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13)

3. 컨트롤 미 (2)

눈을 떴더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아, 여기 팀장님 집이었구나!

열린 커튼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는 걸로 봐선 오후쯤 된 것 같았다. 잠들기 전엔 금방 죽을 것 같았는데 잠에서 깨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이런 것도 누가 다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기지개를 켜다가 고개를 숙였는데 몸이 어딘가 이상했다. 자기 전엔 아래가 엉망이었는데 몸의 말라붙은 자국들이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일어났습니까?”

방문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재혁이 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꼭 귀신 본 것 같네.”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뭐, 그럴 수 있죠. 대충 닦아 놓긴 했는데 약 바르려면 씻는 게 좋을 겁니다. 씻고 와요.”

“…저 집에 가서 씻어도 되는데요.”

사실 여기서 씻고 가면 좋겠지만 귀찮은 걸 질색하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재혁의 인상이 점점 굳어 갔다.

“두 번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플레이 아니라고 멋대로 굴 겁니까?”

“…네?”

예상과 전혀 다른 흐름이 당황스러웠다. 재혁이 다가와 루가 덮고 있던 이불을 홱 낚아챘다.

“섹스하고 싶다며?”

“…예?”

처음에 플레이에 대해서 말할 때 섹스도 괜찮다고 했지 꼭 해야 한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아쉬운 쪽은 자신이었으니까 루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갔다. 루의 등에 그의 목소리가 달라붙었다.

“잠꼬대로 그러더군요. 왜 안 넣어 줬냐고. 주인님은 내가 싫으신 거냐고. 그래서 좆 대신 딜도만 넣은 거냐고.”

욕실 앞에서 발이 땅바닥에 딱 붙었다. 누군가와 함께 자 본 적이 없어서 자신이 잠꼬대한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천천히 뒤돌아 질 나쁜 웃음을 흘리는 그를 바라보았다.

“왜요?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습니까?”

“…제가 진짜 그랬다고요?”

“아니면 내가 지어내기라도 했다고?”

“…아니요.”

아닐 것이다. 재혁이 한 말은 정확하게 루의 진심이었으니까. 하여튼 첫 플레이부터 말아먹었다. 여기 오기 전에 마음을 잘 숨기고 태연하게 굴어야 한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생각에 기가 죽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욕실로 들어가려는데 재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생각도 취향입니다.”

“네?”

“그렇게 자꾸 되물을 겁니까? 두 번 말하는 거 싫다고 말했는데.”

“아뇨, 죄송합니다.”

욕실로 들어온 루는 또 한 번 놀랐다. 욕실 안 욕조엔 따뜻한 물이 받아져 있었고 보글보글 거품이 일고 있었다.

‘물을 받아 둔 걸까? 나를 위해?’

손을 넣어 봤더니 물은 따뜻했고 쓰다가 빼지 않은 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껏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준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이런 것도 그가 말한 돔의 매너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욕조에 몸을 담갔다. 녹진녹진 근육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이런 걸 보면 영상이나 책으로 배운 플레이와 실제 플레이는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영상에선 후처리나 그들의 일상적인 관계까지 나오는 건 아니니까. 다른 관계도 다 이렇게 하는 거라고 자기가 특별한 건 없으니 괜히 착각하지 말자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씻고 나오니 시트가 깨끗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머리를 손수 말려 주더니 새 시트에 눕힌 후에 상처 난 곳에 약을 발라 줬다. 손이 닿을 때마다 간지러워서 몸이 움찔거렸다.

“움직이지 마세요.”

“저기…….”

한 손에 연고를 든 재혁이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듯 루를 바라보았다. 치켜뜬 눈을 보자 할 말이 쏙 들어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흐음…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도 됩니다.”

“그… 걱정돼서요. 물어봤다가 괜히…….”

“내가 혼낼까 봐?”

자신의 속마음을 딱 알아맞힌 재혁의 질문에 루는 속으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혁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뭘 어려운 걸 맞췄다고 저렇게 감탄하나 싶었다. 말하고 싶은 게 얼굴에 다 보이는데 모르면 바보지. 연고의 뚜껑을 돌려 닫으며 루를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내가 무섭습니까? 그러지 말라고 다정하게 대하는 건데.”

“다정하긴 하신데요. 조금 헷갈려서요. 지금은 돔이에요? 팀장님이에요?”

“…….”

이번엔 재혁의 입이 다물렸다. 그러게 나는 지금 뭐지?

엄밀히 말하자면 플레이 파트너 관계에서 후처리할 때까지도 돔이었다. 철저한 도미넌트의 위치에서 섭의 신체에 가한 고통을 완화하고 보상하는 의미가 컸으니까. 그런데 건방을 받아 주고 있고 한없이 다정하게 굴고 있다. 루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할 말이 궁해진 재혁은 대답 대신 표정을 굳혔다. 그랬더니 루가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거봐요. 무섭잖아요.”

아이 같은 말투에 웃음이 났다. 인턴 끝에 바로 취직했다고 했나? 그래도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해 본 남자치고는 지나치게 어리게 굴었다. 회사에서 이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하긴 자신도 회사에서 도미넌트라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진 않으니까 침대에서만 나오는 성향이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루 씨.”

이름을 부르자 어깨가 움찔한다. 커다란 눈이 반짝이며 재혁을 바라보더니 순종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네.”

“모든 생활을 다 통제하는 거 귀찮아합니다.”

“아…….”

“그런 걸 원하면 다른 돔을…….”

“아니에요! 저 내치지 마세요. 평소에도 돔 해 달라고 안 할게요. 플레이할 때만 해 주면 되니까 그냥 팀장님 마음대로 하세요. 그… 헷갈리는 건 제가 알아서…….”

루가 재혁의 무릎을 잡으며 매달렸다. ‘귀여워서 미칠 것 같다.’라고 생각하며 그런 생각을 한 제 머리를 한 대 때리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연애라니… 김재혁이? 생각만으로 쓴 물이 올라왔다.

그래서 재혁은 루를 향해 웃어 보였다. 마음을 숨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웃는 것이다. 돔이 섭에게 보여 주는 가장 가식적인 표정. 그러나 받아들이는 루는 둥글게 접히는 재혁의 눈가 주름을 보며 목이 졸리는 것 같다고 느꼈다. 루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저기! 팀장님.”

“네.”

“생각해 보니까 안 헷갈려요.”

“뭐?”

“저는 원래 강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러니까 팀장님이나 돔이나 다 무서워하는 게 당연해요.”

“…….”

