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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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복지사의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갔다. 우선적으로 아이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했기에 복지사는 아이를 검진하도록 했다. 이후 임시적으로 미아센터에도 문의해서 인상착의를 확인했지만 아이의 실종 신고는 없었다.
이후에도 복지사는 충실하게 절차를 밟아 아이가 새로운 복지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일을 진행했다.
“걱정마렴. 니가 좋은 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줄테니 아줌마만 믿어. 알았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신뢰를 얻으려는 복지사의 노련함도 아이의 말문을 트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복지사는 익숙하다는 듯이 아이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어 주었다.
복지사의 노력 덕분에 아이는 꽤나 건실하다고 평이 난 시 외곽의 보육원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아네스 보육원이란 이름을 가진 그 곳은 지역 신문에도 종종 나오는 건실한 보육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봉사활동도 자주 오고 모금도 꽤 잘 되는 편인 곳이라고 했다.
복지사의 차를 타고 시 외곽으로 가는 동안 아이의 눈은 쉴새 없이 흔들렸다. 커다란 건물, 포장된 도로, 다양한 색상의 간판 등 그 무엇도 이전에 본적도 없던 것들이었다. 비록 아이가 도심에서 외떨어진 빈촌에서 살았다지만 이 곳은 결코 자신이 살던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차’라고 불리는 탈 것은 가히 기물 중의 기물이었다.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있었다면 분명 어느 누구에게라도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빈촌이라도 어른들 중의 몇몇은 도심으로 가서 물물들을 사오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단 한 번도 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시장에 가서 아빠랑 같이 밀을 사려고 가게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저 길 끝에서 먼지 구름이 나는 거야. 사람들이 전부 매대 뒤로 숨는 모습이 보이길래 나도 재빨리 뒤에 숨었지. 조금 있으니까 땅이 쿵쿵거리더니 시커먼 말이 휙 하고 지나가는데 가만 훔쳐보니깐 말야, 말이 우리 집 지붕보다 더 커. 알겠어? 엄~ 청 큰 거야! 그리고 빠르기는 엄~ 청 빨라! 근데 말 위에 번쩍 거리는 갑옷 입은 기사님이 앉아 있는데 그 기사님은 전혀 흔들림없이 말 고삐를 붙잡고 허리를 탁 세우고, 응? 앞을 이렇게 지긋이 바라보면서 타고 있는 거 있지? 근데 그 기사님이 그 와중에 매대 뒤에 숨은 나를 본거야.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데 나를 본거야. 탁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구? 그래서 나도 같이 고개를 끄덕여 줬지. 그랬더니 기사님이 씩 웃으면서 가시는 거야. 알겠어?”
숨도 안 쉬고 몰아치듯이 자랑질하던 친구에게 아이가 되물었었다.
“그렇게 빨리 달린다는 말 위에서 기사가 널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씩 웃고 그랬다고?”
“그렇다니깐?”
“그걸 다 봤다고?”
“그래!”
“그렇게 빨리 달렸다는 말이?”
“······의심하냐?”
친구의 허풍에 웃음을 띄었던 아이였지만, 지금은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 허풍이 진심이라 해도 이 ‘차’가 보여주는 빠름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가온 낯설음은 아이의 눈과 귀를 지배하고 머리 속을 뒤집어 놨다. 때문에 아이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그저 펜던트만 꼭 쥘 뿐이었다.
시 외곽의 한적한 동네로 들어서자 차는 속도를 줄였고 이내 보육원에 다다랐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소로로 빠져 나간 차는 이내 주목과 단풍 나무 등의 조경수로 둘러쳐진 건물로 들어갔다. 좁지 않은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었고 그 너머로 아이들이 뛰어놀기 적당한 공터가 있었다. 건물은 3층 높이로 깔끔한 베이지색과 흰색이 어우러져 페인트칠이 되어 있어 깨끗한 건물이란 인상을 주었다.
“자, 여기가 니가 앞으로 지내게 될 새 집이란다. 어떠니?”
복지사는 예의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이끌었다. 아이는 표정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복지사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복지사도 아이의 동공이 쉴새없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아차리진 못했다.
“어이구, 오셨습니까.”
“예. 김원장님 잘 계셨어요?”
50대 중반의 보육원 원장은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듯 부푼 뱃살을 내밀며 복지사와 아이를 환영했다. 아이는 아무 반응 없이 그저 원장을 ‘관찰’했다. 원장은 보육교사 한 명을 불러 아이를 잠시 맡아 달라 청하고 복지사와 대화를 나눴다.
“도망친건가요?”
“아마도 그런 거 같아요. 처음에 파출소에서 엄마, 아빠가 없다고 했대요. 그런데 이름을 물으니까 그 때부터 입을 닫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실종신고도 들어온데가 없는 걸 보니 도망친 거 같아요.”
