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8/13)

7. 불건전한 사내 연애

회의 시간에 보는 재혁은 다른 때보다 한 열 배쯤 더 멋있어 보였다. 그를 보자 아침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며 묘한 흥분이 몸을 감쌌다. 루는 자꾸만 흥분되는 마음을 누르기 위해 애썼다. 신성한 일터에서 이런 마음을 품는다는 게 양심에 찔렸다.

“그래서 상반기 기획팀의 목표는 수익의 안정화를 위한 현실 가능한 계획의 구체화와…….”

사무적이고 군더더기 없어서 사람을 집중시키는 그의 목소리에 홀려서 내용을 쫓아가기 힘들었다. 회의록을 작성해야 하는 막내 주제에 감히 팀장의 말을 놓치다니.

루는 몰래 상기된 뺨에 손을 갖다 대 열기를 내리고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재혁이 등을 돌리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재혁이 앞을 바라보면 얼른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훔쳐보고 있다는 걸 들키면 회사에서 딴생각이나 한다고 혼날지도 몰랐다.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아도 집중하긴 힘들었다. 커다란 풍선이 가슴 한가운데 들어 있는 것처럼 회의실을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럼 맡은 일 모두 숙지하시고 영업팀과의 협업에 잡음 들리지 않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회의가 끝났다. 루의 키보드에도 마침표가 찍혔다. 사람들이 빠르게 회의실을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정리해야 할 게 많은 루는 회의실을 빨리 나갈 수가 없었다. 문서를 저장하고 혹시나 해서 연결해 놓은 배터리 전원을 해제하는 동안에도 루의 신경은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있는 회의실의 전방에만 쏠려 있었다.

경영팀의 여직원들이 괜히 회의실 앞을 서성였다. 모두 재혁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제 와서 이런 상황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재혁이 외주 컨설팅을 위해 AG에 왔을 때도 자주 봤던 장면이었으니까.

그러나 역시 그때 보던 것과 지금 보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그때는 대놓고 흠모라도 할 수 있는 여직원들에 대한 부러운 마음밖에 품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내 남자임에도 숨어서 힐끔거려야 하는 것에 화가 났다.

그래서 루는 최대한 빨리 소지품을 정리해서 인사도 없이 회의실을 나왔다. 다들 따로 인사하지 않고 나가니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루는 주인님한테 반항한 것 같아서 괜히 심장이 쿵쿵거렸다.

자리에 돌아와서도 ‘역시나 인사를 하고 올 걸 그랬나. 아냐, 안 하던 짓을 하면 괜히 더 이상해.’라는 생각을 하느라 30분 만에 정리됐어야 할 회의록이 한 시간이 지나도록 정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루 씨, 회의록 정리 다 됐어?”

“네?”

“나 지금 과장님이랑 영업팀이랑 같이 협업하러 가니까 회의록은 직접 보고해.”

“네? 제가요?”

“왜? 겁나?”

“…….”

“중요한 서류도 아니고 그냥 회의록인데 형식적인 거잖아. 전하기만 하면 돼.”

“…네.”

이 대리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긴 했지만 루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사내 메신저와 전자 메일 같은 훌륭한 문서 전달 수단을 놔두고 굳이 대면 보고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재혁이 오기 전엔 메신저로 보냈었는데…….

보고를 핑계 삼아 재혁을 보고 싶긴 했지만 그를 만나고 오면 오후 업무에 집중하는 게 힘들었고 회의실에서 본 장면이 계속 신경 쓰여서 표정 관리를 하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신입인 루가 사수의 명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회의록을 들고 팀장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고 해서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재혁은 루가 있는 쪽으론 시선조차 주지 않고 사무적으로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저… 대리님께서 회의록을 제출하라고 하셔서요.”

“두고 가세요.”

“네.”

여기에 올 때까지만 해도 재혁이 자신을 잡고 짓궂게 굴면 어떡하나. 사무실 안에서 플레이를 시키면 어떡하지? 하고 고민했던 게 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긴 했다. 분명 다행인데 왜 이렇게 허전한지 모를 일이었다.

루는 떨리는 손으로 회의록을 제출하고도 바로 나가지 못한 채 재혁 앞에서 쭈뼛거렸다. 그러자 재혁이 눈만 치켜뜬 상태로 루를 바라보았다.

“안 바쁩니까?”

“아, 아닙니다. 그럼 저 나가 보겠습니다.”

“네.”

루가 팀장실의 문을 닫고 나올 때까지도 재혁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자리로 돌아온 루는 핸드폰을 붙들고 한참 고민했다. 문자를 보낼까 말까. 보통 이런 고민은 끝에 가서 ‘말자’로 결정 내리곤 했지만 이번엔 그답지 않게 용기를 내서 핸드폰을 들었다.

그와 주고받았던 메시지 창을 열어 문자를 입력하려는 순간 믿을 수 없게도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루 씨, 회사에 보는 눈이 많습니다. 원래도 조심해야 하겠지만 더 조심해야 할 일이 생겨서 내가 좀 차갑게 굴었을지도 모릅니다. 서운했다면 미안합니다.]

그의 문자를 보는 순간 얼어붙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고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재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걸 또다시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재혁이 미안하다고 할 만큼 잘못한 일은 없었다. 회사에서 사무적으로 대한 것뿐인데 혼자 서운해하는 것은 과한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재혁은 사소한 징후도 이별로 받아들인다는 자신의 말을 기억하고 세심하게 챙겨 주고 있었다. 그런 그의 배려가 좋아서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는 괜찮아요. 사과하실 필요도 없는데…….]

[거짓말할 겁니까? 사무실을 나가는 표정이 꼭 부모 잃은 애새끼 같던데?]