“그러니까 저한테 뭐 해 주실 필요 없이 그냥 저 혼자 무서워하면 돼요!”

“미치겠네.”

순진하기 짝이 없는 말 한마디에 억누르고 막아 놓았던 것이 터져 버렸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손을 뻗어 루의 하얀 목을 잡았다.

“읏…….”

“진짜 무서운 게 뭔지 보여 줘?”

“큿…….”

목이 조여 와 숨을 쉬기 어려웠다. 그의 성기를 삼킬 때처럼 괴로운 감각이 전신을 휩쓸었지만 그만큼 좋았다. 흐릿해지는 시야에 잡힌 눈빛이 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어 버릴 것만 같은 느낌에 안정감이 들었다. 눈이 스르르 감기고 의식이 멀어져 갈 때쯤 손이 풀렸다.

“박아 줄 테니까 가운 벗고 엎드려.”

루는 재빨리 가운을 벗고 시트에 고개를 처박았다. 찰싹!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엉덩이에 매운 손길이 닿았다.

“다리 더 벌리고 엉덩이 잡아 벌려. 구멍 보이게.”

손을 뒤로 가져가 엉덩이를 잡아 힘주어 벌렸다. 재혁의 눈에 색이 옅은 구멍이 드러나 움찔거렸다. 직전의 플레이로 인해 살짝 부어 있긴 했지만 찢어지진 않아서 박는 데 무리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침대 옆 협탁으로 손을 뻗어 젤을 꺼냈다. 뚜껑을 열어 구멍에 바로 짜 넣으니 루의 허리가 흔들렸다.

“발정이 단단히 났네. 벌써 허리를 흔들어 대고.”

“흐으! 주인님… 더 넣어 주세요. 문질러… 아앗.”

젤을 집어던진 재혁이 풀리지 않은 구멍에 손가락 두 개를 넣어 마구잡이로 쑤셨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뜨거워진 내벽이 그의 손가락을 반기는 게 느껴졌다. 루는 통증과 쾌감에 못 이겨 끙끙거리며 울었다.

재혁이 손을 앞으로 돌려 루의 성기를 잡고 흔들어 주자 루가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었다. 손가락이 늘어나고 빠듯했던 구멍이 부드럽게 풀려 가기 시작했다.

재혁은 손가락을 박아 넣은 채 다른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몇 번 쓰다듬었다. 루가 씻고 나오면서부터 발기하기 시작한 성기의 선단에서 쿠퍼액이 질질 새 나오고 있었다. 스팽 없이 이렇게 빨리 흥분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며 손가락을 뺀 구멍에 귀두를 가져다 댔다. 손가락을 빼자마자 급격하게 오므라드는 바람에 바로 넣진 못하고 귀두를 비비다가 끝부분을 살짝 밀어 넣었다.

“으읏!”

손가락보다도, 심지어 조금 전에 넣은 딜도보다 훨씬 두꺼운 성기가 입구를 침범하자 루가 억눌린 신음을 뱉으며 몸을 굳혔다. 재혁이 입구에 선단을 걸친 채 엉덩이를 찰싹 내리쳤다.

“찢어지고 싶어? 힘 풀어.”

억센 손이 루의 머리채를 끌어당겼다. 그러면 그럴수록 구멍은 더 경직될 뿐인데……. 재혁이 원망스럽다고 생각할 찰나 젖혀진 고개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틈새를 벌리고 들어온 혀가 얽히자 구멍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재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단번에 성기를 끝까지 쑤셔 넣었다.

“으읏!”

달궈진 쇠꼬챙이에 몸이 뚫리는 고통이었다. 이건 상상보다 더 아팠고 구멍이 찢어지거나 망가진 건 아닌지 두려워 눈물이 나왔다.

“흑… 주, 주인님… 살살…….”

“시발, 좆을 끊어 먹을 것처럼 조이면서.”

음산한 목소리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자 앞으로 다가온 손이 루의 성기를 쥐고 흔들었다. 구멍이 조이며 예민한 부분이 기둥에 닿아 짜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재혁은 루가 자신의 성기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는 성기를 느릿하게 잡아 뺐다. 내벽이 딸려 나오며 기둥을 감싸고 있던 속살이 보였다. 저걸 다 씹어 먹어도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갈증에 잡고 있던 루의 성기를 쥐어짜듯 쥐고는 다시 뿌리 끝까지 집어넣고 허리를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성기가 구멍 안쪽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문질렀다. 빠듯하게 조이기만 하던 내벽이 풀어지면서 기둥을 오물거리며 씹었다. 움직이기가 수월해지자 재혁은 루의 골반을 단단히 틀어쥐고는 허리를 치댔다.

“자세 바로 못 해?”

“흐읏… 아, 아아! 주인님… 아흣!”

“멍청하게 조이는 것밖에 못 하지. 힘 풀어.”

두꺼운 성기로 인해 배가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재혁이 시키는 대로 힘을 빼려고 했지만 끝까지 벌어진 내벽을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었다.

찰싹, 엉덩이가 내리쳐졌다. 자국이 잘 남는 루의 엉덩이가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성기가 전립선 주위를 찌를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몸을 휩쓸었다.

요의가 느껴지는 것처럼 배가 부풀어 오르고 시야가 몇 번이나 꺼졌다 들어왔다. 당장 싸 버릴 것 같은 느낌에 다급해졌다. 재혁에게 허리가 잡혀 이리저리 흔들리던 루는 더는 참지 못하고 한 손으로 성기 끝을 막으며 애원했다.

“주, 주인님… 저, 싸…쌀 것 같아요.”

“누가 좆 잡고 버티래. 손 안 떼?”

“아… 저, 떼면… 떼면 안 돼요. 흐읏.”

“시발, 진짜…….”

머리채를 잡아 돌려 바라본 루의 표정은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쌀 것 같았다. 재혁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싸면… 죽어.”

“아, 안 돼… 나, 나와요. 마, 막아 주세요. 제발.”

재혁은 막아 주지 않은 채 계속 구멍을 짓쑤시며 전립선을 자극했다. 루는 배를 한껏 당기며 사정을 참았지만 더는 한계였다.

“아, 안 돼… 주, 주인님! 제…제발…….”

끝까지 박힌 성기가 뭉근히 문질러지는 동안 재혁은 손을 앞으로 돌려 루의 성기를 잡고 붉게 물든 루의 성기를 살살 쓰다듬기 시작했다.

“후우… 좆나 조이네.”

“아… 실, 싫어!”

