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3/13)

12. 외전

루는 재혁의 드레스 룸 한 면에 걸린 옷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빈 곳이 많았던 옷장이 지금은 그가 사 준 옷들로 가득했다.

눈을 돌려 보니 어젯밤 플레이가 끝나고 오늘 입고 가라며 그가 골라 준 옷이 있었다. 옷을 미리 골라 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그가 생각나 웃음이 났다.

잠옷을 벗어 잘 개어 두고 전신 거울에 몸을 비춰 보았다. 밝은 조명 아래 드러난 흰 피부에 재혁의 흔적이 가득했다. 쇄골 바로 아래부터 유두 주변엔 붉은 자국이 점점이 찍혀 있고 뒤돌아 고개를 돌려 보니 엉덩이엔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으… 주말도 아니었는데 살살하자고 했을 때 말 들을걸.”

요사이 재혁은 다정해지다 못해 말랑 주인님이 되어 버려서 언제나 더 해 달라고 조르는 건 루였다. 어제도 내일 출근하니까 적당히 하자는 그를 꼴리는 말로 자극해서 엉덩이를 때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개새끼가 말 안 들었으니까 혼나야 해요!’

‘씨발.’

이상하게 재혁은 야한 말보다 귀여운 말을 더 좋아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런 루의 말버릇 때문에 관계 초반에 아주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아무리 플레이가 처음이라도 살다 살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봤다고 기분 좋게 웃었다.

그 말에 루는 ‘주인님을 즐겁게 해 드렸으니까 상 주셔야죠.’라고 했다가 딱밤을 맞아 조금 속상했지만 그래서 어쩌면 너한테 처음부터 홀렸는지도 모른다고 말해서 또 마음이 금세 풀어졌다.

원래 주인님의 반응 하나에 울고 웃는 게 서브미시브의 숙명이라지만 연애를 시작하니 그것과는 다른 마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울고 웃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설레고 조금 더 간지러운 그런 마음. 말하지 않는 마음 구석구석 모조리 다 알고 싶고 말해 줘도 더 듣고 싶은 마음이었다.

재혁이 골라 준 옷을 입고 나와 그의 앞에서 멋있냐고 물어보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더니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기만 한 아침이었다.

그랬다. 오늘 여기까진 딱 좋았는데 사건은 오전에 터져 버리고야 말았다.

평소엔 그리 살갑지 않은 이 대리가 오늘따라 지나친 관심을 보여 준 게 문제였다. 출근해서 정신없이 업무를 보고 있는데 파티션 너머에서 이 대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루 씨, 여자 친구랑 헤어졌어?”

“…예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이 대리와 친하긴 하지만 개인적인 일을 다 늘어놓을 정도로 친한 것도 아니었고 재혁과의 연애는 회사에선 절대 들켜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특히 조심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애라니?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그저 매일 끼고 다니던 반지가 빠져 있길래 신기해서 물어봤어.”

“…아, 아니에요. 그런 거.”

대충 얼버무렸지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무슨 정신으로 출근을 했길래 반지도 빼놓고 온 걸까? 아침의 자신을 혼내고 싶었다.

얼마 전 커플링을 맞추며 재혁이 그랬었다.

‘밖에선 목줄 대신이야. 네가 내 거라는 표식. 한순간도 빼놓지 마.’

반지를 받았다는 것도 감동스러운데 ‘내 거’라는 단어가 주는 특별한 의미에 눈물이 날 만큼 기분이 좋아서 그의 목에 매달려 얼굴 곳곳에 키스를 퍼부었다. 평소엔 버릇없는 행동이라 미간을 찌푸리던 재혁도 그날만큼은 귀여운 애교라며 머리까지 쓰다듬어 줬다. 그랬는데 그 반지를 빼놓고 오다니.