루는 마지막 말에서 숨을 멈춰야 했다. 재혁이 의도해서 ‘부모 잃은’이라는 말을 쓴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루에게 그 말은 순식간에 부풀었던 마음을 땅속까지 처박을 수 있는 말이었다.

[애초에 잃을 부모가 없어서 그 말은 틀린 말이에요, 팀장님.]

약간의 반항을 섞은 가벼운 투정으로 들어 주길 바랐는데 말이 아니라 텍스트이다 보니 재혁은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나 보다. 한참 동안 답이 오지 않아서 그가 화가 났나 걱정하고 있던 사이에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10분 후에 옥상에서 봅시다.]

루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대리가 외근을 나가고 없었기에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것 같았다.

* * *

옥상에 올라온 재혁은 루를 기다리며 담배를 깊이 빨았다. 잠시 끊었던 담배지만 사무실에서 우민을 본 순간부터 다시 손을 댔다. 머리가 아팠다.

루가 자신을 뒤흔들어 놓을 걸 충분히 알고 있었으면서 왜 멀리하지 못했을까. 그가 처음 고백했었던 때로 돌아간다면 그를 뿌리칠 수 있을까.

재혁은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멀리하고 저버리기에 루는 더 유혹적이었으니까.

어제 플레이에서 완벽하게 KO시킨 것도 모자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펠라로 사람을 당황하게 하질 않나, 회의 시간엔 자신의 얼굴을 못 봐서 환장한 사람인 양 눈을 떼지 않으니 예뻐하지 않으려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대놓고 예뻐해 줄 수도 없는데…….

우민은 생각보다 교활한 자였다. 그 교활함을 뒷받침할 만한 돈이나 권력도 가지고 있어서 손을 어떻게 뻗쳤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업무 보고를 핑계로 일부러 대리와 과장을 외근 보내고 대신 루를 불렀으면서 빨리 내보내야 했다.

나갈 때의 표정은 정말로 부모 잃은 애새끼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는데 그게 그의 상처를 건드리는 말이었다니.

담배는 쓰고 마음은 복잡한데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뻐근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재혁이 뒤돌았을 때 철문 앞에 루가 가만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서서 뭐 해요? 왔으면 오질 않고.”

오라는 말에 활짝 웃으면서 다가오는 루의 모습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같아 보여서 재혁은 이곳이 회사 옥상이라는 것도 잊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뻔했다. 루가 코앞까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재혁이 그의 팔을 끌었다.

“여긴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이니까 저쪽으로 갑시다.”

“네.”

루를 데리고 간 곳은 정문 반대편에 있는 자재부가 쓰는 창고 앞이었다. 창고에 올 일이 아니면 사람이 나다니지 않기도 하고 주변에 카메라도 없는 곳이었다. 루가 주변을 둘러보며 놀라워했다.

“왜? 여기서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알았나 싶어요?”

“네.”

“어렸을 때부터 나쁜 짓은 골라서 했거든. 그 덕에 은밀한 장소 찾는 건 잘합니다.”

실없는 농담에 마주 보고 웃어 주는 루의 얼굴이 예뻤다. 재혁은 손을 올려 그의 뺨을 만질까 하다가 좀 전에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내렸다.

“루 씨, 담배 피웁니까?”

“아뇨, 저는 안 피우지만 팀장님 피우셔도 되는데…….”

“비흡연자 앞에서 담배 안 피웁니다.”

“저 진짜 괜찮아요. 어렸을 때 보육원 원장이 하도 많이 피워서 면역됐을걸요.”

루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했지만 오히려 그 말을 듣는 재혁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재혁은 말없이 옥상의 난간을 짚고 있는 루의 손등 위를 덮었다. 차가운 손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 주고 싶었다.

“방금 메시지로 한 말은…….”

재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루가 말을 자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또렷한 시선은 서글퍼 보이기는커녕 반짝거리는데도 오히려 그래서 더 아픈 느낌이었다.

“괜찮아요, 팀장님. 상처 주려고 한 말이 아니라 저를 이해하고 해 주신 말이잖아요. 혹시나 내가 서운할까 봐. 그러니까 팀장님은 제가 사소한 것도 이별의 징후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기억하시고 그러지 말라고 배려해서 말씀해 주신 거잖아요.”

“…….”

재혁은 속눈썹이 나풀거리는 것이 다 보일 정도로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루가 짓는 표정과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느린 노래처럼 마음을 울렸다. 아름답게 귀를 사로잡아 가슴을 서서히 데우면서도 빠르지 않아 서글픈 노래가 어깨에 머리를 기대 왔다.

“그러니까 사과 안 하셔도 돼요.”

사과하지 말라고 했으니 재혁은 사과하는 대신 팔을 올려 그의 머리를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정수리에 턱을 대고 눈이 부신 하늘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아름다운 색으로 빛났지만 동생이 죽은 이후부터 그의 삶은 언제나 회색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은근히 그를 탓했던 부모님과 곁을 내주지 않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곁을 요구하며 다가오던 서브들은 하나같이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렸다.

그러나 루는 그가 잘못한 일을 어떻게든 포장해서 좋은 의도로 만들었고 모든 책임은 서브인 자신이 졌다. 돔의 원죄를 자극하고, 흥분시키고, 들뜨게 만들고, 뜨겁게 해서 빠지도록 만들었다.

이런 서브는 유일했다. 유일한 것은 위험한 것이었다. 유일한 것이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면 더 위험해진다.

동생이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남기고 간 돔의 텍스처를 루가 들쑤신다는 걸 알면서도 재혁은 그를 안고 있는 팔을 풀 수 없었다.

고개를 내려 욕망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말했다.

“배고픕니다.”

루가 아무 의심도 없이 초식동물 같은 표정으로 시선을 맞춰 왔다.

“점심시간 다 되어 갈 거예요. 밥 먹으러 가면 되죠!”

재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불량기가 가득 담긴 웃음이었다.

