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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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의 ‘소란스러움’은 며칠이 지난 후 ‘번잡스러움’으로 변이되었고 한 달이 지날 무렵에는 ‘혼란스러움’으로 바뀌었다.
변한 게 없다는 이야기다.
초등학교 교사 3년차인 김희연이 1학년을 맡는다는 것도 보통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어른들만의 사정이라고 고상하게 표현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으나 희연은 억지로 1학년 담임을 떠맡게 되었다. 3년차이기에 경험이 일천하다 표현해도 무방할 희연. 그녀에게 난장판이 되기 직전의 1학년들을 수월하게 통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1학년 3반은 종종 옆 반의 경험 많은 선생님들이 출동해서 진압(?)을 하기 일쑤였다. 덕분이라고 해야 될지, 아니면 1달 간의 학교생활에 적응을 한 탓인지 수업 시간이 되면 어떻게든 진행은 가능한 수준으로 아이들의 태도가 좋아졌다. 그 정도에 희연은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쉬는 시간이 되면 비행기 소음 이상의 소란이 1학년 3반을 가득 채웠기에 교실 앞 창가 쪽에 자리한 희연은 그저 머리만 싸매며 참을 뿐이었다.
‘차라리 오전 내내 체육시간이었으면······.’
그랬다면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다가 다치진 않을지, 경계 태세를 갖춰야 했을 테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심력을 낭비하게 될 테지만, 당장 희연은 이 소란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교실을 바라보니 당장 한 소리라도 해야 할 듯 싶었다.
“지훈아, 책상에 올라가면 안돼요. 다쳐요. 희진아, 너도 거기 창문에 올라가면 안돼요, 내려오세요. 뒤에! 뛰지마세요! 넘어져요!”
그런 소란의 와중에 창가 쪽 책상 열 가운데 앉은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잘생긴 외모로 학부모들 사이에 소문난 그 아이는 이 소란스러운 교실의 열외자였다. 아이는 항상 책을 읽고 있었다. 대부분 교과서였지만 가끔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동화책을 읽고 있기도 했다. 수업시간에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과 아이 컨택을 하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 살짝 부담도 됐지만, 그래도 이 아이 덕분에 교사로서의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수업에 충실한 아이를 싫어할 교사는 없으니까.
교실 앞에 앉아 턱을 괴고 자신을 관찰하는 선생님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책에 집중을 하고 있던 아이는 요즘 꽤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매일 새로운 가르침으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수업도 만족스러웠고, 무엇보다 학교의 교과서를 통해 얻고 있는 지식은 매일 매일 아이를 놀라게 하였다. 수업의 진도와는 별개로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희열에 가까운 즐거움을 느꼈다. 특히 방과 후 수업에서 배우는 수학은 즐거움 이상의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 문제 한 문제를 풀 때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고 배움이 깊어질수록 자신을 둘러싼 혼란들이 정리되어 가는 느낌마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부의 즐거움에 빠져 있던 아이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돌아보니 지훈이었다. 이제 신학기가 시작되고 1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지훈은 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좋은 의미에서 활발한 아이였지만 사실 ‘악동’의 이미지가 더 잘 어울렸다. 수업시간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갑자기 화장실을 간다며 교실을 뛰쳐나간다거나 ? 그 이후에 선생님이 쫓아오면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 해맑게 웃으며 도망치기 바쁘다 ? 쉬는 시간에는 책상 위에서 폴짝 폴짝 뛰어다니며 스릴을 만끽하는 액션지상주의자 같은 면모를 보이는 아이였다. 창의성도 뛰어나 매번 다양한 방식으로 옆 자리의 여자애를 울리는데, 어느새 그런 지훈의 ‘놀이’에 동참하거나 동참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줄을 잇는 지경이었다. 때문에 그 악명이 학부모들이 사용하는 SNS 방에서 자자했다. 그래도 그의 악동 짓을 엄격하게 제지하지 못하는 것은 귀한 집의 독자라는 이유였고, 그래서 그저 끙끙 앓고만 있는 피해자(?)들의 부모와 담임교사였다.
