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13)

2. 컨트롤 미 (1)

이미 한번 와 본 곳이었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자 초인종을 누르는 손이 덜덜 떨렸다.

“조금 늦었네요?”

문이 열리자마자 멱살부터 잡힐 거라고 생각하며 떤 것이 무색하게도 재혁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범했다. 루는 정중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재혁을 보며 잠시 움찔했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차가 조금 막혔어요.”

사실은 재혁이 오일을 핥기라도 하면 몸에 해로울까 봐 다시 씻느라 늦은 거지만 그런 쓸데없고 수치스러운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뭐, 좋습니다.”

재혁은 여유로운 태도로 루를 거실로 안내했다. 저번에 앉았던 소파에 앉자 그가 마실 것을 내왔다. 밤에 왔을 땐 따뜻한 코코아였는데 이번엔 시원한 주스였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음에도 내주는 음료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배려가 세심했다.

‘이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다정한 사람일까.’

루가 그를 보며 이런 의심을 한 것은 책이나 인터넷에서 배운 도미넌트에 대한 정보와 재혁은 같은 듯하면서 달랐기 때문이었다.

분위기나 말투와 플레이에 대한 것은 완전한 도미넌트가 맞는 것 같은데 평소 자신에게 보이는 모습이 지나칠 정도로 다정해서 신기했다. 성향과 성격은 다르다고 했으니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지만 재혁의 다정함에 깊어지는 마음이 문제였다.

“벗으세요.”

“…네.”

시작인 건가? 이렇게 아무 말 없이 급작스럽게?

여기에 오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루는 갑자기 시작된 플레이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 담담히 자리에서 일어나 카디건을 벗고 셔츠의 단추를 풀려고 했다. 그 순간 재혁이 그의 팔목을 당겼다.

“뭐 합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눈으로 재혁을 바라보자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 잘 듣는 사람이 취향이긴 한데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데 플레이를 그냥 시작하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그, 그러면…….”

“얼굴이 빨개서 겉옷 벗으라고 한 겁니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말투였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수치스러웠다. 잘해 보려는 마음에 한 행동이라지만 눈을 마주칠 수조차 없었다.

재혁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루의 팔을 당겨 소파에 앉히고는 일부러 맞은편에 앉아 느른히 몸을 기대었다.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자세를 유지하던 루의 시선이 들어 올려졌다. 눈이 마주치자 다시 시선을 피했다.

“저는…….”

“루 씨… 지금이라도 그냥 가는 게 어떻습니까? 나는 루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못 됩니다. 내가 감당하기에 당신은 너무 순수한데?”

어깨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던 루의 시선이 급하게 재혁의 눈으로 돌아왔다. 커다란 눈이 일렁였다.

“안 순수해요. 아까 그건 욕심나서 그런 거예요. 명령을 잘 따라야 파트너를 해 주실 것 같아서요.”

턱이 잡혀서 고개를 드니 뚫어지라 보고 있는 재혁의 눈이 보였다. 담담해 보이기만 하던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감정이 드러난 표정에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루는 방금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곱씹어 보며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부분이 없는 것 같았다. 차마 그와 눈을 마주치진 못하고 몇 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을 보탰다.

“저… 그…그냥 파트너 해 주시면 안 돼요? 안 좋아해 주셔도 되고 그냥 플레이만… 귀찮게 안 할 건데.”

“루 씨, 돔한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알고서 하는 말입니까?”

“…….”

루는 시선을 떨군 채 고개를 끄덕였다. 턱을 쥔 재혁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귀에 재혁의 목소리가 파고들어 긴장된 몸이 바짝 움츠러들었다.

“착하게 굴려고 했더니…….”

눈앞의 것을 찢어 버릴 것만 같은 시선에 목구멍이 조여들었다.

“타고나길 더럽게 글러 먹어서 말이지.”

바로 그 부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말하면 미친 새끼라고 욕하며 때려 줄 거냐고 묻고 싶은 게 지금 루가 느끼는 심정이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미친놈 같았다.

숨도 쉬지 못한 채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재혁이 한숨을 푹 쉬더니 잡은 턱을 놓았다. 그러고는 한층 정돈된 음성으로 말했다.

“함께하는 동안 다른 상대를 만나는 건 안 됩니다. 그리고 그건 저도 마찬가집니다. 루 씨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말에 루는 너무 좋아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말이었다. 그저 그런 플레이 상대라도 감지덕지한 판국에 다른 상대를 만나지 않는다니. 역시 사람을 보는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나 내가 루 씨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파트너의 역할뿐입니다. 그 이상을 내게 강요하거나 바라지 마세요. 애초에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대부분의 도미넌트가 그렇진 않겠지만 성향이 강한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도 있다고 했다. 플레이는 되지만 일반 관계는 맺지 못하는. 극도로 사회성이 모자란 사람들.

그러나 재혁이 그런 사람이라는 건 믿기 어려웠다. 왜냐면 외주 컨설팅을 주로 하는 재혁의 직업도 그렇고 회사에서 본 그의 모습은 자신보다 훨씬 사회성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혹시 피상적인 관계 말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뜻인가? 그게 아니면…….

루는 호기심을 참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연애를 못 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저라서 싫으신 거예요?”

초롱초롱한 눈이 반짝이는 걸 본 재혁은 입꼬리에 잔뜩 힘을 줬다. 도미넌트 체면이 있지 서브가 되기 직전인 사람 앞에서 채신머리없이 웃을 수 없었다. 미치게 귀여워서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기적인 사람이라 연애를 못 합니다. 그럴 시간이 없기도 하고…….”

재혁의 대답에 루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번졌다. 저렇게 속내를 못 숨겨서야 이 팍팍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들뜬 목소리가 재혁의 귀를 간지럽혔다.

“그러면 좋아요!”

“하… 아니면 거부라도 하려고 했습니까?”

짓궂은 질문에 금세 시무룩해지는 표정이란…….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제가 싫으신 건 아니라는 거니까 다행이라는 뜻인데…….”

“뭐, 좋습니다.”

비웃거나 놀린 것도 아닌데 루의 얼굴이 더 빨갛게 물들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집요하게 노려보는 것도 모른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는 게 귀여웠다.

“오늘은 가볍게 시작해 볼 생각입니다. 안전어가 필요 없을 정도인데 미리 정할까요?”

“…괜찮아요.”

“원하는 거 있습니까?”

두루뭉술한 질문이었다. 루가 알기로 플레이의 종류만 해도 엄청난데 그중에서 무얼 묻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계속 대답을 질질 끌 수도 없어서 루는 대충 대답했다.

“맞고 싶어요.”

대답이 싫진 않았는지 재혁이 싱긋 웃었다.

“뭐로?”

“케인이나 패들…….”

“그거로 맞고 싶어요? 어딜 맞고 싶은데?”