루가 미친 것처럼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싸지 말라고 했으니까 싸면 안 되는데 괴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말을 잘 들어야 파트너라도 될 수 있는데. 루는 정말 간절하게 재혁의 서브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재혁은 그런 자신이 싫은지 싸지 말라고 해 놓고 쌀 수밖에 없도록 선단을 슬슬 긁어 대고 있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루의 내벽이 순식간에 바짝 좁혀졌다. 성기를 빨아 먹는 것처럼 붙어 오는 자극에 재혁의 사정감도 치솟았다. 재혁은 상체를 숙여 루의 등에 몸을 바짝 붙이고 허리를 빠르게 쳐올렸다. 사납게 붙어 오는 움직임에 몸이 짓눌리자 루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으… 아아! 너, 너무, 너무!”

빠르게 박아 대던 재혁은 이를 악물고 허리를 멈췄다. 고환까지 잡아넣을 정도로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고 뜨겁게 달아오른 내벽을 슬슬 문질렀다. 루의 젖꼭지를 잡아 비틀며 참고 있었던 정액을 내벽에 쏟아부으면서 사정하자 루의 몸이 경련하듯 떨렸다.

“흐아아!”

“크읏!”

뜨겁고 찐득한 것이 루의 배 속을 가득 채웠음에도 성기는 빠져나가지 않았다. 루의 뺨에 눈물이 말라붙어 얼굴이 엉망이었다.

“흐윽… 읏…….”

조금의 틈도 없을 정도로 달라붙어 있는 등에서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들렸다. 재혁이 낮고 음산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누가 싸래?”

“흑… 그, 아니… 자, 잘못…….”

사정했으니까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하긴 싸라고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싸면 안 되는 건데 자기도 모르게 싸 버리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고 싶었는데 재혁이 몸으로 짓누르고 있어서 그러지도 못했다.

“차, 참으려고 했는데… 주인님이…….”

“또 내 탓이야?”

“아니요. 제가 못 참고 침대에다가 싸 버렸어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루가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재혁의 귀에까지 들리는 듯했다. 사정의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내쉬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입술을 뻐금거리는 게 귀여워 그의 귓불을 콰득 씹었다.

“아앗!”

“대답 안 해?”

“호, 혼나야 해요!”

“어떻게?”

“…빨까요?”

“그건 아까 해서 별론데?”

재혁의 말에 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느냐는 얼굴이었다.

“저 시트 빨아드린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시발…….

대체 이 발칙한 서브한테 하루에 몇 번이나 낚이는지 돔 체면이 영 말이 아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재혁은 섹스 중에 루의 엉덩이를 몇 대 갈기지 못했다는 사실과 그런데도 절정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직도 제 성기를 오물거리고 있는 루의 구멍에서 느릿하게 성기를 빼냈다. 그리고 곧바로 명령했다.

“흘리지 마.”

“으읏… 네.”

안을 채우고 있던 성기의 크기가 커서 벌어진 구멍은 한 번에 닫히지 않았다. 힘을 써서 조이려고 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재혁이 싸지른 정액이 루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루는 제 아래를 내려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자, 잘못했어요.”

“맨날 입만 살았지.”

루의 머리채를 잡아당긴 재혁이 자신이 입고 있는 가운의 허리끈을 거칠게 풀어냈다. 루의 눈이 기대감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루의 손을 위로 바짝 올리고는 끈을 둘러 손목을 단단히 묶었다. 매듭 사이 손을 넣어 다치지 않게끔 간격을 조절하고는 턱을 잡아 올렸다.

무슨 짓을 하든 다 감당해 내겠다는 의지가 깃든 표정이 재혁의 배 속을 요동치게 했지만 아무리 급해도 빠뜨려선 안 될 게 있었다.

“안전어는?”

“기억하고 있어요.”

루가 대답하자 재혁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방치 플레인가? 그의 정액을 구멍에 가득 품은 채 손이 묶여 방치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흥분하고 말았다. 그럼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눈치 없는 성기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 돼……. 죽어……. 서지 마.’

서고 있는 녀석을 노려보며 애국가를 불러 봐도 성기는 그대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녀석이 죽으려면 구멍의 힘을 풀어야 하는데 구멍의 힘을 풀면 정액이 쏟아지니까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루의 얼굴이 점점 울상이 되었다.

앞을 세워도 혼날 게 분명했고 뒤로 정액을 쏟아도 혼날 게 분명해서 이러나저러나 오늘은 혼나는 날이었다. 사실 혼나는 건 괜찮았다. 버림받지만 않으면… 그러면 된다.

잠시 후 돌아온 재혁의 손엔 얇은 회초리가 들려 있었다. 저걸로 맞게 되는 건가? 눈이 감겼다.

“엉덩이 들어.”

손이 묶인 채 고개를 처박고 엎드린 채 엉덩이를 들었다. 휘릭, 휙, 휙! 날카로운 것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에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엉덩이에 차갑고 딱딱한 것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마치 감촉을 느끼라는 듯 둥근 곡선을 따라 움직이는 기다란 물체의 감촉에 허리가 흔들렸다. 귓가에서 재혁의 목소리가 나른하게 울렸다.

“지금부터 이걸로 여길 때릴 건데 몇 대를 맞으면 함부로 싸는 버릇이 고쳐질까?”

서늘한 목소리와 곧 이어질 스팽에 대한 기대감에 몸이 떨려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회초리의 끝이 당장이라도 파고들듯 구멍에 닿았다.

“대답.”

반항하려고 대답을 안 한 게 아니었다. 몇 대를 맞아야 하는지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할 말이 없었을 뿐이었다. 루가 울상을 지으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차갑디차가운 눈이 루를 마주 보았다.

“저… 모르겠어요. 그냥 때리는 대로 맞을게요.”

“몇 대 때릴 줄 알고?”

루는 긴장으로 떨리는 숨을 삼키고는 대답했다.

“아, 안전어 있으니까요.”

“후…….”

재혁이 느린 숨을 내뱉더니 따뜻한 손으로 루의 엉덩이를 문질렀다. 간지러운 느낌이 몸 안에 퍼져서 구멍이 움찔거렸다. 정액이 흐를까 봐 배에 힘을 줬다.

“스무 대. 안에 든 걸 흘려도 돼.”

굳어 있던 루의 얼굴이 펴졌다.

“단, 숫자가 틀리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면 처음부터 다시.”

“네.”

짜악!

“으악!”

예고도 없이 떨어진 매질에 저절로 허리가 휘고 비명이 튀어나왔다. 묶인 손목이 빠듯하게 당겨 왔지만 자세를 흩트리진 않았다.

“하, 하나.”

