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10화 (10/956)

신학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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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스 보육원의 보육교사 이경희는 이 곳의 책임교사 역할을 담당했다. 중고등학생 애들은 각자 알아서 등교를 하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지만, 초등학생들은 보육원 승합차로 등하교를 시켜야 했다. 때문에 하교 시에도 5, 6학년 아이들의 일정에 맞춰 애들을 데려와야 해서 자신이 데리러 가기 전까지 저학년 애들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나마 보육원 애들이 대체로 눈치가 빠르고 조심성이 많은 편이라 큰 사고를 잘 치지 않기에 걱정을 덜 하는 편이기는 했다.

그런데 요즘 다른 의미로 걱정이 되는 면이 있었다. 학교에서 ‘석고’로 불리는 아이 때문이었다. 원체 표정이 없는 아이여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때가 많기도 했었는데 최근 담임교사와의 면담 이후에는 그 아이의 자질 때문에 걱정이 많아졌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처럼 사고 안치고 열심히 공부하며 정숙하게 행동한다면 보육교사로서 더 바랄 것도 없을 것이다. 며칠 전부터는 친구에게 책을 빌려다 보기 시작하면서 방에서 독서를 하는 시간이 늘어나 다른 아이들에게 야단치듯 잔소리할 필요도 없어졌음은 물론이다. 기본적으로 눈치도 빠르고 부지런한 아이였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알아서 등교 준비를 하니 깨우는 수고를 덜었고, 청소시간에도 부지런하고 빈틈없는 아이였기에 경희가 보기에 흐뭇했다. 다시 말해 생활 태도 면에서는 만점을 줘도 아깝지 않을 원생이었다.

그런데 얘가 천재란다. 보육교사 모르게 과외를 받을 리도 없다. 그러니 독학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또래보다 빠르게 학과 진도를 나감은 물론이요, 몇 몇 과목에서의 두드러지는 활약상은 담임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 종합적으로 방과 후 교사들의 의견까지 참고해 본 담임교사의 눈으로 그 아이가 ‘천재’란다. 물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테스트는 없었기에 ‘천재’라고 장담은 못해도 ‘영재’ 수준은 넘을 것 같다는 첨언. 때문에 앞서 언급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테스트와 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염려 아닌 염려를 비추는 담임 교사였다. 도대체 보육원 시스템을 뭐로 보고 저러나 싶은 경희였다.

“선생님!”

마침 아이들이 교문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그 무리에 예의 ‘석고’로 불리는 ‘영재’가, 역시나 표정 없는 얼굴로 명수 손에 끌려 뛰어오고 있었다.

“그래. 천천히 타. 천천히. 명수야, 발 밑에 조심해야지.”

보육원에서 보살펴야 하는 아이들은 한두 명이 아니다. 한 아이가 두각을 드러낸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집중 관리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아이는 특별한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배, 고, 파, 요, 배, 고, 파~!”

명수는 언제나 그렇듯이 신이 났다. 저렇게 24시간 기운이 넘쳐흐르기도 힘들 텐데. 그야말로 무한 긍정이다. 그리고 늘 ‘무한 긍정’의 손에 이리 저리 휘둘리는 ‘풍선’ 같은, ‘석고’로 불리는 ‘영재’에게 잠깐 시선이 갔지만 이내 눈을 돌렸다.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안타까움만 더 할 뿐이다. 곧 있으면 방학이 되니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 중에 재능기부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볼까 하는 생각만 잠시 해볼 따름이다.

****

경은의 엄마는 요즘 딸아이가 유독 즐거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은 위로 4학년 오빠와 3학년 언니가 있어 신경이 분산되는 면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이제 갓 초등학교를 입학한 딸아이가 흥얼거리며 책가방을 챙기는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요즘 오빠나 언니 방에서 책을 고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어 기특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음을 떠올리게 되니 경은의 저런 모습이 살짝 의심스럽다.

“경은아, 학교는 어떠니? 재밌어?”

TV를 보며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경은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역시 아직까지는 책보다 TV를 좋아하는 경은이었다.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경은에게 재차 묻자 대답이 나온다.

“응, 재밌어. 아까 학교에서 혜진이랑 체육시간에 편먹고 땅따먹기 했는데, 우리가 이겼어. 혜진이는 엄청 빠른데 나도 엄청 빨라서 다른 애들이 땅 먹기 전에 우리가 먼저 땅 먹어서 이겼어. 선생님이 빠르다고 칭찬도 해줬어.”

식탁 위에 수저를 놓으며 경은의 엄마는 마침 잘 됐다는 듯 수다를 늘어놓는 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SNS에서 담임교사가 오늘 생활체육시간에 땅따먹기 러닝 수업을 진행했음을 알려온 터라 딸의 수다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랬구나. 우리 경은이 친구들이랑 잘 지내나보네.”

