가 지은거지?’

갑작스럽게 들은 이름의 의미 때문에 부모님의 정체를 고민하는 사이, 두 사람은 산기슭에서 시작된 숲의 초입에 도착하였다.

“넌 이 숲에 몇 번 와봤다고 했었지?”

아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흠, 그렇구나. 그럼 들어가 보자꾸나. 네가 앞장서겠니?”

“예.”

핀체노는 앞장 서 걷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쩐지 저 아이에게 호감이 갔다. 어지간하지 않으면 아이든 어른이든 거리를 두었던 핀체노였다. 그가 지난 세월동안 겪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그것이 당연했었는데, 이 아이의 눈을 보면서는 경계심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경계하던 아이의 눈에서 순수함이 느껴져 이 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긴 여기가 많이 외진 곳이긴 했다.

“혹시 이 마을 밖의 다른 마을을 가본 적이 있니?”

참 곤란한 질문이다.

“아니요.”

아이는 지나가는 나무 가지를 옆으로 젖혀 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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