떨리는 목소리로 숫자를 셌더니 칭찬하듯 따뜻한 손바닥이 엉덩이에 닿았다.

짝, 짝, 짜악! 매가 연속적으로 떨어지면서 루도 쉴 새 없이 숫자를 셌다. 처음 느껴 본 매질은 스스로 제 엉덩이를 때리는 자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맵고 아팠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 위해 엉덩이에 힘을 줬다가 뺐다를 반복했다.

짝! 다시 매가 떨어졌다.

“다, 다서엇! 흐읏… 아, 아파요… 아, 주인…님.”

매질이 멈추고 구멍에 손가락이 문질러졌다. 안에 있던 정액이 엉덩이 사이에 난잡하게 비벼졌다.

“아픈 거 맞아? 발정 난 것처럼 맞으면서도 질질 싸 대면서?”

흘려도 된다고 말한 건 이래서인가 보다. 그의 손이 닿은 자리가 간지럽고 뜨거워서 허리가 비틀렸다. 무릎에 힘을 주고 버텼다.

짜악!

“여, 여섯!”

아까보다 더 센 강도로 회초리가 내리쳐졌다. 허리가 들렸다가 떨어졌다. 맞은 곳을 손으로 문지르고 싶은데 묶여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흑… 으으… 아파, 아파요.”

“맞을 수 있다면서? 고작 여섯 대 맞고 버티지도 못해?”

“자, 잘못했어요.”

“힘들면 안전어를 외치면 되잖아.”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프긴 했지만 좋기도 했다. 안전어를 외칠 만큼은 아니었다. 매가 지나간 자리에 다시 뜨거운 손이 닿았다. 살살 문지르는 손길이 좋았다.

매질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열다섯 대까지는 제정신으로 숫자를 센 것 같은데 그다음부턴 무슨 정신으로 수를 센 건지 기억나지 않았다.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질렀고 아픈 자리에 손이 닿고 질척이는 구멍에 손가락이 쑤셔지면 좋아서 허리를 비틀었다.

“아흑…….”

“자세 잡아.”

짜악!

가장 센 강도의 매질이었고 아파서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루가 습관적으로 ‘스물!’이라고 외쳤다.

재혁은 회초리를 던져 버리고는 한 발 떨어져서 감상하듯 벌벌 떨고 있는 루를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엉덩이 사이로 정액을 흘리다가 더는 매가 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뻗었다.

탈진한 것처럼 아무 말도 없이 숨만 고르는 루에게 다가간 재혁이 그의 손에 감긴 가운 끈을 풀어 주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잘 해냈습니다.”

루의 고개가 뒤로 돌려졌다.

“끝난 거예요?”

“네, 수고했습니다.”

루의 눈동자가 불안한 듯 마구 흔들렸다. 심하게 한 것도 없는데 얼굴은 무슨 온갖 하드한 플레이를 다 한 것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저 얼굴에 다시 미소를 찾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재혁은 루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깜짝 놀란 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도 발칙하게 입을 벌려 왔다. 벌린 입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입천장을 슬쩍 긁으니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삼킬 것처럼 루의 입술을 덮고 자꾸만 도망가는 혀를 쫓아 잘근잘근 씹었다. 입 안의 여린 살을 모두 발라 먹을 것처럼 헤집고 자신의 좆을 받아 내느라 고생한 곳을 부드럽게 문질러 주었다.

루는 시트를 쥐며 그의 거친 키스를 받아 내었다. 사납고 집요하며 배려 없이 몰아붙이는 키스였으나 이상하게도 다정했다.

이런 게 후처리라고 하는 걸까? 섭이 돔의 명령을 잘 수행했을 때 주는 보상. 대부분의 서브미시브들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즐기거나 지배에 복종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돔을 사랑한 바닐라가 후천적으로 서브미시브가 된 경우는 힘든 플레이 자체를 즐긴다기보다는 이후의 달콤한 보상에 길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성향을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루로서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플레이가 쉬운 것도 아니고 보상 때문에 발을 들이기에 이 세계는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재혁과 키스하고 보니 그들이 왜 보상 때문에 이 험난한 길에 들어오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한참 동안 입 안 곳곳을 헤집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아쉬운 마음에 입술이 마중 나가듯 앞으로 튀어 나가자 재혁이 낮게 웃었다.

“뭘 잘했다고 더 바랍니까?”

“…저 못했어요?”

“그럼 잘했을 줄 알고?”

재혁이 놀리려고 한 말에 금세 시무룩해져서는 이불을 덮어 버리는 루를 보자 다시 가학심이 들끓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루가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수 있나 문득 궁금해진 재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다른 섭이 플레이 후에 저렇게 삐져 있었다면 계약을 들먹이며 우리는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 파트너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겠지만 방치 플레이라는 것도 있으니 조금 더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방치 플레이는 이런 게 아니라는 생각에 흠칫했다. 명확한 기준에 의해 행동해 왔던 도미넌트 재혁은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예상대로 루의 삐짐은 서브답게 얼마 가지 못했다. 이불을 덮고 있는 그를 가만히 둔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자 잠시 후 이불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재혁은 일부러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후…….”

관심을 끌려는 듯 낮고 짧게 한숨을 쉬는 소리엔 돌아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그랬더니 ‘저기…….’ 하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네, 루 씨.”

“다 끝난 거죠. 그럼… 갈까요?”

고개를 돌려 시선을 줬더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눈치를 보는 꼴이 주인이 집을 비웠을 때 죄지은 강아지 같았다. 일부러 입을 닫고 노려봤더니 힘없는 말이 이어졌다.

“플레이도 끝나고 보상도 받았으니까……. 너무 방해하면 싫어하실까 봐요.”

그러니까 지금 루는 자기가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재혁을 방해할까 봐 가겠다는 거였다. 이렇게 솔직해서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백지 같은 남자였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서브미시브라고 해서 감정적으로 을이 되길 원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자꾸만 보상해 주고 싶었다.

재혁은 팔을 올려 그의 어깨를 감쌌다. 타고나길 못되게 타고나서 간지러운 말은 못 하겠고 그저 다른 말로 그의 정신을 돌려 버리는 게 보상의 다이긴 했지만.

“어떤 플레이가 제일 좋았습니까?”

“네?”

“플레이가 끝났으니 알아 가는 시간을 갖자는 겁니다.”

“아…….”

루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방금까지 그와 했던 플레이를 떠올리자 얼굴이 달아오르고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태연하게 말하느라 대답이 느렸다. 결국, 그의 성질을 돋우고 말았다.

“왜, 너무 약했어?”

“아니, 아니요!”