“흐음… 그 배가 아니라서요.”

“저, 여기 회산데…….”

“그래서 안 돼?”

차갑고 건조한 재혁의 목소리에 머리털이 곤두섰다.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아서 손으로 입을 막고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 대리가 외근을 나가 있는 중이고 빨리 처리해야 할 업무는 없긴 했지만 불안했다.

“팀장님…….”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루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대답을 재촉하지도 명령을 내리지도 않는 모습에서 판단을 자신에게 맡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그럼 빨리…….”

말끝을 흐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재혁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고 있는 팔을 풀고는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명령했다.

“빨리 끝내려면 벗어야지.”

“다요?”

“바지랑 속옷만 내려.”

루는 떨리는 손으로 벨트를 풀고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맨살에 찬 바람이 와 닿았다. 자신의 뒤편엔 창고가 있었고 재혁의 뒤는 가슴까지 오는 벽과 난간이었다. 그 틈에 있으므로 누가 온다고 하더라도 바로 보일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들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난간 짚고 엉덩이 내밀어.”

바로 하겠다는 걸까?

혀로 바싹 마른 입술을 축이고 그가 시키는 대로 난간을 짚었다. 어깨에 뜨거운 손이 닿았다. 체온이 높은 재혁의 손이 닿았는데도 오싹한 기운이 전신을 감쌌다. 손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와 뺨을 문지르는 동안 다리가 떨렸다.

“뭐든 하겠다는 사람이 왜? 야외 플레이는 무서워?”

“조, 조금 무섭지만 할 수 있어요.”

“제대로 서 있는 것도 못 하는데?”

루는 보란 듯이 다리에 힘을 주고는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맞췄다.

“서 있을 수 있어요.”

등에 그의 가슴이 바짝 붙어 왔다. 귀가 질척하게 빨리고 불어 넣는 숨이 거칠었다. 그의 손이 아래로 내려와 허벅지 안쪽을 문지르듯 쓸었다. 성기 위를 훑다가 뒤로 돌아가 엉덩이를 꽉 쥐었다. 귓가에 픽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뭘 했다고 벌써 이렇게 젖었어? 무섭다더니. 아아, 밖에서 하니까 더 흥분돼?”

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조금 억울했다. 야외 플레이에 대해서 혼자 상상해 본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전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평소보다 프리컴도 조금 흘렸는데…….

루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의 손가락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빨아.”

아직 성기가 들어온 것도 아닌데 입에 손가락을 넣고 있으니 조금씩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쭙쭙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빨자 입 안을 헤집던 손가락이 질척한 소리를 내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손가락이 구멍으로 들어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발기하기 시작한 앞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아래만 드러낸 상태로 그에게 몸이 붙들려 앞이 만져지고 있었다.

“흐읏, 아아, 아… 주인님, 왜…….”

루의 입에서 신음이 흐르기 시작하자 성기를 흔드는 손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타액으로 젖은 손이 탁탁 소리를 내며 앞뒤로 흔들렸다. 아랫배가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구멍이 조여들었다.

“쉬… 조용히 해야지. 여기 밖이잖아.”

“흐으… 아, 아아!”

성기에서 느껴지는 쾌감에 앞으로 쓰러질 것 같아서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섰다. 그가 뒤에서 목덜미를 빨아올렸다. 귀에 닿는 뜨거운 숨결에 정신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만져 줄 때 즐겨야지. 무릎 더 내리고 다리 벌려.”

기둥을 쓸고 선단을 문지르는 손길에 의지한 채 다리를 더 벌렸다. 선단에 있던 손이 갑자기 성기를 힘주어 잡았다. 터질 것 같은 악력에 루의 입이 벌어졌다.

“싸지 마. 같이 가야지.”

“으으… 하아. 네.”

뒤를 풀어 주지 않고 넣는다는 뜻인 것 같았다. 두려웠지만 몸의 힘을 풀려고 노력했다. 무슨 생각이 있겠지. 설마 거길 찢기야 하겠어? 그래도 이대로 넣으면 찢어질 텐데.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재혁이 그 상태로 자신의 지퍼를 내리자 루가 울상을 지었다.

“주, 주인님… 설마? 그, 그냥 넣으시게요?”

재혁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안 돼? 질질 싸서 괜찮을 것 같은데?”

“아, 안 돼요. 주인님, 제발… 찢어져. 아, 읍…….”

성기를 잡고 있던 손이 입을 막았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꽉 막은 손 때문에 안압이 차올랐다. 억지로 범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아래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찢어지는지 아닌지 해 보면 알겠지. 조금만 참아. 허리 내리고.”

그가 입을 막은 채 상체를 숙여 오는 바람에 루의 허리가 굽어졌다. 벌어진 구멍 사이에 성기가 문질러졌다. 젤도 없는 곳에 뜨겁고 마른 성기가 닿자 짜릿한 쾌감이 척추를 관통했다.

“읍… 윽.”

루는 반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뒤의 힘을 풀려고 노력했지만 긴장한 탓인지 꽉 다물어진 구멍은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안 넣어 주고 이대로 찌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서러워졌다. 재혁은 정말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초콜릿처럼 달콤했다가 혀가 아릴 정도로 쓴맛을 주기도 하고 한없이 다정했다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그의 태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루는 더 달아올랐다.

고개를 내린 재혁이 루의 귀에 음험하게 속삭였다.

“넣을 거야. 찢어지고 싶지 않으면 힘 빼.”

루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재혁은 진심인 것 같았다. 눈물이 흘러 재혁의 손등을 타고 내려갔다. 재혁이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웃는다니… 악마인가?

구멍에 비벼지던 성기가 점점 힘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찰싹하고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성기가 쑥 밀려 들어왔다.

“으읏… 으읍… 욱!”