정말 큰일이었다. 잠시 병원에 다녀온다고 하고 몰래 빠져나가서 집에 들러 반지를 가지고 올까? 그러면 어디가 아픈지, 왜 병원을 가는지 물어볼 게 뻔해서 너무 위험한 발상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이 대리가 파티션 너머에서 빵과 쿠키를 던지며 재미없는 농담을 했다.

“루 씨 생각나서 오다 주웠어.”

“…네?”

“아까부터 뭘 그렇게 되물어. 그냥 간식이라고.”

“아, 네. 잘 먹겠습니다.”

대충 대답하고는 책상 위에 올려진 빵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익숙한 발소리와 체향에 그 기운의 주인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대리, 그리고 루 씨.”

낮고 거친 목소리에 등골이 오싹했다. 설마 반지를 끼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벌써 들킨 건 아니겠지? 그의 부름에 이 대리가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팀장님.”

“하라는 일은 다 하고 떠드는 겁니까? 아무래도 내가 요새 업무 분담을 제대로 안 해 준 것 같군요.”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저, 저도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하고 그의 눈을 피했다. 뚜벅, 뚜벅.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서 안심하던 것도 잠시, 곧 핸드폰이 울렸다.

[신루.]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문자는 언제나 짧았지만 루는 그 속에서도 충분히 그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름만 찍어 보냈다는 건 엄청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무서워…….’

얼른 답장하지 않으면 더 혼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네, 팀장님.]

[들어와.]

[뭐라고 하고 갈까요?]

조심스럽게 상황에 맞는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고 보낸 문자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달칵하고 팀장실에서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와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기로 오는구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재혁이 어둠의 기운을 풍기며 명령했다.

“루 씨, 잠시 내 방으로 오세요.”

“네, 팀장님.”

재혁이 부르면 항상 안됐다는 얼굴로 위로의 말을 건네던 이 대리는 오늘은 어쩐 일인지 집중한 척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말이라도 걸어 주면 그 핑계로 지옥에 가는 시간을 늘려 볼 텐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팀장실까지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머릿속에선 그가 따로 부른 이유를 탐색하는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지만 역시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반지 때문인 것 같았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나는 죽었어. 오늘 제삿날이다.’

그래도 예전과 한 가지 크게 바뀐 게 있다면 죽을죄를 지었어도 재혁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그의 무서움에 공포를 느끼는 대신에 버림받을까 우울해하며 슬픈 감정에 체념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런 거로 위안하기에 조금 전 재혁에게서 느낀 서늘함이 너무 컸다.

팀장실의 문은 열려 있었다. 조심스레 안으로 몸을 밀어 넣고 문을 닫자 책상이 아닌 소파에 무릎을 꼰 채로 팔짱을 끼고 있던 그가 턱짓으로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떨며 그가 가리킨 자리로 가서 앉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긴장감에 목구멍이 바짝 조여들었다. 무섭고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와 동시에 배 속이 간지럽고 몸에 열기가 피어났다.

반할 것 같은 서늘함에 홀린 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재혁이 피식했다. 눈이나 입이 웃지 않고 소리만 내는 비웃음이었다.

빨리 무슨 말이라도 해 주면 좋을 텐데 재혁은 가만히 앉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니까 더 무서워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그가 다가와 턱을 잡아 올렸다.

“루, 잘못한 걸 말해 봐.”

이실직고해야 하나, 아니면 시간을 끌어야 하나.

턱을 잡고 시선을 마주치는 짧은 순간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재혁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혀를 찼다.

“머리 굴리면 더 골치 아파져.”

“그… 저, 반지를 빼놓고 와서…….”

재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 잘못했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오늘 아침에 기분이 너무 좋았거든요. 형한테 옷 입은 거 자랑하고 형이 보고 웃고 그러니까 너무 좋아서요.”

“그런데? 그게 반지 빼놓고 온 거랑 무슨 상관이지?”

다시 할 말이 궁색해졌다. 혼날 때 대답을 늦게 하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니까 얼른 생각해야 하는데 오늘따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되는 대로 막 내뱉어 버렸다.