그런 지훈이 아이에게 다가온 것이다. 다음 피해자로 지목(?)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멀뚱한 눈으로 지훈을 바라봤다. 지훈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등 뒤에 세운 채 짓궂게 웃으며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너 석고상 닮았대.”
무슨 말인가 싶었다.
“우리 누나가 그린 그림을 보고 엄마가 너랑 닮았대. 그게 석고상이래. 너 석고야.”
맥락이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는 잠시 멍해졌다.
사실 지훈이 말하는 내용은 학부모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SNS 상에서 잠깐 화제가 됐던 이야기였다. 입학식 날 눈에 띄었던 아이의 외모를 가지고 평가를 나누던 학부모들 중에서 누군가 ‘조각’같은 외모라는 평을 남겼고, 이에 예고 입시를 앞두고 있는 딸을 둔 학부모가 석고 소묘로 사용되는 석고상 중의 ‘줄리앙’을 언급했다. 물론 그 뒤로 자기 자식도 만만치 않네, 그 집 아이들도 예쁘게 생겼더라 등등 서로 금칠하기 바빠진 SNS 대화는 제쳐두고라도, 아이의 외모를 석고상에 비유하며 평가했던 내용이 지훈의 귀에도 들어갔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아이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얘 석고야.”
별 말도 아닌데 애들이 박수를 치고 까르르 웃으며 배를 잡았다. 멍해 보이는 아이의 표정과 리액션이 지훈이 패거리들에게 재밌는 현상이었던 것일까.
깊이 파고들 문제도 아니었던 이 사태 이후, 아이는 ‘석고’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옆 반의 명수가 이를 알게 된 후, 보육원에서도 아이를 ‘석고’라 부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보육 교사가 이 별명을 들었을 때, 한 편으로는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별명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지 걱정했다. 때때로 그 시기의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별명으로 상처받아 의기소침해 하는 경우도 더러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는 괘념치 않았다. ‘석고’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그렇게 기분 나빠해야 할 것인지를 몰랐기 때문인 것이 한 이유였고, 또 다른 이유는 예전의 빈촌 생활시 들었던 별명보다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빈촌에서는 하루 종일 숲길을 뛰어 다니는 모습을 빗대어 ‘스크로파’, 이곳 말로 ‘멧돼지’로 불렸다. 얼굴 가득 진흙이나 묻히고 다니며 꿀렁대는 소리나 내는 돼지에 비유되느니 차라리 석고가 좋다고 생각하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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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계절은 여름이 가까워져 성격 급한 사람들은 반팔 티셔츠만 입고 외출을 할 정도가 되었다. 여전히 보육원에는 자원 봉사자들이 틈틈이 찾아왔고 마당의 잔디들 사이로 거센 잡초들도 쑥쑥 자라 보육원 어린 아이들의 발목에 생채기를 낼 정도가 되었다. 그래봐야 자원봉사자들의 손에 금세 베어져나갈 것들이지만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이 잔디밭에 들어가지 않도록 지도해야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보육 교사가 운전하는 승합차에서 하차하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문으로 걸어가는 아이들에는 1학년인 명수와 아이 외에도 3학년, 5학년 각 1명씩, 그리고 6학년 2명이 더 있었다. 보육원 내에서나 밖에서나 6학년은 의젓했고 중간 학년 아이 둘은 6학년 형들의 뒤를 졸졸 따라갔지만, 천방지축 1학년이라 칭함에 모자람이 없는 명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끌다시피 하며 교내로 뛰어 들어갔다. 위 학년 아이들은 그런 둘을 말릴 생각이 없었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의 발걸음은 주변의 등교하는 학생들보다 무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이 난 명수와 목줄이라도 잡힌 강아지모양으로 함께 뛰는 아이였다.
