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1/952 --------------
햇볕도 겨우 들 만큼 빽빽하게 나무가 들어선 숲속, 이제 갓 7살은 넘었을 법한 어린 남자아이가 갈색 나무토막 하나를 주워들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숲속을 돌아다니는 일은 아무리 길이 익숙하다 할지라도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잔가지 하나, 떨어져 나뒹구는 전나무 껍질 하나가 소중했기에 아이는 등에 진 바구니에 나무토막을 집어넣으면서도 눈은 또 다른 나무토막을 찾고 있었다. 땔감으로 쓸만한 나뭇가지들은 이미 충분히 주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가 가능한 한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의 땔감들을 모았다고 해야 맞겠다.
숲속의 길은 길이 아니다. 잠깐 한눈판 사이에도 눈앞의 길은 미로의 입구가 되기 일쑤였고 오래도록 걸어 난 길이라도 굴곡진 땅과 돌, 주변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을 피해가며 어렵게 나아가야만 했기에 쉬운 길은 아니다. 게다가 이제 겨우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하는 연령대의 어린아이에게는 더욱 그랬다.
“후흡, 후흡.”
짧은 호흡이나마 가다듬으며 무릎에 댄 조막만 한 손을 살짝 털어내곤 몸을 곧추 세웠다. 오늘 중으로 배낭을 채우는 일이 요원하리라 생각했었지만, 본인의 예상보다 훨씬 부지런했었기에 해가 지기 전에 배낭을 채우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다시금 눈에 힘을 주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당장에라도 집으로 돌아가 기뻐하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득 찬 배낭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곧장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숲속에서 무작정 달렸다간 힘만 빼고 말 일이었다.
부지런히 집으로 향하던 중, 해도 반쯤 넘어가 서쪽 산맥 위에 갈 때쯤 아이는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짙은 숲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니 나지막한 언덕이 저 앞에 보였다. 저 언덕 너머에 2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빈촌(貧村)이 있었다. 그 빈촌의 가장자리, 아버지가 공들여 지어놓은 두 칸짜리 통나무집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숲을 빠져나오느라 힘이 많이 부쳤지만, 목표가 보이기 시작하자 다시금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갔다.
어머니는 아마도 모직 앞치마를 둘러메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2살 터울의 동생도 옆에서 어머니를 돕겠다며 식기를 준비하는 등의 부지런을 떨고 있을 테고. 그리고 이내 셋이 식탁에 앉아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얼마나 힘이 좋아졌는지를 자랑할 테고, 오늘따라 가득 찬 배낭을 내밀며 어머니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다. 동생은 투덜대듯이 자기도 할 수 있다며 아이에게 다음엔 자기도 따라가겠노라고 칭얼대겠지만 아이는 어림도 없다는 듯 거절할 것이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면서 또 미소를 지을 것이고.
이미 상상만으로 아이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고, 행복이 넘쳐 흐르는 듯했다. 언제나 같은 일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들이었다. 비록 자신이 다른 이웃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받는 처지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런 시선들에 울적해 있기보다 어머니와 동생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 매일 확인받을 수 있기에 남모를 자부심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언덕을 넘어서자 빈촌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그래도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는 힘을 아낄 필요도 없었다. 마을 가장자리에 조그만 텃밭을 끼고 있는 집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아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며 소리쳤다. 평소보다 빨리 배낭을 채웠고 평소보다 더 빨리 집에 도착할 수 있었음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그러나 어두운 실내의 적막함에 사로잡혀 버렸다. 조용한 집. 아이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에 부딪히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리 집이 아닌가?’
하지만 실내를 둘러보면 익숙한 집안 풍경이었다. 실내 가운데 놓인 탁자며, 벽에 걸려 있는 말린 채소들과 주머니들. 오른쪽 벽 한 면에는 두 사람 정도가 앉을 수 있게 만들어진 장의자도 매우 익숙한 물건이었다.
“엄마?”
아이는 다시 한번,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동생 역시 대답이 없었다. 아이는 문 옆에 배낭을 풀어 놓고 거실 저편의 닫힌 문으로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기발랄했던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워졌고 아이의 얼굴은 집안의 적막감이 가져온 무게 때문에 한없이 어두워졌다. 문고리를 잡고 힘겹게 밀어 열었지만, 방안은 거실보다 더욱 무겁고 어두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입안이 바싹 마르고 손끝이 자기도 모르게 덜덜 떨려왔다. 지금껏 아이가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큰 두려움이 덮쳐왔다.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 아이는 눈물을 왈칵 쏟아냈지만, 자신은 울고 있다는 자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를 찾아야겠다는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집 밖을 뛰쳐나왔을 뿐이었다.