“아무 데나… 원하시는 곳이요.”

“응? 좆이나 구멍을 때려도 맞겠다는 뜻입니까?”

“아니! 거긴 손으로…….”

사실 재혁은 공포심에 떨게 하거나 수치를 주는 플레이를 선호하는 편이라 지나친 폭력이나 피를 보거나 더러운 플레이는 지양하는 스타일이었다. 앞서 한 질문은 루의 반응이 궁금해서 그냥 던져 본 것이었다. 예상대로 벌벌 떠는 게 미치게 꼴렸다. 손으로 해 달라니… 건방지기도 하지.

수줍음이 많고 소심하면서 과감하고 솔직한 태도에 그를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입맛에 맞게 조련해 보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확실히 루는 아직 정제되지 않은 원석이었다.

“거긴 손으로 만져야 해? 왜?”

루의 입술이 뻐끔거렸다. 실수했나 계산하는 듯 머리를 굴리다 어렵게 뱉은 말이 가관이었다.

“마, 망가지면 또 못 하니깐요…….”

결국 재혁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서브가 될 사람과 함께 플레이를 논하는데 돔이 웃다니. 돔의 수치였다. 이런 적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었다. 너는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이길래 내 감정을 이렇게나 동요시키는 거냐며 따져 묻고 싶었다.

웃고 있는 재혁의 얼굴을 루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따라 웃었다. 웃어도 좋다고 허락한 적이 없는데 루가 웃는 게 거슬려서, 아니 사실은 그게 너무 귀여워서 인상을 팍 쓰자 루의 얼굴에서 곧바로 웃음기가 가셨다.

재혁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섹스는?”

“저… 처음이에요.”

또 배 속이 출렁였다. 하는 말마다 돔의 욕구를 자극한다. 질문의 요지는 플레이만 즐기고 싶은지 아니면 삽입까지 하고 싶은지를 묻는 말이었다. 그가 처음이라는 것은 앞서 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는데도 왜 이렇게나 루의 대답이 혀에 감겨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처음에 의미를 두는 편도 아니면서…….

“그래서요?”

“네?”

“루 씨가 처음인 것과 우리가 플레이 중에 섹스하는 게 무슨 상관인데? 내가 무조건 맞춰야 한단 말입니까?”

위협하듯 으르렁거리는 질문에 루의 어깨가 벌벌 떨렸다.

“아니에요. 진짜 아닌데……. 그런 뜻이 아니라… 제가 잘 못할 수도 있지만 하면 하겠다는 뜻이었어요. 저 진짜 아무거나 다 해도 돼요. 가르쳐 주시면 할 건데…….”

그가 야단친 것도 아닌데 말을 하면 할수록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루가 내쉬는 한숨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를 바라보는 재혁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내가 무엇을 할 줄 알고 다 괜찮다는 겁니까?”

“더러운 건…….”

“싫어?”

“정액은 안 더러…….”

뭐든 하겠다고 해 놓고 질문을 던지자 야무지게 자기가 하기 싫은 걸 말하는 태도도 딱 마음에 들었다.

정액은 안 더럽다니……. 이 사람아, 그것도 더러운 거야 원래.

내려오지 않는 광대를 억지로 내린 재혁이 흥미진진한 인터뷰를 계속 이어 갔다.

“넣는 건 어디까지 됩니까?”

루는 재혁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비틀었다. 재혁은 이를 사리물며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원래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하면 화가 나야 정상이었다. 버릇없이 주인님 질문에 대답을 바로바로 하지 않는다고 혼내야 하는데 웃음이 나오는 게 신기했지만 지금은 플레이 중이 아니니까 그러려니 했다. 이것은 그저 취향인 남자가 바로 눈앞에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구멍에 뭘 넣어도 되냐고 물은 겁니다.”

“음… 디, 딜도랑 에그랑 소…손가락이랑…….”

“그것만 넣어 주면 돼?”

재혁이 되바라진 표정으로 웃었다. 그제야 루는 재혁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루는 그에게 왜 놀리냐고 따질 수 없어서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섹스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좆도 박아 주길 원하면 해 줄 겁니다. 그러면 루 씨는 뭘 해 줄 건데?”

“네?”

루가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것 같은 얼굴로 재혁을 바라보았다. 플레이는 시작도 안 했는데 울 것 같은 표정이라니……. 재혁은 이 정도로 파악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더 구체적인 것은 본격적인 플레이를 진행하면서 알아 가면 될 일이었다.

“좋습니다. 해 보면서 알아 가도 좋겠지.”

“…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재혁은 무언갈 바라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루는 재혁이 명령이라도 해 주면 좋을 텐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벗어.”

갑자기 던져진 짧은 명령에 루가 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싸늘한 음성이 한 번 더 날아왔다.

“당장.”

허둥지둥 셔츠 단추를 푸는데 손끝이 덜덜 떨렸다. 빨리 벗으라고 했으니까 망설이면 안 되는데 손가락이 떨려서 자꾸만 엇나갔다. 느리게 단추를 풀고 셔츠를 벗어 내렸다. 루가 느리게라도 행동을 시작하자 재혁은 더 재촉하지 않고 그런 그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모든 옷이 다 벗겨졌다. 속옷만 남았을 때 루는 행동을 잠시 멈추고 재혁을 바라보았다. 대화를 나눌 때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시선에 몸이 꽁꽁 얼 것만 같았다. 팬티도 벗는 게 맞냐고 물어보려던 마음을 저 멀리 던져 버리고 팬티를 끌어 내리는 순간 재혁이 그의 팔을 당겼다.

“흐윽!”

팔이 빠질 것 같은 강한 힘이었다. 그의 손이 마른 피부에 닿자 늘어져 있던 성기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자신도 당황스러웠다.

“시작도 안 했는데 세우네?”

“죄…죄송해요.”

경험 없는 서브일 경우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플레이를 시작하면 놀라서 당황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성적으로 자극된다기보단 무서워서 떨어야 정상인데 얘는 어떻게 된 게 벌써 세우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타고난 게 분명했고 타고났으나 길들지 않은 원석이라는 생각에 입맛이 돌아 미칠 것 같았다.

루를 놓아준 재혁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 되겠습니다. 안전어 미리 정합시다. 나도 오랜만이라 수위를 조절해 줄 자신이 없거든.”

루가 발기한 성기를 두 손으로 얌전히 가린 채 눈동자를 굴렸다. 그 모습을 보자 재혁의 성감이 확 치솟았다. 철저하게 짓밟아 울리고 싶었고 저 입술에서 나오는 고통과 쾌감이 섞인 신음을 들으며 싸고 싶었다. 재혁이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내가 들었을 때 확 식어 버리는 말이면 좋겠는데.”

“미, 미워하고 증오해요. 어떨까요?”