억지로 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이도 즐겁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최근에 학교에 도서관이란 시설이 있고 그곳에 비치된 장대한(?) 서적들의 향연에 한껏 취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아이였다. 단체로 등교하다 보니 비교적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등교할 수 있었기에 아이는 책가방을 교실에 두고 달음박질하여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도 1등이구나.”
마침 도서관의 문을 열고 있던 사서 선생님의 환대에 아이는 빙긋 웃으며 인사했다.
“그래 먼저 들어가렴.”
도서관 현관 옆에 위치한 사서대로 가던 선생님의 허락에 아이는 다시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장서 앞으로 뛰어갔다. 지난 밤 동안 숨죽여있던 책들이 한꺼번에 숨을 토해내는 듯 묵은 책의 향기가 아이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 냄새마저 달콤하게 느끼며 아이는 오늘 하루 볼 책들을 세 권 정도 골랐다. 아직 두꺼운 책을 모두 소화해 낼 정도의 이해력과 지식이 겸비되지 않아 비교적 얇은 저학년 용 책들을 고르지만 특별히 고르는 주제는 없었다. 특히 저학년 용 책들 중에는 시리즈 형식으로 엮인 전집들이 많아 한 시리즈를 연달아 읽고 다음 시리즈를 읽는 방식으로 책을 소화해냈다. 아이는 잘 몰랐겠지만 요즘은 저학년 용 책들이라고 전부 창작 동화나 위인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논술을 대비한 인문 고전 혹은 수리 경제 분야 책들도 삽화와 함께 나오고 있어 아이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매우 충분하다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지난 7년간 그 어떤 체계화된 지식의 습득과 거리가 멀었던 아이가 매우 빠르게 이 세상의 시스템과 사회 환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또 아이가 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전혀 다른 사회, 전혀 다른 삶에서 이곳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경험한 슬픔과 절망의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독서로부터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몰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이를 괴롭히는 과거의 기억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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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은 아침 교무회의를 마치고 반으로 들어왔다. 뜨거운 기름의 물 같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뚜껑 없는 믹서기 속의 고춧가루들 같았다. 언제 스위치가 켜질지 몰라 조마조마하기도 했지만 스위치만 잘 조절하면 얌전한 아이들이었다.
아직 수업이 시작되기 전이라 반쯤 스위치가 켜진 듯하지만 그간의 시간이 마냥 흐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지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자 조금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혼자 기름에 튀겨진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지훈이는 여전히 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목소리로 옆 친구와 작당 모의를 하고 있었지만 다른 대부분 아이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나름 조용히 쑥덕대고 있었다. 그 쑥덕임이 모여 ‘시끌벅적’이 됨을 아직 아이들은 모르고 있다.
그리고 유독 한 아이, ‘줄리앙’을 닮았지만 ‘석고’로 불리는 저 아이는 주변의 소란에 상관없이 책을 읽고 있었다. 한 학기가 거의 지나가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 저 아이의 집중력과 학습태도는 거의 전교에서 수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희연이었다. 학기 초에는 크게 돋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작문수업이나 수학시험에서도 꽤 좋은 점수를 받기 시작했다. 특히 방과 후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의 칭찬이 대단해서 희연도 기대를 많이 하는 학생이었다. 아침부터 저렇게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보육원에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때 수업종이 울렸다.
“자, 이제 수업시작해요. 첫 시간은 뭐죠?”
“가족이요!”
이 때만큼은 애들이 참새 떼 같다는 생각에 속으로 피식 웃으며 둘러보는데 마침 ‘줄리앙’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 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과목을 가르칠 때가 개인적으로 힘들다고 느끼는 희연이었다. 특히 저 슬픔 가득한 눈과 마주칠 때면 저도 모르게 죄책감 비슷한 감정까지 느끼고 마는 3년차 교사 희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