질문 끝에 날카로운 날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대로 자신을 베어 버릴 것만 같은 공포에 루의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그가 한심해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서워요? 시작도 안 했는데…….”

“네? 플레이한 거 아니었어요?”

루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 갔다. 특별한 도구를 쓴 건 아니었지만 첫 관계로 이 정도면 할 걸 다 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펠라도 했고 스팽도 했고 삽입도 했다. 가스라이팅도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대체 어느 부분에서 시작도 안 했다는 건지 억울했다.

재혁이 웃음기가 가득 담긴 음성으로 짓궂게 물어 왔다.

“하드한 거 없냐며? 사전 인터뷰 할 때 나를 그렇게 도발하더니?”

“…아니이.”

“내가 제대로 했다면 루 씨가 지금 멀쩡하게 나와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히익!”

루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재혁의 몸이 가까이 다가왔다. 쥐어짜듯 아프게 턱이 잡혔다.

“왜? 알고 나니까 도망가고 싶어?”

아니었다. 도망가고 싶기는커녕 기대감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놀란 건 그저 반사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너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밟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는 도미넌트를 얼마나 오래 기다려 왔는지를 알면 절대 그런 말을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요! 안 도망가요.”

“그럼 왜 놀랍니까?”

“구, 궁금했을 뿐이에요. 어떻게 하길래 말도 못 하나 해서요.”

“하하.”

그가 웃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입꼬리를 바짝 올려서 웃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요동치던 가슴이 멈추고 따뜻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싸늘한 표정은 그것대로 좋았고 시원한 웃음은 또 그것대로 너무 좋아서…….

루는 또 울고 싶었다. 이 남자와 연애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것은 욕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루는 사람에 대한 욕심을 가장 경계했다. 욕심의 끝은 항상 자신이 버림받는 거로 귀결되었으므로.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욕심내지 않았다. 그저 곁에 있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가장 갖고 싶은 사람일수록 욕심내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내가 제대로 시작하면…….”

웃음이 멈추고 갑자기 차가워진 얼굴에 숨이 훅 들이켜졌다.

“시퍼레질 때까지 괴롭힐 텐데?”

어디가 시퍼레진다는 걸까? 때려서? 아니면…….

“좆 말입니다. 링을 끼워 놓고 자극하면 볼 만하거든.”

재혁의 손이 이불 속으로 들어와 자극으로 한껏 예민해진 성기를 쥐어짜듯 틀어쥐었다.

“으으…….”

루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고통에 신음하는 그의 얼굴을 보자 재혁도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플레이가 끝난 이후 이렇게 빠르게 동한 건 처음이었다. 다른 손으로 가리고 있던 이불을 홱 걷어 냈다. 제 손에 잡힌 성기가 좁은 틈을 비집고 조금씩 힘을 받는 게 느껴졌다.

“아… 하으… 티, 팀장님.”

“내가 아직 팀장 같아?”

“주인님…….”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엔 자비라고는 없었다. 빠르게 주인님으로 변한 재혁의 입매가 비틀렸다. 치켜뜬 눈이 언제라도 쥐고 있는 것을 터뜨려 버릴 것 같았다.

그의 손길 하나에 제 좆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못 견디게 짜릿했다. 그가 다정함과 무심함 그리고 잔인함을 왔다 갔다 할 줄 아는 남자여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부시게 웃던 사람이 갑자기 변해 목줄을 죄어 오다니……. 꼴려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이 남자 앞에서라면 뭐가 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설사 그의 발에 짓밟혀 기절한다고 해도 행복하게 의식을 잃을 수 있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했다.

성적인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 매운 손에 안달이 났다. 차라리 때려 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그저 성기를 꽉 쥐고만 있었다. 원하는 걸 먼저 말해 보라는 듯……. 그동안 본 동영상과 자신의 음습한 욕망을 더해 힘겹게 말을 뱉었다.

“바, 발정 난 개새끼를 버, 벌해 주세요.”

“뭐라고? 똑바로 말해.”

수치스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집에서 혼자 입에 담을 땐 괜찮았는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하려고 하니까 흥분되는 것과 동시에 민망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어, 발정 났어요. 그, 그러니까 마음대로 해 주세요. 개새끼예요. 음란하고 더러워요.”

표정 관리가 힘들었던 재혁은 플레이 중에 도저히 웃을 수 없어서 도구를 가지러 가는 척 그의 성기를 놓고 방을 빠져나왔다. 나와서 실컷 웃었다. 나름 머리를 쓴다고 썼겠지만 음담이 저렇게 귀여우면 어떡하란 말인가.

열이 오르긴 오르는데 아랫도리가 아니라 가슴에 열이 올랐다.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재혁은 이를 앙다물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무방비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는 루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젖어 드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래, 그를 귀여워해 주는 방법은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루 씨, 원래는 얌전히 씻겨서 약을 발라 주고 뭘 좀 먹인 후에 집에 보내 줄 생각이었습니다.”

“저… 시간 많은데요?”

재혁은 서랍을 열고 사정 방지 링을 꺼내 한 손에 쥐고는 다른 손으로는 그의 머리채를 아프게 움켜쥐었다.

“알아. 귀찮게 했으니까 각오는 되어 있겠지?”

“죄… 아니, 잘못했어요.”

“뭘 잘못했는데?”

“귀찮게 해 드려서요.”

“그래, 그럼 벌받아야지.”

거친 목소리에 등이 오싹해졌다. 약한 전류가 전신을 휘감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재혁의 시선에서 이어질 플레이는 조금 전의 플레이보다 훨씬 더 힘들 것을 직감했다. 눈이 질끈 감겼다.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두려움에 어깨가 떨렸다. 재혁은 은신술이라도 쓰는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루는 자기가 흐느끼는 소리가 너무 커서 그의 숨소리를 듣지 못하는 걸까 봐 숨을 크게 삼켰다. 그랬는데도 느껴지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저기, 주인님… 계세요? 어디 가신 건 아니죠.”

기껏해야 침대 위였고 지금은 합의된 플레이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앞이 보이지 않고 손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해도 무슨 큰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무서웠다.

재혁은 정말이지 언제라도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루는 다 큰 남자가 안대를 쓴 채 몸을 떨며 우는 게 얼마나 볼썽사나울지 알면서도 소리까지 내 가며 울었다. 루가 제일 견딜 수 없는 것은 정을 준 사람에게 내쳐지는 것이었으니까.

“저, 주인님… 제발 소리 좀 내 주세요. 저 무서워서 그래요. 어… 그게요. 안대 때문이 아니라. 히익!”