“호, 홀려서요!”

“뭐?”

“그, 그러니까… 형 얼굴에 홀려서 반지를 홀랑 까먹은 거죠. 원래 사람이 혼이 나가면 그렇대요. 진짜 중요한 일도 까먹고.”

재혁이 기막힌 표정으로 대꾸를 하지 않자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안 중요해서가 아니라 중요하긴 하지만… 그러니까 혼이 확 나가서 중요한 걸 까먹은 거죠.”

중언부언이었다. 이런 어설픈 말로 혼나는 걸 피해 갈 수 없다는 것도, 그를 이해시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야 했다.

“혀, 형이 너무 잘생겨서. 홀려서…….”

“나, 참…….”

그가 한숨을 쉬며 헛웃음을 삼켰다.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분위기가 한풀 꺾인 모습에 술렁이는 마음이 점차 진정되어 갔다. 손가락이 분질러져도 모자란 판에 기막힌 얼굴 정도로 용서해 주는 건 다행이었지만 역시나 이유를 몰라서 조금 갑갑하긴 했다. 아무리 물렁물렁해졌어도 저만큼은 아닐 텐데…….

재혁은 잡고 있던 턱을 던지듯 놓아 버리고 낮게 욕을 짓씹었다. 요즘 들어선 그의 기분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오늘은 기분을 알기가 어려워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가 마음을 다스리듯 숨을 몇 번 고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연인이니까. 일단.”

화를 누르고 주인님이 아닌 재혁이 형으로 대하겠다는 뜻이었다. 여기는 회사고 플레이 상황이 아니니 잘된 일이었다. 조금 남은 불안감마저 사그라든 자리에 미안함이 싹텄다.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텐데…….

그가 바로 옆에 앉아서 왼쪽 손등 위에 손을 겹쳤다. 눈동자를 굴려 확인해 보니 그의 왼손에 일부러 디자인을 조금 변형시켜 제작한 커플링이 끼워져 있었다. 더 미안해졌다. 울고 싶은 생각에 가슴이 들썩거렸다.

맞잡은 손에서 손가락이 얽히는 것과 동시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반지야 플레이할 때 유희거리로 혼낼 수 있겠지. 살다 보면 실수로 빼놓을 수도 있는 거고.”

“…….”

반지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입이 꾹 다물렸다. 그럼 대체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조차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모르겠어?”

그렇게 묻는 말투에 서운함이 묻어났지만 고민해 봐도 알 수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건 모르겠다고 하는 게 낫지 잘못 아는 척했다가 더 실망하게 할까 봐 무서웠다.

그가 짧게 힌트를 주었다.

“이 대리.”

“…….”

힌트를 받았는데도 더 모르겠는 건 왜일까?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의 한숨이 점점 더 깊어 갔다.

저도 답답해요. 이럴 때 형 마음을 알아채서 딱딱 맞히면 얼마나 좋을까요.

루는 절대 내뱉지 못할 말을 속으로 삼키며 애절한 눈빛으로 재혁을 바라보았다. 재혁은 고개를 한쪽으로 꺾었다가 바로 하고는 깊은 눈으로 루를 응시했다. 마치 할 말을 고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연인 관계가 되고 나서 재혁은 플레이할 때가 아니면 야한 말이나 거친 표현을 자제한다고 약속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화가 났을 때나 답답할 때 입을 다물고 침묵을 유지할 때가 많았다.

다정하고 배려해 주는 마음은 고마웠으나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서워서 차라리 예전처럼 막말을 해 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참 만에 재혁의 입이 떨어졌다.

“그 사람이랑 언제 그렇게까지 친해진 거지?”

“네?”

“계속 두 번 말하게 할래? 이 대리와 언제부터 나란히 간식을 나눠 먹는 사이가 됐냐고. 눈에서 꿀이 떨어지던데?”