루는 자신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한 것일 테지만 재혁에겐 들으면 더 흥분될 것 같은 말이었다. 미워한다는 말에 재혁이 식는다고 생각한 루의 머릿속이 발칙해서 더 짓누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도미넌트에겐 안전어로서 실격이었지만 루가 그 말을 안전어로 정하길 원한다면 재혁은 본능을 억누를 수 있었다.

“미워해요. 혹은 증오해요. 너무 힘들면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좋네요.”

루가 입술을 깨물었다. 플레이 중에 갑자기 안전어를 정하라고 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건 이해하지만 루와 같은 타입은 시간을 주면 줄수록 혼자 생각하느라 실행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빠르게 몰아쳐야 했다.

“엎드려.”

“…….”

“같은 말 두 번 하게 할래? 개처럼 엎드리라고.”

“네.”

잔뜩 굳어 있던 루가 한숨을 내쉬며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재혁의 시선이 둥글게 접힌 루의 등에 꽂혔다. 마른 몸을 좋아하긴 했지만 뼈가 튀어나올 정도의 몸을 선호하는 건 아니었다. 눈부시게 하얀 피부는 무슨 짓을 하든 자국이 잘 남을 것 같아서 취향이었으나 역시 살은 좀 찌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 남자는 다른 덴 살이 없으면서 엉덩이에만 살이 다 가 있는 걸까? 엎드리느라 봉긋하게 솟아오른 통통한 엉덩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자꾸만 입 속에 침이 고였다.

재혁은 자신의 발아래 엎드린 루의 허벅지를 발가락으로 무심하게 쓸었다. 다시 서는 성기를 감추려는 듯 루의 허벅지가 비벼졌다.

“해 봐.”

바닥에서 손을 떼고 꿇어앉은 자세로 바꾼 루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무구한 얼굴로 재혁을 바라보았다.

“하나하나 다 가르쳐야 해? 무슨 말인지 몰라?”

“…네?”

“좆 꺼내서 빨라고.”

“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첫 플레이 시에 옷을 벗고 무릎을 꿇은 채 펠라를 하는 건 거의 정해진 루틴이었다. 이거 하나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서브는 처음이었다. 제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루가 아니라 다른 섭이었다면 바로 나가라고 했을 것이다.

물론 루는 플레이가 처음이니 일반적인 루틴을 모르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글쎄? 정말 몰랐을까? 루는 루틴을 모르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성향을 일찍 깨닫고 공부까지 했다면 알고 있었을 텐데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돔의 역할이 중요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 처음이어서 할 배려는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 방어기제를 생각할 수 없게끔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섭의 욕망은 괴롭힘당하고 싶은 것이지 이해받고 배려받고 싶은 게 아닐 테니까.

재혁은 루의 짧은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머리칼이 다 뽑혀 나갈 것 같은 아픔에 루가 고개를 젖히고 비명을 질렀다.

“아악!”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뭐든 할 수 있다는 게 고작 이만큼이야? 좆 빠는 거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 앞으로 뭘 시키지? 말 안 듣는 개 따위는 필요 없는데?”

재혁은 코가 맞닿을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붙인 채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깊고 까만 눈동자가 눈앞의 것을 당장이라도 찢어발길 것처럼 타올랐다.

루는 뜨거운 눈길과 자신의 머리를 당기는 힘에 고통과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자신을 비난하고 필요 없다고 내팽개치는 발언에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배 속이 요동치며 흥분감이 일었다.

누군가가 명령하고 그 명령을 따르기만 하는 일… 모든 복잡한 것에서 벗어나 갈등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일 앞에서 루는 바짝 엎드리기로 했다.

“네… 주인님.”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그의 허리띠를 풀고 지퍼를 내렸다. 이미 불룩해진 앞섶이 드러나자 침이 고였다. 검은 브리프를 끌어 내리기 위해 밴드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재혁은 어디 개새끼 주제에 주인을 똑바로 노려보냐고 혼내려고 하다가 순종적인 눈빛이 좋아서 이번 한 번만 엉덩이를 들어 주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강도가 너무 약한 건 아닌지, 왜 이렇게 돔의 마음이 흔들리는지 고민했지만 루처럼 소심한 사람은 서서히 강도를 높여 나가는 게 좋겠다고 물러지는 마음을 합리화했다.

재혁이 엉덩이를 들자 낑낑대며 브리프를 내린 루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그거 하나 해 놓고 한숨을 내쉬는 꼴이 우스웠다.

루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작은 손을 조심스레 들어 올려 반쯤 발기된 성기를 잡았다. 한 손으로 잡히지 않는 걸 양손으로 모아 쥐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진한 냄새가 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의 성기에선 보디 샴푸의 냄새가 났다. 평소 깔끔한 이미지와 잘 맞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져서 혓바닥을 내밀어 선단을 할짝거렸다.

매끈한 귀두가 혀에 문질러지는 느낌은 딜도를 핥았을 때보다 좋았다. 온기가 없는 딜도보다야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성기가 좋은 게 당연했다. 다시 혀를 내밀어 기둥 쪽을 핥으려는데 재혁의 힐난이 들려왔다.

“더럽게 못 빠네.”

“…….”

당장이라도 뺨을 한 대 칠 것처럼 흉흉한 얼굴이었다. 눈을 질끈 감자 억센 손이 턱을 움켜쥐었다.

“밤새도록 좆을 물고 있고 싶지 않으면 입 벌려.”

루의 입꼬리가 찢어질 정도로 턱이 벌어졌다. 재혁이 손을 집어넣어 입 안을 헤집고는 혀를 잡아 뺐다.

“이 닿으면 다 뽑아 버리는 수가 있어. 혀로 문지르는 거야.”

딜도로 연습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에 당황한 것도 잠시,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끝까지 내밀자 턱으로 타액이 질질 새어 나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재혁의 눈에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형편없어 보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재혁은 끝까지 내민 혀에 귀두를 살살 비비기 시작했다. 새어 나오기 시작한 쿠퍼액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찰싹.

갑작스레 그의 손이 등을 치고 지나가자 감고 있던 루의 눈이 번쩍 떠졌다. 소리만 컸지 고통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에 소름이 돋고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아… 너무 좋아.’

“누가 눈 감으래? 눈 뜨고 봐야 할 거 아냐.”

“자, 잘못했어요.”

루는 보란 듯 눈을 뜬 채로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끝까지 내밀었다. 그 속으로 재혁의 성기가 훅 밀어 들어왔다.

“흐읍!”

입술이 한계까지 벌어졌다. 불기둥에 목구멍이 찔리는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끝까지 처박힌 것이 목구멍을 막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머리를 뒤로 빼거나 그의 허벅지를 밀어 버리고 싶었지만 이것 또한 테스트라는 걸 알기에 루는 주먹을 꼭 쥐고 목에 들어찬 그의 성기를 감당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쯤에 어떻게 알고 그의 성기가 빠져나갔다.