재혁의 손에 막힌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성기가 구멍 안을 파고들었다면 끔찍한 고통이 뒤따라야 하는데 아래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두려움에 벌벌 떨던 루는 뭔가 이상한 기분에 허리를 살짝 움직여 보았다. 아래에 이물감이 느껴지긴 했는데 구멍이 아니라 고환에서 느껴졌다.

“어딜 봐? 똑바로 내밀어. 쑤셔서 찢어 줄 테니까.”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압적으로 몸을 안은 상태로 무서운 말을 내뱉고 있는데 성기는 여전히 허벅지 사이에 있었다. 거기가 구멍이라고 착각한 걸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막혀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말이 필요할까? 거기에 들어오지 않아도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달아오르고 있었고 그는 허벅지 사이에 성기를 끼운 채로 루의 귀에다가 뜨거운 숨을 불어 넣고 있었다.

루는 말하는 걸 포기하고 그가 허리를 흔드는 대로 몸을 흔들었다. 아픈 것 하나 없이 쾌감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골반을 잡았다. 그 순간 루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성기는 구멍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여전히 허벅지 사이에서 피부를 긁듯이 천천히 빠져나갔다가 들어왔다.

뜨거운 기둥이 회음부에 문질러지는 감각이 뜨거워 다리의 힘이 풀리자 그가 엉덩이를 내리쳤다.

“얼마나 쑤셨다고 벌써 넓어진 거야. 조여!”

구멍에 박힌 게 아니라 허벅지 사이인데도 구멍이 제 기능을 못 하는 것 같아서 수치스러웠다. 다리에 힘을 주는 순간 성기가 빠르게 그 사이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흐으… 윽!”

유사 성교인데도 진짜 박히는 것처럼 그의 허리와 엉덩이가 닿는 부분에서 퍽퍽 소리가 났다.

누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강제로 당하는 것 같은 느낌과 아래에 닿는 뜨거운 촉감이 루를 미치게 했다. 무엇이 쾌감이고 무엇이 불안감인지 구분도 못 한 채 루는 재혁이 몸을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며 어깨를 떨었다. 그가 떨리는 어깨를 힘주어 눌렀다. 내리누르는 압력이 몸을 더 짜릿하게 만들었다.

“흐읏… 아.”

“후우… 얼마나 변태 같으면 밖에서 구멍이 찢어지는데도 느껴.”

루의 상체를 벽에 붙이다시피 힘주어 누른 재혁은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퍽퍽 살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성기는 루의 허벅지 안쪽이 벌겋게 되도록 사정을 봐주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다.

재혁이 거칠면 거칠수록 루는 점점 더 흥분했고 뒤가 조여들었다. 빨리 절정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손을 기둥으로 가져가자 그에게 손목이 덥석 잡혔다.

“시발, 지금 어딜 만져.”

“흐… 아, 주인님, 모, 못 참겠…….”

그가 못 하게 하면 못 하게 할수록 흥분이 더 올라서 참는 것만 힘들어질 뿐이었다. 재혁이 루의 귀에 대고 불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싸고 싶어?”

“네, 네네.”

“그럼 만져 달라고 해 봐.”

“마, 만져 주세요.”

콰득, 귀가 아프게 깨물렸다. 아무래도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보았다. 흥분이 지나쳐서 단어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이럴 때 어떻게 말해야 하더라? 이런 와중에도 재혁은 루의 허벅지 사이에서 계속 허리를 움직이며 루의 흥분을 도왔다. 한참 생각하던 루가 생각났다는 듯 신음을 섞어 말했다.

“주, 주인님… 흐읏… 아아, 좆물 싸는 거 봐 주세요.”

제 딴에는 열심히 생각해서 말했는데 이것도 아닌지 재혁은 듣지 못한 척 열심히 허리만 흔들었다. 대체 뭘까 생각하다가 엉덩이를 세 대쯤 맞고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흑… 흣, 저, 구멍에 저, 정액 싸 주세요. 안 흘리고 잘 담고 있을게요. 아아!”

그제야 정답을 맞힌 듯 재혁이 루의 고개를 돌려 입술을 맞춰 왔다. 잘했다는 보상이었다. 골반이 단단히 잡혔을 때 다리에 힘을 꽉 줬다. 재혁이 큰 소리로 신음하며 엉덩이를 한 대 세게 치고는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멍이 조여드는 것처럼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하아…….”

그는 고환이 닿을 정도로 깊이 성기를 박은 채로 헐떡였다. 그러고는 보상을 하듯 루의 성기를 잡고 흔들어 주기 시작했다.

“으응… 흐읏!”

흥분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선 채로 달달 떨었다. 다리가 더 조여들었고 빠르게 움직이던 성기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동시에 루의 것을 잡은 손이 느리게 움직이며 선단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 아아! 그, 그렇게 하면 주, 주인님 손에…….”

“하아, 같이 갈까? 싸.”

루는 생각보다 빠른 허락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재혁이 빠르게 허리를 치대며 루의 것을 꽉 잡아 주었다. 루는 제 손으로 입을 막으며 커다란 신음을 삼켰다. 재혁의 손이 제가 싸 놓은 뜨거운 정액으로 엉망이 된 것을 보니 울고 싶었다.

재혁은 곧바로 루의 몸을 뒤집어 그의 입술에 열렬한 키스를 퍼부으며 제 성기를 잡고 흔들었다. ‘흡!’ 하고 뜨거운 숨을 그의 입 속에 들이붓는 순간 재혁도 사정했다.

각자의 손수건으로 서로의 손을 다정하게 닦아 주는 동안 한낮의 태양이 그들의 반대편에서 빛나고 있었다.

루에겐 난생처음 겪어 보는 짜릿한 일탈이었다.

다행히 이 대리는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돌아왔다. 그래서 루가 잠시 자리를 비운 걸 들키지 않았다.