“…….”

질투심에 화르르 불타는 재혁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루는 혼란한 머릿속을 정리해야 했다. 그러니까 지금 재혁이 고작 빵 하나 때문에 이런다고? 반지 때문이 아니라?

소유욕이 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대놓고 티 낸 적은 처음이라 적응되지 않았다. 루가 입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보자 재혁이 물었다.

“왜 아무 말도 못 해? 잘못한 건 아나 보지?”

“…저기, 형. 그러니까 빵 때문에 화가 난 거라고요? 진짜요? 빵 때문에요?”

이번엔 재혁의 입이 꾹 다물렸다. 정곡을 찔렸다는 표정이었고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너무했나 싶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뭐 그럴 수도 있는데요. 그건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요? 이 대리님이 저한테만 주신 것도 아니고 다른 사원한테도 주시고…….”

풀어 주려고 한 말인데 말을 하면 할수록 재혁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가는 걸 보고 더 말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미안해요.’ 하고 말했다.

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부서질 것같이 센 악력에 놀라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쳤다.

“내가 말했지. 할 수만 있으면 회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고 있다고. 집에 숨겨 놓고 나만 보게 하고 싶다고. 그게 나라는 사람이라고.”

분노를 참는 듯한 억눌린 음성이었지만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미안함만 더 켜졌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갈수록 유치해져 가는지 모르겠는데.”

어쩐지 힘이 빠진 음성에 마음이 아파졌다. 화를 내고 긴장시키는 재혁은 언제나 환영이었지만 우울해하거나 기운이 없는 모습의 재혁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재혁이 시선을 들었다. 마주친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무뎌지지 않고 심해지기만 하네.”

생략된 말도, 말끝에 삼키는 쓴웃음도 모두 이해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읽을 수 없었던 마음이 구석구석 읽히고 그대로 전달되어 어쩐지 조금 서글퍼졌다.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용기를 냈다. 재혁처럼 진심을 온전히 전달하는 멋있는 목소리와 내용이면 좋겠는데 저는 그처럼 말을 잘 정리할 수도 없었고 멋있게 전달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오는 대로 말했다.

“저는 좋아요. 형이 질투해 주는 것도, 그래서 화를 내는 것도. 그뿐만 아니라 아무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해 주는 것도 다 좋아요. 그게 싫었다면 먼저 고백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형…….”

멋있지 않은 목소리, 정리되지 못해 엉망인 말에도 재혁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루.”

“잊으면 안 돼요. 제가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한 이유는 자아실현이나 돈을 벌고 싶어서가 아니라.”

말을 꺼내고 보니 가슴속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어떤 것이 복받쳐 오르는 느낌에 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팀장님인 형이 멋있고 그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고 대답했던… 읍, 읏…….”

불시에 뒷머리가 잡히고 입술이 맞물렸다. 깜짝 놀라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겁고 촉촉한 살덩이가 밀려 들어왔다. 목 안이 바싹 말라 가고 있던 참이었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입 속에 들어온 혀를 정성스럽게 핥고 빨았다. 입천장을 긁고 치아를 훑으며 더 안달 나게 하다가 내어 주는 혀가 달콤해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하아.”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해소되지 못한 갈증에 루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얼굴 곳곳에 뽀뽀를 퍼부었다. 다행히 건방지게 어디에 침을 묻히냐는 타박은 돌아오지 않았다. 목 안을 긁으며 나는 웃음소리가 발끝을 곱아들게 했다. 얼른 퇴근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 * *

주말이었다. 마트에서 루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사고 나온 재혁은 차를 직접 몰아 집으로 향했다. 집에 있을 루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묵직해진 아래 때문에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트렁크를 열어 장 봐 온 물건을 품에 안았다.