그때, 휙 하고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서브들이었다면 이 소리를 듣고 더욱 무서움에 떨었겠지만 루는 반갑기만 했다.

재혁의 낮은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흘러들었다.

“음란한 개새끼가 어디서 주인님한테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야?”

“잘못했어요.”

“엎드려.”

루가 침대에 엎드렸다. 그가 엎드리라는 뜻은 이게 아니란 것을 알았지만 손이 묶인 상태에서 엎드리니까 자세가 잡히지 않았다. 잘못 엎드렸다고 회초리로 엉덩이가 터질 때까지 맞는 걸 기대했는데 생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엉덩이를 살짝 흔들었다.

“발정 나서 잠시도 가만히 못 있지.”

찰싹! 그제야 매가 떨어지긴 했지만 정확하겐 매가 아니라 손찌검이었다. 벌을 준다고 하기도 했고 회초리도 들어 놓고 때리질 않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때 ‘지잉’하는 소리가 들렸다. 앞이 보이지 않아 처음엔 핸드폰이 울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엉덩이에 젤이 뿌려지고 구멍 속에 이물감이 느껴져서 조금 전에 들은 소리가 진동 딜도 소리라는 걸 알았다.

“흐으… 으응…….”

“넣자마자 느끼네.”

한껏 괴롭혀져 예민해진 구멍은 딜도가 들어오자마자 빨아 당기는 것처럼 내벽을 조여 댔다. 허리가 멋대로 들썩였고 온몸이 비틀렸다. 그래도 미칠 것 같은 자극은 줄어들지 않았다. 눈물로 축축하게 젖은 안대가 더 젖어 들어갔다.

루의 등에 더운 숨이 훅 뿌려지더니 온기가 닿았다. 재혁의 것이었다. 귀가 물리고 발딱 선 젖꼭지가 뭉그러졌다. 아, 좋아… 조금만 더 비틀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찰나 잡아 뜯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으아, 아, 아파요.”

“아픈 게 아니라 좋겠지. 질질 싸고 있으면서 아프긴.”

비웃는 목소리에 젖꼭지에서 열이 슬슬 피어올랐다. 당장 뜯어질 것 같은데 뭐가 달렸는지 몰라서 불안했다. 물어본다고 대답해 주지 않겠지.

구멍 속에 있는 딜도의 진동이 한 단계 더 올라갔을 때 그가 느릿한 손길로 좆을 쥐고 흔들었다. 구멍이 콱 조여들고 당장이라도 싸 버릴 것 같은 사정감에 루는 울면서 부탁했다.

“아, 아… 안 돼요. 싸 버려요. 주, 주인님… 저, 헉…….”

“왜? 아프다며? 아픈데 왜 싸지?”

“그, 그게… 아프… 흐읏, 아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진동 딜도는 애매하게 전립선을 피해가고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뜨거운 재혁의 손길은 피할 수가 없었다. 손이 점점 빨라졌다. 뱃가죽이 바짝 땅겨지고 눈앞에 불꽃이 여러 번 터졌다. 지독한 오르가슴 제어라는 걸 알면서 루는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흐앙… 주, 주인님… 아아… 싸, 쌀 것…….”

사정 직전의 순간에 손이 떨어져 나갔다. 방해받은 루의 성기가 공중에서 껄덕였다. 팽팽하게 부풀어 핏줄까지 곤두선 성기에 사정 방지 링이 끼워졌다.

“후… 나는 너무 물러서 큰일이란 말이지. 개새끼가 싸지른다고 막아 주기까지 하고. 안 그래?”

“네, 네네… 맞아요. 막아 줘서 고맙습니다. 흑.”

훌쩍이며 대답하는 루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건 뭐, 벌을 주는 건지 봉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오른쪽으로 돌던 딜도가 방향을 바꿔 돌며 자극받지 못한 곳을 새롭게 자극하기 시작했다. 구멍이 마구 조여들기 시작했다. 사정 방지 링이 끼워진 성기가 터질 듯 꺼덕였다. 망가질까 봐 겁이 나서 안대 밑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흐… 흐으!”

매를 맞고 음탕한 개새끼라며 능욕당하는 것보다 오르가슴을 통제당하는 게 가장 참기 힘들었다. 머릿속에 안전어가 떠올랐지만 진짜 이게 참기 힘든 고통일까 생각해 보니 또 그건 아니라서 더 힘들었다.

“주, 주인님… 흑, 흐읏… 아아!”

“싸고 싶어?”

재혁의 한마디가 구원처럼 들렸다. 루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절하듯 이마를 땅에 박으며 애원했다.

“제, 제발요.”

“더 공손하게 부탁해야지.”

“…….”

뭘 바라는 걸까? 생각하다가 나오는 대로 뱉었다.

“조, 좆이 터질 것 같아요. 흐윽… 망가질까 봐 무서워요. 구, 구멍도 간지럽고요. 막… 조이고… 아아!”

최선을 다해 말했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루가 최대한 야한 말을 덧붙였다.

“더러운 구멍에 주, 주인님 좆 쑤셔 주세요. 흐윽… 흑, 자, 잘 조일게요.”

재혁은 바닥에 이마를 찧을 듯 고개를 숙이며 우는 루를 보며 소리 내지 않고 맘껏 웃었다.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맛있었다. 바지 속에서 터질 듯 발기한 좆을 저 입에 물리고 젖꼭지를 집고 있는 집게 줄을 뜯어 버리면 재밌을 것 같았다.

재혁은 루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잡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누구야?”

“네에?”

“내가 누구냐고!”

“주, 주인님이요!”

재혁이 웃느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루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말을 덧붙였다.

“어… 아니면, 팀장님?”

“그래, 나는 주인님이지. 그런데 왜 딜도처럼 대해?”

“네에? 아니, 아니에요. 딜도 아닌데요?”

“아닌데 싸고 싶다고 더러운 구멍에 박아 달라고 해? 어?”

“…자, 잘못이에요. 흐흑… 너무 괴로워서 그랬어요. 디, 딜도라서 그런 게 아니고요. 흐앙… 흑. 읍… 끕.”

루도 한계였지만 재혁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가운을 헤쳐 터질 듯 발기한 좆을 꺼내 루의 볼을 툭툭 때렸다. 그랬더니 귀엽게 입술을 열었다. 재혁은 그의 머리카락을 세게 움켜쥐며 명령했다.

“버릇이 없잖아. 누구부터 싸야 해?”

“주인님이요.”

“그래.”