입에서 침이 한가득 흘러내렸다. 빠져나간 성기가 느릿하게 혀와 점막을 문질러 댔다. 입에서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리면 재혁은 그 틈을 무자비하게 헤집고 들어왔다.

“흐읍… 웁… 욱!”

산소가 부족해 머리가 돌 것 같았다. 숨 가쁘게 신음하며 시야가 하얗게 변하는 동안에도 허벅지 사이가 단단해졌다.

‘아… 좀 더…….’

목구멍으로 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혹시나 하고 딜도로 목구멍을 찔러 본 적이 있지만 헛구역질만 나올 뿐 이렇게 뜨겁고 숨 막히고 흥분되진 않았다. 정말 미치도록 자극적이었다.

그가 목구멍을 찔렀을 때부터 촉촉해지기 시작한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좆을 빨라고 했지만 빠는 게 아니라 입을 대 주고 있는 형국이었다. 커다란 손이 루의 뒷머리를 힘주어 눌렀다.

“목구멍 더 조여. 혀는 장식이야?”

루도 시키는 대로 하고 싶었지만 루가 움직이는 속도보다 그가 허리를 움직이는 속도가 더 빨라서 성기를 빨려고 해도 빨 수가 없었다. 입 안 가득 들어찬 성기의 크기가 너무 커서 루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입을 벌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성기가 쑤실 때마다 목구멍이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턱이 얼얼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허벅지를 적셨지만 처음 명령대로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루의 성기가 바짝 솟아올라 있었다. 재혁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비웃었다.

“지금 내 좆 빨면서 느껴?”

“웁… 우욱.”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에 콱 박혀 있는 좆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정말 아닐까? 그의 것이 목구멍 깊숙이 박힐 때마다 좆이 서고 구멍이 움찔거리는 건 사실이었다.

“목구멍으로 느끼는 사람은 처음 보는데?”

재혁은 마치 시험하듯 루의 목구멍 깊숙한 곳을 툭 건드리듯 쑤셨다. 숨이 막혀 괴로울 텐데도 신음에 콧소리가 섞였다.

“시발…….”

루의 반응에 터져 버린 건 재혁이었다. 허리를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머리채를 휘어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더니 성기가 목구멍 깊숙하게 처박혔다.

“후으… 쌀 테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삼켜.”

여태 멀쩡하게 들리던 재혁의 목소리가 한껏 흐트러졌다. 입 안 가득 쓴맛이 들어차면서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흘러들었다.

숨을 헐떡이며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정액을 삼키고 있는데 끝에 남아 있는 정액을 문지르듯 성기가 입 속에서 빙빙 돌았다. 입을 다물려고 했는데 갑자기 빠져나간 성기에 루는 저도 모르게 기침을 해 버리고 말았다.

“켁, 켁켁.”

그 덕에 입가로 정액이 흘러내렸다. 제 행동에 깜짝 놀란 루의 머리칼을 다시 부여잡은 재혁의 날카로운 시선이 바들바들 떠는 그의 눈에 닿았다.

“다 삼키라고 했지.”

“켁, 자, 잘못…….”

사정했음에도 전혀 줄어들지 않은 성기가 루의 얼굴을 엉망으로 짓눌렀다.

“닦아. 청소해.”

“…….”

성기에 입을 대려고 하자 다시 손바닥이 뺨을 치고 지나갔다.

“대답.”

“네, 주인님.”

루는 재혁의 성기를 정성껏 물고 핥았다. 선단에서부터 기둥까지 최선을 다해서 핥았는데도 멈추라는 말이 없었다.

“언제까지 거기만 핥고 있을 거야? 아래는?”

그제야 루의 눈에 정액이 흐른 고환이 보였다. 고개를 숙여 아래까지 샅샅이 핥고 나서야 머리 위에서 재혁의 느른한 숨이 새어 나왔다.

재혁은 자신의 성기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루의 턱을 들어 올렸다.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얗던 루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었다.

붉게 물든 얼굴이 정액과 타액으로 범벅되어 있었고 아직도 숨이 막히는 듯 입도 다물지 못한 채 침을 흘리고 있었다. 컬까지 넣어 멋 부린 머리칼은 제 손에 잡혀 산발로 헝클어져 있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다면야 추한 모습이었지만 재혁의 눈에는 그 어떤 모습보다 야하게 보일 뿐이었다. 재혁은 마치 상을 주듯 루의 입술을 느른하게 문질렀다.

“상을 줄 때가 아닌데…….”

루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손가락으로 문지르던 입술에 부드럽고 말캉한 재혁의 입술이 닿자 루는 어깨를 떨며 눈물을 흘렸다. 혀도 집어넣지 않은 키스일 뿐인데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좋았다. 뜨거운 펠라 후에 보상하듯 던져지는 키스란 달콤하구나.

게다가 루에게는 지금 이 키스가 첫 키스이기도 했다. 모든 게 처음인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다 들어줄 수 있는 재혁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입술을 숨 쉬듯 빨아들였다.

그러나 달콤한 보상의 시간은 짧았다.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 다시 차가운 시선이 얼굴에 닿았다.

“소파에 앉아.”

루가 양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섰다. 다리가 저리는지 잠시 휘청했지만 재혁은 잡아 주지 않았다. 보상은 잘했을 때만 이뤄져야 하는 것이었다. 말로는 보상할 때가 아니라고 했지만 방금 재혁이 해 준 키스는 처음 펠라치고 힘든 딥쓰롯을 해낸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저린 다리를 이끌고 소파에 앉은 루에게 곧바로 비난이 떨어졌다.

“아예 다리를 부러뜨려 줘? 걷는 것도 제대로 못 하는 개새끼는 필요 없는데.”

“잘못했어요. 제대로 걸을 수 있어요.”

잠시 루를 노려보던 재혁이 곧바로 다음 명령을 이었다.

“다리 벌려.”

루는 앉은 채로 정직하게 다리만 벌렸다. 재혁의 얼굴이 점점 굳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루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재혁은 끓어오르는 가학심에 풀어 놓은 벨트를 말아 쥐고 휘둘렀다. ‘휙!’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벨트가 허공을 갈랐다.

자신을 때린 것도 아닌데 피부에 닿은 것처럼 오싹한 느낌에 루는 ‘히익!’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똑바로 못 하지. 지금 장난해?”

루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빌었다.

“그, 그게 아니라… 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양팔에다 다리 하나씩 올려서 벌리라고. 구멍 잘 보이게. 그래야 박아 주든 찢어 주든 할 거 아니야.”

“아… 네, 네.”