같이 살며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이기 시작했더니 통통하게 살이 올라 더 예뻐졌다. 이렇게 자꾸 예뻐지기만 하면 더 숨겨 놓고 싶어지는데 큰일이었다. 이런 음습한 생각이 들 때마다 표현하지 않으려고 나름 애를 썼지만 표현해도 잘 받아 주는 루 때문에 인내심이 고갈되어 갔다.

일주일 중에 주말을 고대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평일엔 일상을 살고 참아 왔던 욕망을 폭발시키자고 합의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는 가장 꼭대기 층에 있었다.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버튼을 눌렀다.

신기한 일이지.

한 사람과 플레이를 지속하면 질릴 법도 한데 루와의 플레이는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하면 할수록 기대감이 증폭되어 하기 전엔 늘 가슴을 뛰게 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에 들어섰다.

“아, 아앗… 으흐… 주, 주인님.”

거실 한가운데에서 죽겠다고 신음하고 있는 루를 모른 척하고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장을 봐 온 물건들을 차례로 정리했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여유롭게 냉장용, 냉동용을 구분하고 재활용 쓰레기까지 살뜰하게 정리했다.

그런 다음 천천히 루에게 다가갔다. 묶고 있던 줄을 느슨하게 풀어 주고 딜도가 박혀 있는 구멍을 확인했다. 엉덩이에 손이 닿자 구멍이 움찔 조여들었다.

찰싹, 소리가 나게 엉덩이를 쳤다.

“아앗!”

“검사하는데 누가 음란하게 오물대래?”

“자, 잘못했어.”

지징, 진동하던 딜도를 깊숙하게 콱 박았다가 곧장 뽑아냈다. 딜도가 빠지는 소리가 부끄러웠는지 루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주인님이라니, 재성아. 내가 언제 널 내 강아지로 거뒀어?”

루의 눈이 붉게 변했다. 롤플레잉이라서 이미 합의된 내용인데도 루는 자기가 주인님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 되려고 할 때마다 세상을 잃어버린 얼굴을 했다.

그런 루를 보고 있자니 얼마 전에 했던 대디 플레이가 생각나 웃음이 났다.

‘저 하고 싶은 플레이가 있어요.’

용감하게 플레이를 제안한 게 신기했었다.

‘뭐든 들어줄게.’

얼굴을 붉히고 입술을 달싹이며 한참 동안 말이 없어서 얼마나 센 수위길래 저러나 하고 걱정했더니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아빠가 되어 주세요. 대디플이라는 게 있대요.’

취향이 배덕하다고 놀려 주고 싶었는데 루가 어떤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서 도저히 놀릴 수가 없었다. 가슴이 얹힌 것처럼 콱 막혀 왔다. 정작 루는 별생각이 없는 것 같았지만 재혁이 받아들이는 무게는 커다란 바위 하나를 가슴에 얹은 것처럼 크고 무거웠다.

그런 루를 끌어안고 토닥이며 ‘해 줄게. 한 번이 아니라 원한다면 평생 몇 번이고 해 줄게.’라고 약속하자 그제야 루는 울음을 터뜨렸다.

대디 플레이를 했던 날, 루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울었고 울면서 말했다.

‘다음엔 제가 형 진짜 동생이 되어 드릴게요. 재성이가 되면 좋을 거 같아요.’

루와 함께 울고 싶은 것을 입술을 깨물어 참았다. 그다음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플레이는 재혁이 루를 위해 아빠가 되어 준 것처럼 이번엔 루가 재혁을 위해 동생인 ‘재성’이 되어 하루 동안 모든 것을 그에게 의지하는 플레이였다.

두 사람에겐 욕망을 배출하는 통로이기도 했지만 오직 두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는 트라우마 치료이기도 했다.

루가 눈을 뜨자마자 플레이가 시작되었다. 움직일 수 없게 손과 발을 묶고 화장실 가는 것부터 씻는 것, 밥을 먹는 것 하나하나 모든 걸 다 제게 의지하게 했다.