조그맣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좆을 처박았다. 단번에 목구멍 끝까지 처박았더니 루가 헛구역질하면서 묶인 손목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나 봐주지 않고 더 강하고 사정없이 목구멍을 쑤셨다.

눈에 씌워진 안대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고 입가엔 타액이 질질 흘러나왔다. 불쌍하고 비참해 보이는 표정이 한없이 꼴려서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루의 턱을 꽉 쥐고 허리를 빠르게 치댔다. 입 속의 혀가 페니스에 말려들어 기둥을 문질렀다.

“딜도로 목구멍도 쑤셨어? 왜 이렇게 헐렁해.”

루의 머리채를 잡고 고개를 뒤로 잡아챘다. 캑캑거리며 신음하는 루의 얼굴을 보며 잠시 허리를 뒤로 물렸다. 페니스를 끝까지 처박고 다시 빼기를 여러 번, 루의 뺨의 눈물이 점점 마르기 시작했다.

뭐야? 느끼고 있는 건가? 야릇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점차 하얘지는 피부색을 보자 사정감이 치솟았다. 페니스를 입술까지 뺐다가 다시 깊은 곳까지 처박으며 젖꼭지를 집고 있던 줄을 거세게 잡아 뺐다. 루의 허리가 튀어 오르는 것과 동시에 재혁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졌다.

“음… 아, 크윽!”

루의 목울대가 진동하듯 아래위로 움직였다. 저 목 아래로 자신의 정액이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하자 뿌듯함이 차올랐다.

“혀 내밀어.”

사정하고 난 성기를 그의 혀에 느릿하게 문지르며 후희까지 즐긴 재혁이 입에서 성기를 빼내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펠라였다.

그런데도 재혁의 좆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크기를 부풀리고 있었다. 기가 막힌 표정으로 그것을 내려다보며 재혁은 그동안 참아 왔던 자신의 욕망이 이 남자를 만나고 오늘에서야 한 번에 터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고개를 들자 입을 활짝 벌리고 있는 루가 보였다. 정액을 삼킨 것을 검사받으려고 벌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그의 입 속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는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입 닫아.”

명령했더니 루가 입을 닫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어… 청소는.”

아……!

재혁은 회초리로 루가 아니라 자신을 치고 싶었다. 돔이 자신이 직접 내린 명령을 어기다니. 여우 새끼한테 간이 아니라 영혼을 홀랑 빼앗긴 느낌이었다. 이 일을 어쩌나 싶어 머리를 굴렸다.

“금방 혀에 문질렀잖아.”

“아아, 네!”

씩씩하게 대답한 루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웃는 걸 보니 또 울리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딜도가 박혀 있는 것치곤 지나치게 멀쩡했다. 울지도 않고 신음도 내지 않는 게……. 엉덩이 쪽을 보니 딜도가 빠져 있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재혁이 루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우리 강아지가 꼬리를 멋대로 뺐네?”

“…네?”

“구멍이 좆같아서 개발 좀 하라고 주인님이 직접 딜도까지 박아 줬는데 그걸 멋대로 싸 버리면 어떡해? 아무거나 질질 흘리고 다닐래?”

“아니, 아니… 저기…….”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라는 뜻으로 재혁이 루의 눈을 막고 있었던 안대를 풀어 주었다. 루가 고개를 돌리고 제 뒤를 보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사정 방지 링이 성기에서 빠져나올 만큼이었다. 물론 그걸 보고 있는 재혁의 성기는 언제 사정했느냐는 듯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루는 하얀색 천 같았다. 재혁이 어떻게 물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부드럽고 하얀 천……. 그래서 좋았고 동시에 부담스러웠다. 과연 김재혁이라는 인간이 한 사람을 자신의 색깔로 물들여도 되는 인간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김재혁이라는 인간이 애초에 누군가에게 질리지 않고 오래 관심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가 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재혁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돌덩이를 애써 누른 채 지금은 본능에만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플레이부터 제대로 하고 볼 일이었다.

딜도를 떨어뜨린 걸 핑계로 스팽을 더 할 수도 있었지만 재혁의 아랫도리 사정이 급해서 그럴 새가 없었다.

“후으…….”

호흡을 고른 재혁이 성기를 깊이 찔러 넣었다. 딜도로 말랑해진 내벽은 무리 없이 재혁의 것을 빨아 당겼지만 사정 방지 링이 끼워진 성기가 괴로웠는지 루는 비명을 지르며 안겨 왔다.

“흐읏, 아, 아아!”

눈물범벅이 된 루가 신음하며 자지러졌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다.

“딜도에 박혔다고 주인님 성기도 못 물어? 제대로 조여.”

재혁의 허리 짓이 점점 빨라졌다. 그에 따라 루의 신음도 켜졌다. 못 견디겠다는 듯 크게 소리를 지르며 바르작거렸다. 애달픈 신음이 재혁을 더 흥분하게 했다. 성기를 입구까지 뺐다가 단번에 끝까지 처박자 루의 허리가 휘었다.

“아아! 너, 너무 깊…….”

“앞을 막아 놔도 질질 싸는 주제에.”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아프기만 하지는 않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전립선 근처를 찔러 줄 때마다 구멍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것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재혁은 만족스러운 기분에 더 빠르게 성기를 움직였다. 앓는 듯한 소리가 끊이지 않고 새어 나왔다.

“그, 그만… 흐읏…….”

울면서 그만하라고 하는 건 재혁의 가학심만 부추길 뿐이었다. 재혁은 한 손으로 바짝 치켜올려진 루의 엉덩이를 때려 가며 잘게 허리를 흔들었다. 엉덩이를 때릴 때마다 바짝 조여드는 구멍이 쾌감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루가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으으… 아, 안 돼……. 터져요. 마, 망가져어…….”

루는 재혁의 등에 매달린 채 바들바들 떨었다. 아랫배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사정감이 차오르는데 막힌 성기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망가져도 되잖아. 쓸 일도 없는 좆 따위는…….”

“아, 안 돼. 제, 제발요, 주인님.”

지금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데 재혁이 위에서 찍어 누르듯 세게 처박으며 성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방지 링이 끼워진 상태라 팽팽하게 부풀기만 한 성기가 아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흐아앙… 빼, 빼 주세요. 제발……. 저, 저, 싸고 싶어요. 흐윽…….”

“뭘 싸고 싶은지 말해야지. 몰라? 제대로 부탁해.”

“조, 좆물이요. 제발… 흐윽.”

재혁은 허리를 더 빠르게 치대다가 루의 몸 깊숙한 곳에 성기를 처박았다. 배꼽까지 올라온 성기에 루가 신음조차 하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떠는 순간 방지 링을 빼 주었다.