다급하게 대답한 루는 손을 내려 허벅지를 감았다. 그러나 쉽게 벌어지진 않았다. 그곳을 이런 식으로 재혁에게 처음 보여 준다는 생각에 뒤늦은 수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리를 벌리면 발기한 성기도 더 자세히 보일 텐데…….

분명 자신이 바라는 일이고 매일 밤 꿈꾸던 일이었는데 막상 하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휙!’ 다시 벨트 소리가 나자 루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다리를 잡았다.

“벌려. 다 보이게.”

“주, 주인님…….”

시발.

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오십 대는 때리고 남을 시간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의 얼굴에 동하면서도 마음이 약해졌다.

돔이 흥분했으면 때리고 싶은 게 정상이지 마음이 약해지는 게 정상인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울 것 같은 그에게 다가가 첫 플레이는 바닐라로 하는 게 어떠냐고 말하며 토닥이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는 걸 이를 꽉 깨물고 참았다.

재혁은 약해 빠진 생각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못 하겠습니까?”

한껏 낮아진 목소리와 존댓말로 바뀐 말투에 루가 놀란 표정으로 재혁을 바라보았다.

“이래서 처음은 싫다는 겁니다. 내가 봐줘야 할 것들이 많거든요. 자세 하나 제대로 못 잡는 섭을 데리고 플레이는 무슨…….”

머리를 쓸어 올리는 재혁은 진짜로 상처받은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루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나쁜 놈이 된 것만 같았다. 이 집에 들어와서 한껏 괴롭힘을 당하고 성기를 빨고 좆물을 마신 건 다름 아닌 자신인데 왜 자기가 죄를 지은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눈앞의 재혁이 자신을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주인님… 아니에요. 저 할게요. 구멍 봐 주세요. 할 수 있어요.”

루는 입술을 깨물고 허벅지를 한껏 벌렸다. 얼마나 벌렸는지 허벅지 안쪽 근육이 팽팽하게 땅겨질 정도였다. 벌려지면서 매끈한 성기가 튀어 오르고 연한 붉은빛의 구멍이 드러났다.

시발, 좆도 어떻게… 구멍은 또 왜…….

순수한 감탄을 해 주고 싶은 걸 억지로 눌러 참았다. 돔에게 허락된 건 찬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짓밟고 모욕하는 것뿐이었다. 그게 섭이 바라는 행동이기도 하고.

재혁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노골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젤을 공중에서부터 쭉 짰다. 차가운 젤이 배에서부터 성기까지 엉망으로 뿌려졌다.

허리를 비트는 루의 모습을 보며 비웃은 재혁이 손으로 젤을 훔치듯 묻혀 항문에서부터 고환까지 죽 그었다.

젤이 예민한 구멍에 발라지는 동안 루는 숨을 멈춘 채 아랫배만 들썩이고 있었다. 그의 손길은 사람을 만지는 게 아니라 물건을 고르는 그것처럼 무심했다. 주름 주위를 문지르던 손가락이 예고도 없이 구멍 속에 한 마디쯤 푹 들어와 쿡쿡 찔렀다. 허벅지를 잡고 있던 루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아, 으으…….”

“벌써 이렇게 질질 싸 대네. 얼마나 쑤셔 댔으면.”

“아, 아니… 저 처음이에요.”

“들어간 게 내 손가락이 처음이라고? 그럴 리가.”

아니었는지 루가 입술을 오므렸다.

“어쩐지 젤을 먹였는데 다 처먹지도 못하고 질질 흘리는 게 야하다 했어. 매일 쑤시면서 간 거 아니야?”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얼마나 쑤셨으면 이렇게 헐거워.”

“저… 흐읏! 소, 손가락이랑 딜도 조그만 거… 아아!”

재혁의 손가락이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갔다. 헐겁기는커녕 사방에서 손가락을 끊어 먹을 것처럼 조여드는 구멍은 따로 왁싱을 하는지 털도 없이 매끈했다. 이 정도면 구멍에 자기 좆을 박아 넣고 흔드는 것만 해도 충분히 고통을 참는 플레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남자를 모르는 구멍이 한계까지 벌어지면서 수치를 감당해 내는 서브를 보고 마음껏 조롱하는 재미를 그냥 넘길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재혁은 젤로 질척질척해진 구멍에 손가락을 끝까지 집어넣었다.

“아, 아아! 아파… 아파요.”

“아픈 척 안 해도 귀여워해 준다니까 왜 아픈 척하고 그래.”

말로는 루가 마치 닳고 닳아서 처음을 연기하는 것처럼 모함해 놓고 재혁은 다른 손으로 그의 앞을 만져 주었다. 동시에 안에 박힌 손가락을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질척이는 소리가 음란하게 들려 루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다른 사람의 손가락이 그곳에 들어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딜도나 에그가 아닌 체온이 느껴지는 손가락은 루의 몸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전립선 근처를 배회하며 그를 애타게 했다. 루는 결국 참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주, 주인님… 아… 아으!”

“구멍 쑤셔 주니까 좋아?”

“흐으… 아…….”

부드럽게 성기를 쓸어 주던 손이 돌연 루의 허벅지를 세차게 때렸다. 그러나 루는 구멍에서 올라오는 쾌감 때문에 아픈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시발, 주인님이 물어보면 대답을 해야지.”

“네, 네네… 좋아요.”

“어떻게 좋은데. 구체적으로 말해 봐.”

“구, 구멍이… 쑤셔지니까 간지러웠는데 시원… 아, 하으… 으으!”

전립선을 스치고 지나가자 루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뒤틀었다.

“잘 봐. 구멍이 내 손가락을 어떻게 씹어 먹는지.”

명령을 어길 수 없어서 루가 고개를 내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자신의 구멍을 벌리고 쑤시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여서 더 흥분했다. 이것만으로도 갈 것 같았는데 재혁이 화끈한 음담으로 열기를 더했다.

“평소에 뒷구멍으로 자위를 얼마나 해 댔으면 앞을 많이 만져 주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오물거려?”

가 버릴 것 같은 정신을 간신히 붙든 루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입술을 꿈틀거렸다.

“그… 흐으, 뒷구멍 쑤셨어요. 디, 딜도로… 아, 아아!”

재혁의 손가락 끝이 구멍 속에서 구부러졌다. 내부가 긁히는 느낌에 루가 허리를 뒤틀었다. 벌어진 입가로 타액이 질질 흘렀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게 사랑스러워 재혁은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 주는 척하며 그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발정 난 개가 따로 없잖아. 정숙하지 못하게.”

“주, 주인님… 아, 아아… 더, 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신음하는 루의 구멍에서 움직이고 있는 손가락의 속도를 높였다. 신음이 더 높아지자 두 개로 늘린 손가락을 다시 세 개로 늘렸고 그제야 아픈지 표정을 한껏 찡그리며 울었다.

“아, 아파…….”