재성이 살아 있을 때는 할 수 없었던 것. 지키지 못해 그렇게 보내고 말았다는 죄책감을 다 씻을 순 없었지만 루가 오직 저에게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른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너는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 그러니 절대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 오는 안정감이었다.

그리고 지금 루가 제 앞에서 흥분한 상태로 몸을 떨며 울고 있었다.

“우리 재성이, 형 말 안 들었으니까 좀 맞아야지?”

특수 제작된 채찍을 들고 매섭게 노려보자 루가 어깨를 떨며 엉덩이를 내밀었다.

짜악! 짝!

잔인한 소리와 함께 엉덩이에 붉은 줄이 그어졌다. 손이 묶인 채 활처럼 굽은 등을 내리치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아… 아, 아파. 혀, 형… 그, 그만해. 내가 잘못했어.”

처음 듣는 반말, 재성이라는 호칭에 진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걸 다른 사람이 아닌 루가 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 바지 안쪽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빳빳해졌다.

재혁은 붉어진 엉덩이를 움켜쥐고 잡아 벌렸다. 안쪽에 넣어 두었던 젤이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손으로 훑어 구멍 속에 다시 집어넣는 것과 동시에 손가락 두 개를 밀어 넣었다. 내벽을 더듬고 꾹꾹 누르며 느끼는 지점을 건드리자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흐으… 으… 형, 나 못 참…….”

“세상에, 너 지금 형한테 뭘 해 달라고 하는 거야.”

“아으… 으.”

엎드리고 있던 그를 안아 몸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눈물로 엉망이 된 눈가와 부끄러움에 새빨개진 얼굴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혀로 핥아먹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어쨌든 지금은 플레이 중이니까 준비해 놓은 시나리오대로 끌고 나가는 게 먼저였다.

정자세로 누워 있는 루의 발목을 잡아 벌리고 중심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뭐 하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울먹였다.

“혀엉, 부끄러운데…….”

“뭐가 부끄러워? 너 어렸을 때 기저귀 가는 거 많이 봤는데. 이렇게 갈잖아.”

“…….”

더 볼 수 없다는 듯 다시 눈을 감는 그를 더 울리고 싶어 얇은 시트를 허리 아래 받치고 기저귀를 채우는 것처럼 가랑이 사이로 교차시켰더니 몸을 바르작거렸다.

“으, 시, 싫어.”

아기 취급을 했더니 진짜 애가 된 것 같았다.

“싫긴 왜 싫어?”

“흐… 흑.”

수치심에 루의 뺨을 타고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세우고 있는 좆도 좆이지만 역시 제일 꼴리는 건 우는 얼굴이라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 몸을 뒤집었다. 젤과 딜도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구멍이 무언가를 원하는 듯 빠끔거리고 있었다. 음란하다 놀리고 엉덩이를 몇 번 후려갈긴 후에 그대로 성기를 박아 넣었다.

“아, 흐… 아, 형!”

넣자마자 루가 자지러지듯 경련하는 것과 동시에 오래 참아 진한 정액이 투둑 하고 떨어졌다. 손으로 성기를 감싸 흔들어 더 느낄 수 있게 유도하며 비웃었다.

“아직 아기라 그런가? 참을성이 없네, 우리 재성이는.”

“으… 미, 미안. 윽!”

성기를 넣고 있는 상태로 엉덩이를 세게 후려쳤다. 절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몸이 부르르 떨리며 묻어 놓은 성기를 콱 조였다. 베개에 박은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저렇게 울면서도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여 주곤 했었는데 오늘은 일부러 그러는 건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쾌감에 헐떡이면서도 롤플레잉에 집중하려는 그가 귀여워 아래가 터질 듯 부풀었다.

사실 넣기 위해 그의 엉덩이를 잡은 순간 롤플레잉은 어떻게 되어도 좋았다. 갑자기 밀려드는 생각에 넣고 가만히 있자 루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히익’ 하고 숨을 들이마시곤 다시 얼굴을 숨겼다.