“응, 오늘 또 지훈이가 국어 시간에 까불다가 선생님한테 혼났어. 그래서 애들이 다 웃었어. 호랑이가 토끼한테 잡아먹을 거라고 했는데, 지훈이가 토끼 고기가 맛있는 거냐고 선생님한테 질문했어. 선생님이 모르겠다고 했더니 호랑이도 먹을 수 있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애들이 다 웃었어. 선생님이 호랑이는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동물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꼭 먹어보고 맛을 알려주겠대. 그래서 또 우리가 다 웃었어. 근데 나는 안 웃었어. 걔는 너무 이상한 거만 생각해.”

대충 맞장구를 쳐준 경은은 여전히 본심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혹시나 하고 찔러보았다.

“근데 경은이는 학교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야?”

“나? 혜진이랑 제일 친하지.”

“혹시 혜진이는 공부 잘하니?”

“음··· 나랑 비슷해.”

“혜진이는 책 많이 읽고 그러니?”

“아니, 책은··· 석고가 많이 읽어.”

직감적으로 이 녀석, 이라는 것을 알았다. ‘석고’라는 아이가 딸의 기분을 업시켜 놓았다.

“그, ‘석고’라는 친구랑 친하니?”

“응. 걔랑 방과 후 수업 매일 같이 들어. ‘석고’는 되게 똑똑해. 선생님들이 맨날 칭찬해.”

“그러니?”

경은의 엄마는 식탁을 대충 차려놓고 잠시 경은에게 다가갔다. 사실 걔가 똑똑한 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살짝, 아주 살짝 불안할 뿐이었다.

“근데 경은아. 엄마는 니가 걔랑 너무 가까이 안했으면 좋겠어. 걔 말고도 똑똑하고 착한 친구들 많지 않니?”

“······.”

뜻밖의 말을 들었음일까? 경은은 엄마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볼 때, 표정 없는 보육원 사내아이가 딸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고깝게 여겨질 수 있지만 보육원 아이는 아무래도 다른 아이들보다 정서적으로 불안할 수 있고, 그런 아이와 가깝게 지내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드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혹시라도 딸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편견일 수 있겠지만, 현실이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엄마는 어떻게 딸을 이해시킬 것인가를 맹렬히 고민하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식탁 위의 국이 식어간다는 사실도 잊은 채.

****

또다시 아침이 밝아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가장 먼저 일어난 아이는 보육원 뒷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 이름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 빈촌의 서쪽 언덕 너머의 숲을 그토록 오래 돌아다녔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 정도 산을 오르내리는 것은 여반장이었다. 보육교사나 생활지도원 선생님들도 아침잠에서 깨기 전에 몰래 산에 올랐다가 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산에 오르게 된 계기는 별거 아닌 충동 때문이었다. 일어나보니 아직 어스름한 하늘빛을 보게 되었고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충동적으로 ‘숲’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숲이 머금은 물기와 서늘한 공기가 아이의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씻어주는 느낌에 아이는 기분이 좋았다. 숲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 하늘이 새 아침을 알리는 소리들이 귀를 즐겁게 했다. 이곳은, 적어도 이 곳 만큼은 ‘숲’을 뛰어다니던 그 곳과 닮았다.

숲의 기운을 만끽하던 아이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미친 듯이 책을 파고든 이유를.

아이는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이곳은 어떤 곳이지?’

이곳은 아이의 머리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문물과 환경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보육원 내 시청방에서 TV를 봤을 때는 가히 기절하기 직전까지 가지 않았던가. 과거 아이가 처음 숲에 발을 들이밀 때는 곁에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숲의 길부터 시작해서 나무, 약초, 동물들을 알려주었고 숲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 숲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곳은 그 숲보다 더 생소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누구도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무엇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는 그래서 이곳에 대해 알아야 했다.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아이는 본능적으로 과거 살던 세상과 이곳이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의 색, 공기의 맛이 전혀 달랐다는 것은 물론이요, 복식과 생활상, 문물, 음식 등이 모두 달랐다. 무엇보다 ‘말’이 달랐다.

처음에는 아이도 깨닫지 못했다. 자신은 자연스럽게 알아들었고, 자연스럽게 말을 내뱉었으니까. 그런데 아이가 이름을 떠올렸을 때,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남 몰래 충격을 받았었다. 불가해한 상황에 놓인 아이는 말문을 닫아 걸기도 했었다.

하지만 총명했던 아이는 이곳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면서 ‘왜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이 어른들 만큼 똑똑해지거나 혹은 그 이상의 지식을 쌓게 되면 그 답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자신이 아직 어려 아는 것이 없어서 모른 것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끝으로 남은 물음.

‘엄마는 어디로 가셨을까?’

이 물음은, 아이가 가장 풀어보고 싶은 난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문제는 바른 해결 과정만 짚어 내면 풀 수 있다, 는 방과 후 교사 박해울 선생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다면 말이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아이는 다짐했다. 반드시 이 문제를 풀어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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