“아프고 싶어서 나한테 온 거 아니야?”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 쿠퍼액을 윤활제 삼아 선단을 문질러 주자 고통이 쾌감으로 변했는지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투르긴 했지만 구멍에서 점점 힘을 빼고 있는 게 재혁의 손가락에 느껴졌다.

그래, 이 정도는 참아야지.

재혁은 손가락을 빼내면서 이미 늘어난 자리에 딜도를 박아 넣었다.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이 딜도를 삼키는 모습을 보며 거기에 좆을 처박고 흔들고 싶다는 생각을 눌렀다. 오늘은 삽입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흐읏…….”

손가락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통이 아래에서 올라왔다. 루가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자 찰싹하고 허벅지에 뜨거운 손바닥이 내리쳐졌다. 루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런 루가 기가 막혔다. 케인과 패들로 때려 달라더니 손바닥으로 몇 대 때리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울어 대면 앞으로 더 심한 건 어떻게 견디겠다는 말일까. 재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루를 봐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더 어이가 없었다.

“루.”

재혁이 루의 뺨을 톡톡 쳤다.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가 몇 번 깜빡이더니 애원하듯 그를 바라봤다. 아직 제대로 된 플레이는 시작도 하기 전인데 벌써 혼자 끝까지 다 간 얼굴이었다.

재혁은 무릎으로 벌어진 허벅지를 지그시 눌렀다. 손으로 양쪽 허벅지를 잡고 있던 루의 몸이 누르는 방향으로 기우뚱했다. 재혁이 다정하게 웃었다.

“자세 흐트러지면 다리에서 손 못 떼게 묶을 거야.”

“으읏…….”

재혁이 구멍 안에 박아 넣은 딜도를 꾹 누르자 얇은 손목과 허벅지가 동시에 들썩거렸다. 질척거리는 구멍에 꽂힌 딜도를 잡고 살살 돌리기 시작하자 들썩임이 심해졌다.

검은 막대기를 품고 있는 구멍이 지나칠 정도로 붉고 야했다. 딜도의 버튼을 누르면 얼마나 더 야해질까. 재혁은 입술을 핥으며 버튼을 눌렀다. 딜도가 서서히 진동하기 시작하자 맞물린 구멍 안을 채우고 있던 젤이 녹아 흐르기 시작했다.

“아… 흐으, 아아!”

이 안쪽이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넓히고 쑤시는 게 그의 취향인데 이 정도면 아직 시작도 안 한 셈이었다. 벌써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는 루를 슬쩍 바라보며 딜도의 진동을 한 단계 더 올렸다.

“아… 으으!”

안을 가득 채운 딜도가 내벽이 덜덜 떨릴 정도로 진동하자 안이 바짝 조여들었다. 처음 그냥 박아 넣었을 땐 고통이었는데 지금은 쾌감이 올라와 머릿속이 몽롱해졌다.

“조여야지. 떨어질 것 같잖아.”

애원하려는 말을 하려고 벌어졌던 입술이 다물렸다. 그가 딜도를 입구까지 뺐다가 한 번에 처박았기 때문이다.

“…하아, 아으읏!”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터지며 그가 비명을 질렀다. 덜덜 떨리면서도 빠듯하게 조이는 입구가 야해서 그걸 보고 있는 재혁의 얼굴도 찡그려졌다. 마치 제 좆이 저 구멍에 박힌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느낌이었다. 시발. 낮게 욕을 읊조린 재혁이 틈을 주지 않고 진동하는 딜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흣! 아아, 아파… 아파요!”

“헐렁한데 뭐가 아파.”

정신이 없어서 느끼지 못했겠지만 안을 충분히 넓혀 줬다. 이렇게 아프다고 울 정도가 아니었단 말이다. 남이 쑤셔 주는 쾌감이 견디기 힘든지 루가 서럽게 울었다.

눈물로 얼룩진 뺨이 마음에 들어서 더 울리고 싶었다. 쑤시고 있는 구멍을 망가트리면 좋을 것 같았다. 재혁은 우는 얼굴을 뜨겁게 바라보며 손을 더 거칠게 움직였다.

“흐으! 아아! 제발, 자, 잠깐… 아아!”

고개를 흔들며 울던 루가 잘못했다고 빌기 시작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자기가 잘못이라고 죄송하다고 비는 목소리에 취할 것 같았다. 재혁은 홀린 것처럼 그의 구멍을 더 짓쑤시고 괴롭혔다. 그가 아프다고 울며 허벅지를 잡은 손을 놓치려고 할 때마다 재혁은 기다렸다는 듯 더 세게 쑤셔 넣었다.

“자세 똑바로 못 하지.”

차갑게 뇌까린 한마디에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턱을 젖혔다. 허벅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잡힌 곳이 새하얗게 변했다. 질척이는 구멍과 터질 것 같은 성기, 들썩거리는 아랫배와 쾌감에 못 이겨 우는 얼굴과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 모든 것이 다 지나치게 꼴렸다.

루가 서럽게 울면 울수록 재혁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배부른 맹수의 얼굴이었다. 재혁이 그러면 그럴수록 루의 구멍이 조여들고 아랫배가 땅겨 왔다. 죽을 것 같은 쾌감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으으! 아흐… 으윽!”

구멍을 들락거리던 딜도가 예민한 부분에 멈췄다. 그곳을 슬슬 문지르며 진동하는 딜도에 다리를 잡은 손의 힘이 풀렸다. 루는 혼자서 제 아래를 쑤실 때도 충분히 절정에 다다랐고 지금까지는 그것만이 쾌감인 줄로만 알고 살았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서 수치스러운 자세로 구멍이 벌어지고 안이 마구잡이로 짓쑤셔지며 깨달았다. 그동안 자신이 느꼈던 것은 쾌감이 아니라는 것을.

전립선에 닿은 진동이 세졌다. 이대로 사정할 것 같아서 아랫배를 조일 때 그가 어떻게 알고 억눌린 목소리로 명령했다.

“싸기만 해. 아주 찢어 버릴 테니까.”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대로 싸면 죽기 직전까지 혼날 것 같은데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선단에서 쿠퍼액이 줄줄 새서 배꼽에 고일 정도였다.

“흐으… 제발, 주인님… 가, 가고 싶어요.”

쾌감이 심해서 아래에서 어떤 자극이 오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가고 싶다는 말에 그가 허락했는지 안 했는지도 몰랐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었다. 그냥 어디 깊은 바닷속에서 혼자 떠다니는 것처럼 세상과 단절된 채 기분이 좋았다. 고개를 젖힌 채 입을 벌리고 구멍을 바짝 조였다.

그때, 그가 으르렁거리며 목덜미를 콰득 깨물었다. 목이 뜯겨 나갈 것만 같은 자극에 놀라서 젖혀진 고개를 들자 그가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루를 보고 있었다. 잘못했다고 빌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루의 입에서 나간 말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말이었다.