토끼 새끼도 아니고… 저게 지금 뭐 하는 짓인지.

바로 몸을 돌려 얼굴을 마주 보고 키스하고 싶은 걸 참았다. 흥을 깰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지막한 소리로 ‘재성아.’ 하고 불렀더니 어깨가 움찔했다.

“응, 형.”

“좋아?”

“응, 응.”

“이상하네. 우리 재성이는 이런 취미도 없을뿐더러 내 말을 더럽게 안 들었는데.”

“그, 그게… 네?”

고개가 다시 옆으로 돌아갔다. 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안쪽이 벌어지며 성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고개가 젖혀지고 신음 소리가 더 커졌다.

“아, 너…너무 세. 처, 천천히.”

흐느끼며 애원하는 걸 가볍게 무시하며 더 빠르게 허리를 치댔다. 말랑한 엉덩이를 주무르며 느끼는 포인트만 공략하자 내벽이 기둥을 잘도 씹어 댔다.

“천천히는 무슨. 이렇게 잘 먹으면서.”

“아, 거, 거기… 아, 안 돼!”

잘 느끼는 곳에서 멈추고 둥글게 비비다가 허리를 뒤로 물리자 안달 났는지 스스로 엉덩이를 흔들며 더 깊이 박아 달라 조르기 시작했다.

찰싹!

“조르지 마.”

“빠, 빨리…….”

“안 된다고 할 땐 언제고!”

하얀 엉덩이에 난 손자국을 보며 허리를 눌러 성기를 깊게 처박고는 허리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살과 살이 맞닿으며 퍽퍽 소리가 났다. 루의 얇은 몸이 흔들릴 정도로 세게 움직이자 숨이 넘어갈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진동하며 떨리는 내벽과 몸이 흔들릴 때마다 자지러지는 몸과 우는 소리가 예뻤다. 극도의 흥분감을 느끼며 그의 등에 바싹 붙어 귓바퀴를 핥았다.

“흐으…….”

“루.”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귀를 물고 있는 쪽으로 고개가 돌아가 눈이 마주쳤다. 붉어진 눈가를 동그랗게 뜨는 모습이 미치게 섹시해 눈가를 혀로 핥으며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신루.”

“…네.”

“고맙다.”

당신이 괜찮아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온몸으로 전하는 루에게 어떤 말로 진심을 표현해야 좋을지 오래 고민했으나 역시 진심을 표현하는 말은 가장 평범하고도 단순한 말이었다. 루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입술을 겹치며 그를 깊이 끌어안았다. 맞붙은 몸에서 피어나는 열기가 몸을 뒤덮고 그의 가장 깊은 곳에 파정했다.

묶어 놓은 줄을 풀고 손목을 주물러 주는데 가슴이 욱신거렸다. 왜 이렇게 자국이 잘 남아서는. 조금 더 튼튼하면 좋을 텐데. 팔찌처럼 남은 붉은 자국을 손으로 쓸다가 손목에 입을 맞췄다.

루가 킥킥거리다가 웃음기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점심때도 안 됐는데 벌써 풀어요?”

“응, 이름 불렀잖아. 이제 플레이 끝이야.”

웃음을 멈춘 그가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말했다.

“형이 손해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고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나 보다. 마주치고 있던 시선이 아래로 깔렸다.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아서 등을 쓸며 화가 난 게 아니라고 말해 주자 다시 눈을 마주쳐 왔다.

“그러니까 지난주에 형은 주말 내내 아빠 해 줬잖아요. 근데 저는 반나절만 해 드렸으니까 형이 손핸데…….”

“난 또 뭐라고.”

순진한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재성이가 되어 나를 위로하겠다는 네 마음이면 충분하다는 말을, 나는 재성이가 필요한 게 아니라 너 하나면 족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려고 하니 도저히 말이 나가지 않았다.