회사에서 하면 안 되는 짓을 했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일을 마무리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었다.

퇴근할 때 같이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아서 초조한 마음에 핸드폰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핸드폰을 계속 잡고 있는다고 내가 문자를 보내진 않을 텐데요. 먼저 연락하면 되지. 뭐 하는 겁니까?]

재혁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고 화들짝 놀라 뒤돌아봤더니 재혁이 루의 근처에서 과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다른 사람과 말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저 따로 퇴근할까요?]

[안 됩니다. 기다리세요.]

[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친구들한테 하는 것처럼 토끼 이모티콘을 보낼까 하다가 참았다. 재혁이 자신을 귀여워해 주고 있긴 했지만 아직 이모티콘을 막 보낼 만큼 친밀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연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인님이니까 행동을 조심하자고 생각하며 책상을 정리했다.

그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30분이 지나서였다.

[후문 뒤 사거리 지나 첫 번째 모퉁이에서 만납시다.]

문자로 대답한 후에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늘 주차장에서 만났는데 거리를 두고 만나자고 하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아웃팅을 걱정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회사를 빠져나와 재혁이 말한 장소로 가니 먼저 나와 있었다. 똑똑, 유리문을 두드렸다. 안에 타고 있던 재혁이 문을 내렸다.

“빨리 타세요.”

“네.”

루는 주변을 한번 둘러본 후에 차에 타고는 재혁의 표정을 살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앞만 보고 운전하고 있었다. 회사를 벗어나면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눈치를 살피자 재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도 됩니다. 왜 자꾸 눈치를 봐요.”

“그, 그게요. 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물어보세요.”

루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플레이할 땐 몰라도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선 부끄러웠다. 루가 망설이자 재혁이 픽 하고 웃더니 먼저 말했다.

“뻔하지. 왜 안 넣었냐고?”

루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쩜 이렇게나 마음이 잘 통할까 싶어서 놀라운 마음이 든 것과 동시에 직접 묻지 않아도 되니까 재혁의 말이 반가웠다.

“네! 궁금했어요.”

재혁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젤이 없었지 않습니까. 어제도 내가 괴롭혀서 아플 텐데 젤도 없이 넣으면 아프잖아. 당연한걸.”

아프지 않냐는 말에 루는 당황스러웠다. 아프게 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게다가 그는 꼭 넣을 것처럼 말했었다.

혼란스러움에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그렇지만…….”

“뭐, 왜 넣는 것처럼 말했냐고?”

“네네!”

재혁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았다. 괜히 물어봤나? 하지만 물어본 게 아니라 그가 한 말에 대답했을 뿐인데……. 시선을 피해 앞을 바라보자 재혁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재미없었습니까? 넣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벌벌 떠는 게 귀여워서 그랬습니다.”

사실대로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그의 마음에 더 드는 행동일 것 같아서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을 뱉었다.

“저, 사실은요. 좋았어요.”

“떠는 게? 아니면 내가 협박하는 게 좋았어요?”

“밖에서 하니까 언제 들킬지 몰라서 무서웠고 안 풀어 주시고 하려고 하니까 그것도 무서웠어요. 입도 막고 있어서 강제로 당하는 느낌이라…….”

끼익!

차가 갑자기 서는 바람에 루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재혁이 팔을 뻗지 않았으면 몸이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그는 운전을 험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왜 이러지?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골목에 잠시 차를 세운 그가 시선을 마주쳐 왔다.

“루 씨, 그런 거 좋아해요?”

“아시잖아요. 팀장님은 싫어하세요?”

재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그럴 리가. 좋아합니다.”

“그런데 왜…….”

재혁은 루를 빤히 바라보다가 무릎에 올려놓은 손등에 손을 겹쳤다. 따뜻하고 커다란 손의 감촉이 좋아서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루 씨, 우리가 즐기기 위해서 고통을 이용하는 것과 막무가내로 고통을 주는 것은 구분해야죠. 나는 당신의 몸에 영구적인 상처를 남기거나 몸이 아니라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싶진 않습니다.”

“아…….”

루는 자기도 모르게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이 남자는 어디까지 멋있을까. 고통을 이용하는 것과 고통을 주기 위한 고통의 차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을 얼마나 배려하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사람에게서 이런 배려를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

가슴속에서 내내 그를 서럽게 했던 무엇이 쑥 내려가는 느낌에 좋은 꿈을 꾸다가 일어난 것처럼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루가 아무 말도 못 한 채 재혁을 바라보기만 하자 재혁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해요? 사람 앞에 두고.”

루가 빙긋 웃으며 약간 높은 톤으로 대답했다.

“비밀이에요!”

의외라는 듯 눈에 힘을 주고 루를 바라보던 재혁이 할 말을 고르는 듯 잠시 침묵하다가 손을 올려 루의 어깨를 잡았다. 루가 숨을 훅 들이켜며 그를 바라보자 재혁이 억눌린 음성으로 말했다.

“신루, 말해. 무슨 생각 했어? 지금은 팀장님이 묻는 게 아니니까 대답해야지?”

불량스러운 웃음이 입꼬리에 걸렸다. 루는 입술을 쭉 내밀며 툴툴거렸다.

“그, 그런 게 어딨어요. 플레이 아니었는데 그냥 팀장님에서 갑자기 바로 바뀌는 게 어딨어요?”

“뭐든 할 수 있다며? 무슨 생각 하는지 말하는 것 정도가 어려운가? 그럼 안전어를 말하든지.”

그에게 반한 마음을 혼자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일기장에 적어 둘 생각이었는데 재혁이 안전어를 말하라고 하니까 오기가 치솟았다. 이 정도 말하는 게 안전어를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답을 재촉하듯 어깨를 쥔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루는 눈을 한번 감았다 뜬 다음 결국 그에게 지고 말았다.