늘 가슴속으로만 생각했던 망상…….

“가…가슴도요. 가슴도 깨물리고… 으윽!”

그는 루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감히 섭 주제에 요구하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버릇없는 행동이었다. 재혁은 루의 가슴을 깨무는 대신 딜도의 진동을 한 단계 더 높였다.

“버릇이 어느 정도로 없어야지.”

흥분기가 싹 빠진 재혁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아래는 여전히 쌀 것 같은데 딜도는 묘하게 자극점을 빗나가 있었다. 짧은 시간에 자신의 전립선 위치를 파악했는지 끝까지 쑤셔 주지 않고 입구에 걸친 채 루의 애를 태웠다. 루는 갈 듯 말 듯 한 쾌감을 견디기 어려워 또 울었다.

“아… 아으, 제발… 저, 흐읏…….”

재혁이 웃으며 느릿하게 고개를 숙였다. 발딱 일어서있던 젖꼭지가 깨물렸다. 뜯어낼 것처럼 아프게 씹고 잘근거렸지만 루는 고통을 쾌락으로 받아들이는지 허리를 크게 휘며 신음했다.

“아읏… 아아, 좋아…….”

반대쪽 젖꼭지가 손톱에 긁혔다. 깨물린 곳을 달래듯 혀로 쓸었을 때 루의 시야가 꺼졌다가 돌아왔다.

“하… 누가 싸래?”

“…네?”

젖꼭지에서 입술이 떨어지고 정신을 차린 루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았다. 성기에서 진한 정액이 줄줄 흘러 소파를 적시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제 성기와 자신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눈을 깜빡이는 루의 얼굴이 미치게 꼴렸다.

“깨물리는 게 좋아?”

“그…그건 팀장님이…….”

“뭐? 개새끼가 아무 데서나 질질 싸 대는 게 내 탓이라고?”

재혁이 질 나쁘게 웃으며 입구에 걸려 있던 딜도를 콱 처박았다. 압박감에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내벽의 떨림이 더 크게 느껴졌다.

“으으… 아아!”

“루 씨, 그거 알아? 나는 당신이 처음이란 걸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이래? 보통은 두려워하지 당신처럼 이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아. 첫 플레이에 앞을 만져 주지도 않았는데 질질 흘리다니. 어떻게 이러지?”

음탕하고 더러워. 루는 머릿속으로 재혁이 하지 않은 말까지 상상하며 허리를 흔들었다. 언젠가 꿈에서 들었던 모욕이었다. 찰싹,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루의 엉덩이에 커다란 손바닥이 스치고 지나갔다.

“눈 떠.”

긴장을 풀고 있던 구멍이 잔뜩 조여들었다.

“보여? 한 대만 쳐 줘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거?”

재혁이 다시 손을 올리자 루가 신음하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귓불이 깨물리고 소름 끼치게 낮은 음성이 귀를 파고들었다.

“싫어?”

“으으… 싫… 아니, 좋아… 그만… 으으!”

“어쩌라는 거야?”

재혁은 딜도를 깊숙이 처박은 채 루의 몸을 뒤집었다. 자세가 바뀌자 더 깊이 들어온 것에 내장이 뭉개지는 것 같았다. 엉덩이만 치켜든 루의 상체가 무너졌다. 재혁의 손이 무자비하게 엉덩이를 후려갈겼다.

눈물범벅이 된 채로 소파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질렀다. 숨이 가빠 머리가 울릴 지경이었다. 머리채가 잡혀 고개가 홱 젖혀졌다.

“으으… 아, 저 수, 숨이 안 쉬어… 으으읏!”

루는 교성을 지르며 구멍을 꽉 오므렸다. 머리카락이 다 뽑힐 정도로 세게 잡혀 고개가 아프도록 꺾였다. 루가 눈을 감을 때마다 딜도를 처박은 엉덩이에 손바닥이 닿았고 그럴 때마다 구멍은 더 세게 오므라들었다.

“아, 아앙… 저, 더는…….”

소파와 맞닿은 곳에서 뜨거운 액체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또 싸질렀다는 생각에 오싹하게 소름이 돋았다. 혼날까 봐 몸이 벌벌 떨렸는데 입술에 뜨거운 것이 닿았다. 부드럽고 말캉한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그의 것을 머금느라 상처가 난 입 안을 부드럽게 핥고 여린 점막을 쓸어 냈다.

“으응… 하아…….”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진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딜도는 여전히 구멍에 박혀 있었지만 진동이 없어서 참을 만했다.

루는 사정 직후의 여운을 느끼며 그에게 입술을 맡긴 채 가쁜 숨을 할딱거렸다. 입술을 조금 더 머금고 싶다고 생각할 때 그가 입술을 떼고 말했다.

“힘 풀어. 언제까지 박고 있을 셈이야.”

재혁이 장난스럽게 엉덩이를 살짝 때리며 말하자 루가 숨을 몰아쉬며 구멍의 힘을 풀었다.

“흐응…….”

구멍을 가득 메우고 있던 딜도가 빠져나갔다. 서늘한 느낌에 몸이 떨려 고개를 박은 채 숨을 죽였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플레이가 끝났다는 걸 알았다.

그는 제 것을 넣어 주지도 않았고 플레이가 끝났음에도 잘 해냈다는 보상을 해 주지도 않았다. 끝나는지도 모르게 끝이 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어디론가로 가 버린 것 같았다.

서럽고 허무했지만 애써 마음을 달랬다.

‘원래 다 이런 거야. 연애 관계가 아니라 플레이 상대일 뿐이잖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도 버려진 기분이 들어 서운하고 속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바라는 건 오직 플레이 파트너일 뿐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마음마저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래도 플레이 상대만을 원한다고 했던 그에게 더 바라면 이것마저도 못 할지 몰랐다. 더 바라서 그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

‘신루, 진짜 병신 같아.’

속으로 욕을 지껄인 루는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는 것을 손으로 훔쳐 내며 몸을 일으켰다. 몸 여기저기가 울긋불긋했고 구멍은 벌어져 있었다. 자신이 싸지른 정액이 말라붙은 몸을 내려다보며 비참함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하나도 꿈쩍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루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플레이를 세게 한 것도 아닌데 온몸 구석구석이 다 쑤셨다. 그러나 이런 몰골로 여기서 더 시간을 보내 봐야 우스운 꼴만 보일 것 같아서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섬주섬 찾아 입을 때였다.

“루 씨, 지금 뭐 합니까?”

“히익!”

팬티 안에 다리를 넣고 있던 루가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균형을 잃고 소파에 쓰러졌다. 우스운 꼴로 넘어져 고개를 들었더니 재혁이 한심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 놀란 루는 손에 잡은 팬티로 중심이 아닌 제 눈을 가려 버렸다. 자기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맹수에게도 제 몸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초식동물 같은 꼴이었다.