오래 참은 성기에서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극도의 쾌감에 초점이 흐려지고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재혁은 사정했음에도 루가 느끼는 동안 충실하게 내벽을 비벼 주었다. 자신의 몸을 내리누르는 압박감과 안을 가득 채우는 따뜻한 느낌에 루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루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욕조 안이었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거품에는 좋은 냄새가 났고 온도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딱 좋았다. 재혁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신기하게 불안하지 않았다. 재혁이 물을 받아 자신을 여기에 빠뜨리고 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었다.

물속에서 루는 어린 시절 보육원을 탈출해 부잣집으로 입양되었을 때 처음으로 했던 거품 목욕을 떠올렸다. 난생처음으로 경험했던 보글보글 올라오는 욕조는 루에겐 천국 그 자체였고 방을 혼자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렜다.

자신을 돌봐 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에 하루하루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자 더 우울해졌다. 그때 엄마였던 사람이 다정해서 좋았는데…….

사람의 친절은 상황과 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임을 루는 두 번의 입양과 파양을 통해서 뼈에 새겼다.

‘착각하면 안 돼. 조심하자.’

좋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추락했다. 루가 눈물을 훔치며 작동 중인 거품기의 버튼을 껐을 때 욕실 문이 열리고 재혁이 들어왔다.

“왜 껐어요?”

“씻고 가려고 했어요.”

재혁의 얼굴이 화난 듯 일그러졌다. 플레이가 끝나면 명령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루틴을 어기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켜고 다시 앉으세요.”

“왜요?”

눈도 마주치지 못하면서 되묻기는. 짜증이 확 치솟았지만 억지로 누르고 말을 이었다.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이유가 필요합니까?”

“아뇨.”

루가 버튼을 다시 누르고 욕조에 앉았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거품이 꼭 복잡하게 얽힌 자신의 머릿속 같았다.

재혁이 가운을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이 들어가도 충분히 넓은 크기인데도 불구하고 루는 몸을 잔뜩 움츠렸다.

“편하게 앉아요.”

“편해요.”

“불편해 보이는데?”

“…….”

재혁은 갑자기 우울해 보이는 루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심사가 비틀렸다. 직전의 플레이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데다가 웃으며 안겨 오던 남자가 갑자기 우울한 표정으로 가겠다고 하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혹시 플레이가 마음에 안 들었나? 시발… 너도 다른 애들이랑 똑같아? 결국 감당 못 하는 거?

그러나 그럴 만한 플레이가 아니었다. 스팽을 세게 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게 싫다고 해서 그 비슷한 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지만 감정을 있는 대로 내보이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반대로 물었다.

“루 씨, 플레이가 많이 약했습니까? 그래서 만족이 안 돼요?”

“네?”

“플레이가 약해서 못마땅하냐고 물었습니다.”

루는 고개를 기울인 채 눈을 깜빡였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여지다가 사정하고 나서는 죽어도 좋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약했을 리가 없었다. 이보다 강한 플레이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루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니요, 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표정이 그따윕니까?”

“제 표정이 뭐가 어때서요…….”

방금까지 회사에서처럼 대답하던 루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입술을 삐죽이자 재혁의 가슴에 만족감이 차올랐다. 재혁은 여유롭게 등을 기대며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루의 몸을 시선으로 훑었다. 몸 여기저기 자신이 남겨 놓은 붉은 상흔들이 하얀 피부와 잘 어울렸다.

“플레이가 마음에 들었는데 왜 도망갈 생각만 합니까?”

묻고 싶은 걸 물었다.

“너무 잘해 주셔서요.”

의외의 대답이어서 의문이 해소되긴커녕 궁금한 것이 더 쌓이기만 했다. 무서우면 곁에 있고 잘해 주면 도망가는 게……. 아, 이게 진짜 서브미시브라서 그런가? 이제까지의 섭들은 다 변태 바닐라고? 이 남자 뭐야? 대체…….

“평소에도 무섭게 대하고 지배하고 폭언을 퍼부어야 옆에 있고 싶어진단 말이군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던 루가 고개를 들고 재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급했는지 몸을 움직이느라 물속에서 두 사람의 몸이 엉켜들었다. 동요하는 모습이 좋아서 재혁은 그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반대편에서 다리로 그의 몸을 잘 받쳐 주었다.

“아니에요! 그건 플레이할 때만 해야죠. 평소에도 그러면 못 견딜 수도 있어요.”

“그러면 잘해 주는 게 뭐가 문젭니까? 방금 잘해 줘서 도망가고 싶다고 했으면서.”

“그게…….”

입술이 달싹거리는 거로 봐선 뭐라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 정리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워낙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재혁은 조금 기다려 주기로 했다.

물속에서 닿은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재혁은 손을 내려 그의 허벅지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루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잘해 주시면 착각할까 봐요. 연애 디엣 아닌데 연애한다고 착각해서 질릴까 봐. 저는 그러니까… 저는.”

“…….”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루는 격양된 감정을 다스리느라 숨을 길게 내쉬고 들이마셨다. 플레이가 처음이라고 했으니 이전의 플레이 경험 때문은 아닐 것이다. 도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상처받기 싫어서 벽부터 치게 되었을까. 위험한 호기심이 재혁의 가슴속에서 부피를 키워 나갔다.

“팀장님이 그러셨잖아요. 파트너의 역할만 해 주시겠다고. 저는 혼자 오래 지내서 그걸로도 충분해요. 그런데요. 자꾸 이렇게 잘해 주시면 저는 착각해요. 그러다가 버릇이 없어지고 팀장님이 저한테 질려서 파트너 그만하자고 하면 어떡해요? 저는 팀장님처럼 상대를 쉽게 구할 수도 없고 겁도 많아서 또 혼자 외롭게 지내야 하는데요.”

“…….”

첫 플레이가 끝나고 수많은 유형의 서브미시브를 만나 보았다. 재혁의 플레이에 경악하고 도망가는 유형이 가장 많았고 재혁에게 매달리며 연애하자고 달라붙는 유형이 그다음으로 많았다.

그러나 루처럼 잘해 주면 자신이 착각할까 봐 무서워서 도망가겠다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루가 ‘외롭게 지내야 하는데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자신의 말처럼 느껴졌다. 완벽히 다른 성벽의 두 사람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는데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늘 잔잔해서 권태로웠던 그의 가슴이 조용히 울렁이기 시작했다. 낯선 감정에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갈무리되지 않는 마음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러니까요, 팀장님. 저 자꾸 헷갈리게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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