“멋있었어요. 고통을 구분하겠다는 말이 꼭… 나를 많이 좋아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버려진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누가 자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더 예민하게 느낀대요. 제가 그런 것 같아요. 아니라면… 제가 착각한 거라면 죄송해요. 그래서 비밀이라고 한 거예요. 내 착각인 걸 알면 마음이 아플까 봐.”

재혁은 한편으론 뿌듯하고 또 한편으론 목에 뭐가 걸린 듯한 감정을 느끼며 루를 품으로 당겨 안았다. 입술이 귀에 닿았을 때 그가 듣고 싶어 할 대답을 들려주었다.

“착각 아닙니다. 좋아하니까.”

“…….”

“내가 신루 당신 좋아한다고.”

루는 그의 품에 깊이 파고든 채 좋아한다는 말을 오래오래 곱씹었다. 시간이 이대로 정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꽉 끌어안고 있던 재혁이 한참 만에 몸을 떼고는 느리게 긴 숨을 들이쉬었다.

“그래서 말인데 루 씨.”

“네.”

“조금 빠를 수도 있긴 하지만 내 집에 들어와 사는 건 어떻습니까?”

“…네?”

바로 좋다고 대답하지 않고 되묻는 루의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재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을 뿐인데 표정이 확 굳어 버리는 게 신경 쓰여서 루가 작은 목소리로 변명했다.

“너, 너무 갑자기라서요. 저…저는 그런 건 꿈도 못 꿔 본 일이어서… 싫은 건 아니고요.”

“…뭐.”

재혁이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어 루와 눈을 마주쳤다. 피곤한 듯 목덜미를 주무르고는 가볍게 말했다.

“지금 당장 정하라는 것 아닙니다. 생각할 시간 줄 겁니다.”

어깨를 잡은 손이 루의 뺨을 살짝 스치다가 떨어졌다.

“혹시나 걱정할까 봐 말하지만 거절한다고 해서 우리 관계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당신이 연애 디엣을 내게 제안했던 것처럼 동거도 내가 제안하는 것뿐입니다. 다만…….”

그는 잠시 말을 멈춘 채 입술 주위의 근육을 꿈틀거리다가 느리게 다음 말을 이었다.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신중하게 결정하세요. 나와 함께 사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테니까.”

“…네.”

벌벌 떠는 루의 어깨를 보니 많이 놀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퇴근 후에 저녁도 먹지 못했다. 새하얗게 질린 그를 데려다가 밥을 먹이고 함께 잠이 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그를 생각하면 이런 상황에선 재혁의 그런 행동마저 부담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보내 주자.

재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운전대를 그의 집으로 돌렸다.

그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온 재혁은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찬물로 샤워해야 했다. 그러나 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다.

우민이 다녀가고 루와 함께 사는 게 여러모로 안전할 것 같다고 미리 생각해 두긴 했지만 이렇게 급하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별것 아닌 자신의 행동에 지나치게 감동하면서도 그게 착각일까 봐 떠는 모습을 보자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미 제 것임에도 더욱더 격렬히 소유하고 싶은 마음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그의 곁에 있으면 언제나 예상이 빗나가고 자기답지 않은 일을 저지르곤 했다. 통제해야만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 자신도 통제하고 있지 못하면서 그게 싫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샤워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소파에 앉았다. 평일에는 술을 자제하는 편이었지만 소파를 보자 저 위에서 마구 흔들리며 울던 그가 생각나서 입이 말랐다.

유리잔에 얼음을 채우고 위스키를 따라 빙글 돌렸을 때 그에게서 소심한 문자가 도착했다.

[섹시한 꿈 꾸세요.]

문자를 본 재혁이 들고 있던 위스키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제대로 잡았다. 다시 읽어 봐도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섹시한 꿈을 꾸라니……. 서브와 아침저녁으로 인사할 만큼 친밀한 도미넌트가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인사말은 이제껏 들어본 적 없었다.

입꼬리를 바짝 올리며 답장했다.

[섹시한 꿈은 도대체 어떤 꿈입니까?]

[제가 나오는 꿈이요.]

[좋아요. 창문 잘 닫았습니까?]

[네?]

[내가 오늘 꿈에서 루 씨 강간하러 갈 거거든. 그러니까 문단속 잘하고 창문 꼭 닫고 있으세요.]

놀랐는지 한참 답이 없던 그가 재혁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 답장을 보냈다.

[주인님이 오시면 문 다 열어 놓고 기다릴게요.♥]

아…….

이불을 차고 싶을 정도로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입을 너무 오래 벌리고 있어서 잇몸이 마를 것 같았다.

뭘 먹고 이렇게 귀여운 것인가 생각하다가 다시 또 불안해졌다.

[농담입니다. 문단속 확실히 하고 자요. 강간은 다음에 만나서 꼭 해 주겠습니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이러다간 끝도 없이 문자가 이어질 것 같아서 재혁은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처음 하는 사랑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 *

동거를 제안한 이후에 재혁은 루가 대답을 하지 않았음에도 거의 매일 루를 자기 집으로 불러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괴롭혔다. 플레이에서 돔의 능력은 꼬투리를 잡는 능력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재혁은 꼭 원하는 게 있어서 괴롭히는 사람처럼 사사건건 시비였다.

동거를 제안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했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재혁은 가끔씩 지나가는 말로 함께 살면 얼마나 좋겠냐는 속내를 내비쳤다.

그럴 때마다 루는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제안이고 자신도 재혁을 늘 그리워했기 때문에 함께 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여러 번 버림받았던 기억은 그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았다.

양부모님이 정해지고 보육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날 때는 모두 루를 예뻐했다. 빨리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가족이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나 루가 마음을 주고 경계를 풀고 그들의 집으로 가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한 번은 불임인 줄 알았던 양부모에게 친자식이 생겨서 그랬고 또 한 번은 양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 그 이유였다.