항상 꼴리는 대로 해 왔던 지난날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반성하게 만드는 것도 루가 가진 재주였다.

“반나절이면 충분해.”

이렇게 말하고 넘기려고 했는데 루는 오늘따라 집요했다.

“왜요?”

“음… 생각보다 안 꼴리더라고?”

참 못났다. 말을 이따위로밖에 못 하다니.

말하고 나서야 이런 말을 하면 루가 제 탓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루가 실망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내가 잘 못해서 그런 거죠? 나는 좋았는데…….”

루는 단단히 삐쳤는지 몸까지 돌려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린다. 플레이만 해 봤지 연애는 처음이라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해를 풀고 다시 관계를 좋게 이어 나가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게다가 꼴에 도미넌트라고 완벽해야만 한다는 강박감이 심해 솔직하지도 못하고 무심하기까지 하면서 좋아하는 취향은 섬세하고 다정하며 유리 멘탈을 가진 사람이라 루를 항상 힘들게만 하는 건 아닌지 늘 신경이 쓰였다.

이불을 들치고 아직 뜨끈한 열기가 남아 있는 루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니 말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누르며 속삭였다.

“네가 뭘 하든.”

갑자기 나온 말에 품 안의 루가 몸을 돌리려는지 바르작거렸다.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결박했다.

“다 섹시하고 좋아. 루니까.”

루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의 가슴 앞에 놓인 왼손 약지 위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 생겨서 네가 아주 많이 못생겨진다거나 심지어는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해도 나는 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발정할 수 있어.”

“…거짓말이죠? 그런 게 어딨어요. 형은 도미넌트잖아요.”

질문하는 목소리에 약간의 울음기가 묻어나 있었다. 좋아도 울고 서러워도 울고 아파도 울고……. 울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래, 나는 도미넌트지. 너는 서브고. 그런데 이제 그것보단…….”

그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대답을 재촉하는 듯 턱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술을 붙였다가 뗐다. 이마를 쓸어 주며 말을 이었다.

“네가 루고 내가 김재혁인 게 더 중요해.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플레이가 아니라 네가 좋았는지도 몰라. 누구와 다르게. 그렇게 미숙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너한테 휘둘려서 플레이 같지도 않은 플레이를 한 걸 보면.”

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알아요. 형, 그때 저 많이 봐줬잖아요. 그땐 힘들었는데.”

“그걸 이제 알았어? 참 빨리도 알았네.”

웃으면서 말했더니 루가 민망한 듯 따라 웃다가 작게 속삭였다.

“저는 형이 가르쳐 주기 전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전부 형한테 다 배운 거잖아요.”

처음에 집착하는 성격도 아닌데 루가 말하는 처음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의 루를 자신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둘의 관계를 더 단단히 엮어 주는 것 같아 반지 낀 손을 잡고 힘을 꽉 주었다.

“나도 너를 만나기 전엔 아무것도 몰랐어.”

“네? 형도 모르는 게 있었어요?”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은 네게 처음 배운 거야.”

루가 또 울 것 같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다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심장이 뛰는 자리에 그의 뺨이 닿았다.

“사랑해요, 형.”

한낮에 해가 쏟아지는 우리의 침실 안에서 울먹이며 고백하는 루의 귓가에 대고 뜨거운 고백을 돌려주었다.

“나도.”

우리는 각자가 가진 비틀린 욕망으로 처음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갔다. 앞으로 함께하며 갈등과 오해는 계속 이어지겠지만 신루가 김재혁의 동생이 되고 김재혁이 신루의 아빠가 되어 끌어안고 잠이 든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한다면 사소한 것들은 그들을 떨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달랐던 호흡이 점점 맞아지기 시작했다. 배고픈 것도 잊고 잠이 든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좋은 꿈을 꾸는지 두 사람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루의 텍스처 완결)

루의 텍스처 2권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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