“흠. 아직도 그런 곳이 있다니 참······.”
“그러니까요. 아마 그 쪽도 굳이 찾으려 하지 않는 걸 보면 수상쩍은 민간 보육원일수도 있겠다 싶네요.”
“요즘 사람들이 말이예요. 나랏돈 먹는 걸 예사로 알고 여기저기 아무나 모아다가 이름 올려서 그저 돈만 챙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같은 직종의 종사자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에이, 원장님 정도만 되도 저희가 힘들 게 하나 없지요. 솔직히 말해서 원장님 같은 분들만 있어도 우리나라 복지문화가 선진국 수준에 이를 걸요?”
원장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를 쳤다.
“허허, 그 무슨 과장이십니까. 제가 어디 그런 정도가 됩니까? 그저 밑에 있는 아이들이 그나마 어려움 없이 잘 자라주기만을 바라면서 뒷바라지나 조금 하는거 뿐입니다.”
복지사는 덩달아 웃으면서 원장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그 조금이 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꿈이 될 거예요. 여기 졸업한 애들도 자주 오고 그러죠? 다 원장님 인덕이예요.”
“허허허, 이거 강주사님 때문에 제가 얼굴을 못 들겠습니다 그려. 허허.”
그 이후로도 몇 가지 덕담이 오가다가 복지사는 아이를 잘 부탁한다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복지원을 나섰다. 차에 오르기 전에 마당에서 가만히 서서 복지원 바깥을 바라보던 아이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 선생님들이 다들 착하신 분이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렴.”
모든 일이 잘 풀려 만족스러운 복지사는 포근한 미소를 아이에게 남기고 보육원을 떠났다. 아이는 그저 멀뚱히 서서 떠나가는 차의 뒤꽁무니만 쳐다볼 뿐이었다. 곁에 서 있던 보육교사는 아이를 데리고 원장실로 데리고 갔다.
원장은 머그컵에 오렌지 쥬스를 담아 아이에게 건네며 물었다.
“잘 생겼구나. 이름이 뭐지?”
“······.”
아이는 받아든 머그컵만 바라봤다. 노란 색의 액체는 아이로선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과실 향이 나는 듯한테 뭔지는 모르겠다. 아이가 컵만 바라보고 있자 원장은 웃음기 가득한 말로 마시기를 권했다.
“목 마르지 않니? 다른 아이들도 그 쥬스를 좋아하길래 혹시나 해서 잔뜩 사놨단다. 한 번 마셔보렴.”
‘마셔보렴’이란 말에 아이는 흘끗 원장의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컵에 입을 댔다. 이윽고 놀란 눈으로 다시 원장을 쳐다보는 아이의 반응에 원장은 다소 생경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이가 재차 음료수를 조심스럽게 맛보다가 이내 컵을 다 비우는 모습을 보고 원장은 헛기침을 했다.
‘아마도 이 아이는 저 음료수를 처음 마셔보는 모양인데. 혹시 그전에 원에서 먹을 거 가지고 장난질이라도 쳤던 걸까?’
원장은 아이의 검진 결과에서 구타의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는 복지사의 말을 떠올리며 치사한 방식으로 아이를 괴롭혔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흔한 쥬스를 처음 마셔보는 듯한 반응을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한 잔 더 줄까?”
아이는 원장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은 짧게 웃음을 지으며 냉장고에서 쥬스를 꺼내 아이의 컵에 부어주었다. 쥬스를 마시는 아이를 바라보며 잠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만 있는 원장실에 아이의 추릅거리는 소리만 이어졌다. 그 사이에 원장은 좀더 세밀하게 아이를 뜯어보았다. 옅은 갈색빛이 도는 검은 머리가 목을 거의 덮을 정도로 길었고 아이치고는 넓은 어깨를 지니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눈썹은 그리 심하게 짙지도 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목구비가 전체적으로 뚜렷해보이는 듯해서 오히려 순 한국 사람이라기보다는 혼혈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직 어린 아이지만 꽤나 얼굴이 ‘조각’스럽다는 느낌도 들었다.
세 잔째 쥬스를 마시고 컵을 내려놓는 아이에게 원장이 무심히 툭 한 마디를 던졌다.
“몇 살이지?”
대답을 기대한 물음은 아니었다. 그저 잠시간의 침묵을 깨뜨리고자 다시 말을 꺼냈고 꺼낸 말이 의례 물어보는 통상의 질문이었던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답이 나왔다.
“··· 7살이요.”
아이의 말문이 트인 것이다. 쥬스 3잔에 말문이 트이다니. 원장은 다시금 아이 학대설에 심증을 굳히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렇구나. 그런데 혹시 이름은?”
“······.”
여전히 이름을 묻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