울면서 집을 뛰쳐나온 아이는 서럽게 외치며 어머니를 찾았지만, 빈촌 어디에서도 응답은 들리지 않았다. 넓지 않은 빈촌을 가로지르며 어머니를 외치던 아이는 마을 중앙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이냐?’ 며 자신을 불러 세우는 옆집 아저씨의 걸걸한 목소리도 없었고 ‘괜찮니? 엄마 안 계셔?’라고 안부를 묻는 윗집 아줌마의 목소리도 없었다. 마을에 단 하나뿐인 동갑 친구 브뤼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눈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 아이는 빈촌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이는 고여 있는 눈물을 닦아내며 다시 주위를 천천히 맴돌며 인적(人跡)을 찾아보지만, 언덕을 함께 타고 넘어온 바람만 얕은 소음을 남기고 지나갈 뿐이었다. 마을 가운데에 세워놓은 장대에 다다른 아이는 한순간에 유령마을이 된 이곳에서 유일한 사람임을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엄마를 찾아야 돼.’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추적을 해 나가야 했다. 하지만 조금은 덜 여문 아이의 머리로는 어머니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마을 바깥에 일이 있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아이는 자신이 들어온 언덕의 반대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엄마!’를 외치며.
아이가 집에 돌아온 것은 해가 지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해가 지면 동생과 하늘을 바라보며 관찰하던 별들이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전혀 올려다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빈촌에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아이는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가 벌써 돌아왔을지도 몰라.’
그 생각이 들자마자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숲길을 걷고 마을 밖 너머 외진 곳까지도 뛰고 걸으며 지칠 대로 지쳤지만, 다시 힘을 내서 달려보는 아이였다. 어머니와 동생이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은 채로.
“엄마!”
더 큰 목소리로 어머니를 부르며 집의 문을 열었건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욱 심한 어둠과 적막이 아이를 맞이했다. 잠시 열린 문에 기대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참아보려 했던 아이였지만 쉽지 않았다.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장의자로 간 아이는 의자 위에 지친 몸을 뉘우며 생각했다.
‘여기서 기다려봐야지. 여기서 기다리면 엄마가 돌아오실 거야.’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만, 하루의 고단함과 피로를 이기기 어려웠던 아이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
아이는 꿈을 꿨다. 집 밖에 놓여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넓은 등. 아이가 다가가자 등의 주인이 아이를 돌아보았다. 아이를 돌아보며 씩 웃는 그 얼굴은 지금보다 더 어릴 때 보았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아이를 보며 물었다.
“잘 잤니?”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예, 아빠. 무서운 꿈을 꿨어요.”
아버지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되물었다.
“어떤 꿈을 꿨는데?”
아이는 아버지가 무엇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게 뭔지 보기 위해 아버지 앞으로 다가가며 대답을 했다.
“모르겠어요. 너무 무서워서 계속 울었어요.”
아버지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망치를 내려쳤다. 조그만 나무 조각에 쇳조각을 박아넣고 계셨다.
“이제는 괜찮아?”
아이는 궁금함을 참지 못해 한 발 더 다가갔다.
“예. 근데 이게 뭐예요?”
아버지는 나뭇조각을 들어 보더니 이내 옆에 놓인 송곳을 들고 나뭇조각 위를 뚫기 시작했다.
“이거? 선물이란다.”
아이는 아버지가 뚫린 구멍으로 가는 실을 꿰어 넣고 있는 걸 바라보다 물었다.
“엄마 거예요?”
아버지는 낡은 헝겊을 들어 나무 찌꺼기들을 털어내고 쇳조각을 정성스레 닦기 시작했다.
“아니.”
어쩐지 아버지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에이미 거예요?”
“아니.”
“그럼 제 거예요?”
아버지는, 이제는 펜던트라고 불릴만한 모양새를 갖춘 나무 조각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다 아이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래. 네 거란다.”
아버지는 아이의 목에 펜던트를 걸어주었다. 아이는 펜던트를 들어 살펴보았다. 뽀얀 색깔의 나무 펜던트는 아버지의 엄지손가락만 했는데, 가운데 네모난 모양의 쇳조각이 박혀 있었다.
“이제부터 그게 널 지켜줄 거란다.”
“예?”
아버지는 다시 웃음을 지었지만, 그 웃음을 바라보는 아이는 슬픔을 느꼈다.
“네 이름이 뭐지?”
“제 이름이요?”
“그래. 이름이 뭐지?”
“제 이름은······.”
“그래. 잊지 말거라. 그 이름을 기억해야 한단다.”
“제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