두 경우 모두 다 루가 잘못해서 버림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루는 그들이 왜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된 이후에도 자신이 잘못해서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보육원에서 공개 입양을 했지만 자신만 두 번의 파양을 당했다는 건 자기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보육원 원장은 루만 보면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루, 너는 가끔 보면 귀엽고 예쁘지만 곁에 놓고 보면 아주 꼴사나운 데다가 답답한 녀석이라고. 그러니 사람들이 쉽게 너를 버리는 거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땐 불같이 화가 났다. 절대 그런 게 아니라고…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속으로 반항했지만 보육원 원장의 말은 루의 가슴에 지금까지 남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도미넌트 중에는 갖고 싶어 할 때는 감정이 깊어지다가 정작 자기가 쉽게 가질 수 있는 상대가 되면 흥미가 식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그의 집에 들어가서 언제든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버려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루의 결정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으아… 주, 주인님.”

“시끄러워. 귀찮게!”

“아, 조, 조금만…….”

오늘은 엉덩이에 멍이 들 때까지 스팽을 당하고 로터를 넣은 채로 산책하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재혁의 입술이 사정 방지 링을 낀 루의 온몸을 애무하고 있었다.

젖꼭지가 예민한 루의 몸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재혁은 그 부분만 물고 빨아서 빨갛게 부었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밖에서 혼자 사는 주제에 몸이 이렇게 예민하면 어떡해? 그러다가 아무한테나 다리 벌리고 박아 달라고 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그러나 주인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구멍과 가슴에서 느껴지는 지나친 쾌락에 온몸을 바들바들 떠느라 재혁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을 원해서 한 질문도 아니라는 생각에 괜찮을 거라고 여겼지만 재혁은 단호했다.

“이거 봐. 대답도 못 할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리잖아.”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같이 사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도 관계에 변화가 없을 거라고 했으면서 동거를 제안한 이후로 루는 매일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같이 살지 않으면 헤어질 거라고 했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이런 고문은 잠시만 견디면 또 다정한 팀장님으로 돌아와 몇 배의 보상을 해 줬으므로 루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참을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버림받는 것보다는 나았으므로.

“주, 주인님이 만지는 거 아니면 반응 안 하는데…….”

재혁이 귀에 바람을 불어 넣으며 귓불을 깨물었다. 밑으로 내려온 손이 엉덩이 골 사이를 느리게 쓸었다. 구멍이 콱 조이며 진동을 더 세게 느꼈다.

“아… 아으.”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채찍이 구멍 사이를 쓸어내렸다. 아픈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저걸로 맞게 된다면 안이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소름이 돋았다.

“잘 느끼는 몸이라 불안한데 여길 아예 못 쓰게 만들면 어때? 한 열 대쯤 때리면 망가질 텐데. 그러면 다른 데서 엉덩이 못 들이밀겠지.”

내벽을 괴롭히던 로터 대신 젤로 질척한 손가락이 그 사이를 파고들어 구멍을 거칠게 헤집었다. 절정 직전까지 괴롭힌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다물리지 못한 구멍에서 젤이 녹아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구멍이 뻐끔거리며 야하게 안쪽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서늘한 가죽의 촉감이 느껴졌다. 휘릭! 허공에서 움직인 채찍 소리에 루가 어깨를 떨며 재혁을 바라보았다. 실험하듯 몇 번 더 허공을 내리치는 듯하더니 재혁이 루의 귀에 ‘눈 감아.’라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구멍이 찢어질 것처럼 뜨거워졌다.

“아아아! 아파, 아파요.”

머릿속에 불이 번쩍 튀었다. 한 대 맞은 것만 해도 이렇게 아픈데 더 맞으면 정말로 구멍이 찢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랗게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 루의 엉덩이에 다시 채찍이 닿았다.

“구멍 보이게 엉덩이 더 벌려.”

“아, 안 돼요. 흑… 안 돼…….”

루가 무서움에 몸을 떨며 빌었지만 재혁은 봐줄 생각이 없었다. 루가 직접 양손으로 엉덩이를 벌리고 구멍을 보여 줄 때까지 채찍질이 계속되었다.

부드러운 가죽을 골라서 특수 제작된 채찍은 케인보다 강도가 약하고 몸을 쉽게 붓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공포심을 조성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구였다.

상처는 남기지 않으면서 순간의 아픔은 크기 때문에 섭들은 이 채찍으로 구멍을 맞는 걸 두려워했다. 오늘 보니까 루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안 돼! 으아… 주, 주인님, 자, 잘못했어요.”

“뭘?”

“저, 저… 음란한 몸이라서요. 좋은 거 잘 못 참아서 잘못했어요.”

틀린 대답에 열이 확 올랐다. 비록 음란해서 문란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가지고 그를 괴롭히고 있었지만 그가 진짜 잘못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동거 제안을 주말이 될 때까지 거부하고 있는 게 그의 잘못이었다.

그런데 불쌍한 루는 지금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열을 채우는 중이었다.

“음란한 몸이라서 혼나는 거야. 제대로 벌려.”

착!

정확하게 벌어진 구멍에 닿는 채찍에 루의 몸이 동그랗게 말렸다. 아픈지 꽉 깨물던 치아가 벌어지고 입가로 침이 흘러나왔다. 눈물에 침에 엉망인 루의 얼굴을 보니까 교육이고 뭐고 당장 좆을 박고 싶다는 생각에 배 속이 간지러웠다.

“시발, 구멍 벌리는 거 하나도 제대로 못 해? 다시 벌려.”

재혁은 그가 다시 자세를 잡을 때까지 어깨와 등을 때렸다. 루가 겨우 엉덩이를 벌리자 그곳만 집중적으로 채찍질했다. 이보다 더 심한 아픔도 잘 견디던 루는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자마자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앞을 보면 방지 링이 터질 것같이 흥분하고 있으면서도 무서웠는지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손을 올리려는 재혁의 손을 잡고 엉엉 울면서 빌었다.