곁에서 ‘하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 나… 눈에서 팬티 치워요.”

“안 돼요.”

“왜? 좆은 훤히 다 보여 주고 있으면서.”

그제야 루의 손이 눈에서 떨어져 나와 아래를 가렸다.

“저어… 갈게요. 빨리 옷 입고 가려고 했는데 조금 아파서…….”

“……?”

재혁은 황당한 표정으로 루를 바라보았다. 저 남자가 지금 뭔 소리를 지껄이고 있나 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루가 허겁지겁 일어나 옷을 챙겨 들었다. 재혁이 루의 손을 덥석 잡았더니 놀란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왜, 왜요?”

“씻고 입어요. 몸이 더러운데.”

“…더럽긴 하지만.”

루는 제 몸이 더러워서 그의 기분을 언짢게 했을까 봐 말꼬리를 늘이며 들고 있던 옷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제 몸이 부끄러워서 조금이라도 덜 보여 주고픈 마음에 몸을 웅크렸더니 재혁이 다가와 몸을 감쌌다.

더럽다고 했으면서 안아 주는 것에 놀라 몸이 떨렸다.

“그렇게 안 떨어도 됩니다. 더 건드릴 생각 없어요…….”

그의 몸이 닿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욱신거렸던 근육들이 일시에 풀리는 것 같았다. ‘얼른 옷을 입고 가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이 스르륵 감기는 순간 루의 몸이 공중에 떴다. 재혁이 그를 안아 들어 올렸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서 손을 허공으로 내젓자 그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목 감아요.”

“…….”

루의 팔이 재혁의 목에 감겼다.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어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눈을 뜨고 있으라는 명령이 생각나서 번쩍 떴더니 재혁이 낮게 웃었다.

“플레이 중이 아닐 땐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네.”

곧 등에 푹신한 시트가 닿았다. 그의 침대인 걸 알고 루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더러워요.”

“뭐가? 시트는 항상 빨아서 새 걸로 바꿔 놓습니다.”

“아니! 시트가 아니라… 제 몸이요.”

“그래 봐야 내 몸에서 나온 건데 뭐 어떻습니까.”

자연스레 어깨로 올라온 팔이 루를 밀어 넘겨 재혁의 품에 안겼다. 커다란 손이 빗장뼈를 따라 쓰다듬듯 미끄러졌다. 뜨거운 손가락이 몸을 지나갈 때마다 루가 흠칫거렸다.

“잇자국이 심하게 났네요. 아팠습니까?”

아프려고 플레이를 한 건데 무슨 소릴 하는가 싶어서 루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였다.

“나도 오랜만이라 조절을 못 했습니다.”

“…….”

괜히 부끄러워서 그가 대충 덮어 준 이불을 끌어 올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버려졌다는 생각에 비참했던 마음이 간질거렸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데 갑자기 다정해진 재혁의 태도에 놀라서 하고 싶은 말이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입을 뻐끔거리다가 간신히 말을 뱉었다.

“아니에요! 하나도 안 아팠어요.”

사실 조금 더 아프게 깨물렸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많이 울긴 했지만 오늘 그와 한 플레이는 약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루의 목에 머물러 있었다. 상처를 바라보는 눈이 심각했다.

“약 발라야겠습니다.”

“저… 괜찮은…….”

루가 손을 올려 목을 가리자 재혁이 힘주어 손을 치워 냈다. 짙고 까만 눈동자가 눈을 맞춰 왔다.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루 씨, 내가 약 발라 주는 게 싫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피합니까?”

“그냥… 팀장님과 저는 플레이 파트너일 뿐이고 연애하는 것도 아니니까 폐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루의 손목을 잡고 있던 재혁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기가 막힌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올린 재혁이 루를 돌아보았다.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당장이라도 비난의 말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루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루 씨는 대체 나를 어떤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쓰레기라고 생각 안 하는데요?”

당연한 듯 되묻는 순진한 루의 얼굴에 재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요. 처음이니까 모를 수… 아니지, 루 씨, 처음이면 오히려 더 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플레이가 끝난 후에 돔이 섭의 후처리를 해 주는 건 연애 디엣이 아니라도 기본 매너예요. 어떻게 그 몸으로 옷을 챙겨 입고 돌아갈 생각을 합니까.”

“아… 저는 잘 몰라서…….”

루의 눈동자가 길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플레이가 끝났으니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고집 따윈 하나도 없이 바로 잘 모른다고 인정하는 태도, 눈동자를 굴리는 표정……. 루의 모든 것에서 재혁은 완전한 순종을 읽었다.

섭이 처음이라면서 이 남자는 어떻게 이렇게나 완전한 순종을 몸에 달고 있을까.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루를 심하게 대하지 못하고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그의 턱에 손을 대고 고개를 올려 눈을 맞추었다.

“지금부터 알아 가면 되니까 고개 숙이지 말아요.”

입을 다문 채 그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 시선에 홀린 듯 입을 맞추었다. 마른 듯한 입술 속을 벌리고 들어가 핥듯이 혀를 얽고 등을 쓰다듬자 그의 눈이 감겼다.

“조금 쉬다가 씻읍시다.”

루의 귀에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는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 상황에 쉽게 적응할 수가 없었다. 플레이와 플레이가 아닐 때 차이가 난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게 아니라도 재혁은 묘하게 더 다정해진 느낌이었다.

회사에서의 그는 어땠었지? 프로페셔널하고 정중한 사람이긴 했지만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아 다가가기 힘들었다. 그런 사람이 플레이 파트너라고 못을 박고 벽을 쳤으면서도 플레이를 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다정해졌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드는 기대감을 괜한 오해 하지 말자며 내리눌렀다.

그는 나에게 특히 더 다정한 게 아닐 것이다. 나에게 마음이 있어서거나 연애 관계라서가 아니라 플레이가 끝난 상황에서 돔이 섭에게 해 주는 보상이라고. 다른 도미넌트들도 다 하는 거라고.

다른 관계와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씁쓸했지만 루는 지금의 재혁을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그게 아니면 시작 전에 자신에게 벽을 친 행동과 지금 다정한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다정한 재혁을 보니 자신감이 생기긴 했다. 아무리 매너라지만 재혁은 싫은 상대에게 제 침대를 내줄 만큼 쉬운 사람이 아닐 테니까. 용기가 생긴 루가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낮이라 보일러를 틀지 않았는데 혹시 춥습니까?”

재혁은 그렇게 물으며 루를 안아 왔다. 루는 그의 품에 안긴 채 고개를 저었다. ‘그냥 체온이 좋아서요.’라고 말하며 몸을 붙이자 그가 낮게 웃었다. 다정한 웃음소리에 이대로 깊은 잠에 빠져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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