“주, 주인님… 제발요. 자, 잘할게요.”

“건방지게 어디 손을 대!”

그러나 이런 말로는 재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루가 옆으로 쓰러질 때까지 강도를 조절하며 채찍질을 계속 이어 갔다.

“즈…증오하고 미워합…….”

루가 떨리는 목소리로 안전어를 외쳤다. 재혁의 손에서 채찍이 떨어져 나갔다. 엉덩이가 울긋불긋했지만 루의 걱정과는 다르게 구멍은 멀쩡했다. 상처를 입히지 않는 채찍은 정신을 지배하는 도미넌트용이었지 고통을 주는 걸 즐기는 사디스트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채찍질을 멈춘 재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한 주인님으로 돌아와 루의 몸을 정성스레 씻기고 약을 바른 후에 그를 꼭 끌어안았다.

한 번도 사정하지 못한 루는 아직도 팽팽하게 서 있는 재혁의 성기를 내려다보며 소심하게 그를 불렀다.

“저… 주인님, 아니! 팀장님…….”

재혁이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뭐라고 물어야 하지? 왜 섹스 안 하냐고? 아니면 오늘은 이걸로 끝이냐고?

몸이 절절 끓어오르는 것 같아서 그를 부르긴 불렀는데 물어보려고 하니까 눈앞이 깜깜했다.

“불렀으면 말을 해야죠.”

“저, 그게요.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말꼬리를 늘이면 언제나 찰떡같이 다음 말을 알아맞히던 재혁이 오늘따라 입을 꽉 다문 채 루를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답답한 마음에 루는 눈을 질끈 감고 물어 버렸다.

“오늘은 그만해요?”

“뭘?”

정말 모르겠다는 듯 어깨까지 으쓱이는 모습이 얄미웠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아 루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아니에요.”

입술을 삐죽 내민 루를 보고는 헛웃음을 삼킨 재혁이 루의 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안전어를 말했는데 플레이를 더 이어 가면 그건 범죄라고 몇 번을 말해 줘야 알아듣습니까.”

루는 그의 가슴에 이마를 비비며 ‘그럼 플레이 말고 그냥 섹스하면 되잖아요.’라는 말을 삼키며 진지하게 여기에서 살면 어떨까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루는 재혁과 함께 살면서도 그의 관심을 지금처럼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딱딱해진 좆 따위야 조금만 참으면 된다. 플레이할 때마다 꼬투리를 잡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플레이는 힘들긴 했지만 싫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이런 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드럽고 다정한 손길과 귀를 간지럽히는 속삭임이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루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갈증에 목이 말랐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가시지 않았다. 참다가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루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안 됩니다.”

“…네?”

그의 손이 이불 속으로 들어와 한 번도 줄어들지 않은 루의 성기를 붙잡았다.

“참으세요.”

“저, 그게 아니라 진짜 화장실인데요?”

“압니다. 참으세요.”

“지금 팀장님이죠?”

“네, 존댓말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안 참겠다는 겁니까?”

재혁이 눈을 부릅뜨자 루가 시선을 내렸다.

“그건 아니지만… 저 진짜 마려운데.”

그가 불량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루의 성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여기서 싸요, 그럼. 내가 잡아 주고 있잖아.”

이 남자는 미친 게 틀림없었다. 사람을 괴롭히는 데 타고난 지배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게다가 지능적으로 존댓말을 쓰고 있어서 주인님이 아니므로 안전어를 외치는 것도 이상했다.

아니, 주인님의 명령이 아니기에 안전어를 외칠 필요도 없이 언제든 거부할 수 있었지만 침대 위에서 루가 재혁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티, 팀장님…….”

배와 엉덩이에 힘을 주고 그의 손길을 견뎌 냈다. 얼굴이 새빨갛게 질리고 호흡곤란이 와서 숨을 제대로 못 쉴 때가 되어서야 재혁은 루를 안고 화장실에 데려다주었다.

가지 않고 보는 데서 싸라고 해서 울상을 지었지만 더는 한계였다. 지금은 그의 매트리스를 더럽히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했다.

다정하고 매너 좋고 첫눈에 반해서 홀린 듯 선택한 도미넌트 김재혁은 루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미친놈이었다. 루는 훌쩍이며 볼일을 보고 그를 지나쳐 침대로 가 누웠다.

재혁이 곁에 누워 손을 뻗어 왔다. 루는 소심하게 재혁의 어깨를 밀었지만 그는 픽 웃으며 다시 그를 끌어안았다.

“화가 나면 화를 내요. 더 꼴리게 하지 말고.”

루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제가 팀장님한테 어떻게 화내요.”

“왜 못 냅니까. 열받았잖아. 그럼 화를 낼 수도 있지. 플레이 파트너 아니고 연인 관계니까.”

“그래도요. 못 내요, 저는.”

“미안해요. 내가 좆같아서 그래요. 루 씨가 그럴 줄 알고 자꾸만 더 못되게 굽니다. 내가 이렇게 해도 당신이 날 버리지 않을 걸 알아서.”

“팀장님이나…….”

“응?”

‘절 버리지 마세요.’라는 말이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약해져서 결국 말을 해 버릴까 봐 루는 그의 품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가슴에 귀를 댔다. 쿵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에는 언제 괴로웠나 싶게 달콤하기만 했다. 이상한 것만 시키고 못되게 굴고 안전어를 외칠 때까지 몰아붙여졌는데도 좋기만 해서 화를 내라는 그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감정이 깊어져서 큰일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이러다가 정말 버림받게 되면 죽을지도 몰랐다.

귀에 재혁의 따뜻하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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